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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유난히 끌리는 곳이 있다. 바로 남녘의 섬진강이다. 3월 초순에는 고로쇠, 중순에는 매화, 하순에는 산수유…. 물론 벚꽃 화사하게 피어나는 4월에도 그 인기가 식지 않는다. 이 계절에 섬진강의 별미인 벚굴을 맛보고 오를 수 있는 산으로는 광양 백운산이 가장 적당하다. 무엇보다 산불조심 강조기간에도 심각한 건조주의보가 아니라면 진틀마을 코스와 백운사 코스가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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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산 정상 주변의 바위지대. 위험한 곳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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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회귀산행으로 적당한 진틀마을 코스
백운산 등산로는 대부분 교통 접근이 수월한 옥룡면 동곡리, 즉 동곡계곡을 중심으로 나 있다. 이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백운사~상백운암~백운산 왕복코스(3시간)다. 이는 산행 시작 지점인 백운사가 해발 800m 정도에 위치해 가장 짧은 시간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 듯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산행의 묘미는 좀 떨어진다.
요즘에는 진틀마을에서 오르는 코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진틀마을~병암계곡~진틀삼거리~신선대~정상~약수~진틀삼거리~병암계곡~진틀마을 원점회귀코스(4시간)를 많이 이용한다. 만약 차량이 지원된다면 진틀마을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백운사로 하산하는 진틀마을~병암계곡~진틀삼거리~신선대~정상~상백운암~백운사 코스(4시간)를 밟아도 괜찮다.
동곡계곡 진틀마을 입구. 슈퍼마켓인 진틀휴게소 맞은편 공용주차장(무료)에 차를 대고 큰길을 따라 50m 정도 올라가면 병암계곡에 걸린 다리 논실1교가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진틀마을 코스 들머리다.
뾰족하게 솟은 정상을 바라보며 콘크리트 포장길을 500m 정도 오르면 계곡 직전의 갈림길. 계곡을 따르는 왼편은 병암폭포를 거쳐 신선대로 곧장 이어지고, 계곡을 건너는 오른편 길은 병암마을의 병암산장 민박집을 거쳐 신선대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진틀마을 코스로 오르는 등산인들은 대부분 오른쪽 길을 택한다.
이렇게 콘크리트 다리를 건넌 뒤 산길을 한 굽이 돌아 오르면 이내 마지막 민가인 병암산장 민박집이 눈에 띈다. 이곳까지 차량으로 올라올 수는 있지만 민박집 앞마당에는 ‘손님 외 절대 주차금지’라는 경고 팻말이 붙어 있다. 그렇다 해도 마당이 제법 넓은 편이라 차량 통행이 적은 평일이라면 이곳에 승용차를 주차해도 크게 눈치 보이지 않을 듯하다.
민박집을 왼쪽에 끼고 아름드리 산수유나무 사이로 오르면 고로쇠나무를 잔뜩 심어 놓은 비탈밭이다. 이어 길가에 그늘을 드리운 멋들어진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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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틀코스 입구의 소나무.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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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가 마셨다는 백운산 고로쇠물
길은 너덜지대라 울퉁불퉁하지만 호젓하고 좋다. 고로쇠물로 유명한 산답게 고로쇠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인공적으로 심은 게 아니라 자생하는 나무들이다. 필자가 찾았을 때는 마침 고로쇠물이 나오는 철. 그 탓에 고로쇠나무들은 대부분 자신의 몸피에 따라 한 개에서 서너 개까지 채취 구멍을 안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온 고로쇠물은 가늘고 긴 호스를 타고 바로 집앞까지 흘러간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고로쇠나무 하나 하나에서 고로쇠물을 받았고 그걸 모아 지게로 지고 내려왔는데, 그때에 비하면 고로쇠물 채취 작업이 무척 수월하다.
우리나라는 남해의 거제도부터 강원도 인제까지 전국 웬만한 곳에서 고로쇠물이 채취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지만, 이곳 백운산 고로쇠물의 역사는 유래가 아주 깊다.
백운산 고로쇠물에는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인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날 도선국사가 이곳 백운산에서 수개월 동안 가부좌를 틀고 도를 닦은 후 일어서려고 하는데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았다. 도선국사는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붙들었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나무의 상처 부분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도선국사는 그 물을 받아 마셨다. 그러자 그때까지만 해도 굳어 있던 관절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무릎을 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나무를 ‘뼈에 이로운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로 불렀는데, 나중에 고로쇠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로쇠나무뿐만이 아니다. 산길에는 고욤나무·때죽나무·산딸나무·다릅나무·서어나무·비목나무·노각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광양시청에서 매달아놓은 이름표를 보며 공부도 덤으로 할 수 있어 좋다.
사실 백운산은 자연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생태계의 보고다. 산속에는 백운란·백운쇠물푸레·백운배·백운기름나무·나도승마·털노박덩굴 등 희귀식물도 여러 종이 분포하고 있다. 백운산은 이렇듯 한라산은 물론이요, 지리산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식생이 다양하고 보존도 잘 되어 있다.
산길은 계속 계곡을 오른편으로 끼고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쯤 뒤 계곡가의 진틀삼거리에 도착한다. 이정표에는 ‘←신선대 1.1km, →정상 1.3km’라고 적혀 있다. 이 계곡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는 게 좋다. 오른편 지능선 중간쯤에 샘터가 하나 있지만 평소에는 수량이 적고 관리가 잘 되지 않은 탓인지 식수로는 조금 꺼려진다.
왼편 지능선보다 오른편 지능선 산길이 정상까지 조금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오른편 지능선으로 오르는 등산인이 조금 더 많다. 필자는 신선대를 먼저 들르는 왼편 지능선을 따랐다.
잠깐 가파른 구간을 지나 능선 마루로 올라서면 백운산 주릉과 왼편으로 도솔봉(또아리봉·1,127m), 등주리봉(1,123m)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쪽동백나무 가지 너머로 힘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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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백운산 정상의 바위지대를 올라오고 있는 등산인들. (우)백운산은 고로쇠 수액으로 유명한 산답게 고로쇠나무가 눈에 많이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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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 섬진강이 장하게 다가오는 정상
산길에는 층층나무·비목나무·때죽나무·신갈나무·철쭉·생강나무가 봄볕을 받고 있고, 발치에는 조릿대가 푸르다. 갈라진 바위를 지나 구상나무를 구경하면 곧 눈앞에 집채만한 바윗덩이가 길을 막는다. 신선대다. 드디어 호남정맥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이 신선대 삼거리에서 왼편 길은 한재, 오른편 길은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신선대에서 오른편 남동쪽으로 보니 백운산 정상인 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미소 짓는다. 주능선 산길 양편에는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상은 바위지대다. 백운산은 호남정맥의 맹주인 광주의 무등산(1,187m)보다 조금 더 높은 호남정맥 최고봉이다. 명성에 어울리게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최고다. 저 멀리 서쪽으로는 장수 땅에서부터 힘차게 달려온 호남정맥 마루금이 산첩첩이고, 발밑에는 동곡계곡이 깊다.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백두대간의 정기를 갈무리한 지리산 줄기의 장엄한 산 물결. 호남정맥의 끄트머리에서 백두대간의 끄트머리를 감상하는 맛은 참으로 뿌듯하다. 그래서 정상에 올라온 등산인들은 하나같이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그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호남정맥의 꼬리가 남해로 잦아들고, 그 바다에 몸을 섞는 섬진강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낙동강·금강 등 이 땅의 수많은 강이 모두 제각각의 하구를 갖고 있지만, 섬진강의 마지막 모습만큼 아름다운 강도 많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섬진강의 아름다운 마지막 뒷모습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산이 바로 백운산이다.
이름으로 따진다면 백운산·백운봉·백운대 등 우리나라에 ‘백운(白雲)’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어림잡아 수십 개가 넘는다. 이 근사한 이름을 가진 산 중에서 광양의 백운산이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을 정상에 올라와 보면 알 수 있다. 그 누구라도 황홀한 지리산과 섬진강 풍광에 하산하기 싫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따라서 단 일 분이라도 백운산 정상에 더 머물고 싶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간식이나 식사 시간을 갖도록 산행일정을 짜는 게 좋다.
아쉬운 하산길. 정상에서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200~300m 만에 만난 갈림길 삼거리. 여기서 진틀마을로 가려면 오른편 길로 내려가야 한다. 철쭉나무 군락이 배웅하는 산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마음은 참 넉넉하다. 산행 후 기다리고 있을 망덕포구의 벚굴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아마도 정상에서 조망했던 지리산과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이 가슴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산행 후 백운산자연휴양림 근처에 있는 옥룡사지 구경도 빼놓지 말자. 휴양림 입구 2km 전에 있는 옥룡사지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집. 현재 불에 타 절터만 남았으나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북돋우려고 심었다는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7ha 면적에 울창한 동백숲을 이루고 있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이면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 보전이 잘 돼 있다. 4월이 되면 떨어진 동백꽃이 옥룡사지 주변의 땅을 온통 붉게 물들여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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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산행 코스
광양 백운산의 대표적인 코스는 모두 4개다. △제1코스(동동마을~백운산수련장~억불봉~정상~진틀마을)는 16km, 6시간30분 소요. △제2코스(선동마을~백운사~상백운암~정상~진틀마을)는 12km, 5시간 소요. △제3코스(진틀마을~삼거리~정상~신선대~삼거리~진틀마을)는 10km, 4시간 소요. △제4코스(논실마을~한재~정상~삼거리~진틀마을)는 11km, 4시간30분 소요.
봄·가을 산불조심 강조기간에는 백운산도 관리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가장 인기 있는 진틀코스는 산불경방기간에도 건조주의보가 발생하지 않으면 개방한다. 한편 광양시는 4월 중순 이후 진틀코스 등산로를 보수작업할 예정인데, 등산로 출입을 막지는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광양시청 산림자원과 정민희 061-797-3423
>>숙식
산행 시작 지점인 진틀마을에 병암산방민박(061-762-6781), 차도리하우스(061-762-3065), 백운령가든(061-762-4366)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이 외에도 동곡리 일원에는 민속가든(061-762-7678), 청송민박식당(061-762-0922), 캐빈하우스민박(061-762―7133), 다우리펜션(061-762-6012), 해뜨는집(061-763-5827) 등 민박집에서부터 세련된 펜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숙박업소가 있다. 민박집은 대부분 토종닭·흑염소 요리를 겸하는 음식점이 많다.
백운산 자연휴양림(061-763-8615)에는 산막 14동, 오토캠프장 19개소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산막이나 캠프장 예약은 인터넷(www.gwangyang.go.kr)으로만 가능하다.
>>교통
자가 운전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대전·통영고속도로)→진주 분기점→남해고속도로→광양 나들목→광양읍→옥룡면→백운산 /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광양 나들목→광양읍→옥룡면→백운산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서울→광양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매일 1시간 간격으로 13회(06:30~18:00) 운행. 일반 21,500원, 우등 32,100원. 5시간10분 소요.
광주→광양 종합터미널(ARS 062-360-8114)에서 매일 30분 간격 수시(06:35~20:50) 운행. 요금 6,000원, 1시간10분 소요.
부산→광양 서부사상터미널(051-322-8301~2)에서 매일 17회(07:20~21:40) 운행. 요금 1,100원. 2시간40분 소요.
대구→광양 서부정류장(053-656-2824~5)에서 매일 9회(07:05~19:00) 운행. 요금 12,000원, 2시간30분 소요.
광양→백운산 광양버스터미널에서 옥룡면 답곡리까지 하루 15회 시내버스 운행. 논실 마을까지는 하루 4회 운행.
※광양시청 문화홍보담당관실 061-797-2721
/글·사진 민병준 르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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