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나 텔레비젼을 안듣고 안 보아서 그렇지 오늘 시월의 마지막날 분명히 오늘이면 몇번은 되뇌었을 이용의 잊혀진계절이
오늘을 대표했을 것이다.
세월의 빠름을 무엇 보다 많이 느끼게 되는 이즈음 우리도 오늘은 예배후에 일을 잊고 뒷산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제 햇사레님이 오셨고, 때맞추어 범양님과 무등실님도 오셨다.
오후세시가 넘은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드라이브겸 삼동산 할아버지도 뵐겸
가벼운 마음으로 삼동산을 올랐다.
해년마다 이 때쯤 이곳에 오를때면 배추밭에 허옇게 얼은 보기싫은 배추를 보아야 했을 때와는 달리
배추값이 비싼 올해는 한포기의 배추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은지 올해로 6년쯤 되었는데
나날이 늙어 가시고 더 여위어 가시는 것을 보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처음 할아버지를 만나고 아무도 없는 겨울날에 할아버지를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옛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화로불에 돼지고기를 넣고 찌게를 끓이던 할아버지
오늘도 방에 군불을 때고 계셧다.
요즘은 그래도 일회용 가스렌지를 쓰실 줄도 알게 되었다.
5년전쯤 할아버지를 뵈러 왔던 어느날의 우리부부모습이 어쩐지 낯설어 보인다.
아주 오랜세월이 지난 것만 같다.
이 사진을 빼서 가져다 드린적이 있는데 보고 또 보고 하셔서 사진이 다 닳을 지경이시다.
지난 추석에 목사님과 찾아 뵈었을 때 나무가 거의 없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었는데
오늘은 부엌 가득 나무를 해 놓으셨다.
아직 농사하러 오신 이웃분들이 남아 계셨다.
지붕 가득 널은 무시레기들이다 무우는 갑자기 찾아 온 추위에 얼어 버리고 시레기만 남아 있다.
마음 후한 옆집 아주머니께서 함께 온 분들에게 무우를 맛 보여 주셨다.
무우를 좋아 하신다는 햇사레님은 두개나 얻으셔서 통째 드시다 내 카메라에 딱 걸렸다.
능선에 나뭇잎은 어느새 다 떨어지고 삼동산을 울타리마냥 두른 나무들이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밭가에 남겨 둔 소나무가 멋지다고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어 두라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처음 만날 때 보다 많이 늙으셨지만 함께 삼동산 넓은 밭을 돌아 보러 나온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이곳을 잘 소개해 주신다.
일부러 함께 가신 분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사진으로 빼서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이다.
여럿을 보는 재미가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햇사레님과 우리부부도 사진을 찍어 둔다.
나는 너무 좋아서 눈을 감았지만 눈 감은 사진도 그런데로 괜찮다.
무심님도 이제 카메라에 익숙해 지셧다.
처음에는 잘 안찍었었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돌아 보는 삼동산의 올 가을은 아름답다.
추수가 끝나고 모두 출하한 빈밭~ 그리고 내년을 준비하여 벌써 밭갈이를 한 밭의 모습
가끔씩 남아 있는 불긋한 단풍들~
그리고 첩첩의 산들과 들락거리는 저녁태양~
우리는 모두 카메라 셧터를 누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빈밭을 바라보는 흐믓함을 함께 공유한다.
내 밭도 아닌 남의 밭에서~
지난여름 이곳에 가득찼던 끝도 없이 가득하던 배추들이다.
이러니 어찌 흐믓하지 않으리~
삼동산에는 내년을 준비하며 더 깊은 가을로 들어가고 있었다.
색색의 자작나무숲에선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할아버지는 집이 가까워 오자 얼른 다른 일을 보신다.
헤어짐을 무엇보다 힘들어 하시는 할아버지.
얼른 다른일을 하면서 헤어질 준비를 하심을 나는 알고 있다.
할아버지를 위로해 보지만 어느새 또 눈물을 흘리시고......
나는 또 기약없는 약속을 하며 할아버지와 이별을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산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뵐 수 있을지.....
할아버지 건강하셔야 해요~
산을 내려오다 보니 어느집에 군불 때는 연기가 포근히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오늘 함께 온 이들과 도시락을 싸 가지고 걸어서 함께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 뵙기로 했다.
산을 내려오니 땅거미가 내려 앉았다.
오늘은 어디가서 10월의 마지막밤을 축하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궁리를 하다가 모운동구판장에 전화를
드렸더니 올라 오라고 하신다.
마침 아들이 사다 준 오겹살이 있다고 하신다.
텃밭에 기른 쌈채가 고기 보다 더 맛있는 식탁이었다.
여기에 와서 이장님을 안 뵙고 가면 강원도에 와서 금자를 안 만나고 가는 반역행위와 맞먹는다고
이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흔쾌히 나오셨다.
영월에서 가장 많이 텔레비젼에 나온 남자중에 한 사람일 것이다.
저녁을 먹고 이장님이 댁으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밤길을 걸어 이장님댁으로 가는 모습이 꼭 어릴적에 밤마실을 다니던 때 같다.
그리고 오늘 시월의 마지막 밤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장님네 문을 들어 서노라면 이런 그림을 만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이장님이 총각적에 사모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이 동네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어떻게 해 보려고 노력하다가 나뭇꾼처럼 막차로 가야하는 선생님의 신발을 감추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집에 못가고 이곳에서 아직까지 함께 살고 계신다.
아직도 유치원 선생님을 하면서.....
이장님댁은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만명이 넘게 살았던 그시절에 당구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뒤에 수석을 넣어둔 수석장이 당구큐대를 넣어 두었던 장이라고.....
선녀선생님이 밤마실 온 우리들에게 과일과 차를 내 주셨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이면 어쩌면 이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될까 살기좋은 나라가 될까 우리마을이 어쩌면 잘 살까
그리고 정직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될까 그런 의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댁에 재미있는 소품이 있어 사진 찍어 보았다.
하나의 것으로 연결되어 멋진 작품이 된 이것은 놀랍게도 어떤 나무와 그 뿌리라고 한다.
작품 자채도 대단하지만 이것이 연결이 된 것도 대단하다.
그 뒷모습이다.
오늘의 수수께끼 이것은 무슨 나무로 만들었을까???
선녀 선생님이 사진에 안 찍힌 줄 알았더니 어느새 찍혔네~
밀골님 옆에 아이보리 가디건을 입으신 분이다.
2010년 10월의 마지막 날
나는 이렇게 아는이들과 보람된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졸지도 않고 잘 버티면서......
돌아오며 따져 보니 햇사레님 내외와는 작년에도 시월에 마지막밤을 같이 보냈는데
무얼하며 지냈는지 찾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