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세인과 육도윤회」는 인과의 이치를 철저히 천명한다. 어떤 이는 인과는 소승이어서 제창하려고 하지 않는다 말하는데, 이는 모두 쓸데없는 이야기를 일삼고 실제 공덕을 닦지 않는 사람이다. 여래께서 무상정각을 이루시고 중생이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모두 인과의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거늘 어떻게 홀로 그것을 소승이라고 보는가? 고덕께서는 (《주역》「계사전」에서)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함을 도라고 한다(一陰一陽之調道).”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도道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성명합일誠明合一」의 도가 아닌가? 「성誠」은 곧 「명덕明德」으로 우리들 마음 그대로 본래 갖추고 있는 불생불멸의 미묘한 성이고, 「성품의 덕(性德)」이다. 극복克復의 공부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성덕이 현현할 수 없는 까닭에 「음陰」이라 한다. 「명덕」에다 「명明」 한 자를 덧붙인 「명명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노력하여 삼가고 두려워하면서 계하여 삼가고 위태롭게 여겨 두려워하면서 노력 수지하는 공부로 곧 「덕을 닦음(修德)」이다. 수덕의 일이 현저한 까닭에 「양」이라 한다. 수덕의 공부가 절정에 이르면 성덕이 원만하게 드러난다.
「성명합일」은 곧 이른바 「명덕을 밝혀 지선에 머묾(明明德而止至善)」이다. 명덕을 밝히는 공부는 格. 지致. 성誠. 정正. 수修이고(눈앞에 드러나는 사물을 만나게 되면 격格을 사용하고, 몸이 응접할 때는 수修를 사용하고), 지선至善의 사업은 제齊. 치治. 평平이다(집에서는 제를 사용하며, 나라에서는 치를 사용하며, 천하에서는 평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명합일」 즉 명덕을 밝혀 지선에 머물러 제. 치. 평에까지 이름은 결코 공空에 기대어 이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저절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 존재한다. 왜 그것이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삼세인과와 육도윤회」이다. 사람이 비록 아무리 어리석을지라도 결코 흉사를 좋아하고 길사를 싫어하며, 재앙ㅇㄹ 다행으로 여기고 화를 즐겁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남겨진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현명한 사람은 반드시 더욱더 부지런히 수행하고, 못난 사람도 선을 행하기에 힘써야 한다.
자신을 격려하여 오래도록 지속하면 악업이 없어지고 지혜가 환히 드러나며, 잘못은 없고 성덕이 뚜렷할 것이다. 비록 과거에 못난 사람이었을지라도 지금은 덕이 많은 현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성명합일」의 이치를 알아서 자신의 수행에는 이미 갖추어져 있지만, 남을 가르침에는 인과규율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일체 사람 모두 가르치는 대로 봉행하기 어렵다. 「인과」와 「성명」 두 가지 법문을 결합하여야 비로소 성인이 천심에 순응하여 건립한 진리이고, 만세에 전해져 변하지 않는 대도이며, 또한 곧 자심自心에 본래 갖추고 있는 지혜와 법계에 두루 비추는 불광이다!
【역주】 우익대사께서는 《사서우익해四書蕅益解》를 저술하신 적이 있고, 감산대사께서는 《노자도덕경감산주老子道德經憨山注》를 저술하신 적이 있다. 역대불문의 대덕 중에는 늘 불가의 지고하고도 미묘한 이치로써 유교와 도교 양가의 경전을 원만하게 해석하였다. 이런 부류의 경전 해석방법은 천태종의 “절제된 한계를 넘어(법화경의 뜻으로 다른 경전의 뜻을 판정하여) 이야기한다.” 는 사상과 유사하다. 마음이 원만하면 법마다 모두 원만하고 증득한 자만이 비로소 원융무애할 수 있다.
우익대사, 인광대사 등 조사들께서 유교 성명誠明의 도, 심성의 이치를 대승 불학의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셨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결코 전통 유교학설이 이미 소승을 뛰어넘음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설령 불문의 대덕께서 절제된 한계를 넘어 이야기하면서 유교 심성에 관한 여러 학설 이론을 높은 경지로 제고하셨지만, 전통 유학자들이 모두 인가하였다고 결코 생각되지 않는다. 필경에는 원시 유교로부터 한. 당. 송. 명의 이학. 심학 등을 거쳐 발전한 것이 심법. 본체이 한 덩어리이다. 예로부터 그 단점은 옆에서 보면 산맥을 일루고 가까이서 보면 산봉우리이다. 한나라 유학 이후 각 시대별 유학은 모두 전석詮釋이 있고, 송대 이학과 명대 심학 사이에 그 내부에서도 매우 큰 분쟁이 있었다.
송나라 유학 이후 유학자들은 삼세인과와 육도윤회의 말씀에 대해 함부로 반박하였지만 불법에서 보면 모두 단멸견斷滅見을 견지한는 자들에 속한다. 이학과 심학은 심성의 학으로 마음의 본체와 본체론 등을 어떻게 든 완전하게 해석할 지라도 결과는 생명이 끝난 후 완전히 단멸하니, 분장하는 것이 아닌가? 서양철학계에서는 유학을 사변성이 작아 본체 및 본체론이 무엇인지 모두 세밀하게 변론을 전개하지 않는다고 평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주희. 양명 등의 대유학자는 불교교리를 연구하지 않음이 없었고 대승불교의 심성에 대한 여러 설을 참조하여 이학과 심학을 발명. 창조하였지만, 오히려 단멸견을 견지하였다.
단멸견 자체는 심체를 부정하고 본체론의 존재를 부정한다. 본체론은 세계의 본원, 만사만물이 생겨나는 근본을 가리킨다. 단멸견을 견지하면 이 “본체” 또한 사라진다고 인식하는데, 이 사라지게 되는 본체를 또한 어떻게 “본체론”의 본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육신 및 심성은 사라져 단멸하지만, 세계만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 세계의 본원은 또한 자기 심체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단멸견을 견지하는 유학이 마음의 본체를 원만히 해석하지 못하면 자연론. 우연론으로 들어서게 되니, 이렇게 화려한 유학의 전당이 그 기반마저도 모두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수신제가를 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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