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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22일 수요일
[(녹)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빈첸시오 부제 순교자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7,1-3.15-17
형제 여러분,
1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면 고발하려고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예수님을 어떻게든 망신 주고 혼내는 데만 쏠려 있습니다. 그들은 고통받는 이가 온전해지는 일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마르 3,3). 아마도 고발하려는 자들이 그를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 불행한 모습을 바라보며 연민을 가져 그 무디고 완고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기를 바라셨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먼저 말씀으로 그들을 부드럽게 다독이시며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3,4) 그러나 그들은 끝내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습니다. 입도 마음도 모두 닫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손을 뻗어라.”(3,5)라고 말씀하시고,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곧바로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난 우리이지만, 우리 마음이 때때로 무관용과 적대로 완고해지고 경직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가끔은 마음이 각박해지고 입이 사나워질 때도 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나날에 따스한 연민과 친절함이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 사랑 덕분에 우리가 그리된 것이니까요.(김동희 모세 신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국 문학의 치열함과 높은 품격, 우아함과 섬세함을 전 세계 앞에 드러낸 한강 작가의 한림원 강연 중의 한 표현이 지금 오늘 우리 세월을 너무나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작가의 우리 시대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과 예지력에 큰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찌 그리 몰상식하고 저급한지요? 동시에 폭력적이고 잔인한지요?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리 뻔뻔한지요? 후안무치하고 적반하장인지요?
자신들이 매일 자행하고 있는 일상적 폭력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반인륜적인 것인지? 자신들이 지금 추종하고 맹신하고 있는 대상들이 그릇되고, 얼마나 무모하고 무가치한 것인지? 제발 빨리 깨닫고, 그 끔찍한 죽음의 길에서 돌아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요즘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치유의 은총을 입고, 오랜 장애로부터 해방된 동료 인간을 향해 축하의 박수를 쳐주고, 함께 기쁨을 나누어도 부족할 텐데...
치유자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오히려 그 잘난 안식일 규정을 들이대며 그분을 고발하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름 율법을 오래 전공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 속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에 대한 연민의 마음은 단1도 없었습니다.그저 율법 규정을 들이대며 예수님을 죽음의 올가미에 옭아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인간적인 모습 앞에 분노하신 예수님께서는 노기 띤 표정, 슬픈 얼굴로 외치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 3-4)
세상 구리고 사악한 고발자들의 모습과 요즘 우리 모두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껏 드높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절묘하게 교차되고 있습니다.
법꾸라지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법을 공부했다면, 그 법을 정의와 공정한 판결을 위해 사용해야 마땅한데, 어떻게든 자신과 가족의 비리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합니다. 어떻게든 요리조리 피해가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참으로 가련합니다.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슬프고 사악한 시대지만 일상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표현대로 동시에 이 세계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금수만도 못한 존재들이 널려있지만, 동시에 존재 자체로 기쁨과 위로를 선사하는 천사 같은 존재들도 수두룩합니다.
이 소중한 조국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는 독재자나 폭도들의 먹잇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그 야심한 밤, 그 강추위를 뚫고 국회로 달려가 온몸으로 맞선 꽃같은 사람들, 그분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존재들이시며 길이길이 감사드려야 할 분들입니다.
끝끝내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마음이 오그라 들대로 오그라든 사람들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을 뻗어라.”(마르 3,5)
안식일의 의미: "졸지 마! 세상은 호구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도 안식일 법의 의미에 대한 연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안식은 평화입니다. 평화를 주는 이는 부모이고 창조자입니다. 불안을 주는 부모는 자녀를 사회에 부적응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은 그 평화로서 자녀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안식일에 회당에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습니다. 손은 능력입니다. 자신은 능력이 없어서 세상에 나갈 용기도 낼 수 없다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중앙으로 부르십니다. “네가 주인공이야. 쫄지 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돈 많고 높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시는지만 살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이 호구라는 사실을 보여주셔야 했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들은 이 단순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용기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손을 뻗어라.” 하시고 그는 당당히 어깨를 펴고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당신이 먼저 세상을 이기지 못하면 자녀에게 평화를 줄 수 없음을. 죽음을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자녀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금쪽이’에 은둔형 외톨이가 나옵니다. 엄마가 음주운전 피해자로 사망하자 아들은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말도 안 하고 컴퓨터만 합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컴퓨터 사용을 제한하자 아들은 울면서 이렇게 소리 지릅니다.
“제가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게 훨씬 쉬울 테니까요! 진짜 너무나도 살기 힘든데…. 제 인생에서! 제 가정에서! 진짜 하루빨리 떠나고 싶은 제 가정에서! 인생에서! (컴퓨터가) 유일하게 살길을 만들어주고 있다고요! 유일하게….”
아빠는 왜 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없었을까요? 아빠조차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엄마 옷장을 열어놓고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애들 좀 지켜줘. 내가 더 열심히 할게.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당신은 못 와도 내가 갈 수 있으니까 갈게. 가서 또 잔소리해 줘. 너무 그립다. 미안해.”
아빠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인데,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날 수 있을까요? 부모는 자녀를 위해 먼저 세상을 이겨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크리스 가드너란 자수성가한 한 인물을 그렸습니다. 그는 1954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나 가난, 가정 폭력, 위탁 양육으로 얼룩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드너는 유명 중개 회사에 무급 인턴십을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에 그는 노숙자가 되어 어린 아들과 함께 보호소와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에서 살면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마침내 가드너의 인내심은 결실을 보았고 결국 Series 7 시험에 합격하여 정규 주식 중개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1987년 자신의 중개 회사인 Gardner Rich & Co.를 설립하여 재정적 독립을 달성했습니다. 수천억을 번 가드너는 자신도 아버지 없이 자랐지만, 엄마도 없는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세상을 이겨야 했습니다. 그는 아직 노숙하면서도 자식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대로 누군가가 네게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말하게 두지 마라. 나조차도 마찬가지야. 알겠니? 네게 꿈이 있다면, 그것을 지켜야 해. 사람들은 자기들이 뭔가를 할 수 없으니까 네게도 못한다고 말하고 싶어 해.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가서 그걸 가져. 끝이야. 가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도 세상이 주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어야 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어깨를 감싸며 손을 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은 이런 안식의 참 의미를 살게 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목사님이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가는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최근의 통계를 설명하였습니다. 한때 개신교 신자는 천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팔백만 명이 안 된다고 합니다. 반면에 가톨릭 신자는 이백만 명이 조금 넘었는데 지금은 오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가톨릭 신자의 증가는 세례받는 새 신자도 있지만, 개신교에서 개종한 신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한국에서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신자보다 많아질 거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개신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한 자료에서 두 가지 이유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명품성’이었다고 합니다. 개신교회는 말씀, 친교, 봉사, 나눔이 있어서 좋은데 허전한 무엇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허전함이 ‘영성’인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가톨릭은 개신교처럼 다양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지만, 명품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합니다. 2000년 동안 같은 전례를 이어오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례와 성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에게 가톨릭의 전례, 성사, 수도자, 성직자의 모습은 마치 명품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접근성’이었다고 합니다. 개신교회는 봉사하면서 직급이 있는데, 가톨릭은 그런 직급이 없다고 합니다. 가톨릭은 어느 곳이나 같은 전례와 말씀으로 미사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여행을 가도, 출장을 가도 성당만 찾아가면 미사에 참례할 수 있습니다. 그날 전례는 세계 어디에서나 같기 때문입니다. 저도 성지순례 다닐 때는 제의만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른 미사 도구는 모두 성당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명품은 비싸기도 하고,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명품 같은 가톨릭은 쉽게 찾을 수 있고, 큰 비용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과부의 작은 정성을 칭찬하셨듯이, 가톨릭은 헌금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톨릭이 지닌 소중함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천주교인이요?” 179년 전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심문하던 관원의 말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당당하게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제로서 1년 짧게 사셨지만, 순교로서 신앙을 지켰고, 목자로서 모범을 보였습니다. 지상에서의 삶은 짧았지만,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한국천주교회를 위해 전구하고 계십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한국천주교회의 수호자가 되셨고, 사제들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179년 전에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였습니다.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포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한국천주교회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면서 “당신이 천주교인요?”라는 말을 ‘주제어’로 삼았던 것은 우리들 또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따라서 세상이 주는 평화와 기쁨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가난, 병고,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두려움 없이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제자들은 저마다 이야기하였습니다. “선생님을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선생님을 예언자라고도 합니다. 선생님을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엘리야가 했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이 했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례자 요한이 했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제자 중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베드로이니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나는 이제 천국의 열쇠를 주겠습니다.” 오늘 두 가지를 묵상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당신은 천주교인이요?”라는 질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나는 천주교인답게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육체적인 혈통이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오늘의 성인
성 빈첸시오 (Vincent)
신분 : 부제, 순교자
활동지역 : 사라고사(Zaragoza)
활동연도 : +304년
같은이름 :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사라고사의 주교인 성 발레리우스(Valerius, 1월 28일)의 제자로서 부제품을 받고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던 중, 그 당시 에스파냐의 총독이었던 잔인한 박해자 다치아누스의 명에 의해 순교하였다.
·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303년경에 그리스도교 성직자를 반대하는 두 번째, 세 번째 칙서를 반포했고, 연이어 평신도 박해 칙서를 내놓았다.
성 빈첸시오의 순교 전에 이미 사라고사에서는 18명의 순교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교인 성 발레리우스와 함께 순교할 결심을 단단히 한 후 온갖 고문을 받았다.
다치아누스는 산송장이 된 그의 육신을 황량한 들판에 던져 버림으로써 맹수와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하였다.
· 에스파냐 최초의 순교자로 현재 포르투갈의 수호성인인 성 빈첸시오의 상본은 종려가지를 쥐고 있는 부제 모습이나 철판 위에서 고문을 받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어 있다.
• 성 빈첸시오는 사라고싸의 주교이신 성 발레리오의 제자로서 품을 받고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던 중에 그당시 스페인의 집정관인 잔인한 박해자 다치안의 명에 의하여 순교한 것이다.
디오클레시아노와 막시미아노는 303년 경에 크리스챤 성직자를 반대하는 제 2, 제 3의 칙서를 반포했고, 연이어 평신도 박해 칙서가 나왔던 것이다.
빈첸시오의 순교 전에 이미 사라고싸에서는 18명의 순교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교 발레리오와 함께 순교할 결심을 단단히 한 후, 온 갖 고문을 받았다.
다치안은 산송장이 된 그의 육신을 활량한 들판에 던져 버림으로써 맹수와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한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순교자들을 통하여 계속 승리하십니다."
이 구절은 시인 푸루덴치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순교자인, 성 빈첸시오를 기념하여 부른 찬미가의 일부분이다.
발레리오 주교의 오른팔로서 교구내의 모든 행정, 자선사업을 도맡아 운영하였던 사라고사 지역 교회의 부제인, 빈체시오는 확고한 믿음의 증거자였다.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재위 당시 발렌시아에서 있었던 그의 순교는 상당히 극적이고 처참하였다.
그의 신앙은 동방과 서방세계에 즉시 퍼져, 수많은 민중들의 귀감이 되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강론에서(Sermo 276,1-2: PL 38,1256)
• 빈첸시오는 세상을 쳐 이기신 분 안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라고
사도 바울로는 말합니다.
빈첸시오 부제는 이 두가지 은혜를 받아 두 가지 모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에게서 이 은혜들을 받지 않았더라면 자기 힘만으로는 자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말할 때 용기를 지녔고 고난당할 때 인내심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말을 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말아야 하고
유혹을 당하는 사람은 자기 힘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슬기롭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와야 하고,
어려움을 용감히 견디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내심도 하느님에게서 와야 합니다.
주 그리스도께서 복음서에서 제자들에게 해주시는 권고를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순교자들의 임금으로서
당신의 군사들들 영적 무기로 무장시키시고 그들이 맞아야 할 투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도와주시고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지만,
즉시 그 들의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시고자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빈첸시오가 세상을 쳐 이기신 분 안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무엇이 놀랍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리라."고 하셨지만 이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즉, 고난이 우리를 짓밟는다 해도 우리를 부서뜨리지 못하고 우리를 공격한다 해도
우리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거슬러 두 가지의 공격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속이려고 아첨을 부리고 또 우리를 부서뜨리고자 겁을 줍니다.
우리의 쾌락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잔혹성이 우리를 겁주지 못한다고 할 때 세상은 패배당한 것입니다.
우리가 쾌락과 잔혹성이라는
이 두 가지 공격을 당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맞으러 나오시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패배당하지 않습니다.
이런 공격을 당할 때 고난 가운데 인간이 보여 주는 그 인내심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을 일으키는 하느님의 권능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일이 됩니다.
순교자의 몸에 잔인하게 가하여지는 고통이 큰 만큼 그의 목소리에 나타나는 평온도 그만큼 컸습니다.
그의 팔과 다리에 잔인 무도하게
가해지는 고문이 심한 만큼
그가 하는 말에서 드러나는 확신도
그만큼 강했습니다.
빈첸시오가 고난을 당할 때 고초를 당하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형제들이여, 정말 그러했습니다.
그때 분명히 그러했습니다.
말하는 이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에서 당신의 증인들을 투쟁에 대비시키실 때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너희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때가 오면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육신은 고난을 당하고 영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의 말씀으로 불경건은 패배당했을 뿐만 아니라 나약성은 굳세어졌습니다.
성 빈첸시오 팔로티(Vincent Pallotti)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 1795-1850년
같은이름 :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성 빈첸시오 팔로티(Vincentius Pallotti)는 1795년 4월 21일 로마(Roma)에서 식료품 장사를 하던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스승이었던 돈 페리(Don Ferri)는 그를 “작은 성인이지만 머리는 조금 둔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학업 성취 능력은 향상되었고 1818년 5월 16일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25일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그는 10년 동안 로마의 사피엔차(Sapienza)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 뒤 영성 지도와 강론에만 전념하였다.
보혈회를 설립한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1월 2일)와의 우정에서 고무된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직위를 포기하고 여러 본당에서 사목활동에 전념하였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도적 역할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예견하듯이, 1835년 성 빈첸시오는 변화와 정의에 헌신하고자 하는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모아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야간학교와 직업학교를 세우고 선진 농업기술의 전수를 위한 학원을 세웠다.
학교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제화, 제단 기술과 농업 같은 시장성이 있는 기술을 가르쳤고 그들의 작업에 자부심을 주입시켰다. 그는 수도생활의 기도와 침묵에서만 성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채워주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일했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와 비슷했다.
1835년 그는 팔라티노회(천주교 사도회)를 설립했는데, 성 빈첸시오의 일생 동안 12명의 회원만 있었지만 그 후로 크게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가톨릭 사도직 수녀회도 설립하였는데, 이 수녀회는 후에 팔로틴 선교 수녀회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이탈리아,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에 퍼져 창립자와 같은 이민자들을 돌보았으며,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교인들과의 종교 간 대화를 촉진시키는 데 전문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젊은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은 트라피스트 회원과 은수자들의 엄격함과 침묵에서 잘라져 나온 부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사회관계에서, 당신의 일터에서, 여가 생활 중에, 당신의 가르치는 직무에서, 출판사와의 만남과 죄인들과의 만남에서 거룩해 지십시오. 성스러움이란 단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 언제 어디에나 있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 빈첸시오의 사도적 활동은 자신의 엄격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1837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했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제는 누구나 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환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파로 변장하기도 했다. 1844년 성 빈첸시오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신부를 런던(London)에 사는 이탈리아인들을 사목하도록 파견하였다. 그 후로 그의 수도회는 세계 각지로 뻗어나갔다. 로마의 시민들은 성 빈첸시오 신부를 19세기에 나타난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성 빈첸시오는 자신의 옷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반라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성 빈첸시오 팔로티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다가 1850년 1월 22일 55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1950년 1월 20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 중이던 1963년 1월 20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성 도미니코 (Dominic)
활동년도 ; +1031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소라(Sora)
같은 이름 :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이탈리아의 폴리뇨(Foligno)에서 태어난 성 도미니코(Dominicus)의 어릴 시절 기록은 유실되었고, 그가 수도자가 된 후의 기록만이 다소 남아 있을 뿐이다. 성 도미니코는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된 후 주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예를 들어 소라, 스칸드릴리아(Scandrilia), 상그로(Sangro) 그리고 다른 도시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세우는데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각 수도원의 초대원장이 될 만큼 개척자의 정신이 뛰어났으며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는 새 수도원을 세우기 전까지는 주로 독수자처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다가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일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령사업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는데, 때때로 이상한 기적을 행함으로써 수많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교회를 확장하였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소라에서 80세의 일기로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