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즈리Denizli의 그랜드케스킨 호텔Grandkeskin Hotel에서 하루밤을 묵은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짐을 챙겨서 파무칼레Pamukkale로 향했다. 버스터미널은 숙소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편리했고 파무칼레까지는 버스로 2,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파무칼레에서 내려 중심가의 여행사에서 다음 행선지인 페티에Fethiye의 버스표를 미리 예매했는데 사장은 우리가 미처 부탁하기도 전에 우리의 큰 배낭을 사무실 한켠에 놓아두라고 선선히 말했다. 짐을 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네의 골목길을 몇 차례 끼고 도니...
눈 앞에 그것이 나타났다. 하얀 밀가루 반죽같은 거대한 언덕이.
...
한국에서 여행을 준비하던 때, 그러니까 터키에 대해서 지식이 거의 없어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시절, 어느 누구의 글을 읽던지 반드시 소개하던 지명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파무칼레'였다. 그 이름도 생소하거니와, 도대체 온천수에 석회석이 얼마나 들어있길래 산 하나가 온통 흰색이란 말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터키의 하얀 '파무칼레'에 대해서 가진 궁금증이 커지면 커질수록 여행에 대한 기대도 커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내 궁금증과 가슴 설레는 기대감의 진원지가 두둥~하고 내 앞을 가로막고 섰음을 깨달았다. 이럴수가.
...
흰 언덕을 가로지르는 선 위의 작은 점들이 바로 관광객들의 모습.
유명한 관광지이기에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건만 입구 표시가 흐리멍텅하게 되어 있어서 잠시 주저하다가 대충 보이는 길로 들어섰더니 틀리지는 않았다. 무료인줄 알고 오르다가 부스 안에서 '조용히' 요금을 달라는 관리인에게 뜻하지 않게 5리라 씩을 지불하고는 계속 올랐다. 점점 흰색의 땅이 넓어지고 어느덧 눈앞에 펼쳐진 하얀 땅에 열광하며 뛰어가려는 순간, 들리는 호각 소리. 어디선가 나타난 또다른 관리인이었다.
우리는 관리인의 요구에 따라 신발, 양말을 벗어서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다닐 수 밖에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신발이 벗겨지자 조금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또 은근히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발이 상당히 아팠다. 죠셉과 내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걷는데 앞을 가로막는 수영 팬티 차림의 외국인. 아무리 신을 벗으라고 한다지만 아예 수영복을 입다니 좀 오바가 심하지 않냐고 나는 죠셉에게 투덜거렸다. 아무리 봐도 수영장이 아닌 유적지에서 수영 팬티 차림은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졌다.
발이 아픈 것도 잊고 눈앞에 펼쳐진 진기한 광경에 넋이 살짝 나간 우리는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었으나 이내 고통이 엄습해왔다. 미간을 찡그리며 걷다가 죠셉이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
"야, 가이드 북에 신발 벗으라고 나와있기는 한거야?"
그리고 책을 뒤적거리던 그가 말없이 책을 덮었다. 뭐라고 나와있냐고 묻자 그가 하는 말.
"어, 아예 수영복을 준비하는 게 좋다고 그러네."
"..."
석회석 특유의 물결무늬를 내며 딱딱하게 굳은 부분과 중간중간에 콩알만한 석회암 덩어리 지역을 조심조심해서 걸었다. 햇빛을 받아 옥색으로 빛나는 작은 연못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친 김에 들어가보기로 하고 바짓단을 걷었다. 한걸음 발을 내디디자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포근한 바닥의 느낌이었다. 하얀 석회암 가루가 내 발을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좋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구름을 밟는 느낌이랄까?
내 '발꼬락' 사이로 비집고 올라온 석회 진흙이 마치 생크림같이 느껴졌다. 신기해서 발꼬락을 이리저리 놀려본다. 워낙 곱디 고운 진흙인지라 말갛게 가라 앉았던 연못물을 이내 뿌옇게 만들었다. 내 발은 뿌연 '쌀뜬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얀 석회 지역을 빠져나와 양말로 대충 발을 정리하고 신발을 신은 뒤 조금 걸어 올라가니 척박한 바위산 중턱에 원형 극장이 있었다. 극장 앞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고대 건축물의 잔해를 이리 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다보니 죠셉은 부지런한 걸음으로 이미 원형극장의 절반 정도를 돌고 있었다. 너무 뒤쳐진 것 같아 잰 걸음으로 성큼성큼 부숴진 벽을 딪고 올라 극장 꼭대기의 테두리 부분을 따라갔다.
하드리아누스 2세에 의해 세워진 기원전 2세기 경의 로마극장. 1만 5천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층층이 난 계단의 맨 밑의 중앙 무대를 향하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멀리 산맥 앞으로 펼쳐진 평야를 굽어보기도 하다가 극장을 빠져나오는데 먼저 갔던 죠셉이 이걸 보라며 자신의 카메라를 내민다.
그녀는 원형 극장을 무대로 엽서를 파는 소녀였다. 죠셉을 보고는 쪼르르 달려와 엽서 한 묶음을 사달라고 했다. 죠셉이 얼마냐고 묻자 "원 달러"라고 그녀는 말했고, 죠셉은 그녀에게 돈을 쥐어주며 엽서를 사양했고, 그녀는 한 번 더 엽서를 권하다가 고맙다고 하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터키에는 어린 나이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선 아이들이 너무 만하 보였다. 저 아이에게 도대체 돈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꾸지람일까, 아님 지독한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일까.. 극장을 뒤로하고 걸어오는 동안 소녀에 대한 여러 단상들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곧 파무칼레 2편이 이어집니다.
첫댓글 마지막 부분에서 조셉님의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내요.. 정말 맨발로 걷기엔 조금 아니 조금마니 발이 아푸져..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석회진흙을 생크림에 비유하시다니..정말 소년님은 표현의 달인이셩!!^^
생크림을 밟으시다니~ㅋㅋㅋ 형~ 나두 가고잡프요~ 한 5달러 쥐여주징~~~~ㅎ
와~ 눈밭 같아요.. 저 수영복차림의 남자는 빙판위에 발이 붙어버린것 같아 추워보이네요.^^
소년님이 앉아있는 사진...뒤의 구름이 석회산과 너무나 잘 어울려요 ^^
직접 눈으로 보면 정말 환상적이겠어요.. 소년님 독사진 정말 잘 나왔음 ^^
온통 하얘서 눈이 부셔요...사진속 미소와 배경이 너무 잘 어울리삼..
언제 여행기가 올라왔었나 이제야 봤네요~ 전에 누가 고기집에서 할머니가 돌아다니면서 파는 껌을 사는데 돈은 안받으니깐 할머니가 끝까지 껌을 주고 가시더라구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마 제 생각엔 엽서를 받아줘야 파는 분 마음이 더 편하고 당당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뒤늦게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가네요ㅜㅜ
저녁에 민속무용공연이 있었는데 지금도 하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