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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유마사의 창건기
중국의 요동태수 김현삼의 딸 묘련은 타고난 천재 소녀로서 일찍이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생후 7일 만에 입춘주련을 알아보았고, 두 살 때부터 글을 배워 여섯 살에는 백가이도 즉, 모든 학문과 다른 종교까지 다 배웠으니 천재가 아니랴. 현삼은 나이 50세가 넘어서야 겨우 무남독녀의 현손을 얻었으니 묘련이 태어난지 100일 만에 그 어머니가 죽어 항상 외로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워낙 재주가 뛰어나고 예쁜 외동딸 묘련이 어떻게 재롱을 잘 피우든지 거기에 재미를 붙여 재혼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묘련의 나이 일 곱살 되던 해 어느 날 태수 현삼이 친구 진성주의 탈상에 가고자 하여 집을 떠나려고 하는데 묘련이 아버지에게 이르기를, “아버지 오늘 성주 댁에 가시거든 제례에 참예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에 사당(祠堂)뒤 곁에 당마루 일곱 번째 기왓장 밑에 진성주의 업신(業身)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꼭 찾아뵙고 오십시오.”
아버지 현삼은 딸의 이 같은 말을 생각하고 <오늘은 진짜 친구를 한번 만나보려나!)하고 부산한 걸음을 재촉하여 성주 집에 이르렀다. 정중하고 장엄한 장례의식은 끝이 나고 현삼은 평소의 깊은 정의를 술회하면서 "적어도 진성주는 극락세계는 몰라도 도솔왕생(兜率往生)은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평소 마음씨가 착하고 비단결같이 고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줄줄 알았고 간사한 오리(汚吏)들을 물리치고 명주로서 모든 백성의 존경과 신의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하고 추도사를 했다.
장례가 끝나고 많은 음식을 먹고 얼근히 취한 현삼은 딸 묘련이 생각나서 아무도 몰래 사당이 있는 뒤 곁에 담벼락 옆으로 다가가서 일곱 번째의 기와 장을 살며시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진성주의 혼신을 보고 도솔천궁의 즐거움이 얼마나 되던가 하고 물으려 하던 김현삼은 기절초풍, 들었던 기와 장을 그만 떨어뜨리고 혼비백산 도망쳤다.
묘련이 성주의 업 신이 있다는 그 기와 장 밑에는 옛날의 진성주가 아닌 일곱 또리를 틀고 있는 황구렁이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찬바람을 획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성주가 황구렁이가 되다니 -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도대체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고 생각하며 현삼은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묘련이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자, "너 이놈, 아버지에게 보여줄 것이 없어 하필이면 그런 짓이냐? 살아서 돌아 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죽을 뻔 했다."
"호호 아버지도 그까짓 것이 무엇이 무섭다고 하십니까? 아버지는 앞으로 더하실 터인데요."
"뭐라고, 내가 그 보다 더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진성주는 일 곱 고을 성주로서 마음씨가 곱고, 어질어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던 이름난 군주가 아닙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열 세군데 고을의 태수로서 임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고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사람들을 얼마나 죽였으며 백성들의 원성은 얼마나 높았습니까? 그러니 진성주는 일곱 또리를 한 황구렁이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열셋 또리를 하고도 큰 먹구렁이가 될 것인데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하십니까?" 묘련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하다.
"예끼 이놈아 악담 좀 작작해라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친다. 내가 열셋 또리를 튼 먹구렁이가 되다니 - 악담도 그런 악담이 어디 있단 말이냐?" 하며 아버지 현삼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무엇인가 죄책감에 떨고 있는 것이다. 묘련의 말은 틀림없는 말이다. 진성주는 일곱 성의 성주였지만 사람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착한 군주로 살아 왔어도 그렇게 되었는데 나는 사람 잡기를 피라미새끼 잡듯이 하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치부를 하였으니 그 인과는 너무도 당연한 것만 같다. 아버지 현삼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묘련을 방으로 불렀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하여 고을 태수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부귀공명을 누려서 사후에 먹구렁이의 과보를 받는 것 보다는 차라리 영화를 버리고 사람의 몸을 버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 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묘련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아버지 그것이 그렇게 무서우세요?"
"무섭지 않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그러시다면 소녀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하시겠습니까?"
"하구말구."
"구렁이만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고 참고 견디어 이기기만 한다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은 물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별의 고통이 없는 영원의 세계에 편히 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한번 저지른 일을 크게 후회하시지 마시고제가 하자는 대로만 하십시오."
"후회가 뭐냐, 그런 좋은 길만 있다면 돈이고 고을의 태수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소용없다. 어서 묘책이나 일러다오."
"좋습니다. 아버지 그러시다면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모든 재산을 오늘 저녁 안으로 저에게 양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알뜰살뜰 해서 모아놓은 금, 은, 보배와 논문서 밭문서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산을 묘련에게 양도해 주었다.
이튿날 멀고 가까운 친척과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거룩하게 잔치를 베풀고 그 자리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재산을 빈부 권 천을 망라하여 필요한대로 모두 나누어 주고 말았다. 집과 우마는 노비와 유모에게 주고 논과 받은 무산계급의 빈민들에게 주고 금, 은, 보배는 어려운 양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나누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묘련은 아버지를 모시고 길을 떠나니 한 나라의 고을 태수로서 부귀와 영화를 함께 누리던 김현삼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 말 그대로 단벌의 입은 옷밖에 없다. 다만 손에는 바가지 하나뿐이었다. 하루가고 이틀 가고 며칠을 걸었는지 현삼은 피로에 지치고 다리가 아파서 더 나아갈 기력이 없다. 산마루의 적은 동굴에서 잠시 은거를 정하고, 며칠을 쉬어 가기로 하였다. 아버지는 동굴 속에 누워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회고하고, 묘련은 마을로 내려가서 먹을 것을 벌어오니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며칠간을 쉬었는지 묘련이
"아버지 또 떠나갑시다."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어디로 가든지 저만 따라 오세요" 하고는 묘련은 길을 앞선다.
뱀이 싫기는 했지만 차라리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뱀의 몸을 받고 말것을- 하고 현삼은 지난 일을 후회도 해 보았다. 밝은 달이 비추는 어느날 현삼은 그의 딸과 함께 은빛이 찬란한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다. 조그마한 조각배를 타고 강을 건너 오는데, 배가 강 중류에 이르자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배를 몇 바퀴 팽개치더니 그만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묘련은 물 한 방울 발에 젖지 않고 물 위에 동동 떠 있지 않은가, 이 광경을 현삼은 자기 생명이 다급함을 느끼고 묘련을 부르며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묘련아 나 죽는다. 나 죽어"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는 미련이 있습니까?"
"미련이 무슨 미련이냐, 나에게는 미련도 애착도 아무것도 없다. 어서 나를 구해다오."
"아닙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직도 다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십시오."
그때 현삼이 달그림자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니 상투 끝에 딸 몰래 감추어 두었던 보석 하나가 유난히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 그것이 마장입니다. 그것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고 가엾은 백성들의 피와 눈물이 아닙니까? 그것을 아주 버리십시오."
그때 현삼은 참회의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 비상용으로 딸 몰래 간직한 값진 보물이었다. 현삼은 아까운 것도 잊고 그것을 머리에서 떼어 멀리 저 건너편으로 던져 버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 물속 깊이 가라앉았던 배가 가랑잎 같이 스스로 떠올라 현삼은 안심을 하고 무사히 도강을 하였던 것이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는 옛날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이제 아버지는 영원히 살았습니다. 죽음과 이별의 고통이 없는 영원 속에 편안히 안식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아주 걱정 마시고, 저를 따라 오십시오."정말 세상은 꿈만 같은 세상이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수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사해를 집어 삼킬 듯 기염을 토하는 왕성한 김현삼이 어린 딸의 구원을 청하게 되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생후 백일만에 어머니를 잃고도, 외로운 빛이 하나 없이 팽팽하게 자라온 딸, 나의 사랑과 신애의 전부였던 귀염둥이 딸 묘련이 이제 딸이 아닌 생명의 은인으로 구원의 스승이 된 것이다. 이제 그는 딸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신앙과 존경이 우러나게 되었다.
"묘련아 미안하다. 묘련아 고맙다. 이 어리석은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묘련의 뒤를 따라 피로와 고통을 다 잊어버리고 현삼은 이와 같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걸었다. 비록 나이는 들어 몸이 마르고 마음이 약해진다 하더라도 어디든지 자리를 정하고 앉기만 한다면 무엇을 해서라도 이 딸을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하면서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아버지와 딸은 몇날 며칠을 걸었는지 두 발이 다 부르터지고 신고 온 가죽신은 바닥이 나 발바닥이 돌에 부딪칠 무렵에야 겨우 그들이 편이 쉴 터전을 정하고 마음을 닦게 되었으니 그곳이 다름 아닌, 조선땅 가운데서도 저 남쪽의 깊은 산골짝, 멀리 다도해가 넘실거리는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이었다.
아버지는 날마다 싸리나무를 베어서 바구니 산퇴미를 만들고 딸 묘련은 그것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 먹을 것을 바꾸어 왔다. 한편 중국에서는 이 소문이 날로 퍼져 마침내 임금님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사랑하는 요동태수 현삼이 행방불명되다니, 나의 한쪽 팔이 떨어져 없어졌군."하고 심히 애통하면서 천왕은 사신을 보내서 그 사실을 확인한 뒤 각 고을에 어사를 파견하여 곳곳에 방을 붙이고, "태수의 거처를 알리는 자에게는 황은의 보를 내리리라."하였다.
그러나 이미 중국 땅을 멀리 떠난 현삼은 물 맑고 산 좋은 조선 땅에서 산퇴미 장사를 하는 현삼 인지라 누가 있어 감히 거처를 찾겠는가. 묘련의 나이 16세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전라도 광주 목사 이을영이 순천지구에 순방을 나왔다가 이 소문을 듣고 모후산을 찾아가 보았다. 과연 그는 조선 사람이 아닌 중국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손과 발은 부르터 모지라졌고, 검게 타버린 얼굴은 마치 시골 노인의 풍상을 연상케 했다. 넓은 이마에 아래로 새겨진 이당과 허옇게 희여 버린 수염만이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알릴뿐 태수는 말이 없다. 굳게 닫힌, 그러나 그 눈만은 빛나고 있었다. 밝고 깊은 안광이 누구도 그를 바로보지 못하게 하였다. 이을영목사는 말이 없는 현삼거사의 늠름한 태도를 돌아보고 <무엇인가 도와주고 싶었다.>그리하여 이을영 목사는 돌아오자마자 쌀과 소금과 옷가지를 주선하여 보내고 다시 영을 내려 그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오륙동의 집을 지어주고, 또 평생을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사산과 불량답을 마련해주었다.
절은 날로 번창해 갔다. 찾아오는 신도도 늘어나고 개중에는 수행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스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끄러운 곳을 피하여 조용한 곳에 찾아온 이들에게 많은 공부 인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 해인사에서 찾아온 젊은 스님 한 분을 법당 부전으로 정하고 염불과 참선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스님은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생각이 있다는 격으로 공부보다는 묘련이만 따라 다닌다. 묘련이하는 일만 한사코 같이 하려고 하고, 묘련의 말이면 앞질러 행하였다. 그래서 묘련은 글을 써서 그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고 하였으나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현삼거사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금생에 지은 모든 죄업을 딸 묘련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염불하여 사바의 고해를 떠나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로 왕생했다.
묘련은 아버지의 다비를 하고 난 후, 사찰에는 고요하고 적적하여 마치 빈집과도 같았다. 깊은 산, 넓은 도량에는 스님 한 분과 묘련이 뿐이며 산새들의 노래 소리 밖에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다. 이제 부전스님은 마음대로 꼬리를 쳐도 아무도 걸림이 없다. 비록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 뛰어난 묘련이지만 힘으로는 부전스님을 이길 수 없었다. 밤이 늦은 줄도 모르고 도량을 배회하던 부전스님의 들뜬 가슴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묘련은 참다못해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써서 스님의 문전에 갔다 놨다. "내 일찍부터 스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나, 우리는 생사의 근본을 끊고 불지(佛智)를 증득하여 고해 중생을 건지려고 발원한 남다른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 발원을 등지고 윤회의 강에 탐닉하는 것은 짐짓 불자로서의 바른 행위가 아닌 줄 아오나 스님께서 정히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아까워 드리지 못할 것이 없사오나, 내일 저녁 12시에 아래 마을 한천(寒泉)으로 나와 주십시오. 장차 뜻이 계합하면 부부의 연을 맺고 평생해로를 하겠사오니 오실 때는 꼭 잊지 마시고 고운 채(떡가루 치는채)하나만 가지고 오십시오." 하는 편지의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받아본 스님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평생소원을 다 이룬 것 같이 온통 세상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어찌나 즐겁고 마음이 반가운지 금방 부처님 앞에 나아가 절을 백 팔배를 했다. 그 쓸쓸하고 차디찬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싱글벙글 봄볕에 활짝 핀 매화처럼 밝고 빛나는 얼굴로 마음이 온통 환희 초조 희열에 싸여 있었다. 이튿날 아침 부전스님은 목욕물을 데워 그동안 흐렸던 때를 말끔히 씻어 없애고 저녁에 가지고 나갈 고운채도 찾아서 깨끗이 닦아놓았다.
이윽고 밤이 돌아왔다. 약속 시간 두 시간 전부터 나와 기다리는 부전스님의 마음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멀리서 사뿐사뿐 묘련이가 걸어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인계의 사람은 아닌 성 싶었다. 어쩌면 그는 오늘을 위해서 살아온 것만 같다. 만일 그가 오늘부터 내 아내가 된다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묘련에게 바치리라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새 묘련은 스님의 앞에 당도하였다.
"일찍 나오셨군요. 이렇게 밤길을 멀리 나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대답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채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묘련은 깨끗하게 닦아진 채 바퀴를 보았다.
"부전스님, 저 물 속에 둥근 달이 보이시지요. 저 달을 이 채로 건저 올리는 것입니다. 스님이 달을 건지고 제가 건지지 못해도 좋고, 둘이 다 건지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 건지지 못하고 제가 건지게 된다면 우리들의 약속은 그만입니다. 어떻습니까? 스님은 그렇게 약속하시겠습니까?"
스님이 생각해 보니 묘련이 아무리 하늘의 별을 따는 재주를 가졌다 할지라도 물속의 달을 어찌 건지겠는가.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스님께서 먼저 건저 보십시오." 하였다. 이렇게 약속을 한 뒤, 스님이 먼저 건지기 시작했다. 열 번 스무 번 아무리 채로서 물속의 달을 건져보아도 달은커녕 달그림자도 올라오지 않았다. "저는 안 되겠습니다. 낭자가 건져 보십시오."
그러나 속으로는 <전들 별수가 있겠는가!) 하면서 채를 묘련에게 넘겨주었다. 묘련은 채를 들고 물속 깊이 들여다보이는 둥근 달을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두 손을 힘껏 들어 채 바퀴 양쪽을 꼭 붙들고 물속 깊이 채를 넣었다가 떠 올린다. 둥글둥글한 달이 채 바퀴 안에 담겨 있지 않은가! 참으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묘련은 다시 흘러내리는 달을 높이 들어부었다. 다시 뜨고 또 다시 떠서 다시 부으니 어이없어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 광경을 본 부전스님은 경이와 비굴 속에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스님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는 그러한 생각은 꿈에라도 가지지 마십시오." 이렇게 한마디 남기고 묘련은 산사로 올라가고 말았다. 어느 날 묘련은 부전스님을 법당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법당에 모셔진 탱화를 내려서 마룻바닥에 깔고는
"스님을 보니 하도 안타까워 몸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스님도 옷을 벗으세요."하였다.
"그것은 부처님의 탱화가 아닙니까? 아무리 사랑이 좋기로 부처님 탱화를 깔고 어찌 되겠습니까?" "-악- 하고는 크게 할(喝)을 하고는 너는 탱화의 부처님은 무섭고 살아있는 부처님은 모르느냐?" 묘련이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며 깔고 있던 탱화를 밖으로 내던지니
처염상정진수령의 연꽃이 초연하여 화과동시(花果同時) 꽃과 열매가 함께 피네. 라고 하여 그 탱화는 연꽃으로 변했다.
스님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내다보니 묘련은 붉은 연꽃을 타고 멀리 서쪽 하늘로 사라지는데 자세히 보니 묘련은 백의관세음보살(白衣觀世音菩薩)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음심에 빠져 업(業)을 벗어나지 못하고 더 큰 업을 지을 번 하였구려." 하고는 크게 깨닫고 부전스님은 묘련이가 전생에 함께 정진하던 도반으로서 누구든지 먼저 성불하는 사람이 깨우쳐 주기로 약속하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은 평소에도 염불과 참선으로 정진하였고, 보시 지계로서 수행했던 것이다.
묘련은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가 다시 전생의 도반과 인연 있는 그의 부모를 제도하기 위해 환생하여 마침내 그들을 제도한 다음 다시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된 것이다. 부전스님은 그 후 도반의 은혜를 갚기 위해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법을 홍포하고 또 그 절의 이름을 묘련의 아버지 호를 따서 유마사(維摩寺)라 하고, 묘련이 정진하던 방을 묘련당(妙蓮堂)이라 했으며, 함께 달을 건져 올린 한천(寒泉)을 제월천(濟月泉)이라 하였던 것이다. 현재도 그 우물은 전남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母后山) 유마사에 있는데, 그 우물이 보통 우물보다는 훨씬 큰 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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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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