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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메신저를 쓰지 않으니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달라는 친구는 정치를 입에 담는 법이 없었다. 깊이 취해 기억 못할 세태 비판을 쏟아내는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도 웃기만 했다.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을 무던한 표현만 골라하는 친구였다. 그런 네가 왜 사이버 망명을 하느냐는 농담에 정색하며 답한다. “안전하지 않아서.” 사적인 사진들, 심지어 신용카드 번호를 보내고 업무 관련 대외비도 주고받는데 불안해서 쓸 수 없다고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내 포털 이메일과 네이버밴드 같은 다른 메신저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영장이 집행되어왔다고 한다. 혐의가 될 만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며 타박할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수사기관은 특정 장소를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에서 입력했던 모든 사용자들의 3개월간 위치검색정보를 요구하기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범죄 혐의자가 검색했을 수도 있는 목적지와 같은 장소를 범죄와 아무런 상관없이 우연히 찾아봤다는 게 어떤 잘못일 수는 없다. 조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이버 난민들은 도넘은 표현을 일삼는 자들이 아니다. 최소한의 안전에 위협을 느끼며 망명길에 오르고 있다. 표현의 자유 이전에 안전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 이전에 위협받는 안전
봉준호 감독의 「괴물」, SF영화가 현실과 오버랩되고 있다. 잃어버린 딸 현서를 찾아나서려는 아버지 강두가 괴물 바이러스 보균자로 지목돼 격리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 맘 놓고 웃기 어렵게 되었다. 합동분향소에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부터 해달라며 정부 관계자에게 따지는 삼촌 남일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될 수 있다고 겁박당하고, 오로지 현서를 구하기 위해 격리병동에서 탈출한 가족들은 미개한 감염자로 뉴스에 등장한다. 단지 가족을 구하겠다는 몸부림 때문에 경찰의 추격을 받는 신세로 떨어지는 순간 판타지는 리얼리티가 된다. 정부와 사회의 외면 속에 외롭게 괴물 앞에 맞서지만 이번에는 강두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는 비극이 있을 뿐이다. 피해자가 다시 피해를 입는 현실, 연쇄피해를 당하고도 오히려 무능하다거나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손가락질을 당할지 모른다.
내 안전은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하는 엄혹한 현실, 법과 제도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불신, 아니 도리어 공권력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절망은 각자도생의 엑소더스로 이어지고 있다. 랭키닷컴의 집계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카카오톡을 들여다본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매주 5만명 이상이 이탈했다고 한다. 독일에 서버가 있는 텔레그램 이용자수는 10월 첫째주에만 173만 4552명으로 전주보다 60%이상 증가했다고 하니 대탈출이라고 부를 만하다. 페이스북보다 더 이른 때에 다양한 SNS 서비스를 제공했던 싸이월드는 대규모 정보유출의 여파로 상승세가 꺾였다. 앞선 기술을 보였던 국내 IT기업들이 기술 외적인 요인, 특히 보안을 담보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의 후진성으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면 이제 기업들도 난민 행렬에 동참할지 모른다.
무차별적 감청의 위헌성 따져야
범죄혐의가 있을 때 필요하고 상당한 범위에서 진행되는 수사까지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선량한 시민까지 불안해하는 이유는 개인정보에 대한 수사가 매우 폭넓게 이루어진다는 소식 때문이다. 우리나라 감청 건수는 2011년에 인구 대비 미국의 15배, 일본의 287배라고 한다. 수사대상이 누구와 언제 얼마나 통신했는지에 대한 자료조회는 2011년 한해만 약 3700만명을 대상으로 했다는 통계가 있다. 특정 계정 전체의 압수수색을 허용하는 영장에 단지 “범죄 유관정보에 한함”이라고 기재한다고 해서 필요한 범위에서만 개인정보가 노출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법과 제도의 개선이 없이는 사이버 난민의 행렬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때 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고려해 세밀한 잣대를 댈 필요가 있다. 신체에 대한 체포, 구속영장을 점차 까다롭게 발부하는 것과 같은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개인정보가 노출된 대상자 전원에게 그 사실을 사후에는 통지하도록 의무화하여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영장집행을 다툴 수 있게 한다면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하는 강제수사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인터넷 회선에서 오가는 패킷(packet, 정보전송의 단위)을 중간에서 빼내 대상자의 컴퓨터와 똑같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패킷감청은 위헌성 논란이 크다. 검색이나 이메일, 메신저 대화뿐 아니라 쇼핑, 파일전송 등 사용자가 구동하는 모든 내역을 들여다본다. 더구나 피의자와 같은 회선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정보까지 열람된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이다.
안전을 위해서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들을 찾아내야 한다.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 오히려 위험을 잉태하며 안전을 위협한다면, 범인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자행되었던 고문처럼 단지 이성으로 극복해야 할 적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박성철 / 변호사
2014.10.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