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천황은 한국인이었다
2. 『산해경』

하 나라의 우왕禹王이 찬撰하였다는 『산해경』을 읽어보면 반역자는 치우가 아니라
헌원 즉 황제라 기술되어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산해경』은 사기 보다 훨씬 전의 역사서이고 보니 『산해경』의 기록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산해경』을 편찬한 우왕은 우리나라의 단군과 동시대인이다.
사마천은 한나라 때 인물이니 시대적으로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된다.
치우가 군사를 일으켜 황제를 토벌하였다.
이에 황제는 치우를 기주의 들에서 공격하였다.
치우는 풍백과 우사를 불러 크게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퍼붓게 하였다.
이에 황제는 天女를 불러 비를 멈추게 하고 마침내 치우를 살해하였다.
사마천 『『사기』에는 헌원 즉 황제가 풍백 우사를 시켜 치우를 토벌하였다고 했는데『산해경』에서는 도리어 치우가 풍백, 우사를 시켜 황제를 공격하였다고
기록하고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치우나 황제나 모두 동이족이었다. 그러니 중국의 상고사는 동이족의 역사인 셈인데 중국인들은
치우와 황제의 싸움을 마치 동이족과 한족의 싸움인 것처럼 꾸며서 황제를 자기네 시조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제도 치우와 같은 동이족이었다.
3. 『환단고기』

여기서 치우에 관한 우리나라 측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환단고기』가 있다.
치우는 다름이 아닌 14대 자오지慈烏支환웅으로 배달나라(환웅시대 우리나라
이름) 영토를 중국의 산동반도 이남에
있는 회대땅까지 넓힌 광개토대왕?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치우천황은 웅대한 뜻을 품고 여러 차례 천병天兵을 일으켜 중국의 회대지방을
점령하고 탁록의 들에서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
황제가 이긴 것이 아니라 치우가 이겼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치우가 황제에게 이겼는가.
치우는 전군을 81군으로 나누어 정돈하고 갈로산의 철광을 캐어 칼과 창과 갑옷, 그리고 활을 만들어 무장하고
연전연승 질풍과 같이 쳐들어갔다. 한 해에 무려 12 제후의 나라를 겸병하니 적의 시체가 들에 가득하였으며
사토四土의 백성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치우천황이 황제와 싸워 이길 수 있던 것은 그가 쇠로 만든 무기 즉 창과 칼 그리고 갑옷 덕분이었다.
거기다 활도 만들었다. 활은 오늘날의 미사일과 같은 신형무기로서 나무막대기와 돌팔매질로 덤비는 헌원의 군대를
제압했다. 총포가 나타나기 전에는 우리나라 활이 최대의 무기였고 우리나라 각궁이 세계 제일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국궁은 단군이 처음 만들었다 하여 단궁檀弓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단군 이전에 이미 치우환웅이 활을 만들어 중국을 정벌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한국인을
"가오리 방쇠"라 하면서 두려워하였고 아이가 울면 "저기 치우가 온다"고 하여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박성수/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 월간 중앙 2003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