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연말 회식 살아남기 프로젝트
당뇨병이 약간 있는 김대리는 연말이 겁이 납니다. 연말에는 부서 회식과 거래처 회식과 개인적인 송년회가 겹쳐 거의 하루 걸러 술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10개월간 잘 유지해온 혈당이 꼭 이 맘 때가 되면 출렁이므로 항상 걱정입니다. 김 대리는 그래서 이번 연말은 어떻게든 혈당을 올리지 않으면서 회식을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어차피 술은 칼로리이므로 술을 마신 만큼 되도록 다른 음식을 줄이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 되도록 밥과 안주를 먹지 않고, 술이 빨리 흡수되지 말라고 물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부으므로 아침 출근 때 헬스클럽에 들려 뜀뛰기를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많이 흘립니다. 어제 마신 술의 칼로리를 상쇄하기 위해 아침도 건너 뜁니다. 아참…오늘이 마침 당뇨병 클리닉을 가는 날이므로 당뇨약도 어제 저녁까지 잘 먹습니다.
그리고 김대리는 응급실에 실려 왔습니다. 헬스 클럽에서 나온 후 얼마 있다 갑자기 가슴이 덜덜 떨리고 식은 땀이 주욱 나고 땅이 두 다리를 쏘옥 잡아 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는 고파 죽겠는데 힘이 없어 숟가락 들 힘은 커녕 서있지도 못해 쓰러졌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하고 응급실에 데리고 왔습니다. 응급실에 왔을 때 김대리의 혈당은 50mg/dl 였습니다. 이 사례는 가상의 일이지만 얼마든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김대리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마의 술 삼각편대 : 저혈당·탈수·저체온
술은 열량입니다. 술은 탄수화물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어 나온 산물로 에탄올이라고 합니다. 술도 음식이라 열량이 있는데 1gram당 7 칼로리로 탄수화물과 단백질보다는 높고 1gram당 9 칼로리인 지방보다는 낮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이 empty calorie(빈 칼로리)라고 하니까 술의 열량은 다른 영양소와 달리 살로 바뀌지 않는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 것은 어디까지나 오해이고 ‘빈 칼로리’의 원래 의미는 비타민이나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하나도 없는 단지 열량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그냥 칼로리 액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술을 오랫동안 많이 마시면 칼로리가 몸 안에 쌓이므로 살이 찌고 지방간이 되고 고지혈증이 생깁니다. 급기야는 당뇨병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건 술을 만성적으로 마실 때에 장시간에 걸쳐 생기는 합병증입니다. 그러나 술의 해악은 술을 마시면서부터 발생합니다. 이런 급성 반응이 건강에 더 좋지 않은데 특히 당뇨병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술과 저혈당
술을 마시면 혈당이 떨어집니다. 술은 탄수화물보다 더 칼로리가 높은데 술을 마시면 혈당이 떨어진다고 하니 믿지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술은 일시적으로 혈당을 낮춥니다. 두 가지의 기전이 있습니다.
1) 술이 몸에 들어가면 혈관을 확장시키는데 모든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선호도가 다르게 작용합니다. 췌장에는 두가지 조직이 있는데, 하나는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인슐린과 같이 당대사와 관계된 호르몬을 분비하는 부분입니다. 술을 마시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조직으로 피를 더 보내주어 인슐린을 더 많이 분비시킵니다. 인슐린이 많이 나오면 당연히 혈당이 떨어집니다. 그 결과 술 먹는 중간에 배가 고프게 됩니다(술이 위장을 빨리 비우게 해서도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뭔가를 더 먹게 됩니다. 이 때는 그래도 의식이 있으니 뭔가를 더 먹음으로써 저혈당을 극복합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잠자는 도중에 생깁니다.
2) 우리가 잠자는 사이에도 뇌는 활동하고 몸은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당 말고도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합니다. 밤사이에는 뱃살의 지방이 혈액으로 나와 에너지를 공급해줍니다. 문제는 뇌입니다. 뇌는 지방을 에너지로 쓰지 못하고 당만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혈액내의 당으로는 뇌가 단지 2시간 30분 정도만 버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다가 2시간 30분 마다 일어나서 밥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잠자는 동안 당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축전지같은 장치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간입니다. 밤에는 간에서 당을 새로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밤내 무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간에서 당을 만드는 작용이 차단됩니다. 그러니 술을 많이 마시면 밤내 당이 낮아져 있어 악몽에 시달리고 잠도 깊이 못자고 아침에 머리가 아프고 피곤하게 됩니다. 즉 저혈당 증세가 오는 겁니다. 정상인도 술을 많이 마시면 아침에 저혈당 증세에 시달립니다.
3) 당뇨병 환자는 저혈당을 극복하는 능력이 정상인에 비해 부족합니다. 게다가 당뇨약 까지 복용하고 있으면 술이 그 당뇨약의 효과를 극대화 시킵니다. 그래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혈당은 더 떨어지고 회복되지 못합니다.
술과 탈수
술도 물로 되어 있는데 술을 마신다고 어떻게 탈수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실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해는 안가도 실제로 술을 마시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목이 타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게 탈수 증상입니다. 술은 이뇨제입니다. 술을 마시면 소변이 잘 나옵니다. 신장에 돌이 있는 분들은 의사의 권고에 따라 맥주를 많이 마셔본 적도 있을 겁니다. 맥주를 많이 마셔 소변이 많이 나오면 그 덕에 작은 돌이 몸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갑니다. 술은 우리 몸에서 분해될 때 가수분해가 됩니다. 즉 물을 필요로 합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마실 수록 우리 몸의 물은 더 고갈됩니다.
술과 저체온증
유럽의 어느 산악 지방에서는 눈속에서 등산객이 조난당하면 구조견을 먼저 보내 찾게 하는데 그 개의 목거리에 자그마한 철제 술통을 달아 준다고 합니다. 등산객은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일단 술을 한잔 마셔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아마 그 등산객은 당장은 좋겠지만 만약 후발 구조대가 늦게 온다면 본격적인 저체온증으로 위험해질 것 입니다. 술은 체온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술은 피부로 가는 혈관을 확장시켜 피부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몸이 따뜻해 지는 느낌이 들고 얼굴도 벌겋게 달아 오릅니다. 그러나 그 결과, 몸의 열이 밖으로 발산되므로 실제로 생존에 중요한 몸의 중심온도(core temperature)는 약 2도 가량 떨어집니다. 술을 마시다 보면 몸이 갑자기 추워지는 느낌을 아실 겁니다. 그래서 술 마시고 덥다고 이불을 제대로 안덮고 자면 오히려 감기가 걸리고 몸을 버리게 됩니다.
김대리로 부터 얻은 교훈
김대리는 혈당이 올라가는 것을 막고 몸이 붓는 걸 피하기 위해
밥과 안주를 먹지 않았고
다음날 운동을 해서 그나마 있는 당을 떨어 뜨렸고
아침밥을 건너 뛰어서 당을 공급해 주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술과 함께 당뇨약을 복용했습니다.
물도 마시지 않았으며
오히려 운동과 사우나로 그나마 있는 몸의 물을 소모했습니다.
그 결과 김대리는 극심한 저혈당, 탈수로 하마터면 위험한 지경에 빠질 뻔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뇨병 환자 김대리를 연말 회식 전투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의 선언과 주변의 배려입니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술을 그렇게 권할 이유는 없습니다. 김대리는 본인이 술을 마시면 안되는 당뇨병 환자임을 선언하고 주변 사람들은 남의 건강에 해로운 술을 권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어차피 술을 마셔야 한다면 아무리 주의해서 마셔도 며칠간 혈당은 올라갑니다. 도수에 관계없이 대체로 술 한잔은(소주 한잔, 위스키 한잔, 와인 한잔, 맥주 한잔) 80~120칼로리입니다. 3잔이면 밥 한공기이고 6잔이면 한끼 식사 끝입니다. 술을 마시면 어차피 당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가급적 칼로리를 줄이기 위해 깡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는데 제일 위험합니다. 어차피 마실 술이라면 술 마시기 전에 밥과 야채를 먼저 먹고 술을 마실 때는 되도록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 그리고 화장실을 자주 가도 좋으니 술의 양 보다 더 많이 물을 마셔야 합니다. 술을 마시면서 간간히 단백질과 야채 안주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날, 혈당 걱정으로 아침을 굶으면 안됩니다. 밤내 힘든 간을 쉬게 해주고 가사 상태에 있는 뇌를 깨워주어야 하므로 탄수화물(밥)을 먹어야 합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장이 부어 기름기가 흡수가 않되므로 단백질, 탄수화물, 섬유질, 물로 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해장국입니다. 웬만하면 드셔야 합니다.
술마시고 몸이 게운하지 않다고 싸우나나 운동으로 땀을 빼면 안됩니다. 온탕에 잠시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요. 부어도 좋으니 물을 더 많이 드세요. 역설적으로 부종은 물을 더 많이 마시면 오히려 해소됩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혈당은 좀 오르고 몸무게는 늘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혈당이라는 최악 보다는 조금 더 나은 차악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