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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은 얼마나 많이 그리고 크게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의식/자각하고 있는가?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동등하게 사랑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똑 같이 인식/의식/자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인식/의식/자각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위대한 믿음과 엄청난 은혜 안에 거할 수 있는 능력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놓을 수 있는 확신의 크기와 양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6; 19> 말씀처럼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 우리는 그 사랑을 알게 되었고 또한 믿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인식/의식/자각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 2. 예수님은 가깝게는 12제자들, 그리고 수백명의 제자들, 더 나아가 자신을 따랐던 수천명의 사람들을 모두 동등하게 사랑하셨다. 그런데 제자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요 13:23; 19:26; 20:2; 21:7; 21:20>. 예수님이 사랑하셨다는 이 제자는 바로 사도 요한이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과 사람들도 동등하게 사랑하신 것을 알고 있었을텐데 왜 마치 자신만 특별하게 사랑한 것처럼 적고 있는 것일까? 사도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3. 밭을 가는 농부가 있었다. 농부는 밭을 갈면서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게 된다. 왜냐하면 발견한 그 보물을 소유하고, 간직하고 싶어서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도 농부의 모습처럼, 자기 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에 의해서 사랑받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마치 농부가 밭을 사듯이 자기 안에 간직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최고의 의식(자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랑받는 독특한 존재로 자신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구현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 속에 소유화 또는 간직화 했었던 것이다. 4. 여기서 사도 요한과 베드로를 대조해 보면서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누리고 안식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감동시키고자 했다. 사도 베드로는 형제 안드레를 통해 먼저 예수님을 소개 받고 만났던 사람이다.<요1:40-41>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낀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이용하셨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셨다. 그 때 베드로의 첫 마디가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적인 일을 통하여 신적 경외감을 느끼고 고백한 내용이겠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배제시키는 자세와 태도로 살아 가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에서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배제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 값 없는 은혜를 받고, 소유화 또는 간직화 하기를 주저한다. 5. 마태복음 16:23절을 보면, 베드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는 책망을 듣게 된다. 사탄이란 소리를 들으며, 책망 받는 베드로! 그런데 바로 이 책망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축복을 받았었다. 주님이 질문하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대답을 들었던 주님은 베드로에게 복이있다고 말씀하면서 베드로를 축복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책망을 받게 되었는가? 베드로는 자기를 위한 주님의 사랑을 인식/자각/의식하며 거기에 안식하는 대신에 예수님을 더욱 더 감동시키고, 심지어 컨트롤까지 하려 했었기 때문이다. 여기를 보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눅22:33> 이렇게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오히려 베드로에게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자신 앞에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이런 일도 할 것입니다” 라고 입증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또는 봉사와 사역이 어디서 참 되게 나타나는가를 보기 원하신다. 자기 확신으로부터 그것이 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 되는가? 우리는 언제 성공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깊은 믿음과 확신을 가질 때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즉 불가능함이 없이 그것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때 이다. 6. 베드로는 마귀의 시험 속에서 비참한 실패를 경험한다.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었던 것이다. 새벽 닭이 울 때에 주님은 베드로를 돌아 보신다. 그 때 베드로와 주님의 눈이 마주치게 된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22:61-62> 베드로는 주님의 눈빛을 통해서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주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심히 통곡하게 된다. 그리고 베드로 자신의 믿음과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의 기도를 통해서 베드로는 회복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믿음은 무엇에 놓여져야 하는가? 누구 안에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가? 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어야 한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6> 믿음은 사랑으로 힘을 받는다. 사랑으로 믿음은 움직인다. 믿음에 활기와 동력이 생기려면 사랑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질문하셨다. 세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다시 세번 질문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대답한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사랑을 고백 할 수가 있었는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하나님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주님이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하신 질문은 “너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안에 확신하느냐?” 라는 의미인 것이다. 7.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되어 잘못된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그럴까?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시도하라는 음성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하여 충분히 사랑받는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먼저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 이제 그 사랑 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함이로소이다”<요17:23>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즉 반역자였을 때에도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그 사랑이 알게 되도록 자신을 생명을 내려 놓은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요일3:16> 8. 승리의 비밀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성공의 비밀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을 아는 것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을 극복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여기서 하나님을 위한 나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승리자로 만든다고 말씀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이기는자, 그 어떤 것도 나를 멈추게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언제 가능한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8-19> 남은 생애 동안에 나를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계속해서 발견되어지길…그리고 주 안에서 사랑받는 나의 삶 위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으로 채워지길…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