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11)
(10)에서 이어짐. <일곱째 날>은 이스탄불에서 돌아본 게 많다. 아침에 비행기로 이스탄불공항에 내려 돌마바흐체 궁전, 피에르로티 언덕과 금각만, 아야소피아 박물관, 지하궁전(아라베탄 사라이), 블루모스크, 보스포루스해협 유람선, 루프탑 레스토랑, 갈라타 다리 등을 돌아다니며 관광하고, 튀넬과 트램 탑승, 탁심거리, 호텔 스카이라운지 금각만 야경 등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사진이 50장까지만 업로드되니 한 편에 정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된다. 이번 것도 돌마바흐체 궁전의 나머지와 피에르로티 언덕에서의 골든혼(금각만) 조망 그리고 아야소피아 박물관이 주축을 이룬다.
병아리들이 줄을 잡고 가는 모습은 얼마나 귀여운가!
터키인들의 축구 사랑은 남다르다. 축구전용구장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을 오른다.
아래로는 공동묘지인지 흰 대리석 무덤들이 가득하다.
피에르로티 언덕에 올라서 바라다 보이는 골든혼 풍광들이다.
골든혼을 기준으로 이쪽은 구시가지이고 건너편은 신시가지이다.
이곳에서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판다. 그저 쓸 뿐이더만!
피에르로티는 프랑스의 해군 장교이자 소설가로 그의 작품에 이곳에서의 골든혼을 묘사한 장면이 등장하는가 보다. 그의 이름을 땄으니 ...
트램은 이스탄불의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점심을 먹은 식당
걸어서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향해 간다. 공사 중인 블르모스크를 지나고 ...
골목길도 통과!
블르모스크와 앞의 광장. 정식 명칭은 아흐메트 모스크다.
드디어 아야소피아 박물관이 보인다.
오른쪽은 토프카프 궁전 입구
토프카프 궁전 입구
소피아 대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면서(325년에 결정한 후 330년에 천도하여 콘스탄티노플로 개명) 함께 세워졌으나 5세기 초의 화재로 재건되는 과정을 거친 후 결정적으로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일어난 '니카의 반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곧장 전면 재건에 들어가 약 6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 537년 성탄절 때 봉헌되었는데 전과는 전혀 다른 웅장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오, 솔로몬왕이시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 하며 예루살렘 성전보다 거대한 성전에 찬탄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스만제국 안에 섬처럼 남아 있던 콘스탄티노플은 치열한 공방 끝에 메흐메트2세 때인 1453년 5월29일에 함락되어 정복군 병사들에게 3일 동안의 약탈에 노출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화려한 모습에 감탄한 술탄은 뒤늦게 하룻만에 약탈을 금했지만 이슬람군의 약탈은 비록 몽골군의 초토화보다는 덜 하지만 악명이 높다. 그 뒤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바뀌며 오스만제국의 수도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메흐메트2세는 소피아 대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모스크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미나렛 등을 세운 것은 당연하나 성당 안쪽 벽면에 그려진 각종 성화는 제거하지 않고 회칠을 한 후 이슬람식으로 장식했다. 이른바 프레스코화인데 현대에 들어 터키공화국 건국 이후 박물관으로 개조하며 드러난 사실들이다. 이로써 이슬람이 반드시 파괴적이지만은 않고 다른 문화와의 융합과 공존을 통해 지내왔음이 밝혀졌는데 특히 메흐메트2세의 현명한 판단이 결정적이었음은 확실하다.
비슷하지만 위치와 거리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거듭 담았다.
안쪽의 벽에 걸린 자료들. (1)편의 히포드롬 그림 관련 사진도 이곳에 있다.
구차한 설명은 불필요
긴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는지 돌로 된 바닥이 움푹 파이도록 닳았다.
쿠란 구절의 아랍 문자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핫트'라 한다.
(12)에 이어짐
첫댓글 동영상을 마지막 부분에 함께 올리는 것을 계속 깜박하고 넘어가네!
그나저나 수정 상태에서 동영상을 추가하는 것이 왜 안 되는 거야? ...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아무래도 다음 편에도 상당히 차지할 것 같다.
어찌하겠나? 아웃사이더의 눈으로는 그저 그런 것으로 보일지라도
역사적으로 또 종교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건축물이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난 상징적인 존재이고 그런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