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어린 시절 60~70년대 삶이 궁핍하여 끼니를 제대로 먹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 친구는 아버지가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아들 둘 딸 둘과 함께 살면서 밥을 거의 먹지 못하고 가을부터 봄까지는 고구마에 동치미로 끼니를 대신했고 봄이면 산에 나아가 봄나물을 뜯고 도라지 캐고 더덕을 캐고 팔아 생활하고 쑥을 뜯어서 죽으로 끼니를 대신하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자랐으니 얼마나 가슴에 한이 맺혔겠는지 상황이 이해가 간다.
나는 십대 후반에 도회지도 나와서 친구를 보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지만 명절이면 며칠 회사의 휴무로 시골에 갈 기회가 생긴다. 용산에서 완행 열차를 타면 나주 영산포까지 꼬박 14시간을 서서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2시간을 더 가야 고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십대 초반 어느 명절에 그 친구를 만나는데 임신을 했는지 배가 만삭이었었다. 그때가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이 된다.
어린 시절 논이 없고 밭만 조금 있어 찐 고구마로 겨울을 근근이 넘기고 봄부터는 남의 집 일해주고 나물 캐고 쑥 캐서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살았던 친구 얼마나 가난에 한이 맺혔으면 그렇게 지독하게 살았을까? 자신의 몸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왜 몰랐을까?
백혈병이라고 선고 받고 한 달 만에 영원히 돌아 올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에 나는 창자가 뒤틀리는 느낌을 들었다. 옛 어르신들 중치가 매긴다고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작년에도 한 친구가 혈액 암으로 세상을 그만 둔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아직은 갈 나이가 아닌데 왜들 그렇게 바삐 앞서가는지 인연의 끈이 하나둘 끊긴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모래 같은 인연 중에 벌써 어릴 적 친구들이 6명이나 저 세상으로 영원히 여행을 떠났다. 공부 잘하고 잘 생긴 정수, 우리 동네에서 대학을 나와 약사가 되었던 충원이, 남편과의 말다툼으로 남편이 집에 불을 질러서 동반 자살 한 승자, 어린 시절 동생과 밥 먹다가 젓가락으로 장난하다가 신경을 잘못 걸 들어서 편마비가 되었다가 20대 초반에 세상을 뜬 부곤이, 혈액 암으로 작년에 세상을 떠난 성봉이, 며칠 전 백혈병으로 죽은 연례, 그들은 아마도 내 기억 속에서 특별한 감각을 건들이며 잠자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연이 하나둘씩 내 머릿속에서 멀어져 가면서 그들과의 추억도 서서히 잊혀지겠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다. 때로 의도하지 않은 인연으로 때로 필연적인 인연으로...
하지만 내가 조금만 수고를 하면 아픈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소중한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기회를 찾게 하여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라도 하고 싶다.
살아오면서 가장 귀한 인연의 소중함이야말로 한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어렵픗이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