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상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교수
키에르케고르는 1812년 5월 5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일곱 자녀의 막내아들로 태어
났고 거기서 1855년 11월 11일 42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실존철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키에르케고르에게 인간적으로나 철학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그
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센 키에르케고르와 그의 약혼녀 레기네 올센이다. 그의 실존철
학은 그와 아버지와의 실존적 관계, 그리고 그와 약혼녀와의 실존적 관계에서 발원하
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키에르케고르가 24살 되던 해 여름 그는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에 그친다. 그 때의 충격적 체험을 그는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때 엄청난 지진이, 무서운 변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나에게 전 현상의 새로운 해
석을 강요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장수가 하느님의 축복이 아니고, 오히려 저주라는
것을 알았다. 또 나는 우리 가족들의 뛰어난 정신적 천분이 단지, 서로 괴롭히기 위
해서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였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우리들 모두보다도
더 오래 생존해야 할 운명을 걸머진 하나의 불행한 인간을 보았을 때, 나의 주위에
죽음의 정적이 짙어 가는 것을 느꼈다. 하나의 죄가 전 가족의 머리 위에 뒤덮고 있
음이 틀림없다. 하느님의 형벌이 그 위에 있음이 틀림없다.'
키에르케고르가 아버지와 화해하고 아버지의 죄를 떠맡아 대신 참회하기로 결정한
뒤 아버지는 82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렇게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삶
에 있어서 실존적 결단과 그에 따른 존재의 떠맡음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가를
스스로 체험하였으며 이것이 그의 실존철학의 큰 줄거리를 이룬다.
또 하나의 실존적 체험은 약혼녀 레기네 올센과의 사이에서 전개된 관계맺음이다.
25살의 키에르케고르는 15살의 레기네 올센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3년 후 그
는 그녀와 약혼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얼마 후 키에르케고르는, 자
신이 도대체 한 여자를 자기에게 묶어 놓을 권한을 갖고 있는지 숙고하기 시작한다.
결혼에 대한 그의 엄격한 생각에 따르자면, 결혼의 주요 부분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에게는 함구해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는 그가 윤리적 . 종교적인 데 반해 레기네는 심미적 . 직접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다. '나는 종교적인 것만 가지고 있으면, 레기네 없이도 살 수 있었고, 또 지금도
살 자신이 있다.' 애인을 종교에로 끌어올릴 힘이 자기에게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또 한편 자기의 무력을 깨달은 그는 절망하였다. 이윽고 키에르케고르는 결
단을 내린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을 잊어 주십시요. 한 사람의 처녀를 행복하게 하
여 줄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사내를 용서해 주십시요.'하고 그는 편지를 띄웠다. 레기
네는 미칠듯이 날뛰었다. 그가 외출한 사이에 달려온 레기네는, '당신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저를 버리신다는 것은 저를 죽이는 것입니다.'라는 편지를 써놓고 돌
아간다.
키에르케고르는 약혼녀가 스스로 약혼을 파기하기를 바란다. 그는 혐오스럽게 처신하
고 타락한 것처럼 보이게 하여, 마침내 레기네가 스스로 약혼 파기를 선언하도록 하
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다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못된 놈으로, 그
것도 가능한 한 최고로 못된 놈으로 행세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리
하여 놀라운 연극이 시작되고 어린 레기네에게 잔인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러한 마음의 결전은 두 달이란 세월을 끌었다. 드디어 레기네와의 일은 종막을 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레기네와의 사랑을 통하
여,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난 후에도, 키에르케고르는 허다한 저술을 통하여 레기네와
의 관계를 되풀이 하였다. 즉 키에르케고르는 레기네라는 한 여성을 통하여 자기의
본질의 일부를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적 간접전달>이라는 대화법을 발견한다. 인간은 누구
나 다 신 앞에 홀로 서 있는 외톨이이다. 이 외톨이는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서 자신의 존재를 떠맡아야 한다. 거기에 어느 누구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서
는 안 된다. 인간 모두가 각자 이러한 외톨이, 개별자, 단독자가 되는 것, 그리고 자
신을 실존하는 것으로 의식하는 것, 바로 이것이 키에르케고르의 가장 내면적인 관심
사이다. 그는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 익명으로 글을 발표한다.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한 것은 '나는 사유한다'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
는 '사유의 확실성'이니 '사유와 존재의 일치'이니 하는 것을 지성의 비극적인 코메
디라고 일축해 버리며 <나는 죽는다>는 것보다 확실한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의 존재의 확실성을 사유로, 무한으로, 영혼으로, 가능으로 해체
시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는 사유 일변도의 철학자를 키에르케고르는 추
상적 사상가의 희극으로 간주한다.
인류라는 보편성을 내세워, 민족이라는 전체성을 내세워 개별자를 무시하여 <전체가
진리>임을 주장하던 시대에 키에르케고르는 <개별(실존)이 진리>임을 과감히 주장한
사람이다.
<실존>은 나는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의미에서
의 개별 인간의 사실적 존재를 뜻한다. 실존은 무조건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환원
될 수 없는 <나는 존재한다는 현사실>이다. 이렇듯 실존은 순수 현사실로서 인간의
어떤 본질 규정보다 앞서 놓여 있으며, 바로 이 본질 규정이 문제가 될 때에 비로소
실존은 경험된다.
그런데 현사실의 특징은 그것이 그저 단순히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는 바
로 이 점에 있다. 이것은 나의 존재가 내게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과제로서 떠
맡겨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되어 가는 또는 되지 못하는 그것이며,
그래서 나 자신에게 '네가 무엇인 바 그것이 되어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내가 존재한다는 이 현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현사실은 그 자체가 이렇게 또는 저렇게 자신에게 관계할 수 있는 그의
가능성인 것이다.
실존하는 자가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 세 가지 근본 형태를 키에르케고르는 심미
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로 구별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다면 키에르케고르는 '결단을 내려 너 자신
을 선택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이 된다. 자신
의 능력과 처지를 한탄하며 형편의 불리함에 대해 불평만 하는 사람들에게 키에르케
고르는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무엇을 받았느냐에 의해 평가되지 않고 그가 어떻게 떠
맡았느냐에 의해 평가됨을 주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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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基相 - 가톨릭대 신학부 졸업,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대 석사 및 철학박사, 제 11회
열암학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