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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9 - 리쿠기엔 정원을 보고 지하철로 고라쿠엔에 가다가 도쿄대학을 찾아가다!
2022년 11월 7일 “도쿄 프리깃푸” 를 구입해서 야마노테센(山手線) 전철을 타고 코마고메역에 내려
구 후루카와 정원 을 구경하고는 리쿠기엔 六義園(육의원) 에 가는데, 에도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야나기사와 요시야스가 7년의 시간을 들여서 완성한 ‘회유식 쓰키야마센스이 정원' 이라고 합니다.
큰 정원 안에는 400 그루의 단풍 외에도 거먕옻나무 및 은행나무 등이 화려하게 정원을 장식하며 11월
중순 이후 부터 12월 초까지는 밤에는 라이트업 도 이루어져서 낮과는 다른 환상적인
경치를 즐길수 있다고 하는데 저 기간 중에는 개장 시간을 21:00 (입장은 20:30)까지 연장한다고 합니다.
리쿠기엔 六義園(육의원) 을 나오며 기모노를 입은 나이든 일본 여자분 과 마주치는데
세계에서도 최장수 국가인 일본의 노인들을 보자니.... 문득 동아일보 횡설수설
란에 장택동 논설위원이 쓴 “기대수명 2위 - 자살률 1위 한국” 이란 기사가 떠오릅니다.
한국처럼 국민수명이 빠르게 늘어난 나라도 드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1970년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62.3세 에 불과했다. 현재 OECD 가입국 기준으로는 밑에서 다섯번째로 수명이 짧은 국가였다.
반세기가 흐른 2020년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 로 수명이 긴
나라가 됐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신체적 건강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과 달리 마음의 질병 은 심각하다.
기대 수명에는 의료 접근성, 보건 수준, 영양 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분야가
개선되면서 한국의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인들의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OECD 평균의 2배 를 넘고, 인구 1000명당 병원 병상 수도 한국이 OECD 국가중 가장 많다.
안정된 건강보험제도 와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와 함께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해마다 흡연율은 줄고, 술은 덜 마시는 추세다. 그래서 기대수명이 긴
국가들을 보면 일본, 노르웨이, 호주, 스위스 등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선진국들이 많다.
한국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한국이 머지않아 세계 최장수 국가
가 될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이 건강한 선진사회가 됐다’ 고 말하기는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살률 은 10만명당 25.4명으로 OECD 국가 중 눈에 띄는 1위 다. 다른 장수 국가들의
자살률이 10명대 초반 인 것과 대비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낮은 편이었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1990년대 말부터 급격히 높아졌다.
이제 고혈압으로 숨지는 사람 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를 살펴보니 10명 가운데 4명이 ‘정신적 문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취업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경제적 궁핍, 신체적 고통 등으로 마음이 병든 사람은 늘어
나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높은 자살률의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우울증을 가진 국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지만 치료율은 미국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신질환 에 대한 사회적 편견 부터 사라져야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마음속에 지옥을 안고 사는 국민이 많다면 장수 국가 가 된들 마냥 축복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리쿠기엔을 나와서 이번에는 좀 전에 내린 고마고에에키 駒込駅 가 아닌 혼고마고에(本駒込 ) 역으로 들어
가서는 지하철표 판매 기계에서 “도쿄 프리깃푸” 를 구입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되풀이해 보는데
아침에 번잡한 도쿄역에서 구입하는데 애를 먹었는데 여기서는 아주 간단하게 구입할수 있는걸 확인합니다.
그러고는 고이시카와 고라쿠엔 (小石川後楽園) 을 보기위해 야마노테센(山手線) 전철을 타는데
그런데..... 전철이 도다이마에(동대전) 에 서기에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그간
도쿄를 서너번 오고도 아직 도쿄대학교 를 보지 못했으니 즉흥적으로 그만 이 역에서 내립니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오서는 도쿄대학 을 찾아 들어가니.... 한 눈에 보아도 건물들이 중후한
느낌이 드는데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아카몽 이 어디쯤이냐고 물으니 계단을
올라가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계단으로 외부 도로를 건너서도 한참이나 더 걸어야 합니다.
몇년전에 도쿄에서 치도리가후치 (千鳥ヶ淵公園) 공원을 보려고 갔다가 쏟아져 나오는 도쿄대학생들과 마주
쳤는데 가는 날이 잘날이라고 치도리가후치 경내에 자리한 부도칸(武道館 무도관) 에서 거행되는 입학식 은
한꺼번에 다 하지 못하고 나누어서 하니.... 나오는 학생들과 들어가는 학생들에 학부형들이 섞인 모양 입니다.
도쿄대학 입학식 에는 입학생을 따라온 잘 차려 입은 부모들 이 많이 보이는데....
일본은 남한 면적의 4배 에 달하고 인구는 2배 반이니 우리나라의 서울
대학교 보다는 지방 학생 비율이 훨씬 높은지라 멀리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 입니다.
거리로 쳐도 일본은 남한면적의 4배 인데다가 사각형인 남한에 비해 일본은 남북으로 길쭉 하니... 훨씬
더 멀리서 온 것 입니다? 도쿄대학 은 일찌기 1877년 에 법학· 이학(理學)· 문학· 의학의 4학부
와 예과 로 구성된 '도쿄대학’ 으로 설립되었으니..... 초대 총장은 가토 히로유키 (加藤弘之) 라고 합니다.
초대 총장 가토 히로유키 (加藤弘之) 는 다지마(但馬)국 센고쿠(仙石)번 무사의 자식으로
태어나서는 성인식 을 마친 16세에 에도로 나와 선각자로 불리던 사쿠마
쇼잔과 오오키 나카마스 문하에서 공부를 한 후 막부가 세운 번서조소의 조교 가 됩니다.
번서조소 는 서양문명을 연구 하는 곳 으로 프러시아 국왕이 증정한 전신기계 사용법 을 전수
받을 사람을 찾는데 지원하면서 독일어 공부 를 독학 하였으니, 훗날 독일어로 자신의
저서를 출판했으며.... 일본에서 독일학의 시조(始祖) 로 일컬어지는 학자 로 성장
했다는데..... 1860년에 “인초(隣草)” 를 저술해 서구의 정치 체제인 입헌정체 를 주장 합니다.
1869년에는 천민제의 폐지 를 주장한 ‘히닌· 에타를 폐지하자는 의견’ 과 다음해 집필한
“진정대의 (眞政大意)” 에서 ‘천부인권(天賦人權)’ 사상을 펼치고, 1874년에
“국체신론 (國體新論)” 에서는 천황(일왕) 이 천손의 후예라는걸 부정 했으며....
유럽과 같은 입헌군주제 로 가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으며 진화론 을 받아들입니다!
1868년 조슈번과 사쓰마번, 히젠번 및 도사번 존왕양이론자 들은 교토를 점령하고는...
일왕(천황) 을 받들어 에도 막부 폐지를 주장하니 무진전쟁 인데, 신정부군은 5천
병력으로 교토 전투에서 1만 5천의 막부군을 격파 하고 이후 동북지방으로 진격해
수십차례의 추가 전투 끝에 홋카이도 하코다테를 함락 하면서 메이지 유신 을 이룹니다.
1871년 9월 이토 히로부미 가 주관해 이와쿠라 도모미와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등 메이지유신 주역 48명의 미국과 유럽 사절단 이 태평양을 건넜으니..... 서양의
기술과 문명을 견학하며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2년후 귀국 하는데, 함께 간 60명의
학생들은 5년간 서양을 배워서 귀국하니 그들중에 일부는 도쿄대학 교수진 으로 들어갑니다.
1886년에는 ‘제국대학’ 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법· 의· 공· 문· 이(理) 의 5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을 갖추고 총장제도를 채택 하는등 근대 대학의 전형을 확립하였는데....
1897년 교명을 ‘도쿄제국대학’ 으로 변경하였으며 1918년 단과대학 폐지, 학부제도
채택과 함께 종합대학으로 개편된후... 2차대전 후에 다시 이름을 도쿄대학 으로 바꿉니다.
도쿄대학 캠퍼스는 5개 로 나뉘는데...... 도쿄도에 고마바[駒場]· 혼고[本郷]· 시로가네
(白金)·나카노[中野] 캠퍼스가 있고 지바현에 가시와[柏] 캠퍼스 가 있다는데
그럼...... 저 5개 캠퍼스에서 공부할 학생들이 입학시에 함께 모여 서로 얼굴 을
보는 모양인데 학생들은 한결 같이 검정색 양복에 연노랑색 외투 를 걸치고들 있습니다.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29명 인데, 도쿄대학 은 과학 부문에서는 8명을 수상한 교토대학 보다 적지만
합계 9명 으로 에사카 레오나(1973 물리학), 고시바 마사토시(2002, 물리학), 난부 요이치로
(2008, 물리학), 네가시 에이이치 (2010 화학), 오스미 요시노리(2016 생리) 등 5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 가와바타 야스나리 (1968), 오에 겐자부로 (1994) 가 있고 평화상에 사토 에이사쿠(1974)
또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나카스네 야스히로, 하토야마 유키오등 이 있습니다.
소설가로는 야스나리와 겐자부로 외에도 나쓰메 소세키 등이 있고, 새로 일왕(천황) 이 된
나루히토의 비인 마사코 왕후 와 덕혜옹주의 남편 인 대마도주 소 타케유키 등이
있으며.... 한국인으로는 전 고려대 총장 김상협, 건축가 김수근, 철학자 김용옥,
미술가 백남준, 농학박사 우장춘, 유엔 한국대표 김준연과 국회의장 이효상 등이 있습니다.
일본은 요시노 아키라가 화학상, 마나베가 물리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29명 이 되었는데
그 중에 문학상은 3명 이니.... 1968년 설국으로 최초 수상자가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岡成) 와 1995년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郞) 그리고 2017년 가즈오 이시구로
(石黒一雄) 인데......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를 고대한다고 하네요?
"설국" 에서는 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라고 시작하는 첫 문장 이
화제였다고 하지만 반면에 "이즈의 무희" 에서는 마지막 문장이 압권 이라고 합니다.
"배에는 생선과 바다의 냄새가 물씬거렸다. 어둠 속에서 소년의 체온이 느껴지며
나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온통 맑은 물로
변했고 물이 주르르 흐른 뒤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듯 달콤한 쾌감이었다."
이런 다양한 행사 들이 열리는 꿈의 무대 부도칸 武道館(무도관) 에서 오늘은 도쿄대학
입학식 이 열리고 있는데, 일본 면적은 남한의 4배 이고 인구는 2배 반 이니.....
도쿄대는 서울대학교 보다는 지방 학생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게다가 남한은
4각형으로 생겼지만 일본은 남북으로 길쭉 하게 생겼으니 거리는 훨씬 더 먼가 합니다.
지방 학생들의 비중이 높다 보니 입학식엔 멀리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 인데 도쿄대학은
1877년에 법학· 이학(理學)· 문학· 의학 의 4개 학부와 예과 로 설립 되었으며
초대 가토 히로유키는 천민제의 폐지에 ‘천부인권(天賦人權)’ 사상을 펼친 사람입니다.
일본 정부는 도쿄대학에 이어서 교토대학, 도호쿠대학, 규슈대학, 홋카이도 대학 을 설립한
후 6번째 로 1924년에 설립한 제국 대학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이니..... 여기 도쿄대학 교수인 핫토리 우노키치 (服部宇之吉) 가 초대 총장 으로 옵니다.
경성제국대학교(서울대학교) 는 조선총독부 건축과 이와츠키(岩槻) 기사가 콘크리트
골조 벽돌에 황갈색 타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 1926년에 완공을 했습니다.
일본 고교생 중에서 0.2% 만이 합격한다는 도쿄대학 입시 에서 2015년 기준으로 카이세이
(開成高 개성고)가 무려 34년 연속 최다 합격자 를 기록했으니 185명 이고, 츠쿠바대
부속고가 107명, 나다(灘)고 92명의 순인데..... 개성고는 재학생중 46% 합격율 을
보이니, 중고교가 연결된 개성중학교 입시는 도쿄대 입시 이상으로 살벌 하다고 합니다?
카이세이(개성고) 교사진 중에 으뜸은 나카하마 만지로 (中濱 万次郎) 니, 그는 시고쿠섬 도사번
어부로 14세 되던 1841년 고기잡이 배를 탔다 조난 을 당해 태평양의 무인도인 도리시마
에서 143일 만에 미국 포경선 존 하울랜드호에 구조되어 미국으로 가는데 영어와 측량
및 조선술을 배우니 투표로 부선장에 오르고 이후 귀국자금 마련을 위해 금광사업 에 뛰어듭니다.
나카하마는 돈을 벌어 어드밴처호 라고 불린 배를 구입해서 하와이에 내렸던 옛 동료들과 함께 10년
만인 1851년에 귀국하는데,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의 쿠로후네 가 일본에 오자 막부가
발탁해 하타모토 가 되었으며 영어회화집 일미대화첩경 과 보디치 항해술서 를 집필했으며....
1860년 미일수호 통상조약 비준서를 전달하는 견미 사절단으로 간린마루를 조종해 미국에 갑니다.
귀국후 카이세이(開成 개성고) 교사 로 부임했고.... 1870년 보불전쟁 시찰단으로 유럽에
갔는데.... 미국에서 10년을 생활해 영어와 측량, 항해술과 조선술에 뛰어난 개성고교
교사 만지로 이래 현대에도 도쿄대 입시에서 34년간 압도적인 1위 를 지키는 도쿄 명문
카이세이 (開成高 개성고) 는 1895년 조선의 부산에 수입 되어 개성학교 가 세워졌습니다.
1895년에 세워진 저 개성(開成) 학교는 습자선생 한사람만 조선인이었고 교장 부터 모든
교사는 일본인 으로 커리큘럼과 교과서등 모든 교재를 일본 개성학교 에서 수입했고
수업도 전부 일본어 로 진행했으니..... 훗날 부산상고 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모교 인데, 이제 인문계가 되면서 학교 이름을 개성고(開成高) 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까 19세기에 서구 문명 을 도입하면서 "일본인들은 직접 미국과 유럽" 에 가서 시찰하고
4~5년간 미국과 유럽의 대학에서 공부해서는.... 서구문명과 기술을 직접 도입한 반면에
한국인(조선인)들은 일본에 가거나, 일본인 으로 부터 "서구문명을 간접적" 으로 배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