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띠에 대한 번역어로는 ...... 주절주절...
봄봄은 사띠의 의미를 기억.... 어쩌고 저쩌고...
4념처(gocaro sako pettiko visayo)에서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pe… citte…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ātāpī는 精進이고, sampajāno는 般若이고, satimā는 기억이고,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는 定이다.
.... 어쩌고 저쩌고... 각설하다가
대념처경에서
Iti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여기 內~, 外~, 內外~에 봄봄은 딱 걸려서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는데
[지화자님]은 마지막 구문을 가져 오셔서 '결론이 그래 무엇란 말이냐?'고 바로 들이대시니... ㅋ
Samud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집법수관(集法隨觀)하는 자(samudaya-dhammānupassi)>로 머물거나,
혹은 신(身)과 관련하여 <소멸법수관(消滅法隨觀)하는 자(vaya-dhammānupassi)>로 머물거나,
혹은 신(身)과 관련하여
<집-소멸법수관(集-消滅法隨觀)하는 자(samudaya-vaya-dhammānupassi)>로 머문다.
....부분은 아위자님의 글을 참조하시고....
‘Atthi kāyo’ 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 eva ñāṇa-mattāya patissati-mattāya.
‘아는’만큼(ñāṇa-mattāya) ‘주의하는’만큼(patissati-mattāya)에 한하여
[yāvad eva, =한정하여, =딱 그만큼만] <신(身)이 ‘있다’>라는 사띠가 확립된다.
중간 과정 생략하고 봄봄도 의견을 드려 보겠습니다.
직역은 안되니 문맥상으로 이해한 것만으로 의견 드리겠습니다.
번역은 아위자님께 해 주셨으니
봄봄은 위 구문에서
ñāṇa-mattāya는 4념처에서의 [sampajāno는 般若]에 해당되는 듯 하고,
patissati-mattāya는 4념처에서의 [satimā는 기억이고]에 해당되는 듯 하다는 말씀만 드리고,
부기하여 위 번역에서의
[주의하는’만큼(patissati-mattāya)]의 사띠와
[사띠가 확립된다]의 사띠가 다른 의미를 가지는 단어는 아닌 듯 하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이것이 결론은 아니고 그 다음 문장이 결론인 듯 합니다. 그 내용은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 pi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PTS, DN. vol.2. p.292]
[이제 그는]
<세간(世間)의 그 어느 것도 움켜쥐지 않고 [아무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신(身)과 관련하여 신수관(身隨觀)하는 자로 머문다.
..............이 내용 눈에 익지 않습니까?
최근 몇칠간 본 카페에서 아위자님이 강조 강조 강강조.... 하신 그 내용.
장자여,
‘…나에게 眼(~意)[=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닦아야 합니다.…
‘…나에게 色(~法)[=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닦아야 합니다.…
‘…나에게 眼識(~意識)[=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나에게 眼觸(~意觸)[=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나에게 眼觸生受(~意觸生受)[=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나에게 地界(~識界)[=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나에게 色(, 受, 想, 行, 識)[=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나에게 空無邊處(ākāsānañcāyatana)[=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
‘…나에게 識無邊處(viññāṇañcāyatana)[=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
‘…나에게 無所有處(ākiñcaññāyatana)[=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
‘…나에게 非有想非無想處(nevasaññānāsaññāyatana)[=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
‘…나에게 이 世間(idhaloka)[=명색]과 저 世間(paraloka)[=명색]에 의존하는 識은 없을 것이다’라고
닦아야 합니다. …’[MN. vol.3, p.p.259~261]
이것을 시건방진 봄봄은 똥폼 잡는다고.. 댓글에서 다음과 같이 줄였는데.... ^^;;
(급고독) 장자여, 흰 옷을 입은 재가자에게 이러한 법문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출가자에게 이러한 법문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
{眼}을 (愛-)取하지 않을 때, {眼}에<을> 의지<추종>하는 [={眼}때문에 생겨나는] 識은 없다.
{眼} = {6內 - 6外 - 6識 - 6觸 - 6觸生受 - 6界 - 5蘊 -
空無邊處/識無邊處/無所有處/非有想非無想處 - idhaloka/paraloka - 見.聞.覺.知(識)}
------------{명색} → 識.....[6識이나, 6界나, 5蘊이나, 見.聞.覺.知(識)의 識이 아닌듯.]
{명색}取 → 識<→名&色(=有)>]....여기의 識은 12연기지중 3번째, 名&色은 4번째 지분의 名色.
그 원문은
1) “장자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장자여, ‘나는 시각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의식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배워야 합니다.
Householder, if that is so, you should train thus.
I will not cling to the eye, will not be settled in eye consciousness.
5.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 합니다.
'나는 눈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눈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부지어야 합니다.
385. ‘‘Tasmātiha te, gahapati, evaṃ sikkhitabbaṃ –
‘na cakkhuṃ upādiyissāmi, na ca me cakkhunissitaṃ viññāṇaṃ bhavissatī’ti.
Evañhi te, gahapati, sikkhitabbaṃ.
........에서
‘na cakkhuṃ upādiyissāmi, na ca me cakkhunissitaṃ viññāṇaṃ bhavissatī’
...... 이 구문 [cakkhu-ṃ]에 아래 [kiñci loke]을 대치하시고
대념처경의 마지막 결론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을 비교해 보시면
동일하지 않나요? 이렇게 한 줄로 줄이신 것인 줄....^^;;
Evam pi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비구들이여, 이처럼
(명색=세간의 어떤것에 대하여도 취착하지 않고 그래서 세간을 기대어 생겨나는 識이 없게 되어지면)
이것이 진짜배기<죄송^^;> 신수관 수수관 심수관 법수관이다. 이렇게 살아라.
........
그래서 아위자님이 <世間에서의 禪>을 강조하셨으리라 짐작하지만.....
봄봄의 의견은 여기까지 입니다.
첫댓글 성전협회와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도 함께 올렸습니다.
두 단체의 선생님과 스님들께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냅니다.
다만 이제는 새로운 경을 번역하시는 것 만큼
기존의 책도 내용을 부분 부분 수정하면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대충이라도 짐작 안가는 뜻이 그 부분이어서요.^^
전체 경의 끝부분에 그렇게 7일간만이라도 하면,
현법에서 구경각을 얻거나 불환과를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 확~ 끌리네요.^^
身受心法에서 ‘身’을 <몸>으로 번역하는 것은 ............
五取蘊[=有身, =명색]에서 ‘색취온’에만 초점을 맞춘 ‘번역어’입니다.
........ 하기는...... <六處를 지닌 ‘身’>이어서 반듯이 ‘그렇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요......... 저는 ‘身’을 <色身과 名身>으로 보고요, 까야지까[身所]인 <色身>과 제따지까[心所]인 <名身>으로 분류해 보기도 합니다만, ‘까야(身)’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에는 <行[=有爲의 의미에서]>의 의미가 엄청 들어 있는 용어라고 봅니다. ‘蘊’은 ‘身’과 같은 <무더기>라는 의미이지만, 그 둘은 의미가 엄청 다르다고 봅니다.
‘蘊’은 ‘身’과 동일한 <무더기>라는 의미이지만, 그 둘은 의미가 엄청 다르다고 봅니다. ‘蘊’에는 <색온과 명온>이라는 ‘분류용어’가 니까야에 없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 또한 <六處를 지닌 ‘蘊’>이라고 말하면 ‘코미디’가 됩니다. ‘蘊’은 그러한 <處>를 지닐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 단순한 ‘積聚[=거대한 무더기]’의 의미만 있는 용어라는 것.
@아위자
‘色取蘊’의 경우에는 경전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受取蘊’ 등은 <그것이 ‘六受身’ 등등>이라고 경전에 자세히 언급되거든요.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身受心法에서 ‘受’인 ‘六受身’을 <몸>으로 번역하는 분은 없지 않습니까?
@아위자 ‘身’을 <몸>으로 번역하시는 분들을 ......... ‘아위자’가 놀려 댈 때의 질문이 “六受身이란 어떠한 <몸>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미디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는 지적입니다.
@아위자 어떤 분께서는 “그러할 때의 <身>이란 ‘무더기’의 의미 같던데요.”라고 합니다만, “그렇다면 六受身이란 六受蘊과 동의어입니까?”라고 묻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경전에서 六受蘊이라는 용어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미디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는 지적입니다.
@아위자 <행>의 의미, 특히 <신행>의 의미를 모르니........ 별별 '코미디'를 하는 것입니다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선생>이라고 엄청 뻐기면서 지랄발광들 한다니까요....... 미칩니다. 미쳐요.
@아위자 ‘까야(身)’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에는 <行[=有爲의 의미에서]>의 의미가 엄청 들어 있는 용어입니다.
@아위자 <‘天’과 ‘地’ 間에 ‘人’>이라는 동양사상이나, 이 世間에 身行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불교와 뭐가 다른 것입니까?
<身[=까야]>이란 <色을 지닌 것>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六受身’의 의미>를 파악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요약하면 名色이라는 뜻.
그래서 ‘六受身’=‘名身’이라고 보시면 무난합니다.
‘色身’은 色取蘊을 의미하는데요, ‘六六’에서 <外入處계열의 연기>에 의하여 쌓이는 것이 色取蘊.
제가 <왜 위와 같은 설명을 하느냐?>하면요........... 관련경문의 표현대로라면.........
<身이 '있다'>라는 것이 <Sati>거든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경문을 잘 읽어 보셔야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身>이라는 것에 대하여 'Sati의 확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몸이 '있다'>는 것이 <사띠>인가요? <몸>이 있는 줄 모르는 '멍충이'도 있습니까? ........
馬祖선사가 <무안이비설신의>라는 <반야심경>의 경문에 의문을 품고서 출가하셨다고 하던데요........
엄연히 <만져보면 있는 줄 아는 '몸'에 대하여 '있다'라고 하는 것>이 <사띠>는 아니지요.
六識身, 六觸身, 六受身, 六愛身, 六界身, 有身 등등의 ‘身’을 의미하는 것이다.......라는 말.
그것들을 <몸>이라고 보면 ‘코미디’라는 지적.
@아위자 <32가지 내장기관>에 대해서는 <관찰한다>라는 표현만 있지, <隨觀(=아누빠사나)한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경문의 <원문>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32가지 내장기관[=몸]>을 <隨觀(=아누빠사나)하라!>고 한다면 ......... <미친 놈의 '사기'>입니다. <니까야 '원문'에도 없는 이야기>를 저희들이 지어내어서 지랄하는 거에요. 그런 <사기꾼들>이 박실박실한 것이 현실입니다. "씨발놈아! 뭘 <따라가면 보라>고 하는거야? 엉?"하시면서 지적하셔야 하십니다. 그런 사기꾼들은 그 자리에서 <박살>내는 것이 좋습니다. ...... 문제는요....... <관찰하라>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이야기이거든요. 특히 <자신의 32가지 내장기관>을
@아위자 <관찰한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묘지> 같은 곳에서 <관찰>해야 하지,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내장기관'>을 <관찰>하려 들다가는 큰일납니다.[☜직업이 '의사'이신 분은 예외.]
@아위자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까?
내~, 외~ 내외~로 <隨觀(=아누빠사나)한다>
....로 나오는 것 같은데?
또한 <身[=까야]의 滅>이 <몸의 滅>은 절대로 아닙니다. <몸의 滅>이라고 보시더라도 <몸에 대한 욕탐(-찬다라가)의 滅>이라고 해석하셔야 합니다. .......... 자신의 <身[=까야]>가 '있음'을 보는 것이 <사띠의 확립>일 정도로 어려운 것인데........ 어떤 <미친쌔끼>는 <다른 사람의 身[=까야]>를 보라고 지랄하면서 약장수처럼 만병통치된다고 하더라구요. 미얀마 사기꾼도 그렇게 이야기한다고.......하면서........ 참으로 개쌔끼들이 따로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六識身, 六觸身, 六受身, 六愛身, 六界身, 有身 등등>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본다..........라는 것은 <부처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미쳐도 어느 정도 미쳐야 <미쳤다>고
하는 것이지. 미얀마 사기꾼들의 이야기라면 <똥 오줌을 못가리는 사람들>에게 ..... 얼마나 코미디 같은 <사기>를 치는 줄 아십니까? ........ 에효~~~ 조계종이 썩어가니...... 말릴 사람도 없구요........
@아위자 어떤 개쌔끼가 <타인인 心>을 <자신의 心에 미루어 다른 사람의 心을 보는 것>이라고 ........ 에효.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칩니다. 미쳐요.[☜아마도 '아위자'가 <분노조절 장애>가 있나봐요.] 제가 그런 놈들에게 속이서 <허송세월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드니까. 시간은 촉박한데......... 힘은 없고.......... 답답한 것입니다.
@아위자 <타인인 心>이란 <오온에 집착한 '그 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온의 다른 이름이 <타인(para)>이라니까요.
@아위자 ㅎㅎㅎ 너무 흥분마시어요. 화를 내면 자기만 손해인 것 같더라고요. 마음 가라앉히시고 오래 오래 사시면서 공부에 큰 성취 있으시길 바랍니다.^^
사띠로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이런저런 준비가 되어야
사띠가 가능해서...
아니 염처수행으로 가능하죠. ㅋ
짧은 글로 설명이 어렵네요.
그래서 책으로....
다른 책 작업으로 집필이 좀 늦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