去人不秉 來人不閉
(거인불병 래인불폐)
백화 문상희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
세상살이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가는 사람 잡을 필요도, 오는 사람 굳이
막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옛말도 있다지만
그것은 옛날 고릿적 조선시대 이야기고
이제는 대한민국 인구가 오천만 인구 속에
살고 있다.
수천만 인구 중 하나인 사람이 악연이든
인연이든 자주 만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자동차는 아마도
개미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사람은 머리와 어깨만 보일 것이니
럭비공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느 누구든 셀 수도 없는 숫자 중의
한 사람 일뿐이다.
그러니까 우주에서 보면 사람은 작은 흑점
하나로 보일것이다.
그중 하나인 筆者 역시 특별히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단지 특출 난 게 하나가 있다면 글 나부랭이
쓰는 것에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가 잘나 봐야 얼마나 잘났을 것이며
그것 또한 그 부류 중 한 명에 그친다.
서기 2,000년에 들어 새천년이 왔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필자도 새천년에 새싹둥이 아이를 만든다고
했지만 날짜 계산을 잘못해서 19세기
끝둥이를 만들었다.
결론은 1999년 생 늦둥이 막내아들놈이다.
술기운에 만든 놈이라 그런지 그놈 역시
부전자전으로 술을 곧잘 마신다.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니 웃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인생사 천태만상이 아니던가!
필자 역시 여복도 재물복도 없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팔불출이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느지막이 선비 집안의
대를 이어 문필가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인연이 되어준 사람의 소개로 어느 문학회에
가입을 했다.
그 문학회에 들어가서 미친놈처럼 카페에
글로 아예 도배를 했다.
그동안 틈틈이 노트에 낙서처럼 써놓은 글을
수정해서 날마다 글을 올린 것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글을 올렸다.
하루에 열 편의 시를 써서 올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칭송 반, 시기 반으로 엄청난
눈총을 받았다.
사람이 튀면 부딪치게 마련이다.
일단 실력을 인정받아 시인으로 등단을 했다.
하지만 급히 먹은 음식은 체하는 법,
필자 역시 급체 증상이 나타났다.
말 못 할 사정이지만 그렇게 부딪치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문학회를 떠나야 했다.
어찌 보면 그것이 필자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다혈질적인 성격인 필자는 나라고 못할쏘냐?
하는 마음으로 기어이 문학회를 창단했다.
그 당시만 해도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다혈질의
오십 대였으니 말이다.
문학회 카페를 열자마자 신생 문학회라서
그런지 여러 사람이 가입을 했다.
물론 불러서 온 사람도 있거니와 진심으로
글을 배우려는 사람도 들어왔다.
시 창작에는 조금 우위에 선 사람으로서
가진 글재주로 강의를 시작했다.
가진 것이 글재주와 오지랖뿐이라 최선을
다해서 지도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만으로 보였는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면 더 좋은곳을 찾아서 떠나버렸다.
그때부터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내가 인덕이 없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물론 본인의 잘못도 분명 있겠지만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나다 보니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세상살이 아이러니한 것은
같은 업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서 살다 보면 악연이든 인연이든
그렇게 만나게 되더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연히 만날 해, 만날 후, 邂逅라는
단어가 있었나 보다
그때만 해도 지금같이 성격이 柔(유) 하지는 않았었다.
세상살이 산전수전을 겪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성격이 누그러진 것이다.
특히나 몇십 년간 서비스업의 일을 하다 보니
현실에 따라 성격도 변한 것이다.
많은 돈을 벌어도 봤고 또 그렇게 번돈을
고스란히 고스란히 반납했으니 말이다.
부정은 부정을 낳고 긍정은 긍정을 낳는다는
방정식을 따른 것이다.
젊은 날의 혈기도 눈 녹듯 사라지고 오지랖도
현저히 줄어든 게 이모양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이제는 옛말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이 있다.
즉 분수를 알라 그런 뜻 아닌가?
필자도 분수를 모르고 해프닝을 만든 적이 있다.
생존을 위해 일을 하면서 반찬을 일일이
해 먹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막내와 단 둘이 살다 보니 찌게 하나면
될 것이고 그래서 반찬은 사다가 먹었다.
집 바로 뒤쪽에 엄청나게 큰 재래시장이 있다.
수시로 시장에 들러 먹고 싶은 반찬을 골라서
사다가 먹었다.
더군다나 작은 팩은 세 개에 오천 원, 큰 팩은
한 개에 오천 원이고 만 원짜리 큰 팩 한 개를 사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 일인가.
반찬가게에 자주 가다 보니 낯익은 사람도
자주 만나게 된다.
퇴근해서 반찬가게에 갈 때면 필자와 같은
또래의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여자는 잘생기지도 멋지지도 않은 필자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또 아이러니한 것은 그 여자가 내가 사는
반찬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같은 반찬을 사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반찬가게에 갈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한 번은 작심을 하고 뒤따라 가다가 그 여자를
불러 세워서 명함을 내밀었다.
"저~, 아주머니!
저는 작가입니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제이름 검색하면
나오니까 한번 검색해 보세요!"
"아~, 그러시군요!
난 어디서 본듯한 사람인데 제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쳐다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필자는 늘그막에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착각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희끝희끝 주름진 몰골에 말이 아니었다.
급하게 염색약을 사서 염색을 하고 아들이
쓰던 마스크팩을 하고 부산을 떨었다.
머리 염색을 하고 영양크림 로션을 바르고 나니까
몰골에 생기가 돌았다.
한동안 안 입던 양복까지 걸치고 반찬가게에
들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 여자를 만났고 필자는
그 여자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반찬을 사고 돌아서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 할까요?"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저씨!
나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어서 얼른 가봐야
한답니다.
아저씨가 무슨 오해를 하셨나 본데요
저는 아저씨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하다 보니 그냥 쳐다본 것뿐입니다.
페이스북 검색하다 우연히 아저씨 얼굴을
봤나 보네요 뭐!"
"네~, 저는 자가당착에 아주머니가 저를
마음에 드셨나 하고 착각을 했답니다."
"아이고 아저씨!
착각도 유분수지 허허 참,
저는 치매 걸린 남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같은 반찬을 사는 것뿐입니다."
그 여자는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이후엔 한동안 민망해서 반찬가게에
가지를 않았다.
때 빼고 광을 냈지만 말짱 도루묵이었으니
그야말로 그것은 혼자만의 망상이었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테마로 콩트를 썼다.
망상의 거울이라는 제목으로 쓴 콩트를
카페에 올려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물론 그 여자가 그 콩트를 보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오는 사람 막을 필요도 가는 사람 잡을 필요도
없는 게 세상살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운영하는 카페에 글을 쓰다가
떠난 사람을 타 문학회 행사에서 다시 만났다.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어디에서든
또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장똘뱅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해후라는 말처럼 한번 인연이 되면 언제
어디서든 또 만날 수 있으니
부딪치는 것보다는 휘휘 늘어진 버들처럼
좀 더 유연하게 살아야 할까 보다.ㅁ
첫댓글
오늘은 일요일,
쉬는날 손이 근질근질 해서리
그냥 웃자고 써본 에세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