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휴가 때마다 가족들을 이끌고 가고 싶어 한다.
“이번 여행은 어디로 갈까?”
아들들과 나는 아직도 ‘휴가는 쉬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일말의 희망을 품어 보지만, 우리 의견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남편의 말을 기다렸다.
세면도구, 비상약, 여벌 옷, 충전기, 간식 등 여행 가방에 준비물들을 챙겼다.
“홍도에 갈까?”
“고심해서 배를 타야 하는 곳으로 정한 거예요?”
남편은 배 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어렸을 때, 샘에 빠진 일이 있어서 그 트라우마로 물을 무서워한다.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수영도 물속에 머리를 도저히 넣을 수 없어 포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포에서 배를 타기로 한 전날은 숙소 주변을 관광하고 유달산 정상에 올랐다. 아이들은 고생한 보상으로 받은 푸짐한 저녁을 먹으며 힘든 일도 잊은 듯한 얼굴이었지만, 오랜 시간 걸음을 걸은 나는 벌써 지쳤다.
남편의 목표는 홍도의 깃대봉에 오르는 것이었다. 기왕에 타는 배이니 2층에서 바다를 보면 좋겠다며 2층 앞자리의 가족석을 예약했다. 배가 출발했고 걱정했던 것보다 바다는 잔잔했다. 남편의 말대로 무섭지도 않고 여유로운 뱃길이 좋았다. 아들들 입에 뭐라도 먹여 주는 것이 낙이라 매점에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모처럼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목포에서 출발해 신안 비금도까지 딱 50분! 행복한 휴가는 거기까지였다.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갑자기 바다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진녹색의 바닷물이 뒤엉켜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 달려들었다. 몸 안의 모든 것이 바깥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쳤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힘들어 이리저리 몸을 부딪치며 겨우 걸어갔다.
작은애와 나는 거의 초주검이 되었다. 배는 도착할 기미가 전혀 없었고,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중간에 들르는 흑산도에서 내리고 싶었지만, 태풍 소식이 있어서 일정이 빠듯했다. 그렇게 총 두 시간 반 만에 홍도에 도착했다. 이런 일정을 잡은 남편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다시피 선착장에 내렸을 때야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선 자의 행복을 실감했다. 이름만 호텔이고 행색은 아무래도 여인숙인 곳에 숙소를 정하고 쓰러졌다. 30분쯤 쉬었을까.
“깃대봉에 올라가야 하는데?”
달갑잖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오전에 해상투어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을 붙잡고 몸을 추슬렀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토록 절경이라고 소문난 깃대봉을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았고, 평생 다시는 홍도에 올 수 없을 거란 것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남편을 향한 오기가 발동했다. 산에 오르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정상에 오르고야 말겠다는 투지가 불타올랐다.
다행히 큰아들이 엄마의 껌딱지인 작은 아들을 데리고 앞서 올랐기에 덜 힘들었고, 남편은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인지 내 곁을 지키며 올랐다. 첫 번째 전망대가 나왔을 때, 나는 조용히 땅만 보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뒤 좀 돌아봐”
남편의 말에 마지못해 뒤를 돌아본 순간, 펼쳐진 비경에 탄성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해안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초등학교도 보였다. 바다를 한껏 안고 운동장과 해변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홍도는 섬 전체가 아름다워서 남해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며 천연보호구역이라고 한다. 동백꽃이 많아서 해 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고 해서 홍도라고 했다.
홍도 1구와 2구를 잇는 길은 해발 365M의 깃대봉이 정상이다. 선착장에서 휴식 시간 포함 왕복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험한 산길로 생계를 위해 소용되는 것들을 이고 지고 날랐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숯 가마터와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숲길도 좋았다. 깃대봉 정상을 오르면서 보이는 바다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이었다. 자산어보로 유명한 흑산도가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흑산도까지 훌쩍 뛰어넘고 싶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내 표정이 제일 환하고 행복했다.
다음날은 해상투어가 시작되었다. 입담 좋은 해설사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어제 배 타고 들어오면서 멀미한 사람들 손들어 보라고 했다. 손을 들고 무슨 비법을 알려 주시려나 귀를 쫑긋했다.
“어제 같은 날씨에 멀미하신 분들은... 약도 없어요!”
아! 그 정도 물살은 양반이라고 말했다. 원래 태풍이 오기 전보다 지나간 뒤에 물살이 더 거세다고 했다. 배를 탈 때, 아래층 뒤 편에 앉아야 멀미를 덜 한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곧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있지만, 오후에 나가는 배는 들어올 때 보다 더 얌전할 거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는 홍도는 이름처럼 붉은색을 띠는 기암괴석과 맑은 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느라 바빴다.
다시 배를 탈 생각에 아예, 홍도에서 눌러살아야 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어쩔 수 없이 배에 올랐다. 해설사가 알려 준 대로 배의 아래층 뒷자리에 앉았다. 물과 음식도 먹지 않았고, 출렁이는 바다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무사히 목포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이라는 홍도의 깃대봉에 다녀온 뿌듯함이 남았다.
여행 가기 전에 챙겨야 할 것은 세면도구나 필요한 옷들도 중요하지만, 정작 여행지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했다. 배 타는 것을 무서워하면서도 몇 번의 검색이면 찾을 수 있는 정보들도 모르고 떠나서 더 힘들었다. 이번 여행은 조사와 준비를 더 철저히 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첫댓글
와!
여행 수필 잘 읽었습니다!!~~^^
홍도의 비경을 그리 쉽게 선 보이나요?!!~^^
저도 꼭 가보고싶네요
배 타기를 무서워해서요... 그것만 아니면 최고의 풍경이었습니다. 꼭 한번 다녀오시라고 추천드립니다.
홍도 기행 수필 실감나게 써서 잘 읽었어요.
홍도관광이 삶에 큰 저력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해 보네요.
그래도 다행히 일정대로 돌아올 수있어서 잘 한 거예요.
나는 홍도에 갔다가 4일간을 갇혀 있다 왔거든요.
생필품이 다 바닥이 나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지요.
홍도에서 회장님께서도 고생이 많으셨군요. 고생을 많이해서 그런지 유난히 더 기억에 남습니다. 산더미처럼 덮쳐 오던 진녹색의 파도는 가끔 꿈에 나오기도 한답니다. 해상투어로 본 붉은 바위의 비경과 깃대봉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