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으로 이사를 온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낯선 곳에 적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는 것 같다. 더구나 내 나이 이순을 넘긴 처지다 보니 모든 것이 마음 같지 않는 게 사실이다.
평촌은 소박하고 한적한 느낌에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분당은 규모도 넓고 클 뿐만 아니라 건물도 많고 가로수의 메타쉐카이어는 물론 공원의 울창하고 큰 나무들도 위압감을 들게 하고 낯 선 동네에 방문하러 온 이방인 같은 생각에 편의 시설도 잘 모르는데다가 교통도 알지 못하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버스는 대부분 광역 직행버스로 차비도 보통의 두 배가 되고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이 교통문제라 먼저 교통을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마을버스를 타고 서현역까지 가보기도 하고 주변의 정류장에 가서 차량번호와 행선지를 살펴보기도 하며 산행하는 날이나 외출을 할 때는 전철을 타기 위해서 미리 종이에 써가지고 가고자 하는 역명과 바꿔 타는 곳이며 방향을 메모하여 수시로 확인을 하고 때로는 봉사 요원에게 물어가며 서울 시내나 안양으로, 독립문으로, 마곡역까지 가기도 하고 주일 날 교회에 갈 때는 택시를 불러서 다니다 보니 평촌서도 그랬지만 분당에서도 단골을 정하여 주일 아침 7시30분에 집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니 편하고 좋기는 하지만 차비는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내 차를 운행하는 것보다는 차량에 대한 감가삼각과 기름 값에 세금 등을 생각하면 전체적인 비용은 절감이 된다며 새 차 사는 것을 적극 반대하는 자녀들 때문에 조금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분당에 온 며칠 후 안양에 갈 일이 있어서 알아보니 서현역 근처에서 시외버스가 안양으로 가는 것이 있어서 몇 사람에게 물어 보고 지정된 자리에서 기다리니 3333번 버스가 오는데 요금은 보통의 두 배가 되지만 자리가 없으면 손님을 태우지 않고 반드시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어서 편하고 고속도로로 가니까 시간도 얼마 안 걸려서 아주 편리하게 이용을 하게 되었고 전철은 시내로 나갈 때 신분당선을 타면 1호선에서 보던 시니어들이 가득하던 모습과는 달리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활기가 있어서 좋고 특히 집으로 올 때는 신사역에서 출발하는 관계로 빈 차가 들어오니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경로석은 자리가 비어있어서 여유롭게 전철을 타고 올수 있으니 빠르기도 하고 마음이 한결 산뜻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처음에는 차를 잘 못 타거나 정류장을 모르고 엉뚱한 곳에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타는 시행착오를 몇 번 겪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그런대로 원하는 곳을 실수하지 않고 차를 타고 찾아다닐 수 있으니 많이 편해진 것 같다.
그리고 노인들, 특히 나의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 병원인데 아직은 제대로 알지를 못하여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눈에 잘 띄지를 않아서 핸드폰으로 계속 검색을 하며 찾는 중에 먼저 혈압약 처방을 받기 위해서 내과를 찾아보니 주변에는 없는 것 같아서 무조건 서현역에 가서 이리저리 찾아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내과가 있어서 거기로 가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지었는데 평소에 먹던 약이 없어서 비슷한 약효가 있는 것으로 지어 와서 먹으며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 외에도 안과, 치과, 피부과, 이비인후과는 정기적으로 가야 하니 다시 계속해서 찾아보는 중에 마침 가까운 곳에 안과가 있어서 한 번 이용을 하였고 병원 문제는 별 이상이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아파트에 뜬 무지개
은행은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으로 주거래 은행이 국민은행인데 다행히 도보로 6~7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어서 너무 좋고 창구가 네 곳인 규모도 작은 것이 가족 같은 분위기라 편하게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벌써 유일한 남자 직원과는 얼굴을 익혀서 내가 가면 편의를 봐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 외에도 신한은행,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가까이 있으니 우선 마음이 편하고 좋다.
식당가는 이사하기 전날 집을 살펴보러 왔다가 한 번 이용을 하여 알게 되었고 평소에 외식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까운 상가 2층에 다양한 메뉴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벌써 몇 번 이용을 하였고 메뉴도 백반과 소머리국밥, 순대국에 추어탕도 있고 식당 여러 곳이 있어서 입맛 댕기는 대로 이용하면 될 것 같아서 좋다.
편의점도 조금만 발품을 팔면 몇 군데가 있고 파리바게뜨와 뚜레주르도 가까운 곳에 있어서 필요할 때 몇 번 이용을 하였고 120년 만의 더위로 힘들어 할 때 안식구가 빙수를 먹고 싶다고 하여 파리바게뜨에서 팥빙수를 벌써 여러 번 사 먹었는데 값도 괜찮고 맛은 더위를 달래기에 너무 잘 맞는 일품이라서 먹고 기분도 좋았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맘스터치는 마침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안식구의 요청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머지않은 곳에 있어서 길을 터놓았다.
집 근처 공원의 꽃무릇
야외 공연장
시내로 나갈 때 교통도 생각보다는 편리하고 좋은 편이다. 전철을 이용하면 몇 번 갈아타는 번거로움은 있고 시간은 좀 걸리지만 아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고 무엇보다 서현역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우리 집 앞에서 수시로 다니며 역 앞이 마지막 정류장이라 내려서 문만 열고 들어가면 바로 역이고 AK프라자를 끼고 있어서 쇼핑하기도 좋고 쉼터도 넉넉히 마련되어서 이용하기에 편리할 것 같다. 집에 올 때도 마찬가지로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항시 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 편하게 앉아서 올 수 있고 기다릴 필요도 없이 수시로 왕래를 하니 시간 절약도 되고 항상 앉아서 다니니 몸도 편하고 좋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중앙공원이 바로 아파트와 연결되어서 육교 하나를 건너기만 하면 되고 가을을 대표하는 꽃무릇(일명 상사화)이 만발한 공원은 내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하고 일전에 서대문의 안산으로 꽃무릇 보려 갔다가 실망을 한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 꽃무릇이 절정을 이루며 주변을 너무 잘 꾸며 놓아서 한 주에 한 번은 꼭 공원 걷기를 하면서 심신의 위로와 충전을 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지금도 세상 사람들에게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방랑시인이 있었다. 본명은 김병연. 경기도 양주의 양방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 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이였는데 집안 사정에 따라 강원도 산골로 가서 생활하던 중에 향시에 급제를 하였는데 당시 시제가 “김익순에 대하여 논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익순은 홍경래란 때 반란군에게 항복하고 협조하였다가 훗날 관군이 반란군을 제압하게 되므로 역적이 되어 참형을 당하고 김삿갓의 아버지 김안근은 멸문을 당한 집안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다가 화병으로 일찍 돌아갔으며 어머니는 세인의 눈을 피해 강원도 영월 심심산골로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마침 향시(鄕試)가 열리는 기회에 김병연이 응시하여 장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익순을 실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써서 당당하게 합격을 하였지만 후에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가 바로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듣게 되어 내 할아버지를 비난하였으니 부끄러워 하늘을 볼 수 없다 하여 삿갓을 쓰고 팔도를 유람하게 된 김삿갓은 가는 곳바다 재미난 일화를 만들어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재주를 발휘하곤 하였다. 특히 한 서당에 들러서 쓴 그의 시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房重皆尊物(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이요를 풀이하면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학생은 모두 열 명도 못되고 선생은 나와 보지도 않네. 라는 재미 있은 諷刺詩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유랑생활 중 전라도 화순에서 죽었지만 무덤은 어머니와 같이 살던 자신의 고향과 같은 강원도 하동면의 이름을 바꿔 지금의 김삿갓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유적과 전시관에는 김삿갓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므로 하여 그 일대가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영월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김삿갓은 비록 고향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꿈을 키웠던 고향 같은 곳,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옮겨 무덤을 만들어 사후에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공원에 외롭게 놀고 있는 토끼
동물은 모두 귀소본능이 있어서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귀소본능도 사라지고 만리타향에서 살다가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니 왠지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 가족은 멀리 호주로 가서 영주권을 받았으니 이제는 한국 사람이 아니고 흔히 말하는 해외동포가 된 것이다. 앞으로 나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평촌에 살던 곳도 그랬지만 지금 살고 있는 분당의 집이 선도지구로 지정되어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으니 몇 년 후가 될는지 모르지만 재건축을 위해 이사를 해야 하고 건축이 완공되면 내 뜻과는 달리 또 입주를 위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약간의 염려가 없지를 않다. 앞으로 분당에 언제까지 살게 될는지 모르지만 내 나이가 있으니 자주 옮겨 다니는 것보다 그냥 편안하게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판교에 가면 낙생중고등학교가 있다. 분당이 개발되기도 훨씬 전에 같이 근무하던 분이 낙생중고등학교로 옮겨 근무하던 시절에 그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전형적인 시골 학교였는데 지금은 분당이 생기고 판교가 개발되면서 아주 번화가의 중심에 명문학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 집과도 별로 멀지 않은 판교, 갑자기 눈부시게 발전하고 변한 분당과 판교가 바로 桑田碧海의 현장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터를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분당은 터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