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에 대하여

대나무에 대하여   설 명절 잘 보내셨겠지요. 재작년만 해도 제발 모이지 말아달라고, 오지도 가지도 말고 마음만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읍소했던 방역당국의 소리를 올해는 듣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사소한 일상도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저는 지난 주일 오후 드디어 손자를 만나러 작은 아들 집에 다녀왔습니다. 맨날 사진으로만 보다가 품에 안아보니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전혀 생소한 느낌이었는데 ‘실감’이라는 말 아니고 더 진하고 섬세한 표현이 있다면 그것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 손자를 안고 있다 보니, 제가 아니고 손자가 저를 안아주고 있다는 그 포근함에 참 신비하고 행복했습니다.    종일 아이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책 한 권 챙겨서 갔습니다. 옛 시(詩)를 풀어놓은 것인데 깊은 우물에서 건져올린 한 바가지 맑은 물을 천천히 마시듯 몇 모금 읽었습니다. 한 편 나눠볼까 합니다.   “밥상 위에 고기 반찬 없을 수는 있겠으나/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아니되리/ 고기 반찬 없으면 사람이 마르지만/ 대나무 없으면 속물이 되기 마련이니/ 마른 거야 오히려 살찌울 수 있겠으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도 없다네...(이하는 생략)” 이 시는 중국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소식(蘇軾,1037~1101)’이 쓴 것인데 ‘대나무에 대하여’라는 시입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집 뒷마당에는 대나무를 앞마당에는 매실나무를 심었나봅니다.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았겠지요.   속되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줏대 없이’ 사는 것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여기에 쓰는 ‘줏대’는 한자어 ‘주(主)’에서 비롯된 말인데, ‘主’라는 말이 저에게는 ‘주님’ 이렇게 읽힙니다. 주님 의지하고 주님으로 채워서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삶이 아니라면 ‘줏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데 쓰고 보니 제가 꼭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곧 ‘선비정신’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줏대가 세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도 없다”는 말 다시 한번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