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사람의 마음”(요한 11:32-44)
김경현 스테파노 신부 / 주교좌교회
모든 성인의 날, 거룩한 사람(성인)에 대해 생각하는 대축일입니다. ‘거룩하다’는 히브리어로 ‘꼬데쉬’ 즉 ‘떼어놓다’, ‘분리하다’라는 뜻입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와는 ‘다른’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광송에 하느님을 ‘홀로 거룩하시다.’라고 찬양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달리,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내려주십니다. 그분의 본성입니다.
한자어로 거룩할 성(聖)은 귀(耳)와 입(口)과 관련이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잘 듣고 잘 말하는 사람입니다. 성인은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들은 것을 백성에게 잘 전하고, 또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처럼 백성의 말을 잘 듣고 백성들에게 잘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충고합니다. (1데살 3:13) 바울로 사도에게 거룩한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인간과 전혀 다른 고귀한 성품을 지녔거나, 교회를 위하여 목숨 바친 사람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호성인으로 삼는 성인들만도 아닙니다. 성인이란 예수님의 복음을 그대로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볼 줄 아는 사람, 모든 것을 하느님 대하듯 하는 사람 즉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면서 두 동생의 서럽게 우는 모습에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온종일 굶은 가난한 무리를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는 애틋한 마음.. 그러한 자비와 사랑이 기적을 낳습니다. 세상과 늘 함께 하시되 세상의 가치와 질서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사신 분,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에 거룩함을 느낍니다. 그분의 당당한 용기에 거룩함을 체험합니다. 잘 듣고 공감하시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두려울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하고 순종하는 모습에 거룩함을 함께 경험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 대축일을 기억합니다. 성인은 죽어서(죽기까지) 하느님의 품에 안긴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 성인은 편안함과 안락함은 물론이거니와 가난과 치욕과 질병까지도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인지 찾고자 노력하며 기쁘게 맡은 일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아픔과 고통이 있다면 낫고 벗어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아픔과 곤고함에 함께 계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을 향해 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