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능이 쇠해지면서 배설 작용에 가장 먼저 문제가 생긴다. 하루에 한두 번 한꺼번에 배설하지 못하고, 다섯 번 이상 조금씩 내놓으면서, 그것도 변의와는 상관없는 때에 볼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쩔 도리 없이 아기들이 쓰는 기저귀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연세가 드셔서도 늘 활동적이고 정정하셨던 할아버지도 육체의 기능의 쇠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셨든지, 외출하려고 대문을 나서셨다가도 실수를 하셔서 집으로 되돌아오신 적이 자주 있었다. 어린 나에게 그것은 이해나 공감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왕성한 사회 활동을 접고 자리에 누우실 수밖에 없게 되자, 어머니에게 가장 큰 수고를 끼친 것이 바로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판단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 일로 해서 나에게는 내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은 스스로 깨끗이 해결해야 한다는 어떤 각오 같은 것이 형성된 것 같다. 그러나 그 각오가 외려 현상을 만들어냈을까?
장장 이틀에 걸친 배설 작업(?)과 더불어 금식을 끝내고 나니, 청정한 기분이 되어 오늘 아침엔 고모가 쑤어준 야채죽을 한 그릇 비웠다. 아, 이 맛! 이것이야! 눈을 살살 감으며 황홀한 아침식사를 한 것이다.
모처럼 배의 통증도 가셨으니, 오늘은 무엇인가 일 같은 것을 해보리라 생각하며 노트북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시 배가 아파오며 배꼽 주변이 단단하게 뭉쳐오는 것이 여간 수상하지가 않다. 화장실에 가서 꿍꿍 힘을 써 봐도 뭐 나오는 것은 없고, 느낌은 금방 뭐라도 나올 것 같은 난감한 상황. 하는 수 없이 아기 기저귀 신세를 다시 지게 되었다.
통증이 심하다 보니, 글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아예 눈을 감고 배를 쓰다듬으며 잠이 들고 말았다.
잠에 들었다가 나왔다가 하며 배의 통증을 바라보는데, 이것은 설사이고 원인은 아침에 집어먹은 땅콩 다섯 알이라는 것이 묻혀있던 기억의 창고에서 문득 떠올랐다.
맞았다. 좋은 기분에 달떠서 용감하게 집어먹었던 고소한 땅콩이 뱃속에 들어가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전쟁’, 그래 전쟁이라. 내 장이 싸우느라 애를 먹고 있구나.
다음 순간 마음에서 허허 웃음 한 줄기가 새어 나온다. 전쟁은 내 몸의 장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 일으키고 있는 것 아닌가?
잘 바라보자. 배설로 인해 고모를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여 전전긍긍하고, 배에 통증이 일어나니 벌써 심란한 걱정을 꺼내어 들고 칼싸움을 시키고 있는 것은 이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이 모든 상황들을 판단하고, 이러저러 해야 한다고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자.
순간 배의 통증이 온 데 간 데 없어진다.
무엇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추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이러해야 하는 것도 저러해야 하는 것도 없이, 그저 그 모양새 그대로인 것을.
감고 있던 눈을 뜨니, 고모는 하얀 천을 나풀거리며 살풀이를 추고 있다. 나는 고모의 저 춤이 참 좋다. 쌀을 씻어 밥솥에 올려놓고서, 혹은 찌개가 끓는 것을 기다리거나 세탁기가 하는 빨래의 다음 단계를 기다려야 하는 틈틈이 고모는 거실에서나 주방에서나 살풀이를 춘다. 그 가벼움이 정말 좋다.
그래 풀고 또 풀자. 놓고 또 놓아버리자.
눈을 감으니 텅 비었다.
첫댓글 기자영님의 일기를 읽고 있는 저도 님의 벗이 된거죠? 이런 만남의 기회가 귀하고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고밥습니다. 꾸벅 ^^
멈춰라 ! 우리 자영님은 할일이 많단다...내가 슬슬 쓸어 주겠소...내손은 약손 이외다. ㅎㅎㅎㅎㅎ
무엇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추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이러해야 하는 것도 저러해야 하는 것도 없이, 그저 그 모양새 그대로인 것을.... 자영님의 이야기 나눠주셔서 잘 읽습니다..감사합니다..
에헤~ 우리 벗님들 사랑이 물씬 전해져 오네요. ^^* 고맙습니다.
노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구먼. 모처럼 동료들과 상해,항주,소주를 다녀왔다네. 상해임시정부가 곧 헐린다는 소식과 함께 책에 나온 상해건물을 보며 '꽤 규모가 있었네'라는 생각이 잘 못됐음도 알면서 '잘 다녀왔군'했지. 중국이라는 곳 참 야릇한 곳같다. 가깝고도 먼 당신처럼.
잘 다녀왔으면, 사진도 좀 올려주고 그래봐. 함 보고 싶구만.
빠른 시일내에 만나고 싶다. 자영은 우리들의 희망이고 미래다. 큰 뜻이 있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