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들은 밤마다 도깨비방망이 휘둘렀다. 빳다가 도깨비 방망이다. 빳다는 열심히 치면 칠수록 돈이 더 나온다. 고참들은 다 안다. 그날 작전 나간 중대가 어느 창고 무슨 물건 실었으면 돈 얼마 될지 다 안다. 목재 수송하면 떡값 밖에 안나온다. 병기창 물건 한 날은 뭉치돈 나온다. 그걸 운전할 때 깔고앉는 방석 쿳션에 숨기거나, 철조망 어느 지점에 땅 파고 묻는다. 돈의 소재가 나오기 전에는 그날 병기창 작전 나간 운전병 엉덩이 피멍으로 도배된다.
달구지는 빳다 대신에 고무호스 애용한다. 침대마후라는 너무 치면 뼈를 상하지만, 호스는 낭창낭창 탄력이 좋아 부러지는 일 없다. 물 적신 고무는 아무리 소신껒 쳐도 뼈 상할 일 없고, 살속 깊이 파고들어 효과적이다. 매는 작지만 고무호스 보다 더 무서운게 있다. 이거 맞으면 사람 까무라친다. 작은 참나무 지휘봉이다. 무릅 꿇여놓고 팽팽히 당겨진 무릅근육을 이걸로 때리면 사람 졸도한다.
맞다보면 졸병도 요령 생긴다. 권투 비슷하다. 상대 펀치 날라오면 그 부위를 약간 스윙해야 충격이 적다. 빳다도 침대마후라 날라오는 반대 방향으로 살짝 흔들어주어야 충격이 적다. 두어대 맞고 까무라치는 시늉도 해야한다. 적당히 엄살 피워야 때리는 사람 기분 흐믓해진다. 그래야 대충 끝나지, 미련하게 뻗대면 더 힘차게 때린다. 일년 열두달 하루 빠짐없이 열리는 이런 파티 때문에 간혹 탈영하는 신병 있다. 그러면 소대 단위로 그 일 해결한다. 고참이 신병 고향 찾아가서 설득하여 데려온다. 여하간 나는 여기서 밤마다 맞는 바람에 둔부에 빳다살 든든히 박힌채 제대했다.
229대대 졸병 일과는 오줌 누고 뭐 볼 시간 없다. 작전 다녀오면 자기 차는 물론, 고참 차 시다마리, 앞대우, 뒷대우 물세차 해야하고, 타이어 펑크나면 펑크 때워줘야 한다. 츄브 꺼내 컴푸레셔 공기 넣어 물에 담가 바람 새는 위치 파악하고, 페이퍼로 그 곳 부드럽게 만들어 접착제로 생고무 부치고, 타이어 속 모래 털고, 접착제 마르면 츄브 끼우고 컴프레샤 공기 주입하고, 보드 낱트 잠그고 쟈키 내리면 빵꾸나우시 끝난다. 졸병은 보통 소대 빵꾸나우시 하루 두어개 한다. 그래놓고 피곤한 몸 내무반 가면 취침 전에 단체기압 있다. 마침 불침번이면 야간 근무 두시간 해야 하루 끝난다. 정문 위병소 앞에 ‘딱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구호 붙어있다. 운전병에겐 그게 ‘너그들 여기선 죽었다고 복창해라’는 소리 같다.
한번은 229대대 영내에서 별들의 전쟁 벌어졌다. 전과자들은 서열이 있다. 우리 800중대 김대지 병장이 대대 1인자인데, 701중대 영도 밀수꾼이 도전한 것이다. 싸움이 붙자 둘은 실탄 장진한 칼빈 들고 내무반 안팎 이리저리 쫒고 쫒긴다. 실감나게 두어발 딱콩! 총도 발사한다. 쫒고 쫒기는 모습 서부영화 같다. 졸개들은 궁지에 몰린 꿩처럼 관물함에 얼굴 쳐박고 궁둥이 밖으로 내놓고 엎드려 있다. 결과는 800중대 김대지 승이었다.
일등병 되자 간혹 차 끌고 외부지원 나갔다. 6.3데모 때다. 범퍼 헝겊으로 가리고 화이버 쓰고 적재함에 경찰 십여명 태우고 다녔다. 서대신동 공설운동장, 동쪽 부산대학교, 용호동 수산대학 세군데 나갔다. 경찰들은 현장에서 학생들 잡아 차에 실어준다. 나는 경찰서 가다가 중간에 차 세우고 다 풀어준다. 돌아가 다시 실어주면 다시 중간에서 풀어주었다. 경찰도 그 걸 안다. 알아도 탓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은 알고보면 다 사둔팔촌 친척 아닌가. 학생이 뭘 아는가? 그냥 정치인 언설에 속아서 잠시 데모했을 뿐이다. 간혹 재미로 경찰 엿먹이기도 했다. 지휘자가 조수석 타고 대원들은 적재함에 타는데, 80K 달리다가 브레이크 살짝 밟아본다. 내려오는 고개길에서 그러면 더 확실하다. 사람이 짐짝처럼 적재함에서 이리저리 마구 구른다. GMC 적재함엔 손 잡을 데가 없다.
‘어이쿠 운전병! 운전 좀 살살허슈. 우리 다 죽소.’
그래도 가볍게 브레이크 몇 번 잡으면 담배 한 보루 사준다.
간혹 타부대 지원도 나갔다. 나는 적재함에 호르 씌우고 좌석 내리고 광안리 7피복창 통근차 지원 나갔다. 범일동 네거리에서 군속 아가씨 아저씨 태워 광안리로 출근시켰다. 하루는 출발 30분 전에 차를 점검해보니, 아침에 별일없던 내 차 스페어타이어 하나가 없다. 깜빡 조는 사이에 누가 훔쳐간 것이다. 가만히 보니 다른 통근차 운전병은 조는 놈 하나 없이 빤히 날 쳐다본다. 딱 한 명 15P 통근차 운전병만 졸고 있다. 헌병 차 누가 손댈 것인가 싶은 모양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그 차 밑에 들어가 소리없이 스페어타이어 풀어 아슬아슬 내 차에 달았다. 오금아 날 살려라, 출발 2분 전에 그 자릴 떠났고, 다음 날은 노선 변경해 딴 노선 뛰었다.
실존주의 동경하던 나는 외출 나가면 '하이에리어' 부대 주변 사창가로 가곤했다. 서면 그 일대는 술집 많고, 양주 양담배 많고, 군수품 거래하는 장사치 많다. 조방 옆에 살았던 김영도 상병은 사회에서 레슬링과 권투했다. 그와 동대문 운동장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뛴적 있는 나는 콤비다. 힘으로는 아무도 우릴 제압 못한다. 둘은 하이에리어 근처 순찰 헌병 화이바와 완장 장갑 뺏아 착용하고 헌병처럼 외출증 검사한다며 휴가병 돈 뜯었다. 범일동 철도골목 가서 고래고기 안주로 소주 마셨다.
거기 기차가 하루 두어번 석탄연기 품으며 지나가는 철로골목은 좌판 노점들이 볼만하다. 모두부처럼 커다랗게 썰어놓은 고래고기, 무럭무럭 김 나는 순대, 짚으로 묶어 나란히 포개놓은 삐삐, 다래끼 가득 담은 떡, 투명한 우무 사발이 거기 있다. 애기에게 젖 물린 가난한 여인, 빛바랜 옥양목 싸구려치마 입은 여인이 좌판 옆에 있고, 파나마모자 쓰고 낮술 한 잔에 얼굴 불콰한 사내가 있고, 뭔가 해결하고 싶어서 싸구려 나이롱치마 입고 봉선화 꽃물 손톱에 들인 여인 곁눈질하며 따라가는 군인 있고, 때묻은 한복 입은 꽤쬐쬐한 시골 영감 있고, 음식에 눈이 팔려 왔다갔다 하는 초등학생 있다.
여기가 김영도와 나의 단골 골목이다. 당시 나는 술은 제법 마셨다. 미식축구 할 때 입에서 막걸리 주전자 한번 떼지않고 단번에 한 되 마셔 부원 놀라게 한 적 있고, 군에 와선 중대 술 시합 대회에서 막걸리 한 말 마셔 2등 했다. 전체 1등은 한 말 반 마신 정봉율 상병이다. 그는 인천 연안부두 깡패 출신이다.
하루는 여기서 김영도와 마시고 부대 귀대하니, 15P 헌병대 파견 중이던 양풍길 병장이 와 있다.
'지금 전 제부지구 헌병대에 비상 걸렸다. 당장 증거물 화이바와 완장 난로불에 집어넣어라.’
그가 하는 소릴 들어보니, 우리 때문에 제부지구 전체에 비상 걸렸다. 순찰 나갔다가 화이바 뺏기고 온 헌병은 자대 돌아오면 반쯤 죽여놓는다. 헌병 구타한 범인도 잡히면 완전히 송장 만들어 영창에 집어넣는다. 그 소릴 듣고 엇뜨거라 노획물 난로불에 태워 백프로 증거인멸한 적 있다.
당시 나는 사고를 치고 싶었으나 사고가 나를 피해 다녔다. 그때 나는 나를 실존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완전히 '싸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였다. 운명의 신은 나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하이에리어 부대 근처 쯤에서 사고치고 인생을 끝맺고자 했으나, 내가 하이에리어 부대 근처에 가기만 하면 아무리 찾아도 이상하게도 거기 헌병이 한 명도 없었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