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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원내대표직 사퇴를 발표하는 유승민 의원의 얼굴은 시종 무겁고 착잡해 보였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정계에 입문한지 16년만의 가장 큰 시련이다. 한때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인'이라는 비수같은 말까지 들었지만 그는 물러나면서까지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며 끝까지 대립각을 세웠다. 원칙을 중시하는 것은 부친의 영향인듯 하다.
그는 좋든 싫든 부친의 후광을 받았다. 부친은 법관출신 유수호 전 국회의원이다. 유 전의원은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법복을 벗었다. 그는 부산지검 부장판사 재임 시절 유신정권에 반한 판결을 한 뒤 1973년 3월 27일 판사 재임명에서 제외됐다. 유 전 의원의 당시 별명은 '말 안 듣는 판사'였다고 한다. 강골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진보성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TK에 정치적 뿌리를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유 전의원은 정계에 입문해 여당 간판으로 13대와 14대 총선때 대구 중구에서 잇따라 당선됐다. 특히 1993년 13대때 당선됐을때는 39억3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당시 국민당 소속의원중 재산신고 1위로 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유 의원은 재력을 갖춘 유력 정치인을 부친으로 둔 덕분에 어릴 적부터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를 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로 유학을 다녀왔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발탁돼 정치에 입문한 유 의원을 키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원조친박'이 되면서 보폭이 넓어졌다. 유 의원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구중구에서 잇따라 공천을 받은것도 이때문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부친의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은것 뿐 아니라 냉정해 보일만큼 깔끔한 성품과 친화력이 없는 대인관계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정치적 소신도 뚜렸하다. 이때문에 충돌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당명을 빠꿀때 유 의원이 새누리라는 당명은 가치와 정체성이 없다며 강력히 비판해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불편하게 했다. 특히 유 의원은 현정부의 증세없는 복지에 일침을 가하면서 친박에서 점점 멀어졌으며 지난 2월 원내대표 선거때 친박의 대표주자로 나섰던 이정연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비박의 핵심인사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지난 6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거부권 행사 과정에서 유의원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면서 유의원의 거취가 뉴스의 초점이 됐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면서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사퇴를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그러나 유의원은 한동안 버티기에 들어갔고 정국은 소용돌이 쳤다.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의 갈등과 대립도 심화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의원은 아예 "다음 타깃은 김무성 대표"라며 당내 분란을 부채질했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 '배신의 정치' 발언이후 13일만에 원내대표 사퇴를 발표했다. 친박계의 거센 사퇴 요구에도 오랜 기간 사퇴 선언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내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처럼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사퇴로 그는 일단 큰 상처를 입었다. 친박계로부턴 당·청 갈등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터밭인 TK 여론 형성에도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배신의 정치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내년 총선의 공천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는 더 큰 정치적인 자산을 얻었다. 청와대와 대립하고 소신있는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남김으로써 위상과 체급이 높아진 것이다. 심지어 '혁신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정권재창출을 희망하는 여권의 대표주자중 하나로 올라설 수도 있는 기반을 닦았다. 반면 박 대통령은 당장은 눈엣 가시가 사라졌지만 불통과 독선에 포용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이기고도 진게임을 하게됐다.
그는 원내대표시절 '고통받는 국민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겠다'말한바 있다. 더 큰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시련이 그를 키울지 여부는 그의 다음 행보와 여론의 향방에 달렸다.
출처/네이버 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