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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스키는 최근 7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하면서 롯데의 상승세에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
-한국 음식에 잘 적응하나. 김치나 매운 음식은 어떤가.
▶한국 음식은 대부분 좋아한다. 피클(오이장아찌)만 빼고는 다 좋아한다. 김치도 종류가 아주 다양하든데 배추김치는 별로지만 나머지 김치는 다 좋아한다. 회도 좋아하고 매운 음식도 잘 먹는다.
-결혼은 했는지.
▶롯데와 계약하기 이틀 전에 결혼했다.
-정말? 그게 언젠가.
▶작년 12월 19일에 결혼했고, 21일에 롯데 자이언츠와 계약했다. 주말에 결혼했는데 목요일인가까지 협상을 했다. 그래서 에이전트에게 3일 동안은 결혼에만 집중하게 계약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했었다. (웃음)
-부인이 선생님이라고 들었다.
▶린지는 초등학교 4학년 선생님이다. 이제 곧 방학이라 다시 올 것이다. 봄방학 때 2주 동안 왔었는데 그 때는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에서 독감이 걸렸고, 도착해서는 택시 문에 손을 찌어서 고생했고, 날씨도 정말 춥고 계속 비가 오고했다. 이번에 오면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발렌시아라고 LA 북쪽에 있는 도시의 초등학교다. 우리 집이 거기 있다.
-아, 매직 마운틴 공원이 있는 곳. 그쪽에 한국 교민들도 꽤 산다.
▶안 그래도 와이프 학급에 한국 학생도 4명이나 있다고 하더라.
-언제 처음 야구를 시작했나.
▶정말 어렸을 때부터 길거리에서 야구 놀이를 하고 놀았다. 그리고 5살 때부터 리틀리그에서 야구를 했고, 11살 때부터 투수를 했다. 그리고 고교에 가서 내가 다른 애들보다 야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플로리다 대학에 야구 장학생으로 간 것인가.
▶사실 야구 장학금은 아주 적었다. 대부분 공부로 장학금을 받았다. 미국에서 딱 한 명에게 주는 로터리 클럽 장학금을 받았으니까 공부도 꽤 했다. (웃음) 그리고 4학년 때는 바뀐 감독과 잘 안 맞아서 야구를 그만두기도 했었다. 듀크 대학에서도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학비가 너무 비싸고 장학금이 적어서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점이 4.7인가 그랬다. 모두 A+였으니까.
-공부를 아주 잘 했던 모양이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이시다. 그래서 우리 집은 늘 교육이 우선이었다. 야구는 둘째고 공부와 숙제가 항상 먼저였다. 그래서 나도 늘 공부를 꽤 잘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 선수가 된 과정을 말해 달라.
▶플로리다 대학을 다니다가 3학년 마치고 자이언츠에 드래프트 됐다. 전공은 경영학과 부전공은 교육학을 했다. 3학년 때까지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거의 다 마쳤지만 조금 모자랐고, 나중에 학점을 다 채워 졸업장을 받았다.
-프로로 가서 운동을 하면서 나머지 학점을 어떻게 이수했나.
▶학점이 많이 남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플로리다 대학은 인터넷으로 수업을 방영한다. 그래서 나는 동영상으로 수업을 받고 시험 날에만 비행기를 타고 가서 시험을 보고 다시 팀으로 돌아갔다. 두 번의 가을 학기에 그렇게 해서 모든 과정을 마쳤다.
-형제는 있나. 혹시 운동을 하나.
▶형이 하나 있는데 전자 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다. 야구나 스포츠와는 거리다 멀다. 물론 어려서는 함께 야구 놀이를 많이 했다.
-커림 가르시아와 또 다른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커림은 정말 나를 많이 도와줬다. 그리고 동료들은 더 이상 잘해주기 힘들 정도로 내게 늘 힘을 준다. 시즌 초 내가 부진했을 때도 혹시 득점을 적게 내고 하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료도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했는데 내게 미안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만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식당 같은 데를 가도 미리 내 음식에서는 피클을 빼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내가 오이장아찌를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동료들 모두 알고 있다. 내가 처음 배운 한국말 중의 하나가 바로 ‘피클 빼주세요’였다. (웃음)
그리고 커림은 내가 처음 도착하자마자 서면과 해운대 등 부산의 여러 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과 내게 필요한 곳들을 모두 알려줬다. 커림은 나를 가족 식사에도 초대하고 큰 도움을 준다. 정말 좋은 친구다.
-미국에서 별명이 ‘다우’라고 하는데 무슨 연유인가.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이름을 한글로 사도스키라고 쓰는데 원래는 사다우스키가 정확한 발음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마이너리그에서 누군가 나를 ‘다우’라고 짧게 부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의 애칭이 됐다.
-사도스키라면 폴란드계인가.
▶내 조부모들이 아주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세 분은 폴란드에서, 그리고 한 분은 러시아에서 이민을 가셨다. 그러니까 나는 폴란드계 3세다.
-이름 때문에 한국에서는 다른 별명이 있다, 그 의미를 아나.
▶아, 키스도사. 들어서 알고 있다.(웃음)
-실제로 잘 하느냐는 짓궂은 질문도 있는데.
▶하하, 잘 모르겠다, 노코멘트다. (공교롭게도 그의 미들네임은 Keith, 키쓰라고 발음합니다.)
마이너 시절 뇌수술을 딛고 작년에 자이언츠에서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던 사도스키는 항상 모자 안에 보호대를 쓰고 마운드에 오릅니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
-작년에 자이언츠에서 뛰었다. 대단한 투수진을 보유했는데 린스컴, 지토, 케인 등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그들이 정말 뛰어난 투수들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게 가장 인상적인 투수는 바로 랜디 존슨이었다. 랜디가 프로 생활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한 날, 부상당한 순간에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 그는 오른쪽 타석에 서는데 커브볼에 헛스윙을 했는데 어깨에서 뻑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음 이닝에 마운드에 올랐는데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 순간 더그아웃에는 적막이 돌았다. 나도 어쩌면 그것이 랜디의 마지막 선발 등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고 소름이 돋았다. 워렌 스판, 샌디 코팩스와 함께 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가 랜디 존슨 아닌가. 결국 부상에서 돌아와 구원으로 몇 이닝을 던졌지만 재기하지 못했다. 정말 뛰어난 투수이고 인간적으로도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케인과는 마이너에서 오래 함께 해서 잘 아는 사이이고, 린스컴은 마이너를 거의 거치지 않아 잘 몰랐다. 그리고 지토는 독특한 친구다. 늘 쾌활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친구다. 마이너에 있을 때 선수단에 느닷없이 고급 스테이크 요리가 배달된 적이 있었다. 지토가 보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가끔씩 고급 음식을 보내곤 했다. 빅리그에 올라가 그를 처음 만나 ‘보내준 음식 고마웠다.’로 했더니 씩 웃더라. 돈이 많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2003년에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는데 순조롭게 발전한 것 같다.
▶숏 시즌 싱글A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1년에 한 레벨씩 승격했다. 그러나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프로 첫 시즌이 끝날 무렵 이상하게 피로하고 머리가 계속 너무 아팠다. 그래서 검사를 받았더니 경막하출혈(subdural hemorrhage)이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뇌 안에 피가 고인 것이었다. 그래서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는 내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 건강해졌고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2004년 해거스타운 싱글A 전반기까지는 ERA가 10도 넘고 엉망이었다. 그러나 수술하고 1년쯤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몸도 좋아지고 다시 야구를 잘 하게 됐다. 아마 회복되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다.
-그 후로는 괜찮은가.
▶나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모자 속 머리 위에 보호대를 착용한다. 머리에 수술한 구멍도 있고 해서 반드시 보호대를 착용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은 모든 투수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보호대가 필수다. 그러나 그 후로는 전혀 문제는 없다.
-야구를 포기할 생각도 했나.
▶많이 했었다. 수술을 받는 순간은 야구에 관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살아나면 학교로 돌아가거나 직업을 구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운이 좋았고 다행히 몸이 다시 건강해졌다. 그밖에도 마이너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은 야구를 계속했다.
-그렇게 계속 야구를 한 원천이라면.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도 아프고 힘들지만 야구를 한다는 것,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 그런 모든 것이 즐거움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야구는 나의 꿈이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한국 선수들도 야구를 즐기는 것 같은가.
▶다른 팀은 내가 잘 모르지만 우리 팀에는 야구를 즐기는 선수들이 아주 많다. 홍성흔을 보라, 정말 야구를 즐겁게 하지 않는가. 팀이 패하고 개인적으로 못하면 물론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레벨이 올라갈수록 중압감도 커진다. 때로는 언론이나 팬과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어려움을 줄 때도 있다. 그러나 야구는 결국 즐기는 것 아닌가.
-메이저리그 데뷔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두 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를 했는데.
▶당시 트리플A에서 계속 꾸준히 잘 던지고 있었다. 계속 6,7이닝을 던지면서 2,3점 이상 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빅리그에 올라갔는데 그 기세가 계속 이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요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사도스키는 2009년 6월 28일 데뷔전 밀워키 원정에서 6이닝 4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고, 5일 후 홈 데뷔전에서는 휴스턴을 7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묶고 2연승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가, 그 후로 4연패를 하고 끝이었다.
▶어깨가 아팠다. 그런데 누구도 왜 그런지 묻지를 않았다. 왜 구속이 떨어졌는지, 제구가 잘 안 되는지도 묻지 않았다. 아마 내가 주목받던 유망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래 실력이 나오나보다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던졌지만 결과는 엉망이었다. 만약 내가 어깨가 아프다고 말을 했더라면 언론에서는 내가 핑계를 댄다거나 아니면 자이언츠가 나를 혹사했다거나 그런 말들이 나올 수도 있었다. 결국 진통제를 맞기에 이르렀는데 구단에서는 그냥 조용히 마이너로 내려가라고 했다. 그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어깨가 갑자기 아파진 건가.
▶2006년 어깨 수술을 받고 쉰 적이 있다. 그러나 2007년, 2008년, 그리고 2009년 중반 너머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던졌다. 그리고 빅리그에 데뷔해 첫 3경기도 문제없었다. 그런데 삶이란 때론 묘하게 꼬이는 것 같다. 3경기 후에 올스타전 휴식기가 왔고, 팀에서는 나의 경기 감각을 계속 유지시키려고 싱글A에 가서 한 경기를 던지도록 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갑자기 어깨 통증이 왔다. 당시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빅리그에 승격되기 직전에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가 나와 계약을 원했다. 그러나 자이언츠가 거부했고 빅리그에 올라가 잘 던지다가 부상을 당했다.
-결국 작년 시즌이 끝나고 FA가 됐고 휴스턴과 계약을 했는데.
▶자이언츠가 나를 웨이버에 공시했고 FA가 됐다. 그리고 에이전트가 휴스턴과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휴스턴과 계약을 했는데 어떻게 롯데로 오게 된 건가.
▶작년에 일본에서도 내게 흥미가 있었고 해서 휴스턴과 계약하면서 1월1일전까지는 미국 외의 팀과는 계약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처음에더 어디서도 오퍼는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에이전트가 롯데 자이언츠가 내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 때가 12월 5일쯤이었고 12월 10일에 로이스터 감독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11일 후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제 만 27세에 빅리그에서 인상적인 경기도 했고 미래가 밝아 보이는데 왜 한국행을 선택한 것인가.
▶음~ 마이너에서는 나와 비슷한 선수가 아주 아주 많다. 패스트볼 구속은 140~147Km 정도이고 비교적 안정된 제구력을 지닌 그런 투수들. 내가 던지는 것을 꽤 오래 보고, 경기 운영을 하는 것을 관찰하지 않는 한 그런 선수들과 나의 차이를 보여주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비슷한 수준의 선수라면 구단은 계약금을 많이 준 스무 살짜리 선수에게 기회를 주기 마련이다. 나는 12라운드에 뽑혔고, 계약금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에 오면 경제적으로도 가족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새로운 기회를 잡아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내게 주어지지 않던, 팀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팀이 4연패를 하면 그 연패 행진을 끊고 연승 행진을 시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 투수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나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통해 더욱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기회의 문제였나 보다.
▶그렇다. 혹시 내 U튜브를 봤는지 모르지만 내가 한국에 온 이유를 설명한 것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트리플A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런 발전의 기회를 한국에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꼭 에이스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팀의 연패를 끊고 또 연승을 시작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었다. 투수로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자신의 미래는 메이저리그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당장 돌아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로이스터 감독 밑에서라면 오래 뛰고 싶다. 우리 롯데는 우승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올해 우승하면 가장 좋고 또 내년에도 우승하고 앞으로 몇 년간 많은 우승을 하고 싶다. 그런 목표를 이루고 나면, 기회가 주어진다면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하겠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롯데의 우승이라는 특별한 도전에 함께 할 것이다. 우리 팀은 점점 좋아지고 있고 팬들은 정말 열성적으로 팀을 지원한다. 우리에게는 우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교 대학 시절 학업성적도 뛰어났던 사도스키는 매일 한 시간 이상 한국말 공부를 해서 상당히 정확한 우리말을 구사합니다. U튜브를 통해 매일 팬과의 소통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민기자닷컴
-U튜브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언제부터 하게 된 건가.
▶내 U튜브는 incugator다. 사이판 전지훈련에 도착할 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 소식을 전하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롯데 팬들의 위력을 몰랐던 것 같다. (웃음) 요즘은 정말 많은 팬들이 찾아오신다. 그리고 번역을 해주는 분도 있다. 질문과 댓글도 많이 달린다. 많은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됐다.
-한국말을 상당히 잘 하고 발음도 정확하다.
▶아직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배우고 있다. (정확한 한국말로) ‘카페 라테 너무 달지 않게 해주세요.’ 같은 말은 할 수 있다.
-그런 한국말까지 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데 어떻게 배웠나.
▶한국어 공부 책이 몇 권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는 한국어 문장을 배울 수 있는 툴이 상당히 많다. 하루에 1시간 정도는 한국어 공부를 하려고 노력한다. 플래시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공부하고.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한국에서 2년간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한국말로 ‘왼쪽과 오른쪽’도 구분을 못하더라. 그래서 나는 한국말을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사율이 영어를 열심히 배우는데 나는 사율에게 꼭 영어를 전체 문장으로 완전히 말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나도 꼭 한국말을 문장으로 완전히 말하려고 노력한다.
-롯데 팬에 대한 소감은.
▶미국의 친구들에게 우리 팬은 미국의 풋볼 팬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소리치고 노래하고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10점차로 이기든 10점차로 지든 팬들은 늘 팀을 성원해준다. 미국에는 아주 부정적인 야유 등을 보내는 팬이 많다. 예를 들어 ‘사도스키, 넌 최악의 투수야!’ 같은 고함.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딱 한 번 잠실에서 그런 야유를 들었는데 미국인 팬이었다. 한국 관중들은 늘 긍정적이다. 물론 롯데 팬은 조금 미치기는 했지만 (웃음) 정말 최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더그아웃에 있으면 정말 귀가 떨어질 정도로 응원이 요란하지만 마운드에 서면 하나도 안 들린다는 것이다. 아마 집중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징크스 같은 것이 있나.
▶글쎄, 등판과 등판 사이에 규칙적인 운동과 준비를 하는 것 정도. 나는 미신이나 징크스의 신봉자는 아니다.
-최근 7연속 퀄리티 스타트에 5승1패의 상승세다. 변화의 열쇠는 무엇인가.
▶스트라이크를 더 많이 던진다. 그리고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한다. 피칭도 타격처럼 슬럼프도 있고 상승세도 있다. 슬럼프를 짧게 끝내는 것이 관건인 것 같다. 두 번의 엉망인 경기 후에 열흘을 쉰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젠 가능하면 그 상승세를 오래 끌고 가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승수는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비나 득점이나 불펜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마운드에 올라 가능한 한 많은 이닝을 던지며 팀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꾸준히 던진다면 내가 10승을 하든 15승을 하든 4승을 하든 상관이 없다. 특별히 운동을 더 하거나 다른 구질을 던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집중하고 스트라이크를 공격적으로 많이 던지고 있다.
-한국 야구와 미국 야구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많은 한국 타자들이 진루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인다. 미국 타자들은 대부분 강하게 멀리치려고만 하는 경향이지만 한국 타자는 다르다. 때로는 타자들이 인사이드 공에 몸을 안으로 기울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몸에 맞는 공의 절반 이상은 미국 같으면 볼로 판정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을 맞는다는 것이 정말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타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진루를 하려고 하고 공을 커트하고 골라내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또 한 가지 차이는 선수들을 너무 쉽게 교체한다는 것이다. 큰 점수 차의 경기였는데 상대 팀의 주력 선수가 송구 실책을 하자 곧바로 교체되는 것을 봤다. 그 정도의 선수라면 그렇게 교체를 당하면 미국 같으면 주먹질이 오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이스터 감독에게 이제 큰일 나겠다고 했더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 것들이 내게는 정말 큰 놀라움이었다.
-한국 리그에서 인상적인 선수를 꼽는다면.
▶홍성흔은 당장 빅리그에 가도 된다. 강민호, 이대호도 미국 투수들을 공략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넥센 유격수(강정호)는 미국에서도 최고의 유망주로 뽑힐 것이다. 좋은 타자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적응하느냐다. 한화의 류현진을 보라. 아마 당장 빅리그에서 1,2선발로 뛸 수 있을 것이다. 강팀에 가면 15승, 20승도 할 수 있겠지만 과연 미국 가서도 한국에서와 똑같이 던질 수 있느냐는 다르다. 패스트볼이 맞아 나갈 때 어떻게 반응할지 등, 결국은 얼마나 빨리 쉽게 적응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좋은 선수들은 참 많다. 김선우, 봉중근, 송승준 등 미국에서 뛴 능력 있는 선수들도 잘 한다. 김광현도 정말 좋은 투수다. 양현종, 장원삼, 장원준 등 KBO에는 좋은 왼손 투수들이 꽤 많다. 그러나 팀을 잘 선택하고 그리고 투쟁을 거쳐야 할 것이다. 빅리그에서 뛸만한 재능 있는 선수들은 분명히 많이 있다.
-계속 이렇게 잘 던진다면 미국이나 일본 리그에서도 관심을 가질 텐데.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 현재는 롯데 자이언츠가 내게 주어진 최고의 기회이고 너무 즐겁게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롯데에서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특히 로이스터 감독이라면 계속 함께 하고 싶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롯데에 복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롯데 자이언츠를 도와 많은 우승을 거두고 싶다.
조용하고 조리 있게 말을 하는 사도스키는 그러나 확고한 신념과 목표가 있는 선수입니다. 그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현재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 팀의 우승을 돕겠다는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그를 포함한 선발진이 어떤 역할을 해주느냐에 따라 롯데의 남은 시즌 명암이 갈릴 가능성이 큽니다. 확실하게 안정을 찾은 사도스키의 꾸준한 역할이 대단히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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