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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 열무김치 / 김순(笋) 초여름이 되니 김치 담그기에 바쁘다. 오이소박이, 얼가리 배추김치, 열무김치…. 주부의 덕성이 음식솜씨로 드러난다면, 김치 맛은 주부의 덕성을 가늠하는 눈금이라고 할만하다. 나는 김치 가운데에서도 열무김치에만 온 정성을 쏟는 편이다. 식성이 까다로운 식구들이지만 열무김치 하나면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투정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 친정어머니께서는 분꽃이 피기 시작하면 콩밭으로 나가셨다. 콩밭고랑이에 듬성듬성 나 있는 콩밭열무를 뽑아다가 소금에 절여 놓고는 가마솥에 삶은 누르스름한 보리쌀 물을 두 세 대접정도 퍼서 식히셨다. 그리고는 텃밭에 매달린 풋고추 몇 개를 따다가 손끝으로 툭툭 잘라서 넣고 김치를 버무리셨다. 익을만하면 샘물에 띄워 놓는다. 점심 때가 되면 온 가족이 두레반상에 모여 앉아 꽁보리밥에 보리쌀로 담근 보리고추장을 넣고 비벼서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매콤한 콩밭 열무김치 맛은 한국만이 가지는 소박(素朴)한 체온(體溫)이 아닐까? 그저 얼얼한 우리 여인들의 시집살이 맛, 아니면 주부들의 상큼한 마음씨라고나 할까? 요즘 들어서 열무김치 담그고 익히는 솜씨가 늘다 보니, 까다로운 식구들의 밥수저가 김치보시기로 모이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흐믓해진다. 열무김치 맛깔에서도 으뜸이 되는 것은 새콤한 맛이다. 그 맛을 내기 위해서는 담그는 정성보다도 익히는 데에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 너무 익어도 맛이 가고, 덜 익히면 풋내가 난다. 정성들여서 익힌 열무김치 맛은 한국 여인만 아는 비의(悲意)가 숨어 있다. 신맛도 아니고, 어느 과일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 맛, 거기에는 한국 여인들의 콧날 시린 뒤안길이 엿 보인다. 옛날에는 “여자로 태어나면 바느질 솜씨하고 음식 솜씨로 고삐를 꿰어야 시집가서 봇짐 싸지 않는다”고, 큰애기때부터 여자는 반짇고리, 솥뚜껑하고 씨름을 해야 했다. 기성복이 흔하고 싸다 보니, 요새는 돈만 주면 얼마든지 마음에 맞는 옷을 사 입을 수 있고, 별의 별 반찬도 다 나와 있지만, 음식만큼은 주부의 손에서 놓지를 않는다. 두 고삐 다 풀 수 있지만, 이것저것 다 놓고 나면 한 집안 식구들을 감싸 줄 치마폭을 벗기는 셈이 되니, 음식 만드는 한 고삐는 주부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벗겨 낼 수 없는 것이다. 열무김치의 그 맛 속에는 몇 년 전 가랑비 내리던 날의 씁쓸한 기억이 담겨 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지도 3개월이 지났지만, 녀석의 걱정은 꿈속에서도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는 아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산울림의 노래 <지금 나보다도>를 돌리고 있었다. “어서 나를 두고 떠나려무나 뒤돌아보지 말고….”를 들으며 쓸쓸함을 달래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사람이 들어오면 얼굴이라도 돌려 보아야지. 이건 뭐 강아지만큼도 취급해 주지 않으니, 원….” 퉁명스럽게 던지는 말씨가 “예사롭지 않구나” 생각하며, 옷을 받아 옷장에 걸었다. 하지만 그 독기는 점점 얼굴로 벌겋게 닳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가 인형인 줄 알아요?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내 존재는 잊어버린 채, 헌신적으로 살아왔어요.” 그 동안 아이들 입시다 뭐다 하여 가슴에 묻었던 응어리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랬더니 한옥타브 올려서 “밥먹고 집에서 쓸데없는 노래나 돌리고 있어? 아이는 군대에 있는데….” 우리의 대화는 “당장 나가!”라는 폭언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이게 무슨 폭언이란 말인가? 아이는 자기 자식으로만 보인단 말인가?’ 내 가슴은 더 찢어지건만, 남의 심정은 전혀 이해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려왔다. 팔목을 붙들고 매달리는 작은 녀석을 뿌리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향방도 없이 자동차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행선지를 정해 놓지도 않은 채, 차는 시외를 벗어나서 어느 산자락을 끼고 돌았다. 가랑비 속에서 밭을 매는 아낙들의 모습에서 친정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리더니, 얼마쯤 더 가니, 파란 콩밭이 펼쳐지고, 길가에는 열무단을 벌여놓고 행인을 부르는 노점상들이 눈에 띄었다. 콩밭 옆에 열무가 있다면 이것은 분명 콩밭열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차를 세워 놓고 열무 두 단을 샀다. 차가 얼마쯤 달리고 있을 때였다. 콩밭열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나가더라도 식구들이 우선 먹을 김치나 담궈주고 나서자.’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점점 속도가 떨어졌다. 자존심 때문에 망설여지더니, 눈물바람으로 밭고랑에 들어 서시던 어머니의 모습, 행주치마 두르고 열무김치 담그시던 어머니의 모습들이 열무단을 들려서 나를 대문 앞까지 세우게 했다. 그러나 초인종을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열무단만 놓고 그냥 돌아설까 보다?’ 몇 번인가 손을 오르내리면서 망설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작은애의 눈망울이 아른거린다. 초인종을 누가 눌렀는지도 모른다. 천만 뜻 밖에도 남편이 나온다. 반사적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등 뒤에서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덮쳤다. “바보같이, 나가란다고 나가면 식구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하는 말소리에는 어디엔가 포근한 입김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을 나설 때처럼 또 한 번 콧날이 시큰해졌다. 앙드레. 지이드(A. Gide)의 일기에 보면, “행복은 대항의식 속에서는 태어나지 않는다. 행복은 협조의식 속에서만 자라나는 식물”이란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다. 콩밭열무김치 맛이 들었다 싶었는데, 큰아이가 “잠깐 외박 나왔다며”대문으로 들어선다. 반가운 마음으로 저녁상을 차리면서 나는 기어코 이슬방울 하나를 김치 국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때의 새콤한 그 맛이 지금도 열무김치에는 남아 있는지? 가끔 가다 한 번씩 김칫국물을 입에 물고 있으면 눈이 시려올 때가 있다. 여인의 치마폭이라는 게 좁은 듯 하면서도 이렇게 넓고 포근한 세계가 있는 것을…. 열무김치같이 새콤한 사연도 거기에 배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무김치를 먹으면서 나는 이따금 남편의 얼굴 표정을 읽어보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겨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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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도 10 여년 전에 쓴 수필입니다.
아, 사르르 침이 도는 콩밭 열무김치. 아무리 해봐도 옛날 엄마가 해주신 맛이 나지 않으니... 참으로 맛깔나게도 쓰셨습니다. 그 아들이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았으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네요. 잘 익은 열무김치 잘 먹고 갑니다.
시 공부에 빠져서 댓글 화답도 못해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어요.
감칠맛 나게 쓰신 두 편의 수필 잘 읽었습니다. 김순 님이 담근 열무김치------- 맛 보지 않아도 맛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예, 선생님 바쁘신데 발걸음을 하셨네요.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어요. 저는 마음으로 큰 절을 올리겠습니다.
김칫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김순 님이 떠오를 것입니다.
예, 민 선생님 늘 건강하시어요.
소연 김순씨의 열무김치를 맛있게 먹고갑니다. 열무김치는 콩밭에서뽑아와 담군열무로 담은김치가 익으면연하고 맛이잇지요.
예, 그 새콤한 맛 어머니의 손맛 입니다.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어요.
맛깔나는 수필 잘 읽었습니다. 김순님의 열무김치 맛 ...이제 식사할 때마다 생각날 것 같습니다.
여름엔 풀을 좀 쑤어넣고 담궈 드시어요.
보리쌀물이 있으면 좋은데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