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원광대 박병수
목 차
Ⅰ. 서 언
Ⅱ. {海東傳道錄} 丹學派의 저술
1. 金時習의 [雜著]
2. 鄭?의 {龍虎訣}
3. 郭再祐의 {養心要訣}
4. 해동전도록의 [口訣]
Ⅲ. 단학파의 修練 유형
1. 三敎同源 志向型
2. 內丹 追求型
3. 逆修 實踐型
Ⅳ. 결 어
Ⅰ. 서 언
도교는 중국인들 사이에 전승되던 巫覡 陰陽五行說 讖緯說 仙術 方術 등을 혼합하여 집대성한 민간종교이다. 도교가 하나의 종교 교단 형태를 갖추어 성립된 것은 후한 順帝(126-144)때에 산동 출신인 于吉이 창도한 太平道를 비롯으로 한다. 그렇게 발생한 도교는 춘추전국시대의 철인인 老子를 교조로 받들어 太上老君이라는 신으로까지 존숭하는 한편 우주의 근원적 道나 一氣를 신격화하여 元始天尊이라는 도교 최고의 신으로 받들게 된다.
도교와 도가는 흔히 구분하여 사용하는데, 이를 철학적 도가와 종교적 도교라는 용어로 나타낸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기저로한 철학적 사유체제를 도가라 한다면 중국 전래의 민간신앙과 습합하여 하나의 교단체제를 갖추고 출발한 종교가 도교이다. 도교는 性과 命을 동시에 닦고 길러 불노장생과 연명장수의 신선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도가와는 근본적 차이점을 보인다.
고대 중국 신선가의 불로불사의 사상은 도교와 의학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 도교교단의 번창과 도교의학의 집대성을 가져온다. 그들은 불노장생을 위해서는 정신적 자유의 획득은 물론 인간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된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오곡을 먹지 않고( 穀), 여러가지 필요한 약물을 복용해야 하며(服餌), 심호흡으로 기를 수련해야 하고(調息), 신체운동과 체조 등으로 젊음을 유지하면서(導引), 성생활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房中). 이러한 필요들에 의해서 중국 고대의 방중가와 신선가의 방술은 도교의 양생 수련술로 수용 발전된다.
일반적으로 도교의 양생술은 五大要로 파악되는데 이중에서 穀과 服餌는 외적 방법인 외단이지만 나머지 調息,房中,導引은 내적 방법인 내단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기를 필수요건으로 가진다. 한 예로 외단법의 경우 금단을 服餌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내단에서 행하는 조식과 行氣를 겸한다.
한국 도교사의 흐름을 큰 맥으로 나누어 분류하는 것은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도교사 연구에 있어서 처음 그 교두보를 연 李能和(1869-1943)찬 {朝鮮道敎史}의 경우 그 시대구분에 대하여, 첫째 도교가 한반도에 유입되기 이전, 둘째 삼국시대 도교의 유입과 발전(삼국-고려), 셋째 조선시대의 도교 등으로 나누었고, 첫째 도교수입 이전의 한국신화, 둘째 도교의 수입과 삼국의 도교사상, 셋째 고려의 도교와 의례, 넷째 조선의 도교, 다섯째 도교와 민간신앙, 여섯째 도교와 신종교 등으로 구분하는 학자도 있다.
필자는 이들을 종합하여 한국도교의 전개를 [도교의 한국 전래와 수용]에서 도교의 한국 전래 전후상황을 개괄하고, 둘째 [과의도교와 수련도교]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단학가까지의 행적을 개술하며, 셋째 [한국도교의 근대적 변용]에서 조선시대 후기로부터 신종교에 이르기까지의 민간도교 또는 삼교합일적 경향하의 신종교에서의 도교를 함께 거론한 바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 연명장수와 불노장생을 위한 내단의 신선사상은 일부 지식층에게 커다란 매력을 주어 면면히 師資相承되어 전개되는데 이런 도교 유파를 丹學派라 불린다. 이는 李能和가 {朝鮮道敎史}에서 처음 쓴 명칭으로 이후 줄곳 공식화되어 사용되었다. 본고에서 필자는 한국과 중국의 도교 파악에 있어 양생 수련론이 그 주요 기저를 이룬다는 전제하에 조선시대 한무외의 {해동전도록}을 중심으로 金時習 [雜著], 鄭 {龍虎訣}, 郭再祐 {養心要訣}, {丹書口訣}·{丹家別旨口訣} 등 단학파들의 저술을 살펴보고 그 수련술을 몇가지로 유형지우고자 한다. 김시습의 [잡저]는 {梅月堂集}에, 정렴의 {용호결}과 [구결]들은 규장각본 {해동전도록}에, 곽재우의 {양심요결}은 규장각본 {周易參同契演說}에 각각 실려 있다. 본고에서 고찰 대상으로 삼은 {해동전도록} 판본은 규장각본이다.
Ⅱ. {해동전도록} 丹學派의 저술
고려시대의 사상적 흐름은 고구려 연개소문으로 시작된 三敎鼎足的 치세관하에서 전개된다. 그러한 흐름은 조선조에 접어들어 유교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당시의 국책에 동조 또는 항거하여 우위론 내지 삼교회통을 주장하는 사상적 항쟁과 교섭으로 치닫는다. 이러한 경향은 鄭道傳(1337-1398)의 {佛氏雜辨}과 涵虛 己和(1376-1433)의 {顯正論}·{儒釋質疑論}에 잘 나타나 있으며, 金時習(1435-1493)과 西山 休靜(1520-1604) 그리고 구한말 新宗敎 등에도 잘 드러난다. 이들은 유교나 불교적 입장에서 자가의 우위나 회통을 시도한 것이다. 도교의 경우는 특별한 대응과 조짐을 보이지 않다가 {海東傳道錄}에서 비로소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해동전도록}은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의 [元曉義湘辨證說]·[道敎仙敎道經辨證說]에서 비중있게 거론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李能和의 {朝鮮道敎史}에도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1610년(광해군 2년) 得陽子 韓無畏(1517-1610)가 지은 한국 최초의 도교 도맥서이다. {해동전도록}은 한국 도교학상에 洪萬宗(1643-1725)의 {海東異蹟}과 더불어 양대 도맥서로 일컬어지는데, {해동전도록}이 도맥을 서술한 계보류 도맥서라면 {해동이적}은 한국 신선들의 전기를 집성한 전기류 도맥서이다.
{해동전도록}은 그 유통 연기에 대하여, [仁祖 때 한 중이 관동지방을 돌아 다니다가 도적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관원이 소지품을 수사하니 바랑에서 책 한 권이 나왔다. 책 이름은 {해동전도록}이었다. 그 고을 원이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 중을 놓아주고 책을 澤堂에게 보냈더니 택당이 이 책을 세상에 전하였다.]라고 적어, 도교 전적을 불교 승려가 소지하여 마침내 세상에 유포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기사는 도교를 불교와 대등하게 정립하고 나아가 도교로써 불교와 유교를 극복하여 도교의 우위론을 펼치거나 또는 삼교의 동원성을 전개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 金時習의 [雜著]
淸寒子 金時習(1435-1493)은 삼교사상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전개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의 학맥이 삼교 모두에 두루 연루되어 있음에서도 추찰이 가능하다. 즉 불교적 학맥으로는 義湘(625-702) - 一然(1206-1289) - 懶翁(1320-1376) - 金時習 - 韓龍雲(1879-1944)로 이어지고, 유교적 학맥으로는 鄭道傳(1388-1389) - 金時習 - 徐敬德(1489-1546) - 栗谷(1536-1584)의 경로를 가지며, 도교적 도맥은 {해동전도록}에 보이듯이 다음의 도표와 같다.
<鍾離權>-+ 崔承佑 --+- 崔致遠 + <<南宮斗 許筠>>
| | |
+ 金可紀 +- * 李 淸 *明 法 權 淸 -+
| | |
+ 僧慈惠 ----------+-------+ | +-- 趙云
| |
|
* 明悟和尙 ---- * 元 賢 -----------+
|
+------------+
金時習
|
+-------------+-------+------+------------+
| | | |
洪裕孫 鄭希良 尹君平 徐敬德
| | |
* 朴妙觀 * 僧大珠 郭致虛
| | |
* 張世美 +--+--+ (僕) -------+
| | | | |
* 姜貴千 鄭 朴枝華 韓無畏 (金 )
| | |
* 張道觀 (柳亨進) (李 植)
< > 中國人. * 傳記 불명人. 佛敎僧侶.
<< >> [南宮先生傳]([辛敦復附記]). ( ) 金侖洙說.
율곡 李珥(1536-1584)는 그를 평하여 [心儒蹟佛]이라 하여 조선성리학의 대성기에 있어서 유가적 위치를 말해주기도 하였던 바, 그는 儒佛은 물론 老子사상까지도 폭넓게 수용하고 있었다. 金時習은 노자를 수용했지만 仙道는 우회적으로나마 부인했다는 설도 있다. 즉 김시습은 [聖人의 道(儒)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아 養氣를 논했지 服氣를 논하지는 아니한다. … 나는 듣건대 養氣로써 天命을 즐긴다 했지 服氣로써 天年을 연장시킨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라 하여 神仙長生術을 인정은 하였으나 그것으로써 神仙永生 聖胎飛仙으로는 보지 않고 神仙火候를 順時節食하는 攝生法으로 이해한 정도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金時習의 道敎수용은 수련을 위한 練丹作法도 구체적으로 수용하고 있어서 道仙思想이 짙은 구상들이 그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 바 여기에서는 후자에 촛점을 맞추어 그의 연단수련 사상을 논하기로 한다.
金時習의 도교 및 양생사상은 주로 그의 저서인 {梅月堂詩集}권3 [仙道]와 {梅月堂集}권17 [雜著]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의 여러 문집의 시나 수필 등에도 이러한 道敎思想 및 養生에 관한 내용은 여기저기에서 산견됨을 알 수 있다. 金時習의 저서인 {梅月堂集}17 雜著의 문목인 [天形] [北辰] [性理] [上古] [修眞] [服氣] [龍虎] [鬼神] [ 災] [喪葬]은 하나의 정연한 체제를 이루고 있다. 요컨대 天形은 淸寒子 우주관을 요약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우주자연의 운행동체를 氣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서 氣가 우주대기에서부터 비롯하여 人體生氣로 통하고 다시 山川之氣로 뻣지르고 있다고 한 것을 보아 그의 양생사상의 본질은 이 氣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北辰은 일월성신을 陰陽兩儀의 精華이며 氣의 빛나는 것으로 보고 절후의 변화와 인생의 수명 등을 논한다. 한편 性理는 性命道德을, 上古는 예의법도을 밝히며, 鬼神은 神.鬼와 祭祀禮를, 災는 消災法을 그리고 喪葬은 상장례와 이에 따른 塔輿法을 논하고 있다. 金時習의 [雜著]의 丹學思想은 그 다음의 [修眞] [服氣] [龍虎]에 모아져 있고 內丹이 그 주를 이루고 있다.
2. 鄭?의 {龍虎訣}
北窓 정렴(1506-1549)은 音律,天文,醫藥,地理,數學,中國語 등에 능통했다. 상기 도표에 보이듯이 {해동전도록}에는 북창이 승 大珠에게 도를 전수받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그는 불교에 조예가 깊었고 산사를 찾아 다니며 여러 승려들과 교섭도 많았다. 북창은 徐敬德을 존경하며 스승처럼 섬겼고 守庵 朴枝華(1513-1592)와 친분관계도 두터웠다. 그가 유불도 삼교에 두루 통했음은 [북창의 수련은 도교와 유사했고 깨달음은 불교에 가까왔으며 인륜은 유교에 근본하였다]는 기록에서도 짐작이 가능하다. {조선도교사}에서는 정렴에 대하여 [나면서부터 神異하
북창은 乙巳士禍(1545, 인종1)를 계기로 은둔하기 시작하여 5년 동안 연단술에 전념했다. 그는 주로 이 기간에 {용호결}의 仙法을 연마한 것으로 보인다. 鶴山 辛敦復의 {鶴山閑言}에서는 북창이 선 자세로 공중에 떠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解化 장면을 그의 외증손인 蔡德潤에게 들은대로 묘사해 놓고 있다. 이는 정렴의 내단수련이나 용호결 연마가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있었음을 말해준다. {용호결}은 북창의 양생사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최초의 한국 단학 저서로 불린다. 이 문헌의 유행은 조선조 단학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이명동서 상당수에 이른다. 최근에 발굴된 {丹學指南}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나아가 그는 신선술은 사실 쉬운 것이라 하고 그 요는 폐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 폐기가 잡힌 상태를 玄牝一竅라고 불렀다. 곧 이 현빈일규에서 태식으로, 다시 여기에서 周天火候가 이루어지며 周天火候에서 結胎가 되어 결국 丹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北窓 정렴(1506-1549)은 音律,天文,醫藥,地理,數學,中國語 등에 능통했다. 상기 도표에 보이듯이 {해동전도록}에는 북창이 승 大珠에게 도를 전수받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그는 불교에 조예가 깊었고 산사를 찾아 다니며 여러 승려들과 교섭도 많았다. 북창은 徐敬德을 존경하며 스승처럼 섬겼고 守庵 朴枝華(1513-1592)와 친분관계도 두터웠다. 그가 유불도 삼교에 두루 통했음은 [북창의 수련은 도교와 유사했고 깨달음은 불교에 가까왔으며 인륜은 유교에 근본하였다]는 기록에서도 짐작이 가능하다. {조선도교사}에서는 정렴에 대하여 [나면서부터 神異하
여 소시에 산사에서 선가의 六通法을 시험해 보려고 삼일동안 靜觀하더니 백리 밖의 일을 훤히 알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북창은 乙巳士禍(1545, 인종1)를 계기로 은둔하기 시작하여 5년 동안 연단술에 전념했다. 그는 주로 이 기간에 {용호결}의 仙法을 연마한 것으로 보인다. 鶴山 辛敦復의 {鶴山閑言}에서는 북창이 선 자세로 공중에 떠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解化 장면을 그의 외증손인 蔡德潤에게 들은대로 묘사해 놓고 있다. 이는 정렴의 내단수련이나 용호결 연마가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있었음을 말해준다. {용호결}은 북창의 양생사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최초의 한국 단학 저서로 불린다. 이 문헌의 유행은 조선조 단학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이명동서 상당수에 이른다. 최근에 발굴된 {丹學指南}도 그 중의 하나이다.
북창 {용호결}의 신선 양생술은 閉氣로 시작하여 胎息을 거쳐 周天火候를 논하는 철저한 내단사상이다. 丹法의 도는 오직 태식 곧 호흡에 있지 외단의 금석과 같은 百藥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렴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불사의 약물을 내단적인 상징으로 해석한다. 즉 약을 먹고 成丹하여 도를 이룬다는 것은 [神이 氣를 거느리고 기가 형체에 머물러서 서로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의 내단 지향은 전체의 내용이 폐기와 태식으로 전개되어 인체내에 기를 돌리는 주천화후의 운기론을 펼치고 있다는 것외에, {참동계}와 {황정경}의 사상을 그대로 다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신선술은 사실 쉬운 것이라 하고 그 요는 폐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 폐기가 잡힌 상태를 玄牝一竅라고 불렀다. 곧 이 현빈일규에서 태식으로, 다시 여기에서 周天火候가 이루어지며 周天火候에서 結胎가 되어 결국 丹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3. 郭再祐의 {養心要訣}
忘憂堂 곽재우(1552-1617)는 당시 사대부의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 양생술을 수용하여 穀 導引하면서 만년을 보낸다. 그의 {養心要訣}은 정렴의 {용호결}, 李之 (1517-1578)의 {服氣問答}, 權克中(1560-1614)의 {參同契註解}, 徐命膺(1716-1787)의 {參同攷}, 姜獻圭(1797-1860)의 {周易參同契演說}, 작자미상의 {衆妙門}·{直指經} 등과 더불어 조선 단학파 연구의 소중한 문헌으로 꼽힌다. {양심요결}은 {周易參同契演說} 소수로 {服氣調息眞訣}와 이명동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양심요결}이 전14장 가운데 전반 7개 항목이 곽재우 자신이 소중히 다루고 있는 복기와 조식의 원리이며, 후반 7개 항목이 先仙들의 자취 가운데에서 작법 원리를 밝히고 있음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일관된 복기와 조식에 대한 실천 비결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더라도 추론이 가능한 일이다.
곽재우의 생애는 成長學習期, 初期隱遁期, 義兵活動期, 隱遁養生期 등 4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穀,導引,服氣,服餌 등의 양생술은 제4기인 은둔양생기에 주로 나타난다. 李 光(1563-1628)의 {芝峰類說}에서 곽재우는 壬辰·丁酉 양난을 맞아 의병활동의 구국임무가 끝난뒤 방술 즉 양생술을 배워 입산 穀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하루에 松花가루를 조금씩 먹으며 벽곡 작법을 전하고 [嚥氣法] 즉 복기법을 체득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柳夢仁(1563-1628)의 {於于野談}에서도 곽재우는 부친별세 후에 산에 들어가 신선을 구하고 벽곡하였으며 사후에는 시해법을 사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許筠은 망우당을 수련가의 설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며 세상을 버리고 산에서 살며 벽곡한지 이미 수년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이미 단학의 요체인 精氣神과 性命之旨를 통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복기 조식 혹은 坐忘에 주력하면서 도가 양생술에 있어서 대표적인 경전인 {黃庭經}을 하루에 천독하였다고 술회하였다. 이렇게 보면 곽재우가 취해온 연단 양생법의 대강을 알 수 있는데 양생술의 복기(조식) 벽곡 도인 방중 복이의 5대요 가운데서 복기 도인 벽곡 복이는 사용하고 방중은 배제했음을 알 수 있다.
곽재우가 벽곡하며 유유자작하는 연단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는, [평생 節義를 흠모하며 지냈는데 오늘에 와서 산속 중이 되었네. 먹는 것을 끊어도 기갈은 없고 마음이 空하니 조식 스스로 되네. … 선비는 성리를 밝히고 중은 완공을 타파한다지만 신선술은 알지 못하여라, 금단이 경각에 이루어지는 걸.]이라고 술회한 시를 들 수 있다. 이처럼 그의 문집 여기저기에서는 그가 연단하면서 보이는 풍요로운 마음이나 심경을 나타내는 구절은 자못 많다.
{양심요결}의 구성은 14개 조목과 2개의 잡기로 구성되어 있다. [說隔結] [初學結法] [說仰覆法] [服氣雜法] [辨腸轉數法] [服氣十事] [服氣問答] [玉老眞人經後批] 등은 {雲 七籤}을 전재 또는 발췌한 것이며, [至理篇] [釋滯篇]은 {抱朴子}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외에 [換骨丹] [松葉受法] [痲子 穀法] [曆家] [飮水不飢法] [避飢大道丸] 등이 {養心要訣} 후미에 실려 있다.
4. 해동전도록의 [口訣]
선행연구에 의하면 {해동전도록}의 [단가별지구결]은 {東國傳道秘記}의 [金丹口訣]과 동일한 내용이며, 또한 {해동전도록}의 [단서구결]은 [金丹口訣]을 바탕으로 가감하여 보다 정연하고 순서 있게 재편된 것이다. 그렇다면 {단서구결}과 {단가별지구결}은 서로 다르지 않으므로 이들은 [구결]로 통칭될 수 있을 것이다.
구결은 {해동전도록}의 기록에 의하면 여러사람들이 비전으로 주고 받는다. 유통과정에서 이름이 여러번 탈바꿈 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구결의 양생사상이 여러 練丹逸士들의 사상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추결이다.
Ⅲ. 단학파의 修練 유형
조선시대에 있어서 불노장생의 신선사상은 일부 지식층을 심취시켜 조선 단학파의 성립을 가져온다. 그들은 신선사상을 숭앙하고 생명력을 기르기 위햐여 조식 태식 등의 심호흡법과 벽곡 그리고 도인 등을 행하였다. 그리함으로써 그들은 장생불사약이라 불리는 내적생명력 곧 내단을 체내에 기르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도교 단학파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수련 유형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이를 크게 셋으로 구분하여 三敎同源 志向型, 內丹 追求型, 逆修 實踐型 등으로 대별하고자 한다.
{해동전도록}에 보이는 비전의 전적들이 주로 수련 관계서들인 것을 보면 한국의 도맥은 중국 성립도교인 全眞敎계 性命雙修의 내단학을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해동전도록}의 {단서구결}이나 {용호결} {단가별지구결}이나 외단적 금단술의 병폐를 비판한 것을 보면 또한 확연해지는 사실이다.
조선 단학파의 다양한 전적 및 작품은 널리 유행되었는데 {해동전도록}이 단학인들이나 도교 의학서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는 더욱 강하게 윤리성을 띠는 민중도교에도 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도교 단학파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수련 유형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이를 크게 셋으로 구분하여 三敎同源 志向型, 內丹 追求型, 逆修 實踐型 등으로 대별하고자 한다.
1. 三敎同源 志向型
고려의 三敎鼎足的 풍토는 조선조 숭유억불 정책의 일방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전승되어, 삼교간에는 상호 교섭과 사상적 회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 예로 조선조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佛氏雜辨}과 함허기화의 {현정론}과 {유석질의론}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기화는 호불론의 입장에서 삼교동원을 주장하여 삼교의 회통을 모색한 바 있다.
또한 임진왜란시 의승군으로 많은 전공을 세운 서산 휴정, 구한말부터 민중운동에 앞장서서 제사상을 통합활용하려 해온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등의 신종교운동 등에서도 이러한 종교간의 회통을 위한 노력은 계속 나타난다.
鄭道傳은 [心氣理篇]에서, 불교를 心에 도교를 氣에 그리고 유교를 理에 각각 배대하고 心과 氣보다 유교 理의 우월성을 부각시켰다. 반면 涵虛 己和는 삼교의 주체로 心은 유교에, 氣는 도교에, 性은 불교에 배대하고 [三敎之道 皆乎本心]이라 하여 불교의 性을 체성적인 것, 유교의 心을 작용적인 것 그리고 도교의 氣는 이 心과 性을 연결시켜 주는 매체로 보았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한국종교사상사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유불도 삼교를 근원적 원리면에서 융합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전술한 사실들은 각각 유교와 불교의 견지에서 파악된 자가의 우위론이나 삼교동원론이다.
{海東傳道錄}을 상고해보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道敎의 道人 金可紀와 신라의 명현 崔承佑 그리고 불교 승려인 慈惠를 끌어들여 鍾離權에게서 다함께 道를 전수받았다는 기록은 본질적으로 삼교의 회통내지 동원사상을 표명하고 있다. 이 三敎同源이나 三敎會通은 한국종교 흐름의 큰 맥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이다.
삼교의 교섭사에서 잘 드러나는 바와 같이 {해동전도록}은 불교 선종의 法統 관념과 유교 성리학의 道統 관념에 부응하여 한국 도교의 정통 道脈을 확립하고자 한 문헌이다. {해동전도록}에서 도교계 인물인 金可紀와 유교계 인물인 崔承佑 그리고 불교계 인물인 慈惠를 내세워 한국도교의 전도를 기술한 것은 도교 우위나 삼교동원을 드러내려는 저작자의 저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당나라 開元(玄宗 713-741)에 신라사람 崔承佑와 金可紀와 僧慈惠 세 사람이 당나라에 유학하였다.]라고 한 기술에 그 일단이 보이며 이어서, [신라국은 도교에 인연이 없으며 다시 팔백년을 지나야 마땅히 돌아 오는 운이 있어서 그때에야 비로소 그곳에 선양될 것이요, 그후부터는 도교가 더욱 성하고 불교는 쇠퇴하여지며 地仙이 이백명이나 생기고 집을 나서서 승천하는 사람도 있어서 大敎가 퍼지게 될 것이니, 이 세사람은 그때를 ?추어 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만약 신선의 도를 배우고자 하여 중국에 머물러 있다면 내가 마땅히 지도하여 주리라.]고 기술하고 있다. 요컨대 신라가 아직 도교에 인연이 없으며 팔백년이 지나면 도교가 성창하고 불교는 미미해져서 地仙이 이백을 넘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시대로 부터 팔백년후는 조선시대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로보아 {해동전도록}은 조선시대에 기술되었을 가능성이 큼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불교는 녈리 퍼져 三韓에 이미 알려졌으나 오직 우리 淸淨之敎는 아직 전파되지 못하였으니 신라사람이 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고 우리 교에 있어서는 또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고 한 기사는 도교를 한국에 유포시켜 삼교가 두루 원융하게 자리잡도록 하려는 동원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다.
김시습의 학맥이 삼교에 두루 연루되어 있음은 전술한 사실이며 에서도 그러한 사실은 잘 드러난다고 보아진다. 율곡이 그를 평한 心儒蹟佛이란 말도 그가 유교와 불교를 두루 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그가 노자사상은 물론 도교적 연단술에도 심취되어 있음은 그가 삼교를 동원으로 간주하고 이를 지향코자 한 인간상을 보여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정렴의 {용호결}에서는 修丹의 궁극처에 도달하면 삼교가 다 만난다고 보았다. 비록 유교와 도교를 逆推工夫와 順推工夫로 구분짓기는 하더라도 太極을 仙道가 회복해야 하는 궁극처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유교의 근원론을 수용하는 증거이기 때문에 유교와 도교의 근원처는 같다는 동원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도교의 우위를 은연중 드러내려는 저의가 없지는 않지만 太極과 道(丹)를 歸根復命하는 한가지로 보는 관점에서는 유교와 도교의 동원을 주장한다고 여겨진다.
또한 도교와 불교에 대해서는 周天火候의 결과 기가 泥丸에 응결된 상태를 玄珠 또는 舍利라고 규정하므로써, 불교와 도교의 수련의 궁극처도 같다고 보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동원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김시습이나 곽재우와 마찬가지로, 乙巳士禍 이전에 이미 유불도 삼교를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삼교동원 추구형의 직접적인 표현은 {구결}에 보인다. {구결}은 도교의 우위를 확보하고 도교의 중정을 강조하는 道敎中正論에서 부터 시작된다.
[대저 천지인을 삼재라 하고 유불도를 삼교라 하니 삼재가 이미 서면 삼교는 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유교는 인륜을 주장함으로써 下學이 많고 불교는 明心見性을 주장함으로써 上達을 구함이 많다. … 도교는 일찌기 인륜을 끊지 않아서 하학의 공부를 폐하지 않으며 명심견성을 가장 귀히 여기나 또한 완전한 空에는 떨어지지 않으니 요컨대 삼교 중에서 가장 지나치거나 못미침이 없어서 그 중간을 잡고 있는 것이다.]
[대저 음양의 조화와 만물의 생성은 중정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유가의 聖經賢典의 千言萬語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中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만약 {중용}과 {주역}을 읽으면 더욱 믿을 수 있으며 조화와 생성의 묘리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도의 성취인들 어찌 이 도에서 벗어나겠는가. 세상의 배우는 자가 어리석게 이를 깨닫지 못하니 오호 애석하도다.]
[무릇 도를 배우는 자는 그 기질의 청탁을 보아야 하며 더욱 中和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 그래서 中和의 기를 타고난 이는 백에 하나 되기도 어렵다.]
[처음에 에 들어가 삼년이 되어 丹이 굳어진 후에는 또한 책을 보아도 좋은데 仙佛에 관한 책이나 {주역} {중용} {장자} {열자} 등의 책은 좋으나 음란한 책은 보지 말며 {陰符經} {道德經} {參同契} {黃庭經} {度人經} 등은 향을 피우고 예를 갖추어 보아야 한다.]
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교는 하학처가 많아서 인륜 중심의 처세론만 가르치고 불교는 명심견성으로 상달처만 많지만 도교만은 인륜을 버리지 않고 상달의 공부도 하므로 삼교 중에서 중정한 도리를 갖추었다는 것이 도교중정론이다. 이는 은연중에 삼교동원을 주장하며 회통을 모색하는 측면도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단서구결} 3장에서는 유가의 성경현전의 모든 말들이 중정을 논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유교의 주요경전인 {중용}과 {주역}의 [조화와 생성]의 묘리를 긍정하고 있어서 유교도 중화 중정임을 은근히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단서구결}4장에서는 {중용}의 핵심사상인 중화론을 끌어들여 도는 중화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이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보아진다. {단서구결}1장에 도교가 불교의 명심견성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암시를 받을 수 있어 불교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다. [六通]과 [마귀의 시험]이란 용어의 사용은 불교 수련과 석가의 보리수하 항마득도를 본뜬 듯한 인상이다.
2. 內丹 追求型
단학파들의 수련유형으로 내단 추구형을 들 수 있다. 한국에 전래된 도교의 내단사상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착되어 문헌에 보인다. 곧 한국의 내단론은 중국에서 외단에서 내단으로의 변화를 겪은 이후에 유입된 것들이다.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금단을 먹고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죽었다는 기록은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러한 단학파들이 수련한 양생술은 기론을 중심으로한 조식과 벽곡 그리고 도인와 복이 등이 그 전부이다. 양생술을 통하여 그들은 인체내에 丹을 만들고 신선을 지향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들 단학파들이 양생오대요 중에서 방중술을 좀처럼 거론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관심갖고 수련코자 했던 도서는 모두 내단계 전적들이다. 고려시대 이후 줄곳 한국 내단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전진교 계통으로, 조선조 단학파들은 외단을 비판한 흔적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산견된다. 한 예로 정렴이 외단적 금단술의 병폐를 비판하여 [옛날에 공부하는 사람이 下手의 방술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장생을 얻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요절에 이른 사람이 많았다]고 한 것을 그 대표로 들 수 있다. 또한 {단가구결}에서는 금단 제조에 대한 여러 주장을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에서 假象立名論을 내세운다. 丹經의 천만권편들은 모두 象을 빌어 이름한 것이라는 것이다.
조선전기 김시습의 신선장생술은 신선사상을 부정한 듯한 인상을 풍기는 기록과 견해가 있지만 그도 또한 수련을 위한 연단 작법도 수용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선사상이 강하게 표현되는 작품들이 그의 문집에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시습의 단학사상은 내단이 주를 이루며, 이는 그의 저서인 {매월당문집}17소수 雜著의 [修眞] [服氣] [龍虎]에 주로 나타나 있음은 전술한 바와 같다.
김시습이 {노자도덕경}을 수용하거나 인용한 문목들은 많이 볼 수 있다. 그는 수행적인 丹理로서 {도덕경}을 인거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철학적인 도가보다 수련적인 도교를 수용했다는 말이 된다. 이는 김시습의 저서 중에 {참동계}나 {황정경} 같은 내단서들이 산견되는 것을 보면 짐작 가능한 일이다.
김시습의 내단론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그는 精氣神을 인거하여 그의 기론을 심화시킨다. 玄氣, 元氣, 始氣에 각각 배당되어 있는 그의 정기신론은 양생의 요점으로 도를 체득하는 주요 매체이다. 흔히 정기신은 인체의 세곳 즉 상중하의 단전에 머무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다. 精은 대체로 근본적 생명력을 뜻하며, 氣는 생명현상을, 神은 그에 따른 부차적인 인간의 智慧 또는 정신활동의 神妙함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김시습의 내단론의 핵심은 服氣를 통하여 周天火候시키고 신선의 태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先天一氣를 훔치는 것(盜氣)은 복기로 시작하여 龍虎·鉛汞의 水火와 주천화후로 丹을 이루고 신선이 된다는 논리을 전개한다. 抱一 곧 도를 체득하는 방법으로 그는 養性, 服氣, 鍊龍虎를 통한 태식 수련을 강조함에서도 그의 내단론은 잘 드러난다. 아울러 그의 [龍虎]는 이러한 내단론을 뒷받침한다.
[무릇 龍虎라는 것은 납과 수은이요, 鼎器라는 것은 乾坤이요, 文武라는 것은 火의 형세이니, 단련하여 무릇 아홉 번을 뒤적여야 丹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수련의 대체로서 상세히 말하면 龍은 남방의 離龍이요 虎는 북방의 坎虎이다.]
상기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김시습의 [용호]사상은 중국 後漢 魏伯陽의 {參同契}의 원리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그는 천지공간에 충만한 것은 氣이며 그 기는 굴신작용을 순환반복하는데, 펴서 차고 나오는 것을 神이라 하였고 굽혀 돌아가면 鬼라 하여 귀신관을 전개한다. 아울러 사람과 만물은 한가지로 천지의 氣를 받아 자랐고 한가지로 一元氣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런 모두가 그의 내단론 전개의 일단들이다.
다음으로 언급하는 북창의 {용호결}도 閉氣로 시작하여 胎息을 거쳐 周天火候를 논하는 철저한 내단 추구형을 주장한다. 정렴은 丹法의 도는 오직 태식 곧 호흡에 있지 외단의 금석과 같은 百藥에 있지 않다는 논조를 펼친다.
[玄牝一竅에서 胎息이 되고 태식에서 周天火候가 되며 結胎가 되니, 태식과 화후와 결태가 다 현빈일규에서 시작되지 않은 것이 없다.]
[不老藥을 고아서 丹으로써 도를 이룬다는 것은 神이 氣를 거느리고 氣가 형체에 머물러서 서로 떠나지 않게 하는데 불과하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렴은 불사약을 내단적인 상징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복약하여 丹을 이룬다는 것을 神·氣를 통하여 내단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내단지향은 폐기, 태식, 주천화후를 자주 거론하며 {참동계}와 {황정경}를 자주 언급하거나 인용하고 있어 더욱 잘 알 수 있다.
곽재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내단지향은 허균이 평한 [수련설에 조예가 깊고 捨世居山하여 벽곡한지 수년이 되었다. 또한 丹學의 요체인 精氣神과 性命之旨를 통했고 服氣·調息과 坐忘에 주력하면서 양생술의 대표적 경전인 {황정경}을 하루에 천독하였다]라는 기록에 잘 나타난다. 내단사상의 핵심인 精氣神은 그에게 있어서 養精神,調祖氣,養元神이라는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찬술인 {양심요결}은 그의 내단론 전개를 여실히 보여준다. {양심요결}에서 벽곡과 복기로 腸中의 穀氣가 사라지고 運氣가 잘 되면 精神이 달라져서, 神은 맑아지고 氣는 상쾌해 진다고 하여 精氣神의 修丹을 언급함에서도 그의 내단지향은 확연한 것이다. 服氣十事중에 內服氣를 최고로 쳤는데 그것은 바로 內丹을 최고의 수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단 추구형은 {해동전도록}의 [口訣]에도 잘 나타나 있다. 구결에서는 수련의 성숙한 경지로 抱一을 언급하는데 이 때의 一은 元氣 또는 先天眞一之氣이다. 구결에 나타나는 포일은 수당시대에 형성된 元氣의 의미를 따른 것이다. 이 원기는 바로 정기신 삼보의 통합체이다. 구결의 포일은 자주 등용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이를 체득하는 방법으로서 주천화후를 들고 있음은 또한 내단론 전개를 엿보게 해준다. 또한 구결에서는 에 앉은 후에 功을 들이면 금광이 발하고 丹이 이루어지며 주천화후가 시작된다고 하여 내단론의 심도를 보여주고 있다.
3. 逆修 實踐型
삼교동원을 주장하며 내단 양생론을 지향하는 도교적 단학파들은 逆修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역수는 곧 修丹의 도로서 우주생성의 이치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닦아야 한다는 말이다. 유교 식자들 사이에서는 도교의 내단수련에 대하여 천리를 거슬린다는 비난을 일삼아 왔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것이 逆修論인데, 그 요는 태극의 본체 자리로 소급하여 닦는다는 의미이다.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넷을 낳고 넷이 여덟을 낳고 여덟이 六四(괘)에 이르니 나뉘어서 만사가 되는 것은 人道요 발을 포개고 단정히 앉아 눈썹을 내리뜨고 구멍을 막아 만사의 번뇌를 수습하여 一無의 太極으로 돌아가는 것은 仙道이니 {參同契}에 이른바 '뜻을 편안히 하여 허무로 돌아가며 생각이 없는 것을 법칙으로 한다(無는 태극의 본체이다). 증험으로 미루건대 마음이 전일하여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도를 닦는 첫째 뜻이다. 다만 뜻을 세움은 일찍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기가 쇠패한 뒤에는 비록 그 공을 백 갑절 하여도 上仙의 열에 참여키 어렵다.]
유교는 順理하므로 인륜을 중요시하지만 도교는 逆理로써 태극으로의 환원 곧 成丹을 주장하므로 불사의 신선이 된다는 이론이다. 순리는 太極에서 萬物로 分化되는 과정에 順應한다는 것이고, 역수는 만물분화의 과정을 소급하여 본래의 태극으로 돌아가는 返本還元의 도이다. 만물 분화에 순리하는 것을 인도라 하는 한편 이에 역수하는 것은 선도라는 것이다. 요컨대 {주역}에서 전개한 우주생성론 곧 太極에서 兩儀, 양의에서 四象, 사상에서 八卦, 팔괘에서 萬物이라는 順理의 과정에 순종하면 인간이 되고 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태극으로 돌아가면 成丹(成道)하여 仙人이 된다는 것이 이른바 역수론이다.
한편 이러한 역수의 공부법으로 存三抱一을 들 수 있다. 三은 精氣神이요 一은 元氣, 先天眞一之氣 또는 道이다. 여기에서 정기신이 역수공부에도 중시되는데 물론 이는 전술한 내단론의 핵이기도 하다. 이른바 元精을 채집하고 元氣를 회복하면 이어서 元神을 다시 얻을 수 있게 되어 선천의 眞一之氣를 체득하고 太極의 본체자리에 합일하게 된다. 여기에서의 원정은 무형하며 무너지지 않는 生命의 원동력이고, 元氣는 무한한 생명의 흐름이며, 元神은 분별을 초월하고 시간 공간을 넘어선 자유자재한 精神的 光明을 말한다. 또한 이 정기신의 회복을 위해서는 胎息과 周天火候를 겸하여 실행해야 함은 전술한 바와 같다.
역수공부의 방법으로 꼽을 수 있는 정기신은 인체중의 각각 세곳에 머문다. 정기신이 인체의 삼단전에 머무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은 {黃庭經}으로부터 유래되며 {鍾呂傳道錄}에서는 이러한 삼단전에 대해서,
[상단전은 神舍이며 중단전은 氣府이며 하단전은 精區이다. 精에서 氣가 생하여 기는 중단전에 머문다. 기에서 神이 생하며 신은 상단전에 머문다. 眞水와 眞氣가 합하여 精을 생하며 정은 하단전에 머문다.]
라 기록하고 있다. 즉 하단전인 精區에서 머무는 정이 기를 생하면 이는 중단전인 氣府에서 머물며 이 기가 신을 생하면 신은 상단전인 神舍에 머문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정은 眞水와 眞氣가 합하여 생긴 것이라 하였다.
정기신과 관련이 있는 고문헌상의 개념으로는 {도덕경}의 希夷微, {呂氏春秋}의 形精氣, {淮南子}의 形氣神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도가철학의 개념들이다. 한편 {參同契}, {黃庭經}, {鍾呂傳道錄}을 중심으로 전개된 도교 내단의 정기신은 단련하여 신선을 지향하는 수련의 요체로서, 도가철학의 그것과는 자못 해석의 관점을 달리한다.
정기신은 외단에서 내단으로 전환하면서 부각된 개념으로 다시 先天의 元精,元氣,元神과 後天의 交 精,呼吸氣,思慮神으로 대별되기도 한다. 선천의 정기신 회복을 修仙의 요체로 삼되 그것도 또한 후천의 정기신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하여 선후 주종을 가리면서도 이의 상호 交和를 중시하였다. 정기신과 관련하여 또 한가지 주목되는 내단적 개념으로 性命雙修를 들 수 있다. 이는 採藥과 周天火候 등의 修命과 無念冥想이나 順法自然 등의 修性을 겸해서 수련해야 함을 말한다. 이를 통해 무한한 永生, 造化와 自由를 함께 얻어 단을 이루고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천의 정기신을 체득하는 역수공부의 단계로는 保精,煉精化氣,煉氣化神,煉神化虛을 들 수가 있다. 보정은 세속잡사를 피하여 색욕을 멀리하며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등 누설을 막아 정을 보하는 것이며, 연정화기는 주천화후를 통하여 하단전에 모인 정을 기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연기화신은 기를 신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나아가 소주천과 대주천의 화후를 마치고 陰氣가 진멸하고 온전한 陽神이 되었을 때 그 陽神이 자유자재한 묘용을 얻도록 까지 계속 공을 들이는 것이다. 이로부터 무한한 자재력과 신통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연신화허는 연기화신으로 이룩된 陽神을 무위자연의 본래 태극 자리의 도에 합하도록 하는 수련상의 마지막의 과정이다.
Ⅳ. 결 어
이상에서 필자는 조선시대의 도교 단학파를 중심으로 그 저술들과 수련 유형을 살펴보았다. 한국의 도교적 도맥을 다루고 있는 {해동전도록}은 金可紀,崔承佑,僧慈惠 등 삼교의 대표들로 시작하여 중국으로부터 도맥의 한국유입을 거론한다. 그 도맥은 신라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지만 그것들이 사실적 고증문헌으로 나타나는 것은 김시습에 이르러서이다. 필자는 김시습의 [잡저]와 정렴의 {용호결} 곽재우의 {양심요결} 그리고 {해동전도록}의 [구결]들을 중심으로 그 단학파 저술들의 대표적 내용과 그 수련 유형을 세가지로 대별하여 살펴보았다.
그 첫번째로 언급한 삼교동원 지향형은 삼국시대로부터 지속되어온 삼교정족적 치세관의 전승이다. 곧 유불도 삼교가 본질적으로는 같은 근원에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유불도 삼교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이해를 바탕으로 수련의 궁극에서는 하나로 통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유형이다. 비록 유교 불교 도교 등 어느 하나에 우위론을 주장하기도 하고 나머지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나 근본적으로는 일이관지함을 피력한 경우이다.
다음으로 내단 추구형은,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의 도교는 내단과 외단의 진통이 없고 주로 수련 양생술인 내단사상을 바로 수용함함으로써 도교 이해에 있어 심도있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내단사상의 元經격인 {參同契} {黃庭經} 그리고 {道德經} {陰符經} {度人經} 등의 도서들이 여기저기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이러한 추찰은 어느정도 신빙성을 지닌다. 한국도교의 양생사상에 있어서 외단적 금단 제조에 관한 언급은 직접적으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도교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킨 방중술에 관한 언급이 기록된 문헌도 한국에서는 찾기보기 어렵다.
셋째로 역수 실천형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영생, 조화, 자유를 얻기 위해서 유교적인 만물분화 법칙을 소급하여 수련함으로써 태극이라는 본원체를 체득할 수 있다는 도교 양생론의 실천논리였다. 기론적 사유에 바탕을 둔 精氣神論, 文武火候論, 胎息論, 導引術, 穀法 등의 양생술들은 내단추구를 위한 방법으로 직접적인 방법들로 언급된 것들이다.
요컨대 한국에 있어서 도교 단학파의 수련술은 삼교의 본질에 대한 합일을 주장하면서 그 동원을 추구하는 인간을 그려왔던 바, 그러한 인간을 형성시키기 위하여 내단사상을 그 이론적 기반으로하여 역수라는 방법으로 이를 직접적으로 실천하기를 중시하였다. 그리함으로써 정기신을 체내에 합성하여 丹이라는 불로장생의 영원한 생명력을 기르는 수련상을 지향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