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산(天寶山) 금오동(金梧洞)과 정빈(靜嬪) 민씨(閔氏)
詩人 李正訓 답사
<천보산(天寶山)>
천보산(336.8m)은 경기도 의정부시 자금동, 금오동, 양주시 회현동, 포천시 소흘읍에 걸쳐 있는 마치 초승달과 같은 모양의
분화구를 연상시키는 능선이 있는 산이다.
일방적으로 지도상에는 천보산이라 표기되어 있어 그리 알고 있으나 갈립산(葛立산)이 제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천보산이라는 이름은 양주시 회천의 회암사지 뒷산으로 어야고개 북쪽에 위치한 봉우리를 말하기도 하는데,
어떻든 천보산은 걷기 좋은 육산으로 비록 높이는 낮으나 능선의 길이가 아주 길고 등산로 좌우로 펼쳐지는 경치는 경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기도 하며 아래의 보루성으로도 유명하다.
<① 천보산 보루성 (天寶山堡壘城)>
경기도 의정부시 자일동(自逸洞)과 양주시 만송리(晩松里) 경계에 있는 보루성(堡壘城)이다.
화룡골 분지 인근에 있는 보루성(堡壘城)으로, 둘레는 약 88m이며 긴 타원형 모양이었다.
부분적으로 성의 돌이 노출되어 있으나 대부분 무너진 상태이다. 성벽의 높이는 약 3m 정도로 내부는 평탄하다.
내부의 중앙에는 군용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었으며 지금은 송전탑이 세워져 있어 그 원형을 알 수 없다.
나무 난간과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양주시 쪽의 전망이 훤하다. 출토 유물로는 회청색 경질의 토기와 회색 연질의
항아리 형태 토기 조각, 회백색으로 제조된 연질의 기와 조각 등이 있다.
<금오동 (金梧洞)>
경기도 의정부시에 속한 동이다. 조선시대 한양부 양주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시북면 금곡리(金谷里)·
상서오리(上西梧里)· 중서오리(中西梧里)· 하서오리(下西梧里)를 합하여 시둔면 금오리가 되었다.
1938년 시둔면이 양주면으로 개칭되었고, 1942년 양주면이 의정부읍으로 승격하였다.
1963년에는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하였으며, 1964년 의정부시 금오동으로 개칭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자금동에서 관할한다. 금오동은 포천에 살았던 병조판서 약봉 서성이 서울을 왕래할 때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당하였으므로 서쪽 마을에 호랑이와 늑대같이 욕심이 많고 인정이 없는 사람들이 산다고 하여
서호랑리(西虎郞里)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변하여 서오리(西梧里)로 되었고 다시 상서오리· 중서오리· 하서오리로 나뉘었다가
합쳐져 금오리가 되었다. 한편 논 뜰에 있던 바위가 장마가 져도 잠기지 않고 물에 떠 있었다 하여 부석동(浮石洞)이라고도 하였다.
옛 지명에 금오리,·탑고개,·사묵골,·참나무모퉁이,·진천들,·오목골,·천보산,·치마바위,·청룡굴· 샘말,·독두소,·정주당터,·공주샘,·
노구메골,·무정골,·거북말 등이 있다.
금오리는 조선 선조의 제7자인 인성군이 낙향하여 살았던 곳이며, 탑고개는 탑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이 포천 현감으로 있을 때 포천에서 양주목으로 가는 길을 신설하면서 생긴 고개라고 전한다.
사묵골은 계곡의 모래가 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천보산은 보우국사(普愚國師)가 창건한 천보사(天寶寺)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주당 터는 이개윤(李漑胤)의 딸로 청나라 구왕(九王)과 결혼하였다가 환국하여 불운한 말년을 보냈던
의순공주(義順公主)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터이며, 정주당(定州堂)이라고도 한다.
문화유적에는 조선 선조(宣祖)의 후궁인 정빈민씨 묘를 비롯하여 선조의 아들인 인성군 묘, 손자 해원군 묘, 증손 화릉군·
화창군· 화춘군 묘,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 묘 등이 있다.
<1.정빈민씨 묘(靜嬪閔氏)>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산31-2번지에 있는 정빈 민씨의 묘는 성모병원 뒤편 거성아파트 앞길로 올라 체육시설이 있는
광장을 거쳐 약수터를 끼고 콘크리트 포장길과 나무계단 길을 오르다가 왼편으로 돌면 간이 철문과 함께 나타난다.
소개하는 묘 중 가장 멀고 가장 높다.
정빈 민씨는 조선 선조의 후궁이며, 인성군의 생모이다. 14세에 간택되어 입궁하였고, 특히 예절과 덕행이 뛰어나 선조도
반드시 갓을 쓰고 민씨를 대하였다고 한다. 소생으로는 인성군 공, 인흥군 영과 정인· 정선· 정근 옹주 등 2남 3녀를 두었다.
묘는 지름 6m, 높이 2m로 담이 둘러져 있고 묘 하단에는 호석을 설치하였다. 묘 앞 가운데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대가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 뒷면에 새겨진 글씨로 보아 1679년(숙종 5)에 묘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2.인성군 묘(仁城君, 1588~1628)>
인성군의 묘는 경기 의정부시 금오동 산 23-1에 있고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3호이다.
정빈 민씨 묘로 가는 도중에 체육시설이 있는 광장에서 왼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나타난다.
선조의 제7자인 인성군은 호가 백인당(百忍堂). 이름 공(珙). 시호 효민(孝愍). 어머니는 정빈(靜嬪) 민씨(閔氏).
1599년(선조 32년) 인성군에 봉해지고 사옹원(司饔院)·종부시(宗簿寺)의 도제조(都提調)와 종친부(宗親府)에 재직하면서
관기를 확립하였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위를 주장, 이로 인하여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으로 이귀(李貴) 등에 의해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왕의 불허로 무사했다. 이듬해 이괄의 난 때 적당(賊黨)에 가담했다 하여
간성(杆城)에 유배, 이어 원주(原州)로 이배되었다가 1626년 어머니의 중병으로 풀려나왔다. 1628년 유효립(柳孝立)이
대북(大北)의 잔당을 규합, 모반을 기도할 때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진도(珍島)에 안치되었다가 죽었다.
1637년 복관되었다.
<3.해원군 묘(海原君,1614~1663)>
묘는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金梧洞) 산 21에 있으며 인성군 문중 관리소 경내 왼편 초입에 있으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해원군 이건(李健)은 선조의 제7자인 인성군의 셋째 아들로 광해군 6년(1614년)에 출생하였다.
맏형 해평군의 폐질로 습작하여 종자가 되었다. 인성군 배소에서 시봉하였고 부친의 하세 후, 신원되어 현록서작을 받았다.
49세를 일기로 하세했는데, 시호는 충효이며, 유고
"규창집" 3권이 적상사고에 있었다. 부인 "풍산심씨"와 합장한 묘 주위에는 곡담을 둘렀고, 묘 하단부에는 호석을 설치했으며,
묘 앞 중앙에는 묘갈비와 상석, 향로대를 그 좌우에는 각각 석인, 망주석,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해원군이 하세한지 약 50년이 지난 뒤인 숙종 38년(1712)에 건립된 것이다. 묘의 직경은 6.2m, 높이는 2.3m이다.
한편, 묘에 오르기 전 오른쪽 산기슭에 위치한 신도비는 묘비보다 17년 뒤인 영조 5년(1729)에 세운 것으로 대석위에 신석을
꽂고 비두에 객석을 얹고 있는 통식이다. 대석 측면에는 화문을, 상면에는 연화문을 장식했다. 옥개석은 하면에 서까래,
낙수면에는 골기와를 조각했으며 팔작지붕 양식을 표현하고 있다. 신도비의 실측지는 높이 2.19m, 폭 90cm, 두께 36cm이다
1628년(인조 6년) 인성군(仁城君)이 역모의 혐의로 대역처분을 받았을 때 두 형과 함께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637년(인조 15) 귀양에서 풀려났으며, 이 후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總府都總管)을 역임하였다.
1657년(효종 8)에 해원군(海原君)에 봉해졌다. 사치를 즐기지 않고 시와 그림에 능했다. 시호는 충효(忠孝)이다.
<4-1.화창군 묘 (花昌君, 1640~1686)>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이연(李沇)이다. 선조(宣祖)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해원군(海原君) 이건(李健)이다.
묘는 평화아파트 뒤의 인근 밭 바로 위에 있으며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金梧洞) 산 23번지에 있다.
군부인(郡夫人) 광산 노씨와의 합장묘이다. 묘의 인근에는 1738년(영조 14)에 건립된 묘비가 있다.
<4-2.화릉군 묘(花綾君, 1660~1733)>
묘는 조금 떨어진 금호초고 오른쪽 위인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金梧洞) 산 21에 있으며, 1734년(영조 10)에 건립된 묘비가
있다.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왕손으로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올랐으며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등의 관직을 지냈다.
아버지는 해원군(海原君) 이건(李健)이다. 정1품의 종친에게 주는 관계(官階)인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올랐으며,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효심이 깊어 효자 정문을 받았다.
<4-3.화춘군과 능창군 묘>
아직 답사치 못하여 다음으로 기약한다.
첫댓글 남사랑님!
메일로 송부가 안되어 카페에 올리니
사진과 함께 재편집하시고 본문은 삭제하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올려주신 자료 모두가 소중한 것이니
그대로 두고 참고토옥 하겠습니다
저는 한참을 푹잤는데 그새에 올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