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중순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낮은 여름처럼 무덥고, 가뭄으로 인하여 건조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곱게 물들어 가야할 나뭇잎들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을인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화단에는 메마른 땅에서 극한의 상황을 이겨낸 국화가 앞다투어 피어 가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꽃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피는 국화, 찬서리가 내릴 때까지도 피어납니다. 아름다운 장미의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한데 비해 국화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합니다.
절화의 경우 아무리 보관을 잘한다 해도 장미는 3일을 넘기기 힘이 듭니다. 하지만 국화는 관리만 잘 하면 보름에서 길면 한달 가까이 갑니다.
국화는 가을꽃의 대명사이지만 여름에 피는 하국(夏菊)과 겨울에 피는 동국(冬菊)도 있다고 합니다.
국화는 국화과의 국화속 식물로, 꽃잎 하나하나에 암술과 수술이 모두 들어 있으며 그들이 모여 한 송이의 꽃을 이룬답니다. 국화속 식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국화 외에 쑥갓이나 구절초도 있습니다. 톱니모양의 잎은 하나만 떼어 부드러운 흙에 꽂아만 두어도 뿌리가 내리며, 여러해살이풀로 한 번 심어두면 해마다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국화의 원산지는 원래 중국입니다. 그러나 교배원종인 구절초나 산국은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라시대 이전에 흰국화(白菊)이 개량되었다 하니 우리나라를 원산지라 해도 나무랄 사람은 없을 듯 싶습니다.
국화는 종류가 많기로 다른 꽃에 결코 뒤지지 않는데, 색깔과 모양이 매우 다양합니다. 국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경로나 그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백제 16대 진사왕 때(1600년전)5가지(靑. 黃 白. 赤. 黑)의국화종자를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만 미루어 보더라도 아주 오래전부터 재배해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주로 중륜, 대륜국에 속하는 것들로서 약 300-400여종에 이르는데, 바로 이 품종들이 우리나라 중부지방과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야국들을 원종으로 하여 개량된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국화는 하나같이 아름답지만 옛부터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은 금색국화(黃菊)였습니다.
중국에서는 9월 9일 중양(重陽)절에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는 풍속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 유래를 살펴볼까요.
옛날 장방이라는 사람이 제자인 항경에게 그의 집에 9월 9일에 재앙이 있을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식구마다 주머니를 만들어 산수유열매를 넣어 몸에 차고, 집 밖의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하였지요.
항경은 그 말을 잊지 않고 그 날 집을 비우고 식구들과 뒷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와 보니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9월 9일이 양수(陽數)인 9가 겹친 날이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그 후 사람들은 해마다 중양절이 되면 산수유주머니를 차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는 중양연(重陽宴)을 행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외에도 국화주를 마시고 장수했다는 많은 설화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국화주를 연명주(延命酒) 또는 불로장생주(不老長生酒)라 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또한 국화는 풍증에 효험이 있다하여 국화꽃을 배개속에 넣어 베고 잤으며 신라시대에는국화를영초(靈草)로 삼고 귀신을 몰아내는데 사용했으며 잎을 태워 약으로도 이용했다고 전해 집니다.
그 뿐이 아니라,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남양의 여현이라는 곳에 있는 감곡 개천 상류에 국화가 자생하고 있었답니다. 그 물을 먹고 사는 하류의 마을 사람들은 보통 120-130세까지 장수를 하였고 仙人 팽조는 아침마다 국화이슬을 마셔 무병장수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화의 쓰임새도 매우 다양합니다.
모든 풍증과 풍으로 생긴 어지러움증에는 국화꽃을 말린 다음 술을 담그거나 끓여 먹었습니다. 또한 그늘에 말린 국화꽃 10g을 물에 끓여 매일 마시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오장을 도와 사지를 고르게 하며, 감기 ㆍ 두통 ㆍ 현기증에 아주 좋다고 전해집니다.
간염에는 국화 한포기 또는 꽃 4 ∼ 6g을 달여 하루에 두 세번 1주일 정도 복용하고, 거친 피부에는 국화 한 포기나 꽃 20 ~ 30g을 달인 물로 하루에 몇 번씩 장기간에 걸쳐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면 피부도 좋아질 뿐더러 비듬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사람은 단국화(감국) 꽃 10g을 물에 우려서 차를 타기 전에 마시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이렇듯 국화는 화초로써 관상가치 뿐만 아니라 민간약으로도 많이 이용되어 왔습니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은 찬서리에도 의연한 국화를 예찬하여 그 고고한 자태와 향기를 노래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당 서정주님의 국화옆에서 입니다.
국화 옆에서
미당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내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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