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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정명석 선생님] 세 번째 이야기 한 노인의 예언
세 번째 이야기 한 노인의 예언
나는 10대부터 방황길에 접어들면서 인생 문제에 부딪쳐 머리를 싸매고 살아야 했다 .머리 속에서 겪는 고통은 누가 곁에서 치료한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정신적인 고뇌는 뼈가 쑤시고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겪어본 자는 잘 깨닫고 이해가 빠를 것이다.
첫째, 달동네에 사는 가난의 고통으로 빈부격차에서 오는 고통.
둘째, 못배운 고통.
셋째, 환경의 고통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적적한 두메 산골에서 사는 고통이었다. 내가 자란 곳은 희망도 아무런 소망도 없는 산골짝이었다.
넷째, 못생겼다는 콤플렉스.
다섯째, 말더듬이로 나에게는 언어의 장벽도 큰 고통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생각은 하나 표현을 잘 못하는 언어 불구자였다.
여섯 번째, 내 마음의 한계를 깨닫고 나의 무지를 개탄하며 한하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 생의 진로 고민.
여덟 번째, 가정에서 부모 형제들로부터 무시를 당할 때마다 받는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나의 삶과는 별개였기에 항상 곤고함을 면치 못했다. “네가 뭘 안다고?”하며 무시를 했다.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갈수록 산이었다.
아홉 번째,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초라한 모습에 대해 무시를 받았다. 그들에게는 내게 미쳤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 언어화되어 있었다. 신학을 했다는 신앙의 선배들로부터는 미친놈 취급을 받았는데 그들은 나를 대할 때마다 아주 우습게 취급했다. 이러한 심적 고통이 엄청나게 컸다.
그 당시 아무도 나를 칭찬하며 앞날의 희망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이 내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그 때로서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대전 시외 버스 주차장 옆에 있는 천주교회의 담장 앞에 앉아 점을 치는 한 노인이었는데 내가 그 근방을 지나갈 때 그 노인이 나를 오라고 하더니 내 손을 덥석 잡고서 손금을 봐주었다.
그 노인이 내 손금을 보고서 아주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젊은이의 앞날을 보니 세계를 한 나라같이 가소롭게 보며 다스릴 자”라고 하였다. 나는 그 때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나, 바쁜 사람입니다. 시간이 아까우니 얼마요? 내가 보고싶어 본 것은 아니지만 복채나 받으시오.”하고 3백원을 주니 화를 벌컥 내면서 돈을 받으려고 본 것이 아니라고 하며 오히려 고함을 쳤다. 그리고 큰 사람이 왜 그렇게 사람을 대하느냐고 꾸중까지 했다.
“나중에 젊은이가 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닐 때 분명 내 얘기를 할거요. 그렇게 시간이 아까우면 가던 길이나 가 보시오.”했다. 그리고 자기는 신에 감동되어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웬지 마음이 끌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하늘의 순천자(順天者)가 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 때 나는 노방 전도를 하며 전국을 혼자 돌아다녔는데 그 날은 공주를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중얼거리며 “내 15년 동안 이 자리에서 점을 보며 많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같이 큰 점괘가 나온 자는 처음이요.”하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내 손바닥에서 뭘 보았길래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했더니 “당신 손바닥에 큰 대(大)자가 대궐집 대문짝 만하지 않소! 한번 보쇼.”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손바닥을 보니 한문으로 대문짝만 하게 큰 대(大)자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였다. 아무튼 내가 잘 된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복채를 안받는다고 하길래 금방 이야기 벗이 되었고 나는 마음에 감동이 되어 옆의 참새 집으로 모시고 가서 막걸리 한 잔을 대접했다. 그 분은 나에게 계란을 몇 개 사줘서 먹었다. 그 분에게 내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내 체격에 뭘 하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복채 때문에 좋게 이야기한 거 아닙니까?”
“여봐 젊은이가 지나 갈 때 무겁게 앉아있던 내 엉덩이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졌소.”
그것은 내 양 어깨를 보고 놀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 어깨를 보니 그 어깨 밑으로 만인이 고개를 숙이며 올 것이라고 깨달아졌기로 쫓아가서 반갑게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하기를 지금은 뭘 하느냐고 물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며 많은 생명으로 하나님을 믿게 한다고 했더니 지금 당신이 큰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자신을 모르냐고 말했다. 얼마 안 있으면 외국으로 바삐 비행기를 타고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생각하여도 외국으로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할 일이 없었다. 오늘에 알고 보니 하나님은 점쟁이를 통해서 나의 앞날을 암시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통해, 동물을 통해서도 계시하는데 사람을 통해 계시함을 내가 무지해서 몰랐던 것이다. 점쟁이라고 무시하고 또 신빙성이 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가 믿든지 안믿는지 그 분 한 분은 내 앞날을 점치며 잘된다고 하면서 미친놈 취급을 안했고 모두는 나를 똘아이로 본 것이었다.
이런 일들이 있기 전 10대 초반에 국민학교를 다닐 때 나는 무척 생각이 많았다.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생이 많을 때마다 나의 생각은 더 깊어만 갔다. 잘 살고 잘 먹고, 좋은 환경, 좋은 집에서 살았다면 아마도 그렇게 생각이 깊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누가 지금 가보아도 첩첩 산중이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머리가 아프고 골치가 아플 때마다 보다 높은 산으로 기어올라가 쭈글뜨리고 앉아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며 인생을 한하면서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다. 그러면 나의 심령의 먹장구름은 잠시나마 사라졌다. 밤이 깊도록 기도하고 해가 뜨면 계곡에 들어가 열매를 따먹고 낮에는 성경을 읽었고, 밤이 되면 또 굴에 들어가 희미한 호롱불을 켜놓고 개인과 가정, 민족 그리고 세계를 위해 기도했다. 실상 내 자신은 배고픈 환경에다 초라한 존재였지만 인생의 허무함을 알았고, 무지 속에 하늘을 모르고 사는 자들이 너무도 불쌍하였다.
굴속에서의 기도 생활과 대둔산 용문골 절벽 위에서 기도하며 보낸 시간들은 어연간에 수십 년이 흘러가게 되었다. 영하 15도 이상의 추위에도 결사적인 집념과 행동으로 이겨냈다.
다리골 기도굴은 광산에 쓰여지던 굴인데 기도의 장소로 이용했다. 지금은 그 굴에 제자들이 너무도 많이 오고가서 닳고 닳았다. 그리고 내 뒤를 따르는 자들이 나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고 있다
[JMS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이 있는 곳]
출처: www.jms.co.kr(만남과 대화) http://jms.jms.co.kr(생명을 사랑하라)
www.hananim.or.kr(만남과 대화) www.cgm.or.kr(기독교복음선교회/JMS 공식홈페이 지)
JMS란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라는 의미로 시작되었으나
JMS가 정명석 목사님의 이니셜과 같다하여 단체명을 현재의 기독교복음선교회로 개명.
그러나 계속 언론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JMS라고 저희 단체를 지칭하고 있기에
저희도 JMS가 아니라 할 수 없어 JMS라고 합니다.
JMS는 언론의 보도처럼 성적으로 문란한 곳이 아닙니다.
JMS는 지구촌 어느단체 보다도 깨끗하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JMS는 술도 담배도 마약도 전혀 하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이성적으로도 아주 깨끗한 곳이 바로 JMS입니다.
언론의 보도만 믿지 마시고 가까이 있는 JMS 교회를 가 보세요.
JMS 정명석 목사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JMS의 교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시고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는 새벽별들의 모임 JMS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기독교복음선교회(JMS)를 소개합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공식홈페이지에서 발췌)
1.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창립함을 목적으로 정명석 총재에 의해 창립되었습니다.
2.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지난 1980년 정명석 총재의 말씀전파로 시작하여 성경의 뜻을 구체화시켜 생활 속에 실천하는 운동을 벌임으로써 신앙의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3.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어 그리스도의 삶과 심정을 체율하고, 진리전파에 힘씁니다.
4.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이웃사랑과 생명구원을 실천하며, 땅에 떨어진 인륜과 천륜을 회복하여 세계평화에 이바지합니다.
5.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청소년의 올바른 육성과 건실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가정평화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각 나라와 민족 간에 평화를 위한 문화예술교류를 담당해왔습니다.
6.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생명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도식화된 선교방식에서 탈피해 문화활동과 사회봉사활동 등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해 대중과 호흡함으로 그 활동범위를 넓혀왔습니다.
7. 기독교복음선교회(JMS)는 25년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400여개의 교회와 아시아와 유럽, 남미등 해외 50여 개국에 20만 회원들의 복음공동체로 성장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랑과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총재의 인사말>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만나게 된 여러분 참으로 반갑습니다.
비록 사이버공간이지만 앞으로 영원한 인연이 되길 기원합니다.
첩첩산골에 태어나 가난과 진로문제로 고민했던 저는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답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면서 사는 삶이 인생의 근본 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란 것을 깨닫고 1년에
만 명 이상 노방전도를 하였으며, 가난하고 병든 자 들의 친구가 되어주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에 감추인 근본 진리를 찾기 위해 성경을 수도 없이 읽었으며
극적인 기도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 내가 너의 선생이 되어 줄테니 오늘은 내게 배우고
내일은 선생의 선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라 ’ 고 하셨습니다.
저의 30년간 수도생활의 유일한 스승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셨고
성령님이셨습니다.
수도생활 중 하늘로부터 받은 말씀과 깨달음은 이제 더 이상 감출 수가 없는 시대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저 혼자로 시작한 역사가 25년이라는 짧은 역사속에 민족을 넘어 세계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아 때와 같이 사람들은 대개 몰라서 반대하고 자기주관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우리 역사 또한 심한 오해와 악평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선, 악간에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경에 감추인 비밀들이 풀어지는 때이며 구원을 받을 만한 때이며 은혜를 입을 만한 때입니다.
세상의 소문에 인생을 걸지말고 말씀을 듣고 확인해 본다면 반드시 인생의 문제가 풀리고 만사가 형통하여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하듯 시대를 깨닫고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도 영원히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공식홈페이지 설립자 인사말 중에서)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JMS 정명석목사님
첫댓글 아~역시 그분의 삶은 다릅니다..
퍼갈께요^^
아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