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게 뭐야?” 나도, 아내도 깜짝 놀랐다. 화장실 세면대 안에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생물 하나가 붙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오륙 년 전, 늦가을 어느 날 저녁의 일이다. 첫 순간은 얼핏 지렁이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나는 불문곡직하고 종이에 그것을 싸 들고 뒤란 작은 텃밭에 방생했다. 그곳은 단풍 든 취나물, 부추, 상추 같은 먹거리들이 아직 있었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을, 이 정도 배려해 주는 것만도 잘하는 일이라 여겼다. 이 생명체와 우리의 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두세 해 더 보였는데, 그때마다 같은 방법으로 처리했다. 방생 횟수가 늘어나는 동안, 밤이면 싸늘해질 날씨가 마음에 걸렸다. 도시 한가운데이니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도 있다지만, 언감생심 그런 생각은 안 했다. 결국, ‘이것도 네가 엉뚱한 곳에 살러 들어와서 자초한 운명이야’라고 속말로 책임을 전가하곤 했었다.
이탠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그 사실도 까마득히 잊었다. 잊는다는 건 다른 만남일까. 지난 늦가을 느닷없이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오랜만의 재회다. 옛 학습효과 때문인지 이질감이 별로 들지 않았다. 밤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텐데, 전처럼 방생을 구실삼아 버린다면, 한 삶이 나 때문에 명을 단축할 것이 분명했다.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속 갈등으로 변했다.
아내에게 ‘우리 품에 온 생명이니 이번은 그냥 두고 보자’라고 말했다. 마음 모질지 못한 그녀는 동의해 주었다. 처음엔 밤에 거의 나왔으나, 시간이 갈수록 밤낮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처음 활동무대는 세면대였다. 물목 구멍에서 나와서 돌아다니거나 먹이활동을 하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세면대 구조상 그 속은 배수관과 이어진 깜깜한 작은 공간이다.
배수관 중간에 트랩이 있다. 손을 씻거나 세면하고 양치질할 때의 오물들이 들어가 일부가 걸리고, 나머지는 흘러 나가는 구조다. 녀석이 트랩을 생존의 터전으로 삼은 건 확실해 보였다. 사람이 조사, 연구한 생존 정보는 일단 찾지 않기로 했다.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연을 느끼고 즐기던 방식을 다시 맛보고 싶어서였다. 자주 만나 함께 하다 보면, 어떤 교감이라도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맞아. 이제야 이 연체동물이 살아내는 방법이 이해되었다. 유기물 먹거리가 있는 유일한 곳이 배수관 오물 트랩이므로. 우리 가족이 씻고 뱉은 때, 침, 가래, 잇새에 끼었던 음식물 조각 같은 것들을 비누나 세제, 치약이 묻은 상태로 먹으며 살아내는 생명이다.
때로는 배가 고팠는지, 세면대 위 비누통 밑에 흘러내린 비눗물을 먹는 광경도 보았다. 다행히 중성 비누여서 망정이지 산성이나 알칼리성 비누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광경을 보는 마음이 짠했다. 이렇게 겨울이 가는 동안, 녀석은 벽타일 사이 줄눈을 따라 기어가며 먹이활동을 하는 것같이 보인 적도 여러 번이다. 먼지를 먹어 무기물이라도 섭취했을까.
그뿐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행동에 제약받지 않는 것 같았다. 거울에 기어오르며 화장하는 듯도 보였고, 바닥 사방을 다니는 모습은 군 당직 사관의 내무사열 같기도 했다. 어떨 땐 바닥과 벽이 자기 산책로거나, 관광지로 보는 것 같았다. 이때쯤 내 느낌은, 녀석이 우리와 보이지 않는 생체 파동으로 교감을 나눈다 싶기도 했다. 우리가 결코 자신을 해치지 않을 믿음이라도 얻었던 걸까.
어느 날, 녀석은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많이 데려오면 어쩌나’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담담히 지켜보았다. 친구는 녀석보다 조금 작았다. 주로 혼자 활동했지만, 어떨 때는 둘이 같이 나와서 서로 만나는 것도 보았다. 애석하게도 친구는 한 달 정도 후엔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건지, 먹거리가 없는 곳이 싫어 떠났는지 아니면, 서로 다투다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더 놀라운 일이 늦봄에 일어났다. 반년을 함께 살았던 녀석이 안 보여 궁금한 지 열흘 정도 지난 아침이었다. 볼일을 보며 책을 읽고 있는데, 오른편 벽타일 사이 줄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쳐다보니 갓 깨어난 녀석의 새끼였다. ‘신생 민달팽이’는 난생처음이다. 어릴 때 냇가에서 놀며 보았던 송사리 새끼가 타일에 붙었나 싶기도 했다. 갓 태어난 생명은 뭐든 귀하듯, 어버이를 볼 때와는 차원 다른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 알고 싶어서 비로소, 웹에서 ‘민달팽이’를 검색해 보았다. 특징적인 것은, 자웅동체이며 야행성이고, 습한 곳에 살며 아가미 대신 폐로 호흡하고, 초여름에 산란한다. 약 한 해 동안 다 성숙하며, 이듬해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러니 고작 만 한 해 정도 사는 생물이었다. 지구촌 모든 생명은 번식 후 사망한다. 생존 기간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알을 낳고 바로 죽는 민달팽이라니, 살신성인하는 생명체였다. 녀석은 서럽고도, 거룩한 또 하나의 생태계 표본이었다.
우리 집에서 민달팽이 녀석들을 만난 것은, 21세기 들어 지구 생태환경의 급속한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갈수록 더 가슴에 와닿는 지구촌 기후변화의 가속화 현상을 저 연체동물이 본능으로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하여, 무엇에 쫓기듯 1층인 우리 집 화장실의 어떤 곳으로 들어와 겨울나기를 하며 번식을 꾀했을 게 아닌가. 만일 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이번에도 예전처럼 방생했더라면, 녀석의 생은 당대에 끝나고 말았을 터다.
한 유튜버 방송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구’란 가상 시나리오 프로그램을 보았다. 요약하면, 지구에서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생태계는 인간 문명의 산물을 시나브로 원 자연으로 되돌리며 진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지구상에 인간이 만든 농장, 도시, 공장, 시설 등 모든 인조물이 허물어져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지구는 다시 생물 다양성이 회복, 발전되며 균형을 유지하고 환경은 쾌적해질 것이다.
그렇다. 어떤 연으로 우리 집 세면기에 스스로 터 잡은 민달팽이는, 온갖 역경 속에 한 생을 살아내며 우리와 교감 나누고 또, 대를 잇고 갔다. 우리도 점증하는 기후변화 시대를, 저 연약한 연체동물 민달팽이와의 연을 거울삼아 꿋꿋이 살아내야 하리….
- <수필미학> 2025. 봄호 발표 -
첫댓글 보니선생님, 이 글 정말 따뜻해요. 수필미학에 실린 거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해필리 선생님..
가로수 벚나무에 꽃망울이 곧 터질 것 같아요.
건강, 건필하시기 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