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국보 제15호, 13c 고려시대) - 신라와 고려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는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국민대 김개천 교수 /btn]
건물이 작아서 '어떻게 저 안에 들어가서 예불을 봤을까?'
저 안에 들어가 예불을 보지 않았고, 탑을 정면으로 해서 마당에서 예불을 드리는 것이 고려시대 불교였다.
당시 법당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고, 귀족계급이나 특별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닥은 마루가 깔려 있지 않고, 그냥 전돌의 바닥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후 조선시대부터 마루바닥으로 되었다.



※자료보완 - 봉정사 극락전은 최고(最古)의 건물
극락전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됐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이다.
(1376년에 고쳐 지은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앞서 있다)
내부 바닥은 고식의 네모반듯하게 구운 전돌, 현대의 타일과 같은 기능의 전돌(벽돌)이 깔려 있어
고려시대 건축의 전형을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양식은 대개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동국대 교수 자현스님 /btn]
우리 옛날(임진왜란 이전)엔 법당에 신발을 신고 들어갔다 (입식문화였다)
지금도 중국 절 법당은 신발 신고 들어간다.
절하는 방식도 지금처럼 하는 것은 조선시대 후기(임진왜란 이후)이고
그 이전에는 절하는 방식도 중국과 비슷하였다. (신발 신고 들어가서..)
우리: 법당에 양말 신고 들어가야 함. 벗고 들어가면 결례 (맨발을 보이는 건 '음탕하다'는 의미가 있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방: 맨발이 예의 (평야지대. 흙이 부드러워. 무더위 - 맨발이 편해)
지금도 사원에 들어가려면 맨발로 들어가야 해.
- 맨발로 다니면 발과 발가락 사이에 흙이 묻어: 절 앞에 물이 있어서 씻고 들어가게
- 우리는 맨발 문화가 아니니까 다리로 넘어가게 하는 것
※ 절에는 다리를 건너 들어가게 함
속세를 벗어나 성스러운 곳(피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
'강을 건넌다 =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의미
옛날 중국에서는 강이 워낙 커서 건너려면 목숨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점괘에 '강을 건너면 이롭다': 모든 걸 확 바꾸라는 의미
--- 맨발 --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에서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것은 부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옛날에는 신발로 신분을 나타낼 수 있었기 때문인데 왕도 부처님께 경배를 드리러 갈 때는 신발을 벗음으로써 왕이라는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다. <bbs 스리랑카 캔디지방 불치사리 이운 축제 해설 中> / 왜 '의식주'라고 할까? 식의주가 아니고? 옛날 농경사회에서 먹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고 문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인데 옷으로 신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의식'(?) -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신분을 구분하는 사회 ㅎㅎ)
인도 특히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옛날에 신발은 주로 동물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물의 죽음으로 사원을 더럽히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catv 여행전문채널>
전설에 의하면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지 않는 사람은 수닭이 쫓아 다니면서 계속 쪼아댔다고 한다.
<치앙마이 도이수텝 사원 /catv>
※ 법당에 신발 벗고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이며, 그 이전엔 법당에 신발 신고 들어갔다. (지금 중국처럼) / 절하는 방식도 지금 같은 건 몇 백년 안 되었고, 옛날엔 요즘 중국사람들이나 아랍사람들처럼 약간 엉거주춤한 상태로 하였다. (엉덩이 높게 들고) <자현스님>
※ 고려시대 불교: 국가의 후원으로 존재하던 불교(지금은 민중불교) 조선 숭유억불이후 민중으로 내려가.
신도가 별로 필요 없었다(불사도 국책사업) 성덕대왕신종이나 팔만대장경에 신도이름 하나도 없어.
그래서 조선 억불에도 민중이 나서지 않았다. 민중불교였다면 아무리 국가도 백성 전체를 적으로 돌리진 못했을 것.
고려시대에는 귀족만 사찰출입 가능, 귀족도 여성은 대웅전 출입불가 <자현스님>
첫댓글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작년 언젠가 이런일이 있었답니다.
사시예불을 하고 있는데, 꽤 잘 차려 입은 신사 한 분이 부처님과 마주하는 정면 문으로, 구두를 신은 채 쓱 들어오시더니
서서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뚜벅 뚜벅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옆문으로 나가시는 겁니다.
첨에는 약간 생각이 없으신 분인가 했는데, 너무나 정중하게 부처님을 대하는 모습에 제지도 못하고.
얼른 찍은 놓은 발자욱을 따라 걸레질을 했습니다. 물론 다른 불자님들도 이해 못하는 눈으로 봤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분은 중국 쪽에서 오신 분이네요. ㅎ.
ㅎㅎ 그러셨군요, 제지하지 않고 조용히 걸레질하시는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
또 한 번은 범상찬으신 아주머니 한 분. 옷 색깔이 파스텔톤이고 키가 작으시고 색다른 배낭을 메고. 부처님 앞에서
한 참을 노래를 나즈막히 부르고 계시는데.. 신묘장구다라니 같았습니다.
티벳송으로 다라니 기도를 하시는 것으로 보였답니다. 국적을 떠나서 다라니가 통하는거에, 감동했답니다. ㅎ
감동.. 감동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제자 한 가족.. 고맙습니다 _()_
잘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