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01)
☆율곡(栗谷) 이이(李珥), 동기(童妓)
술집 무하향(無何鄕)을 나온 김삿갓은 구월산(九月山)을 향해 가면서
웬일인지 마음이 지극(至極)히 허전하였다.
그런 탓 인지 주위(周圍)의 산천(山川)과 경계(境界)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감흥(感興)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럴까. 호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다고 마음이 이토록 심란해진 것일까?)
돌아 보 건데 어제 보던 산천초목(山川草木)이 하룻밤 사이에 달라졌을 리가 만무(萬無)하다.산(山)도 어제 보던 그 산(山)이요, 물(水)도 어제 흐르던 그 물(水)이다.
어제만 해도 그처럼 아름다워 보이던 산천초목(山川草木)이었지만 오늘따라 아무런 감흥(感興)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오직 호주머니가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김삿갓은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심리적(心理的)으로 위축(縮)을 느낀
자신(自身)의 인격(人格)이 치사(恥事)스럽게 여겨져 견딜 수 없었다
.(아, 김삿갓이라는 자가 이렇게 치사(恥事)스러운 인간(人間)이던가? 그런
주제에 어떻게 방랑(放浪) 걸인(艺人)으로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겠다고
장담(壯談)하고 나섰더란 말인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앉아 한참을 궁리(窮理)하던 김삿갓은
마침내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섰다.
(그래! 무하향(無何鄕)을 떠나올 때 주모(酒母)에게 말을 한 것처럼,
전대(纏帶)에 들었던 돈은 내 돈이 아니었어!
돈 이란 본디, 돌고 도는 것 아니던가?
영원(永遠)한 내 것도 없고, 영원(永遠)한 남의 것도 아니지.)
김삿갓의 생각이 이에 이르자 마침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김삿갓이 황주(黃州). 봉산(鳳山). 신천(信川). 안악(安岳) 등(等)을 거쳐,
구월산(九月山)이 있는 은률(殷栗) 땅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계절(季節)은
어느새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었다.
황해도(黃海道)는 워낙 가는 곳마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하여
이를 두루 살펴보다 보니 걸음이 더뎠다.
주봉(主峯)을 이루는 명산(名山)이다 구월산(九月山)은 황해도(黃海治)의 중심.
그 주변에는 신천(川) 안악(安岳), 은률(殷栗), 문화(文化), 풍천(豊川),
송화(松禾), 장연(長淵), 장련(長連) 등등(等等). 많은 고을이 산재(散在)하여 있는 것만
보더라도 구월산九月山)이 황해도(黃海道)의 중심(中心)을 이루고 있는 산(山)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感酌)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사서(史書)에는 우리 배달의 민족(民族)의 시조(始祖)인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 등은
구월산(九月山)에서 태어나셨다는 설(說)도 전해 온다. (보탬 글 참조)
김삿갓은 구월(九月) 산성(山城)에 올라가 보았다.
성(城)의 형태(形態)와 구조(構造)가 여간 절묘(絶妙)하지 않다.
거석(巨石)으로 쌓아 올린 성(城)의 모양(模樣)은 커다란 배와 같은데,
둘레가 1만 5천 척에 높이가 15척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산성(山城)이었다.
성안에는 수목(樹木)이 울창(鬱蒼)하고, 여러 갈래의 물이 성 밖으로 흘러나갈 때는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서 거창(巨創)한 폭포(瀑布)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장관(壯觀)이 아닐 수 없다. 단풍(丹楓)이 무성(茂盛)한 산길을 걸어 성안으로 들어와 보니,
구월산(九月山) 상상봉(上上峯)이 아득한 하늘가에 높이 솟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산꼭대기에는 단군(檀君) 시대(時代)의 천제단(天祭檀)도 있었다.
김삿갓은 다행(多幸)히 구월산(九月山)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季節), 가을철에 찾아왔기 때문에 실감(實感) 나는 구월산(九月山)의 절경(絶景)을 감상(鑑賞)할 수 있었다.
황해도(黃海道) 땅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해주(海州)를 구경하지 않을 수 없어,
이번에는 발길을 해주(海州) 쪽으로 돌렸다. 해주(海州) 고을에 발을 들여놓자,
무엇보다도 김삿갓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거유(巨儒) 이율곡(李栗谷)과 동기(童妓)
유지(柳枝)와의 연정(戀情) 설화(說話)였다.
이율곡(李栗谷)이 말년(末年)에 황해(黃海) 감사(監司)로 와 있을 때,
유지(柳枝)라는 동기(童妓)를 사랑한 일이 있었다.
유지(柳枝)는 열세 살밖에 안 되는 동기(童妓)였지만,
그녀 역시 율곡(栗谷)을 진심(眞心)으로 존경(尊敬)하고 사모(思慕)하였다.
그러나
율곡(栗谷)은 몸이 몹시 쇠약(弱)했고, 유지(柳枝)의 나이가 너무 어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하면서도 몸은 범하지 않았다. 사랑하면서도 범하지 못할 형편이었으니,
율곡(栗谷)의 심정(心情)은 어떠했을 것인가?
율곡(栗谷)이 유지(柳枝)를 두고 읊은 시(詩)에서 그간의 심정(心情)을 족히 가름할 수 있다.
弱質差低首 (약질수저수)
◎ 어린 몸 수줍은 듯 고개 수그려
秋波不肯回 (추파불긍회)
◎ 추파를 보내도 받아들이지 못하네
空間波濤曲 (공문파도곡)
○ 마음은 부질없이 설레건만
未夢雲雨臺 (미몽운우대)
○ 운우의 정은 풀지 못했네.
爾長名應植 (이장명응단)
○ 너는 자라서 이름을 떨칠 것이나
吾衰闔己閉 (오쇠합기폐)
◎ 나는 너무도 늙어 사내가 아니로다
國香無定主 (국향무정주)
○ 미인에게는 정한 임자가 없는 법
零落可憐哉 (영락가련재)
◎ 장래에 영락할 것이 가련하구나
노쇠(老衰)한 선비와 앳된 동기(童妓)와의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애간장이 타는 일이었을 것이다.
율곡(栗谷)은 동기(童妓) 유지(柳枝)를 두고
이렇게도 한탄(恨歎)하기도 하였다.
天姿綽約 一仙兒 (천자작약 일선아)
○ 타고난 그 자태 선녀처럼 아름다워
十載相知 意能多 (십재상지 의능다)
○ 사귄 지 십 년에 사연도 많았는데
○ 서로 알고 지낸 십 년 사연도 많았는데
不是吾兒 腸木石 (불시오아 장목석)
○ 너도나도 목적은 아니건만
只緣衰弱 謝芬華 (지연쇠약 사분회)
○ 다만 몸이 쇠해 사양했을 뿐이로다.
이렇게 율곡(栗谷)이 유지(柳枝)를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자신(自身)의 몸이 약해
가까이하지 못한 것은 사내로서는 너무나도 지독한 비극이었던 것이었다.
▶ (보탬 글) ====================================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 구월산(九月山) 탄생 설(說)에 대하여
이를 팩트 (事實)로 받아들이기에는 확인할 점이 있다. 이 지역(地域)에 이런 전설(傳說)이나,
유물(遺物) 유적(遺蹟·遺跡)들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理由)는 황하(黃河) 중류(中流) 중심(中心)
아세아(亞細亞) 대륙(大陸)의 정세(政勢)가 내부적(內部的)으로 통일(統一)이 되어 안정(安定)될 때마다. 특히 한나라 무(武) 정기(政期)에 들면서 북방민족(北方民族)들에 대한 대대적(大大的)인 정벌(征伐)이 시작(始作)되었고, 그 정벌(征伐) 전쟁(戰爭)에서 쫓긴 무장세력(武裝勢力)인 북방민족(北方民族)들이 한민족[韓民族·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발생지(發生地)인
요하(遼河) 지역(地域)으로 넘어 들어오면서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주력(主力)들이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移動(4천리)]해 오게 되는데,
이때 만주(滿洲)를 거쳐 한반도(韓半島)의 중부지역(中部地域)인 황해도(黃海道) 일대(一帶)에 환인(桓因),환웅(桓雄), 단군(檀君)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조상(祖上)들의 주력(主力)이
정착(定着)하면서 그곳에 우리 민족(民族)의 독특(獨特)한 문화유적(文化遺蹟)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의 탄생설화(誕生說話)나 단군릉(檀君陵) 등(等) 유적(遺蹟·遺跡)들도 후손(後孫)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民族)의 시작(始作)과 관련(關聯)이 있다고 전해오는 구월산(九月山)에는 많은 거석(巨石) 문화유적(文化遺蹟)들이 널려 있어 앞으로도 발굴되고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