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04년(애장왕 5)에 신라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그 연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뒤 1605년(선조 38)에 계관(戒寬)법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원통전을 중건하고, 1695년(숙종 21)에 현응대사(玄應大師)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 6월 원통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御衣)가 나와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경내에는 2층 누각인 진동루(鎭洞樓)에 들어서면 법당인 원통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 높은 기단 위에 서 있고 그 좌우에 적묵당(寂默堂)과 설선당(說禪堂)이 있다. 이 건물 뒤쪽으로 기영각·산령각·응향각(凝香閣)·미타전 등이 있는데 그중 기영각은 숙종·영조·정조의 어필(御筆)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어필각(御筆閣)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어필이 전해지지 않는다. 중요문화재로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을 비롯해 삼장보살도(1707)·팔각석 등이 있다. 또한 절의 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는 원의대사의 부도와 비(1648), 전명대사의 부도와 비(1658), 현응대사의 부도와 비(1701)가 있다.
파계사 일주문
파계사 전경
물줄기가 9갈래로 흩어져 있어 물길로 모은다는 뜻으로 파계사(把溪寺)라 한다

파계사 석조부도
절 입구 오른쪽에 석축을 쌓아 조성(2기)되어 있다.
좌측부도는 절충장군가선대부 전명석탑(1651년 효종2)으로 사각의 대석위에 6각의 석조를 놓고 2중으로 조각된 양련좌 위에 부도가 설치되어 있다. 우측부도는 회진당 원의대사탑(1648년)으로 6각의 대석위에 연화문을 조각, 그 위에 일석으로 된 양련과 부련이 있고 그 위에 부도를 설치하였다.
파계사 진동루
문화재자료 제10호
1715년(숙종 41)에 처음 지어진 뒤 몇 차레 크고 작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변 골짜기의 땅기운이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눌러 준다는 의미의 진동루
진동루에서 바라다본 파계사 원통전
파계사 범종각
파계사와 영조대왕의 탄생
조선 숙종 임금이 어느날 대궐 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신하에게 남대문 밖을 살펴보게 하니, 정말 한 승려가 쉬고 있었다.
그 승려가 바로 파계사의 영원선사였다.
기이하게 여긴 숙종은 영원선사에게 왕자 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했다.
이듬해에 왕자가 탄생했으니 바로 훗날의 영조대왕이다
크게 기뻐한 숙종 임금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린다.
현응은 지혜로운 승려였다.
당시 파계사는 유생들의 횡포로 승려들이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이에 현응은 왕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도록 숙종에게 청해 유생들의 횡포를 막아냈다고 한다.
지금도 파계사에는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영조대왕의 도포, 하마비가 있다.

파계사 범종각내 법고
파계사 적묵당
문화재자료 제9호
1620년(광해군12)에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1695년(숙종21)에 중건, 1920년에 중창, 그리고 1976년에 기와를 다시 올리는 공사를 실시 하였다.
전면에 겹처마를 한 팔작지붕 형식을 띄고 있다.

파계사 적묵당
적묵당이란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을 한다는 불교용어인 '적묵'에서 따온 것으로 설선당과 마
보고 있는 'ㄱ'자형의 건물로 소박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파계사 쾌불지주
원통전 앞에 2기의 쾌불지주와 2기의 석등이 있다.
파계사 원통전
유형문화재 제7호
원통전은(따로 대웅전이 없는 파계사의 중심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불전을 말한다.
파계사는 원통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 적묵당 그리고 앞에는 진동루 등이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ㅁ' 자형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5년에 현응조사때 삼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건축양식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은 후 둥근 기둥을 올리고 있다.
법당 내부의 불단은 은해사 백흥암의 수미단과 같은 형태로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넣어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불단의 상부에는 보개를 설치하고 있다.

파계사목조관음보살좌상
원통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목조관음보살좌상. 보물 제992호. 높이 108㎝. 1976년 6월 개금불사(改金佛事) 때 발견된 복장 발원문에 1447년(세종 29)에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불상의 조성 시기는 그 이전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머리 위에는 원통형의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데 여러 가지 꽃무늬와 연주무늬[連珠紋] 형태의 구슬이 장식되어 있어 매우 화려하다. 관 밑으로는 앞머리가 많이 내려와 있고 보발(寶髮)은 양쪽 귀 옆으로 내려와 몇 가닥으로 흩어져 어깨를 덮고 있다. 얼굴은 원만한 편이며 이목구비는 잘 정돈되어 있어 부처와 같이 근엄한 느낌을 준다. 상체는 하체보다 크고 긴 편으로 장대한 면을 보여준다. 천의(天衣)는 법의의 착의방식과 마찬가지로 통견(通肩)으로 걸쳤는데 가슴을 많이 드러내면서 양 무릎과 오른쪽 발끝을 덮고 있고 그 아래로 물결무늬의 옷주름이 형성되어 있다. 가슴 위로는 군의(裙衣)를 주름잡아 묶은 띠매듭이 보이는데, 이러한 군의형식은 원각사탑 부조상(1464)이나 무위사 아미타삼존벽화(1476)의 본존불 등 조선시대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또한 가슴 앞에 늘어진 목걸이와 함께 영락장식이 양 어깨를 걸쳐 두 팔과 양 무릎 위에까지 흘러내려 있어 상당히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밖을 향하고 있는 반면에 왼손은 무릎 위로 약간 들어올려 안으로 향하고 있는데, 각각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있다. 이 보살상에 보이는 천의형식이나 극도로 장식화된 보관 및 영락장식 등은 장륙사건칠보살좌상(1395)을 비롯하여 대승사금동보살좌상(1516 개금)·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15세기경) 등의 조선시대 보살상과 양식이 매우 유사하므로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파계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상 수미단
원통전의 불단은 보물로 지정된 영천 은해사 백흥암의 수미단과 같은 형태로
그 작품성이 뛰어나다.

파계사 기영각
대구 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
이 건물은 1696년(숙종 22)경에 현응스님이 세웠다고 하며, 1974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 수리를 하였다.
현응스님은 세자의 탄생을 기원하라는 숙종의 부탁으로 기도하였다.
이때 태어난 왕자가 뒷날 영조가 되었다고 한다.
세자가 태어나자 숙종은 현응의 뜻에 따라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기영각을 지었다고 한다.
파계사 산령각
대구 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이 건물은 언제 처음 지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1976년에 고쳐 짓고, 1979년에 보수한 것이다.
앞면과 옆면 각각 1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파게사 산신탱
파계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동대구 인터체인지에서 대구 동촌비행장 입구인 아양교를 건너 불로동,
봉무동을 경유하여 중대동을 거쳐 팔동산 순환도로 검문소가 파계사 진입로이다.
동대구 인터체인지에서 파계사까지는 19.6k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