한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 인물은 있게 마련이다. 춘천시에는 요새 김유정 작가가 뜨는 인물이다. 예전 경춘선 열차는 이제 복선 전철로 바뀌었고 신남역은 작가 이름을 붙여 ‘김유정 역’으로 2004년부터 바뀌었다. 역전에서 400m만 가면 김유정의 고향마을을 만나게 된다. 관광안내소까지 번듯하게 지어졌다. 몇 발짝만 떼면 김유정 생가와 문학관을 만나게 된다.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을 통틀어 ‘김유정(1908∼1937) 문학촌’으로 칭한다. 실레는 ‘시루’의 강원도 사투리로 ‘떡시루를 닮은 마을’로 풀이할 수 있다. 그래서 시루 증(甑) 자를 써, 행정명칭을 증리라 했다. 그가 발표한 31편의 소설 중 12편의 무대가 모두 이곳을 배경으로 했기에 마을 전체가 작품의 산실이며 현장이다. 우선 2002년 8월 6일 개관한 문학관을 찾아보자. 생가, 외양간, 디딜방앗간, 휴게정, 전시관 등이 있고 김유정 선생의 동상과 소설속의 인물들이 조형화되어 있다. 그저 ‘봄봄’ ‘동백꽃’이라는 대표적인 작품만 떠오르는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인터넷으로 예약해야만 해설을 들을 수 있지만 의외로 찾는 이들이 많아 뒤섞여 설명을 들으면 된다. 작가는 1908년 1월 11일, 6000석 재산을 가진 춘천지방 토호의 2남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해설사의 말을 빌리자면 이 마을 사람들은 작가네의 땅을 밟지 않으면 걷지 못할 정도로 부농이었단다. 1913년 부모님은 서울 운니동에 1백칸짜리 집을 얻어 이사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뒤에는 아버지까지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예전엔 으레 그랬듯이 큰형은 방탕한 생활을 했고 부모 사후 10년도 안 돼 집안이 기울어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게다가 그는 소년 시절 말더듬 증세를 갖고 있었다. 그는 독신으로 살다 29세 나이에 요절을 했지만, 일생에 두 여자가 있었다. 동편제의 명월관 기생출신인 명창 박녹주와 박봉주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에 입학한 2년, 작가는 박녹주의 소리 공연을 보고 짝사랑에 빠져 연서를 써서 보내나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제적을 당해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향에서도 들병이들과 난삽한 생활을 이어가다 다시 맘잡고 보성고에 입학했으나 자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금병의숙’이라는 야학당을 운영한다. 이후 절친인 안회남은 1933년, 김유정이 쓴 세 편의 소설 중 ‘산골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잡지에 발표시켜 준다. 그리고 이때 미처 발표되지 못했던 작품인 ‘소낙비를 개작해 직접 조선일보사 신춘문예 응모에 접수해준다. 1935년, 이 작품으로 신춘문예 1등 당선 작가가 된다. 또 같은 해,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도 ‘노다지’로 가작 입선한다. 등단하자마자 ‘금따는 콩밭’, ‘만부방’, ‘떡’, ‘봄봄’등의 걸작들을 발표한다. 그리고 두 번째 짝사랑 박봉자를 만나게 된다. 박봉자는 구인회원이었던 정지용과 시문학 동인인 박용철의 누이였다. 둘은 당시 ‘여성’이라는 잡지의 필진이었다. 유정은 박봉자의 필력에 반해 30여통의 편지를 보내나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중간에 오빠가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그의 사랑은 짝사랑에 그쳤고, 만부방 같은 형은 나날이 가산을 탕진해 생계는 어려웠다. 폐결핵 등 병이 깊어져 경기도 광주에 있는 누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친한 친구인 안회남에게 ‘필승’이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의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읽으면 가슴이 아리고 아리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중략> 돈이 되면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친구가 보내준 추리소설을 번역하다가 29세의 생일을 보낸 한 달 뒤 폐결핵과 결핵성 치루로 타계했다. 그가 죽고 난 스무날 뒤, 도쿄에 있던 구인회원이었던 이상도 죽었다. 천재는 요절하는 것인가? 요절했다고 천재는 아니지만, 요절하지 않으면 결코 천재일 수 없으리라고 말한 글귀가 이 순간 떠오른다. 어쨌든 김유정은 죽었지만 그의 고향 실레마을에는 살아 있다. 비록 29년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의 멋진 필력을 오랫동안 남아 고향마을을 빛내고 있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지금은 지극히 전형적인 강원도의 시골마을인 실레마을이지만 오래전에는 인근 홍천, 인제 등지에서 온 떼꾼들의 길목이었단다. 주막이 있었을 것이고 한탕을 꿈꾸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당시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레 이야기 길’이 만들어져 있다. 금병산(652m)에는 중턱을 끼고 도는 산길로 길이는 5.2㎞다. 원형으로 이어져 있어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흙이 많은 육산인 데다 산의 높낮이가 급하지 않아 걷기 편해 천천히 돌아도 두세 시간이면 넉넉하다. 산길 곳곳엔 김유정의 소설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덧씌웠다. 길 전체를 16개 구간으로 나눈 뒤 구간마다 김유정의 작품 속 내용을 본뜬 이름을 붙였다. ‘들병이들이 넘어오던 눈웃음길’,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소낙비)과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산골나그네),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가을), ‘근식이가 자기집 솥 훔치던 한숨길’(솥),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길’(봄·봄),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산골) 등의 글귀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금병산은 ‘가을이면 산기슭에 비단병풍을 둘러친 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을철 이곳을 찾으면 어떨까? 금병산 정상에 서면 춘천 시내가 한눈에 조망된다.
■여행정보 ○ 주소 :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 입장시간:하절기: 09 : 00~18 : 00, 동절기 : 09 : 30~17 : 00 / 매주 월요일과 법정 공휴일 다음날(명절날은 당일) 휴관 / 문의 : 김유정문학촌:033-261-4650 ○ 가는 길 : 경춘복선전철 이용해 김유정역에 하차. 실레마을은 김유정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린다. 또는 춘천시내(중앙로 등지)에서는 1번, 67번 시내버스 이용. ○ 별미집 : 실레마을에는 시골장터막국수(033-262-8714, 증리 861-14)을 비롯해 제법 많은 맛집들이 있다. 그 외에는 춘천은 닭갈비의 고장이다. 명동거리는 오랫동안 닭갈비 거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 춘천에서 의암호를 따라 이어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가면 의암댐 주변에 자리한 매운탕 골이 기다린다. ○ 주변 볼거리 : 김유정역 바로 옆에는 레일바이크(033-245-1000, www.railpark.co.kr)타는 곳이 있다. 강촌역에서 시작해 김유정역까지 8km 구간이다. 또 김유정의 뜻을 기리는 상징물들은 실레마을 이외에도 몇 군데 더 있다. 김유정기념사업회는 1968년 김유정이 밤낚시를 자주 다녔던 의암호 부근(춘천시 칠송동)에 김유정 문인비를 세웠다. 또한 춘천 공지천 근처 조각공원에도 ‘김유정 문학비’가 있다. 또 매년 5월경이면 해마다 김유정 문학제가 열린다. 그 외 청평사 등 볼거리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