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두개라고 하면 그 두가지 성에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있다고 하시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꼭 집어주실수는 없는지??
고씨와 해씨 모두 태양을 근거로 하여 나타난 성씨로 이해되는데 그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찌하여 고구려가 고씨와 해씨를 겸용했다는 것이 천손임을 스스로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까??
고주몽이나 유리 자신도 해씨임에도 분명한데 자신의 본래 성인 해씨를 굳이 지우려 했으리라고는 생각 안됩니다. 주몽이나 유리나 자신이 해씨로서 생활한 시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건국신화에서도 보듯이 고주몽의 출생은 부여와 마찬가지로 해모수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부여와 똑같은 천손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선의 하느님은 환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부여나 고구려의 하느님은 해모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서에서는 백제와 함께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음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고 부여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슷로 인식합니다.
고주몽이 부여인임을 부정하고 부여를 부정하고자 하였다면 부여와 같은 천손관념을 가질 수 없으며 부여에서 출자되었음을 부인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부여의 신인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즉 해씨에 대한 반감자체는 없다는 뜻입니다.
해씨성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천손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씨와 해씨 모두 태양숭배에서 나왔다는 것을 부인하시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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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 맘대로 대화를 단절해버리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말이 안통하면 시간낭비다 짜증난다 하는데 저는 뭐 시간낭비 안되고 짜증 안나겠습니까 피차 마찬가지인데 나는 최대한 자제해가며 글을 쓰는데 님이 그런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화나 토론하는것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안되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최대한 자세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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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성을 하사 받는다는 것이 계루부의 일원이 된다는 뜻으며 계루부가 된다는 것은 왕족으로의 편입이 가능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같은 왕족이라고 하더라도 직계 왕족은 될수 없고 방계쪽으로 될수 있습니다.
解와 高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이 두개라고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의미가 내표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해씨는 부여의 왕성이기 때문에 고구려에서 고씨와 해씨를 겸용하였다는 것은 천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유리명왕을 쿠테타로 보지 않습니다.
다면 비합리적이라는 것의 한 예로 쿠테타를 들었을 뿐입니다.
극재사를 고재사로 볼수 있다고 하는 것은 중국측이야기라는 것은 누구도 인정할수 없는 부분일 겁니다.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중국은 이러했지만, 고구려는 다를 것이다라고 한다면 解와 高의 의미도 고구려에서는 다르게 사용했다고 말할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님의 의견은 틀리게 되는 것이며, 무조건 아니라고 하면 다 되는 것이므로 기본적인 한자의 해석에는 이견을 접어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리명왕의 아들로서 정체불명의 고재사나 동명왕의 신하인 극재사 이 둘의 상관관계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태조대왕이 갑자기 고씨가 되었다는 것을 의문시 하는 것은 삼국사기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결과일 뿐입니다.
이런 논의는 제게는 현재 시간낭비일뿐입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쓴 다는 것 자체도 저는 짜증납니다.
이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참고하시고 리플은 달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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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왕이 고주몽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단지 하사받은 것 정도로는 말 할 수 없습니다. 고씨성을 사성을 받았다 한들 왕족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후대보다는 고주몽 당대에 빗대어 이야기 한 것입니다. 고주몽이 고씨를 천명한 기간은 사실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기록에는 주몽이 상당히 젊은 나이에 죽은 것으로 나옵니다.
여러번의 공있는 신하들에 대한 사성이 행해졌지만 주몽이 고씨성을 사성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 태조왕이 고주몽 당대에 고씨성을 사성받은 사람의 후손이라는 것입니까?? 태조왕 이전까지 고주몽 자손이 아닌 사람으로서 고씨성 가진 신하의 기록이 없다가 갑자기 태조왕이 고씨로서 왕이 된 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본래 사성받은 귀족중에도 고씨가 많았던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님 이야기 중에는 강력한 가문, 공있는 가문에는 왕족에 편입될 수 있도록 배려했을 거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기록에 그만한 힘있는 가문이 보이느냐 이겁니다. 후대에 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고구려 초기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비류국의 지배자인 송양에게도 고씨성을 하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몽 당대에 고씨성이 하사되었다면 1순위가 바로 송양 가문이나 아니면 처음 건국할 때 함께 했던 신하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는 않았죠.
아직 확인은 안해봤지만 극씨가문에게는 극씨를 사성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씨를 사성했다면 고씨이지 왜 극씨입니까..중국에서는 극등의 글자가 고자로 가차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삼국사기의 이 고구려 초기기록은 중국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극과 고가 같을 것이라는 소위 극재사가 고재사일지도 모른다는 님의 이야기는 이 극재사에 대한 기록이 중국쪽의 기록을 인용한 것일때에 효력이 있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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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멤버라고 했던것에 대해서는 용어가 틀렸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부분노는 주몽의 신하였다는 것을 말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이정기님은 유리왕이 쿠데타로 일어난 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유리가 고구려에 와서 왕이 된 기간은 불과 5개월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한창 창업하여 뻗어나가려하는 주몽왕의 신하들이 반년도 안되는 기간에 유리왕에게 협력했을리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이 유혈사태에 대해 ..즉 누구는 숙청되고 누구는 그대로 남았다고 하는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유추할만한 암시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부분노뿐만 아니라 송양일가는 여전히 고구려의 중요한 세력중 하나입니다.
유리가 짧은 기간에 고구려를 차지하려면 위만처럼 많은 수의 무리를 이끌고 왔던지 해야됩니다. 그리고 유리가 새로운 왕이 되었다면 이전의 고주몽의 역사는 지우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주몽이 시조이고 유리가 그 아들로 나오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소서노와 비류온조 모자는 아무말 없이 자리를 내주고 떠난 이유는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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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기록은 김부식이 해씨성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해라는 것을 이름의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대로 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성이 해씨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거하고 인용한 기록이 서로 다른 계통일 것이라는 유추를 가능하게 합니다.
같은 근거로서 사서를 지었다면 저런 상반된 견해는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저는 원문일부를 통해서 해씨성과 고씨성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두가지 성이 병존할 적에 고씨성이라고도 할 수 있고 해씨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예로 김제상과 박제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각각 다른 성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서로 다른 계통의 기록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고대에는 같은 사람일지라도 다른 성으로 기록할 가능성은 충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두개의 성을 사용한다는 것은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포기한다는 뜻일거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제가 벌써 3번째 말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 고대인의 성씨개념을 파악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제상은 신라왕족입니다. 김과 박이라는 성씨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왕족입니다. 그리고 그 딸은 왕의 동생에게 시집갔습니다.
물론 제상의 경우에는 고구려의 경우와는 약간 다릅니다. 제상은 부계성과 모계성을 모두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고주몽의 경우에 해씨라고 할 수 있는 주몽자신이 고씨라 칭했으므로 해주몽 고주몽 모두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식인 유리또한 해씨라고 할 수 있고 고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그 전거한 기록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상이 서로 다른 성씨로 기록되었듯 유리또한 그런 차원에서 삼국유사에서 다른 성으로 나온 것이란 의미로 제상의 경우를 말씀드린 겁니다. 기록에 따라서 성씨를 다르게 기록할 수 있다는 뜻이죠
해씨나 고씨나 모두 하늘의 자손임을 천명하는 성씨임에는 똑같습니다. 똑같이 태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을 두개 혼용한다고 해서 천손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의 건국공신중 유리명왕때에 등장하는 사람은 협보뿐 다른 인물들은 없습니다. 없으니까, 나이들어 죽었다고 하시겠습니까?
님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신하들은 쿠테타가 일어나면 무조건 따라서는 안되며, 쿠테타를 일으킨 왕은 전 대왕의 주요 신하들을 무조건 죽여야 할까요?
쿠테타가 일어나면 협조하는 자와 협조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쿠테타에 협조하여 살아남는 자는 역사에서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협보가 유리명왕의 아래에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유리명왕이 합법적으로 왕위를 계승했다고 볼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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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이름 앞에 해라고 했을뿐, 그것을 성으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즉 삼국사기 편찬자는 성이 해씨라는 것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성이 해씨라고 명시합니다.
기본적으로 해씨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삼국사기를 참고할것인가, 아니면 성이 해씨라는 것을 정확하게 명시한 삼국유사를 믿을 것인가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삼국유사에도 5대 모본왕은 해씨입니다.
6대 태조대왕은 고씨입니다.
해씨 성을 가진 마지막 왕은 폭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씨 성을 가진 왕이 등장하였을때 그 왕은 태조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추측은 누구나가 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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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상과 박제상의 예는 어이없는 부분이군요.
왕족이란 고귀한 혈통이라는 자신들만의 슬로건을 내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왕족이 두 개의 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하늘의 자손임을 부인하는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자손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두 개의 성을 가질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사람들이 이렇다 하여 그것을 특수한 경우인 왕족에게까지 적용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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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 주몽의 아들이 아니라는 주장의 큰 골자는
1. 그가 외부인이라는 점.
2. 그가 해씨로 사서에 등장하는 점
크게 이 두가지 때문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유리왕의 아들들이나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해자돌림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겠죠.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문제가 존재합니다.
1)그가 외부인이라는 것에 대하여 모든 기록에는 주몽이 부여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기록의 진실성을 부정할만한 특별한 기록같은 것은 전무한 상황이죠.
2)그리고 유리가 주몽의 아들이 아닌 경우에 어떻게 하여 고구려의 왕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안됩니다. 아무런 유혈사태에 대한 기록이나 정황이 없습니다. 유리가 고구려에 와서 왕이 된 시기는 반년도 안걸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외부세력이 짧은 기간에 비합법적으로 왕위를 찬탈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거기에 소서노와 비류와 온조가 아무말 없이 남쪽으로 떠난 것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3)유리왕대의 기록에는 <부분노>같은 주몽의 창업멤버가 보입니다. 주몽의 신하가 그대로 유리왕의 신하가 되었다면 유리왕이 합법적인 혈통으로서 왕위를 이었다고 생각해야 자연스럽습니다.
4)고씨를 사용한 사람은 유리왕 이전에 주몽 한사람뿐입니다. 따라서 주몽이 고씨성을 하사한 일이 없는 이상 해씨왕인 유리가 주몽을 숙청한것이라면 고씨성을 쓸만한 사람은 단종됩니다. 주몽은 아들이 없게 되는 거니까..그런데 태조왕대부터는 확실하게 고씨라고 볼 수 있다고 하니.. 단종된 고씨가 등장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추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5) 유리의 자손중에 해자를 쓴 자손은 아들 해명, 아들 해색주 손자 해우 정도에 대무신왕의 다른 이름이 대해주류왕이므로 해주류라는 이름정도..그러나 유리의 자손인 도절, 무휼, 재사, 여진, 익, 호동 같은 사람에게는 해라는 돌림이 붙지 않습니다. 같은 유리왕의 후손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누구는 해를 쓰고 누구는 안쓰는 것에 대한 설명또한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해자돌림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해서 전체에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씨성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모두에게서 해씨성이 보여야 하는데 일부에서만 해씨성이 보입니다.
참고로 유리의 자손이라 기록된 사람 중 재사의 자손들을 제외한 (재사의 아들들이 고씨계로 인식되므로.,.)유리의 증손대까지를 본다면
해씨성을 가진 사람은 유리, 아들인 해명, 해색주, 손자인 해우 도합 4명
해씨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인 도절, 여진, 재사, 손자인 호동, 증손자인 익..도합 5명
무휼은 해씨이름이 보이지 않으나 시호에 대해주류라는 이름이 보이므로 특이한 케이스란 이유로 제외했습니다. 암튼 해씨성을 썼다고 인식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비등비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리가 해씨로서 고씨인 주몽의 혈통이 아닌 사람이라면 최소한 위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