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믿음의 사람은 같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상속을 받는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으로부터 받은 떡과 포도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을 항상 기념하세요.
믿음의 결과는 의를 얻는 겁니다. 언제나 믿음을 발동할 때는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의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의를 앞세워 하나님은 행하시고 역사하십니다(시85:13)
이와 같은 이들이 바로 믿음으로 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복을 받게 되고 그 복의 상속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10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건 무서운 말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는
그 자체가 이미 저주 아래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안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율법 책 안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행한다’는 말은 말씀 안에 있음은
진리 안에 자유하며 제 할 일을 하는 왕세자와 같지만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의지는 하나도 없이 종과 같은 내시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둘 중에 하나인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는가?
11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으로는 분명히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에 의해(by faith) 살아집니다.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으면(능동) 살아가는 힘이 속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믿음은 행함이 따를 수밖에 없으나 믿음에 의한 피동의 역사가
없는 것은 말씀을 듣고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서 출발한 믿음인 겁니다.
12절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은 믿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합니다. 이들은 11절의 의인들과 상반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아무리 잘 살아봐야 아주 멋진 자연인일 뿐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디 한 번 잘 해봐라 잘 될 턱이 있나’는 뜻입니다.
참 신앙은 가까이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의를 얻어야 합니다.
롬10장은 그리스도 안에 작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진리를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은사는
의가 있는 곳으로 집중이 됩니다. 따라서 의인은 바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시1편)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저주의 값을 지불하셨다는 말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신21:23)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셔서 참혹하게 죽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침을 뱉었습니다. 바로 저주를 받아 죽는
그 죽음을 인간들도 저주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사53:4) 그러나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심으로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 오르시어 의의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시며
의와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약속대로 그 이름으로 진리의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살고 싶으면 진리를 따라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행위
안에서 자신의 의로 하나님의 의를 가리는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참예(믿음)하므로 육체의 예법의 미혹을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칩니다.
그 복이 바로 성령의 약속입니다. 바로 새 언약입니다. 율법은 밖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법이지만 새 언약은 말씀의 효력이 안에서 생명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일2:27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말합니다.
예레미야나 요엘 등의 선지자들로 예언한대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새 언약이
바로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그로인해 율법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방인들에게도
아브라함의 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정작 유대인은 사53장을
틀어막아 놓고는 십자가에 못 박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듣는 믿음의 말씀이 의가 되고 복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은 의를 만들고 그 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살게 하는 생명의
능력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의인은 믿음에 의해 살고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찬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