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제목 주여! 나를 한번 써 주소서
본문 삿16:23-31
두 주전 광양에 있는 교회에서 행사 후 교회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교회 식당에서 봉사하는 분 중에 예전 새댁이었던 분들이 주름이 생기고 노인 권사님이 되어 계셨습니다. 다른 봉사자들도 대부분이 노인들이었습니다. 우리 동네 골목에서 만나는 분들도 80대를 넘긴 분들이 태반입니다. 우리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나를 한번 써 주소서.”라고 설교하면 “목사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내 몸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씀하실 것만 같습니다. 저 역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었다면 다른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이 저에게 설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감동을 받고 “나도 한번 써 주소서”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삼손은 연약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왕이 없을 때 사사로서 백성들을 재판하는 정치지도자 겸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방 여인 들릴라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이며 하나님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를 꼬드겨 삼손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비밀을 알아내도록 했습니다. 삼손은 그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졸라대는 바람에 그만 비밀을 토하고 말았습니다.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고 말하니 잠을 자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결박하여 끌어갔고, 두 눈을 빼고 옥에 가두었고 큰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삼손은 이방인들에게 큰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삼손은 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겸손했어야 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힘으로 자기를 과시할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해야 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힘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함으로 낭패를 겪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온전할 수 없고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내게 있는 힘, 재능,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재능, 재물, 시간, 건강을 선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화근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는 연약함이 있음을 알고 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사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약점이 있으나 사명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블레셋을 멸망시키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비록 두 눈이 뽑히고 옥에 갇힌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민은 다시 눈을 뜨는 데 있거나 옥에서 나갈 수 있음이 아니라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 방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우리 손에 붙여주었다며 그들의 신 다곤을 찬양하고 큰 제사를 드리며 즐거워했습니다. 백성들도 자기들의 신을 찬송했습니다.
술에 취하자, 삼손을 불러내어 그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게 했습니다. 삼손은 동물원의 곰처럼 끌려 나와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연회장은 이방신을 찬양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삼손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렸습니다. 삼손은 할례 없는 이방인들에게 수모를 당함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수치를 당하였지만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신데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 때문에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삼손은 수치를 당하는 중에도 사명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바로 블레셋을 멸하기 위해 자신을 쓰실 기회가 왔다고 직감했습니다. 삼손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그는 한번 써 주시기를 기도해 왔고 다시 한번 기도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명을 잊지 않음입니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대적자 블레셋을 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함이 자기 사명임을 기억했습니다.
태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두왕찬 전도사는 한국 선교사님에 의해 예수님을 믿고 전도사 사역을 했는데, 어느 날 아는 사람이 오토바이를 태워달라고 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태워주었습니다. 마침 불심 검문이 있었는데 오토바이 안장 속에서 마약이 나왔습니다. 두왕찬 전도사는 영문도 모른 채 태워준 것뿐인데, 마약 사범으로 33년 형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억울했지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왜 나를 옥에 보내셨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겠노라고….” 놀랍게도 300명의 죄수를 전도했습니다. 죄수들이 모여 예배할 곳을 교도소 안에 지었습니다. 불교가 90% 이상인 나라 교도소 안에 교회를 세우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명을 잊지 않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앞에서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죽음의 잔을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사명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실수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함과 실수가 있더라도 사명자를 기어이 사용하십니다.
죽을 때 큰일을 했습니다
삼손의 기도는 어떻게 응답되었을까요? 삼손이 재주를 부리는 곳은 남녀가 가득하고 블레셋 방백들도 있었고 별도로 지붕에 있는 남녀가 삼천 명이 모인 거대한 연회를 벌이는 큰 건물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두 기둥 사이에 자신이 서 있음을 알고 소년에게 기둥을 의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두 기둥을 오른손, 왼손으로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한다고 하고 힘을 다해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삼손은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고, 죽으면서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그의 삶에 실수가 있었지만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했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까지 한 일도 없고 실수도 많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써 주실 수 있습니다. 젊은 세월 다 보내고 죽을 때가 더욱 가까워졌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우리를 귀하게 쓰실 수 있습니다. 해가 넘어갈 때 아름답듯이 인생의 황혼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노년의 삶을 저녁노을처럼 멋지게 장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늙고 힘이 없지만 나를 한번 써주시길 기도하십시오.
숨지는 순간에도 예수 믿는 믿음을 확실하게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믿는 자의 죽음이 다름을 보여주십시오. 죽음은 두려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의연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십시오. 나의 임종을 지켜보는 후손들과 의료진들에게 예수님 품에서 죽는 자의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처럼 하늘 문이 열리는 모습, 천사들이 호위해 주심을 간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이 평화롭게 눈을 감는 나의 모습을 보고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도하십시오. 김봉례 집사님을 위하여 임종 기도를 하는 중 스르르 눈을 감는 모습을 자녀들이 지켜보며 큰 감동을 받고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도 죽을 때 남은 자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마저 교회와 자손들에게 유익이 되고, 감동을 남기는 복된 죽음을 맞기 바랍니다.
결론
연약한 삼손을 써주심같이 우리도 약하고 허물이 크지만,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음을 감사하십시오.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사명자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며,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는 사명자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약한 사람, 늙은 사람도 쓰십니다. 사람도 깨어진 그릇으로 꽃을 피우는 화분으로 만드는데,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못 쓸 사람이 있을까요? 실수 많은 삼손을 사용하시듯이 연약한 우리도 그렇게 사용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하나님 백성 된 사명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