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귀 알아듣기
동물 중에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므로 <말 알아듣기>라는 제목을 달면 ‘알아듣기’를 해야 할 대상은 ‘말’이고, ‘알아듣기’라는 말은 ‘귀로 들어서 이해하기’라는 말로 들린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만의 의사소통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말’이란 사람이 자기의 마음에 새긴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일정한 소리의 체계에 따라 발음 기관을 통해 내는 소리이다. 사람이 목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말’이고, 짐승이 간단한 의사를 전달하는 데에 몇 마디 소리를 내는 것은 모든 행동을 표현해낼 수 없으므로 ‘말’이 아니라, 그냥 ‘소리’일 뿐이다. 이런 ‘의사소통’을 ‘번역’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번역’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두 나라말을 연결해서 의사소통을 돕는 행위라고 규정하면 번역을 하려면 두 언어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번역은 언어 사이에서만 이루지는 것이 아니고, 한 나라 안에서도 ‘사투리’는 번역을 필요로한다. 실생활에서 모든 것은 번역을 통해서 의사가 전달된다. ‘번역’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삶은, 곧 ‘번역’의 일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음의 번역은 ‘생각’이고, 생각의 번역을 소리로 옮기면 ‘말’이고 기호로 옮기면 ‘글’이다. 이를 다른 나라 ‘말’로 옮기면 ‘통역’이고, 다른 나라 ‘글’로 옮기면 ‘번역’이며, 통역과 번역을 통틀어 광의(廣義)의 ‘번역’이라 한다.
그래서 제목에서 ‘말’은 목소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전달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고 ‘듣기’란 ‘청각을 통한 이해’라 하기보다는 모든 ‘이해 기능’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자기 집에서 기르는 돼지가 ‘셈’도 할 줄 안다고 호들갑이네 집에 친구가 돼지를 보러 왔다. 호들갑이는 돼지 셈하는 것을 증명하려고 돼지에게 오이 두 개를 주면서 “몇 개지?”하고 물었다. 돼지는 오이를 받아먹으면서 “둘, 둘”했다. 물론 ‘둘, 둘’은 ‘셈’이 아니고 ‘돼지 소리’일 뿐이며, 그냥 ‘맛있다.’ 정도로 번역될 것이다.
“10년을 썼더니 내 컴퓨터가 이제 말을 안 들어!”라고 말하면 우리는 “내가 한 말을 컴퓨터가 알아듣지 못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컴퓨터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로 알아듣는다.
제동장치에서 ‘끼익’하고 나는 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고 의미를 부여하는 소리이다. 이를 번역하면 ‘부딪칠 뻔했다.’, ‘조심하라!’, ‘양보할 테니 건너가라.’ 등등으로 번역된다.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도 엄마는 상황에 맞게 번역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말’도 자동차의 ‘경적’이나 짐승의 소리, 자연의 ‘소리’도 번역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화 중에 “말이 안 통한다.”라면서 답답해한다. 이 말은 듣는 이가 말하는 이의 말을 잘못 번역했다는 뜻이다. 1970년대에 월남에서 온 약사(藥師) 응웬(Nguyen) 부인의 이야기는 이렇다. 월남에서 한국인 미술가와 결혼해서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네 살이 되도록 말을 할 줄 몰라, 내심 가슴앓이를 했었는데, 어느 날 불현듯 아이가 연필을 들고 “시곤”이라고 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왜 ‘연필’을 ‘시곤’이라고 하는 지가 석연치 않았다. 문제는 아이의 부모에게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엄마에게 영어로 소통하고, 엄마는 아이에게 월남어와 프랑스어로 소통했다. 아이는 아빠의 말도 엄마의 말도 다 이해하지만, 자기는 어떤 말을 써야 할지 기준이 잡히지 않았었다. 말은 하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 ‘시곤’이었다. ‘시곤’이라는 제3의 언어를 창조한 것이었다. 아이가 ‘연필’을 자기 자신의 말로 번역한 ‘물건 이름’이다.
외국에서 자녀와 함께 살다 온 어느 한국 분의 이야기는 이렇다. 귀국해서 한국초등학교에 전학해 들어갔는데, 국어시험에 “네모 안에 답을 채우세요.”라는 지시대로 아이는 글자를 크게 써서 네모를 꽉 채워 써넣었다. 이 답안지를 보고 선생님께서 “대문짝만하게 써넣었구나!”라고 말했는데 아이는 ‘대문짝만하다’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번역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 한 아이의 아버지는 외국 여러 나라에 외교관으로 지내는 동안, 그 아이는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니느라 한 나라의 말을 채 익히기도 전에 다른 나라 말을 접해야만 했다. 살았던 여러 나라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하나의 통일된 말은 정립이 되지 않아 귀국한 다음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할 수 없었다. 통일된 하나의 말로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방 사투리를 모르는 사람은 번역 없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강북삼성병원 앞을 지나 서울역사박물관에 이르기 전에 왼편(지금은 <박물관 마을>)에 “궁중국시”라는 간판이 보였다. ‘국시’가 뭔지 궁금하긴 해도 일부러 내려서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궁중국시’가 뭐냐고 물어왔다. 드디어 알아봐야 할 계기가 되었기에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내려 찾아가 보았다. ‘국수’집이었다. 훗날 은사님께 그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밀가로>로 만든 건 <국수>이고, <밀가리>로 만든 건 <국시>지. <봉지>에 담은 건 <국수>이고, <봉다리>에 담은 것은 <국시>지. 국물을 <혀>로 핥아먹으면 <국수>고, <쎄>로 핥아먹으면 <국시>”라는 것이다. 나는 ‘국시’를 제대로 번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영어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젊은이가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옆에 경상도 할머니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연 할머니가 소리쳤다.
“왔데이!” 버스가 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젊은이는 “What day?”(오늘이 며칠)라고 묻는 줄로 알고, “Monday!”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뭔데?”라고 말하는 줄로 알고, “버스데이!”라고 대답했다. 젊은이는 “버스다”라는 말을 “Birthday”라는 줄 알아듣고, “Congratulations!”라고 ‘축하합니다.’라 했다는 것이다. 잘못 듣거나 이해하지 못한 말은 제대로 번역이 될 수 없다.
문화의 차이를 모르면 제대로 번역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예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모습을 “보름달 같은 얼굴, 삼단 같은 머리, 초승달 같은 눈썹, 샛별 같은 두 눈, 마늘쪽 같은 코, 소라 같은 귀, 복숭아 같은 두 뺨, 앵두 같은 입술… ”로 묘사한다. 문화가 다른 나라의 사람이 본래의 뜻을 모르고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미인의 초상’이 아니라 ‘추녀의 초상’ 아니면 ‘외계인의 초상’으로밖에는 묘사될 수가 없다.
남국 여행 때 여행안내자의 이야기에, 먹다 남은 김치를 들고 청정국가에 입국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금지’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옛날이야기에서 금기(禁忌)를 깨버리기라도 하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먹다 남은 김치를 다시 포장해서 냄새를 풍기며 굳이 입국장에 들어서다가 발각되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여행자는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Look at me once.”라고.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한번 (쳐다)봐주세요.”이다. 관리 담당자는 ‘특혜’를 달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리 없고 “행여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잘 살펴봐 주세요.”로 받아드리고 낱낱이 검사하여 입국에 허용되지 않는 것은 모조리 내버린다.
그런 일이 매일같이 발생하므로 출입국 관리 직원은 다른 어느 것보다 우선 여행자의 짐에 김치가 들어있는지부터 검사한다고 한다. 그래서 발각되면 여행자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예외 없이 “Look at me once.”라고 말한다. 그러면 직원은 십수 년간 겪은 일이라서 아예 이력이 붙어서 그 여행자가 말하려던 본래의 의미, 다시 말하면 틀린 영어 속의 행간을 파악하고, 이미 준비해둔 말로 점잖게 “No soup!”이라는 대답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 번만 봐주세요.”(Look at me once)라고 하면 “Please let me pass” 또는 “Just this once”라는 뜻으로 번역할 줄도 알고, 그에 대한 대답도 우리말처럼 “국물도 없다.”라고 번역해 쓸 줄도 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어는 ‘아름다운 말’, ‘정확한 말’로 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명확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말이 아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영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이다.” (Ce qui n'est pas clair n'est pas français; ce qui n'est pas clair est encore anglais, italien, grec ou latin. - Antoire Rivaroli )라는 말을 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프랑스어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이를 대표하는 기관이 1635년에 추기경 리쉴리오(Richelieu)가 설립한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emie francaise)이다. 바른 프랑스어를 지키려는 가장 값진 노력의 결실은 1694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프랑스어 사전’의 초판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프랑스어가 생각처럼 배우기 쉬운 말이 아니다. 글자 익히기도 어렵지만, 발음 또한 어렵다. 된 발음이 나오지 않는 다른 외국인들은 정확한 프랑스어를 구사하기가 좀 힘들다. 우리말에는 된 발음이 있어서 그런 염려를 할 필요는 없겠다. 우리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도 쉽다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말이 배우기에 그렇게 쉬운 말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 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한다. 특히 영어는 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1979년 빠리의 어느 광장 한구석에 한 미국인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면서 우표 석 장을 달라고 했다. 상인이 우표 한 장을 내밀자, 여행자는 다시 두 장을 더 달라고 했다. 상인은 이번에도 한 장만 주었다. 여행자는 다시 한 장을 요구했다. 나는 그 프랑스 상인이 프랑스의 자존심을 내세워 아마 못 알아들은 척했을 것이라고 소박하게 생각했다. 프랑스말이 아니면 대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에는 프랑스인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였다.
훗날 그것은 하나의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알았다.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빈둥거리던 때에 프랑스에서 구매단 30여 명이 몰려오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알선으로 그들을 다섯 단체로 나누어 통역을 맡게 됐다. 그들을 국내 유수 회사들에 안내하여 갈고닦은 실력으로 통역을 하려던 것이었는데, 그들에게는 전혀 통역이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영어를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일부러라도 영어를 쓰지 않으려고 한다는 옛날이야기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들이 영어를 말하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장애는 그들에겐 매우 매우 어려운 영어 발음에 있었다. ‘나는 행복하다’(I am happy)를 ‘아이(이) 암 아삐’라고 발음한다.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한남동’(Hannam-dong)으로 가자고 할 때 운전기사의 귀에는 ‘안남동’이라고 들린다. 프랑스 대사관이 있는 ‘합동’도 그들은 ‘압동’이라 한다. 이런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것들은 그런대로 넘어간다. 더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말이 마치 우리말처럼 들리는 경우이다. 한 학생이 수업 중인 강의실 문을 열어 휘둘러본 다음 얼른 물러서며 문을 닫았다. 프랑스인 교수가 혼잣말처럼 “누구지?”라고 했다. 프랑스말 표현에 아직 서툰 학생들 대부분은 그 말을 욕설로 알아들었다. ‘누구지?’라는 프랑스 말(C’est qui?)의 발음이 ‘새끼’로 들렸기 때문이다. 문을 열었던 그 학생의 귀에까지 그 말이 전달되어 그 학생은 그 말의 뜻을 깨닫게 될 때까지 욕먹은 걸 분해했다. 한 조그마한 무역회사에 프랑스말을 쓰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는데 손님을 맞으러 김포공항으로 달리던 중 차로(車路) 다툼이 벌어졌다. 한국인 운전기사가 밖으로 나가 상대편 기사와 옥신각신하는데, 차 안에 있던 프랑스인이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웬일입니까?”하고 소리쳤다. 상대편 기사는 프랑스인이 자기에게 욕을 했다고 더욱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웬일입니까?”라는 프랑스말(Qu’est-ce qu’il y a?)은 ‘[kesekiya!]’로 들린 것이다.
“이게 뭐야?”라는 프랑스말(Qu’est-ce que c’est?)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kesekilse]’로 들린다. “이게 누구 겁니까?”라는 말(C’est à qui?)도 ‘세탁기’로 들린다. 헤어질 때 인사말(Au revoir)도 우리에게는 ‘오리발’로 들린다.
프랑스 대사관(주한)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구청 청소과에서 정화조(淨化槽)를 청소하라는 공문이 왔었다. 한-프랑스 사전이 없던 때라 그 정화조를 프랑스말로 뭐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국 전란 때 프랑스 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운전기사가 정화조의 모양을 오랫동안 수화를 섞어가면서 설명한 후에서야 프랑스 경리직원의 입에서 “포쎕띡”이라는 단어를 끌어내게 되었다. 그때 대사관 건축을 담당했던 교수는 그 말을 듣더니, “아! 그래! 맞아! 정화조는 네 단계로 만들어졌지!”라고 했다. 프랑스어 ‘포쎕띡’을 영어 ‘four steps’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포쎕띡’(fosse sceptique)은 직역하면 ‘회의적인(의심스러운) 구덩이’로밖에는 다른 뜻이 없는데, 왜 그런 말이 ‘정화조’라는 말이 되는지 지금도 여전히 ‘의심’스럽다.
하기야 우리나라의 옛 관직 명칭들을 보면 모두 한자의 결합인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한자의 뜻을 풀어서 아무리 엮어 넣어봐도 그 직책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 산더미처럼 많다.
광주에서 근무할 때가 1980년대 전반이었는데 그때 주로 나이 든 분들을 중심으로 ‘정화위원’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그들은 집마다 ‘정화조’ 청소가 잘 돼 있는지 검사하러 다니는 것이 주된 업무이었다. 오물을 모아둔 ‘의심스러운 구덩이’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 ‘정화위원’의 일이라는 뜻인 듯하다.
나라마다 말이 다르다. 신화에 따르면 세상에는 말(言語)이 하나밖에 없어서 누구나 다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바벨탑을 쌓던 중 수많은 말이 생겨나서 탑을 쌓는 일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세상의 말이 하나일 수는 없다. 말은 역사, 지리, 사회, 환경 등 여러 요인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또는 번역을 통해서 소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만, 이 세상 어느 나라엔가에서는 우리가 쓰는 말, 더 나아가 우리의 이름이나 성(姓)까지도 그 발음이 ‘욕설’로나 ‘비속어’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국 여행에서도 우리가 하는 말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로 들릴는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위에서는 ‘말’과 ‘소리’를 통해서 의사소통이 잘못 된 경우를 이야기 했는데, 말을 새겨들어 번역해야 하는 것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반대말로가 아니면 번역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즉, 그 ‘침묵’을 번역해야 하는 일이다. 즉 행간(行間)의 번역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빗대어서 하는 말도 그 행간을 읽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책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가방에 넣어가길 바라며 그 책을 건넸더니, 친구가 하는 말은 이러했다. “소금 냄새? 염전이 가까이 있나?” 그 숨은 뜻을 번역해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 뜻은 “짜다”는 것이었다. 봉투를 아끼려고 책만 불쑥 내밀었다는 얘기였다.
한 친구는 지인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여러 날 만에 병원을 찾아갔다. 지인은 아직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문병해줘서 무척 반갑고 고맙다고 하면서 “내가 입원했다는 말을 친구들한테는 하지 말게.”라고 말했다. 친구는 고민했다. 친구들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왜냐하면, 지인이 하는 말의 행간을 읽어낸다면, 그 말의 뜻은 “입원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꼭 알려주게~”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어떤 외로운 할머니가 늘 하는 말이 “이제 죽어야 하는데!”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이 그냥 ‘푸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여러 번의 전란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다 곁을 떠나갔다. 항상 대문을 잠그지 않고, 50년째 소식을 모르는 막내를 기다리며 그날그날을 보내는 할머니다. 할머니의 ‘푸념’ 행간에는 ‘반대말’이 들어있다. 왜일까? “막내를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참 명절 땐 내려오지 말그라 잉! 길도 무진장 맥힐 것이고, 오는데 솔찬히 힘도 들 테니… 그리고 차례상 준비는 걱정도 하들마라. 다 알아서 헐팅게…”의 숨은 뜻을 번역하지 못할 사람은 이제 없으리라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반대말이 쓰일 때가 아주 많다. 둘이서만 아는 일이라면서 상대에게는 “절대 비밀”로 할 것을 다짐해놓고서 뒤로는 모든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들은 말을 반대말로 번역할 정도로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이런 ‘반대말’ 번역보다 더 어려운 것은 ‘침묵’을 번역하는 일이다.
긴급하고 중대한 순간에 책임 있는 사람의 ‘한마디’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기대와는 달리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행간 속에 무수히 끼어 있을 그 ‘침묵’을 어찌 다 번역하리! ‘침묵’을 대신하는 ‘몸짓’이나 ‘눈짓’ 또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는 더 말해 무엇 하리!
역사상 왕의 ‘침묵’을 잘 번역하는 신하는 ‘충신(忠臣)’ 아니면 ‘간신(奸臣)’이다. ‘침묵’의 행간에서 ‘간언(諫言)’할 마음을 잘 읽어내는 신하를 충신(忠臣)이라 이르고, 그 ‘침묵’ 속에서 ‘간언(間言)’할 묘안 찾기에만 일생을 바치는 ‘요신(妖臣)’을 간신(奸臣)이라 이른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을 되새겨 봄 직하다. 중국 진나라에서 진시황을 보필했던 승상 조고(趙高)가 시황제 사후에 이세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이를 ‘말(馬)’이라고 했다. 이세 황제가 “그건 사슴이 아니라 말이오.”라고 하자, 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조고의 말이 맞는다고 말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면 ‘사슴’은 ‘말’로 번역된 것이다.
‘번역’은 본래의 뜻을 ‘정직’하게 전달하는 데에 그 본의가 있다.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번역’이란 어려운 것이다. 다시 말해, ‘말을 알아듣기’란 참으로 대단히 어렵다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