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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삶을 사는 사람들
땀 흘리며 하느님가까이 살고계신 윤정현신부님
글.사진 백송희 편집위원
고창 반암마을에 윤정현신부님을 뵈러갔다. 불현 듯 봄이 온 듯 따뜻해서인지 남쪽에서 홍매화 소식이 올라왔다. 고창은 아직 기다려야 꽃소식이 있을 터이지만 신부님은 집 앞에서 봄바람 같은 미소로 맞아주셨다. 돌잔치를 이틀 전에 했다는 우주부터 방학을 맞아 내려 온 공동체 아이들과 잠시 머무는 순례자 달, 신부님 집은 크고 작은 ‘나’들이 어우러진 공동체였다. 신부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그 자신이 자기 성씨의 시조이다. 입양이 아닌 각성받이로 이뤄진 가족이라니 멋지다. 마당에는 강아지들이 뛰어다닌다. 집 안팎으로 어린생명들이 뛰노는 반암마을에서 옛이야기처럼 편하게 풀어주시는 신부님 이야기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신부님이 사는 반암마을은 신선이 놀러왔다 술을 마셨는데 기분이 좋아 2차 3차 더 마시다가 술에 취해 넘어져 하늘에서 보면 신선이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넘어지면서 병을 놓쳐 술병이 거꾸로 박힌 병바위 바로 밑에 신부님의 선석농원이 있다. 농원 한 곁에 컨테이너에 흙을 바르고 돌을 쌓아 소박하게 손수 지은 신부님의 공부방 ‘고영재’가 있어 찾아오는 손님들이 차 한 잔과 신부님 이야기 한 자락에 취할 수 있다. 그림자를 돌아본다는 뜻을 가진 이곳은 전기도 수도도 없기에 이곳의 시간은 자연과 함께 흘러간다.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하늘과 가깝게 살 수 있다’ 는 다석 유명모 선생님의 사상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2015년 반암마을에 터를 잡았다. 교회에 다니느라 노동의 신성성을 강조하신 유영모선생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땀 흘리며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산속에 들어오셨다고 한다.
“산속에 들어와서 사니 재미져요. 4시간 이상 일을 안 해요. 내가 즐겁고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니 힘이 안 들고 의욕이 생기고 건강해집니다. 하고 싶어서 하니 모든 일이 저절로 돼요. 노자의 무위자연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억지로 하지 않고 하고 싶어서 하니까 그냥 일들이 저절로 되는거야.”
신부님은 농사를 짓는 저절로 이루는 삶에 대해 다섯 가지로 정리해 얘기해 주셨다.
첫째 무위자연의 하나님이다. 다석의 하나님은 어떤 일에도 개입하지 않는 무위자연의 하나님이다. 중학교 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를 스스로 소통하며 풀어가길 바라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보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초월적인 하나님은 서양역사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깨졌다.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갔지만 신부 역시 페스트로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 때 하나님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 인문학이 싹텄다. 르네상스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리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하나님은 있다하면 없고 없다하면 있는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결국 무위자연의 하나님이다. 장일순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다. 좋아서 하면 기뻐서 하면 그것이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뜻이다. 곧 무위자연의 하나님이다.
두 번째는 모든 생명은 하나다. 하나로 귀일신앙. 모두 하나와 연결되어 있다. 다석은 ᄒᆞᆫᄋᆞ는 큰 나. 우주의 하나, 대우주 작은 하나 할 때는 그냥 하나라고 썼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로 돌아간다. 하나님, 절대자, 자연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미생물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의 신앙이다
“움막을 지으면서 주변의 돌들을 이용해서 담을 쌓다보니 먼데 있는 것도 옮겨오고 그랬는데 하루는 돌멩이를 옮겨오는데 밑에 구멍들이 있어요. 거기가 집인 생명들이 있는건데 생각해보니 남의 집을 뜯어서 내 집을 짓고 있는거야. 산에 들어갈 때 어머니들이 제가 산속에 들어가도 됩니까 물어보고 들어가라고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가져오지 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거야 그래서 그 담부터는 땅을 파가지고 남의 집 아닌 것으로 가져다 지었지. 뒷산이 돌산이여서 흙을 걷어내면 전부 돌이야 구들 짓는데 쓰는 돌이 나오는 산 이여서 깨서 사용했어요. 숲속에서 바위를 훔쳐오는 안하고 새로운 재료를 구하게 된거지. 아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사는구나. 하루는 이슬이 많은 내린 날 아침 숲에 들어가 보니까 숲속 모든 곳이 거미줄이야 은방울처럼 온 산에 물방울들이 거미줄에 걸려 있어요. 내가 거미집을 함부로 다녔구나 산속에 들어갈 때 조심히 들어가야겠구나를 배웠어요. ‘산에 들어가도 됩니까’ 실제 그래야겠더라고”
세 번째는 자연 속에서 명상하며 살면 삶이 조화롭다.
“일단 자연 속에서 사니까 일찍 자게 돼요. 깜깜하니까. 늘 새벽미사를 들인 경험으로 새벽에 일어나게 되요. 새벽잠을 안자고 일어나면 그 때부터 명상을 하는거야. 명상을 하면 명상을 하는 시간동안 하루일이 전부 정리가 되는거예요. 무엇을 어떻게 할까 할 일이 다 정리가 돼요. 거기에 따라서 일을 하면 그냥 순조롭게 조화롭게 일이 진행이 되거든요. 무엇부터 해야할지 다 보이는거야. 조화롭게 일들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나요.”
네 번째는 농부 안에 나타난 나의 하나님을 만났다.
“다석선생님은 도덕경을 1959년에 순우리말로 해석을 했어요. 늙은이풀이 늙은이는 늘 그런이야 도를 깨달은 변함이 없고 늘 그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존중하고 원로로 모시는 그런 분이죠. 요사이 늙은이는 천덕구러기 같이 대하는 그런 분이 아니라 늘 그런 분이기 때문에 어느 공동체나 원로가 돼서 그분 말을 다 따를 수밖에 없는 그런 분이야. 원래의 그 의미로 회복해야지 다시 어른이죠 그야말로 본받고 따를. 군립도서관에서 매주 목요일 마다 늙은이 풀이 공부를 했어요. 사람들이 은퇴해서 귀촌해서 살지만 시골문화하고 맞지가 않아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를 않아 그래서 잘 통하지 않으니까 다들 외톨이가 되어 있는거야. 그 나름대로 유기농을 하고 농약 안 쓰고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만 시골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니까 왕따를 시키는거야. 도덕경을 공부를 시작하니 한 사람 한 사람 나와서 얘기를 하는데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거죠.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되는거야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얘기하다보니까 도덕경농법을 하는 사람들, 우리가 이렇게 시골에 나와서 생명농업 유기농업 이런 것들을 고민했던 사람들이 보이는거예요.”
신부님은 도덕경 농법으로 포도농사를 지은 도덕현님의 이야기를 글로 쓰셨다. 신부님의 글을 그대로 옮겨온다.
농부 안에 나타난 나의 하느님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2008년도 무자(戊子)년 1월 2일 밤에 나는 다석 유영모 선생의 죽음 선언을 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산 것처럼 하느님만을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묵상을 하였습니다. 생시인지 묵상 중에 꿈을 꾸는 것 같은데 나는 인생의 선생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참 시골 숲을 지나가다가 텃밭을 가꾸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농부는 말없이 정성을 다해 식물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식물과 꽃을 돌보고 있는데, 농부가 만지는 식물은 싱싱하게 자라고 화초는 크고 탐스럽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하도 신기해서 농부에게 다가가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본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었는데, 이러저러하게 살다보니 농사를 짓지 못하고 농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농사를 짓자니 이미 늦은 것 같아 후회가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언제든지 찾아오면 농사를 짓게 하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문득 농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농부를 나의 인생의 선생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농부로부터 심오한 인생의 의미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그 농부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농부가 온갖 가지 꽃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전에 보았던 꽃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예뻤습니다. 농부는 잘 찾아 왔다고 하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쁜 꽃을 하나 주면서 키워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주어도 잘 키우지 못하고 죽일 것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쉽게 키울 수 있는 잔디 씨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것도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농부에게 어떻게 하면 이렇게 꽃과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빙그레 웃으며, “아낌없는 마음과 사랑을 식물들에게 주면 저절로 자라는 거야. 너도 할 수 있어. 사심 없이 너의 마음을 꽃들에게 주어봐, 저절로 자라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즉시 이분을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농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 그대로가 진리로 보였습니다. 나무, 풀, 작은 돌멩이, 지렁이 등등 사물들이 있는 그 차체로 진리를 드러냈습니다. 하찮은 사물도 진리로 드러났습니다. 모든 것이 진리 그 차체였습니다.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진리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찮은 사물로 여겼던 그 자체가 모두 진리였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진리를 모르고 그렇게 먼 길을 찾아다녔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온 나의 인생길을 보니 참으로 먼 길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 보였습니다.
진리는 가까운 것에 하찮은 미물 가운데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가 모두 진리였습니다. “진리는 있는 그대로 통하는 거야. 어려운 철학도 농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농부의 평범한 말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야. 정치나 경제도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농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농민들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거야.” 상황과 현실에 맞게 그 사람의 언어로 평소 대화하는 식으로 말해야 하는 거야”라고 농부는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나누다가 나는 어느 덧 강원도 깊은 산골에 와있었습니다. 산골 어느 집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촌의 조그마한 가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전에 나의 인생의 스승으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농부가 다가왔습니다. 농부는 정이 넘치는 마음으로 다가와 다정다감하게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이 깊은 산 속까지 왔으니 뭐라도 한 가지 먹고 가야지.” “선생님을 뵈었으면 되었습니다” 저는 한사코 사양을 하였으나 농부는 나의 손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그러면, 여기 있는 과자나 우유를 마시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산골에 왔으면 산골에서 생산되는 감자나 고구마를 그냥 깎아먹거나 구워서 먹어야 제 맛이지, 가공식품은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아. 사람들이 왜 그것을 모르고 산골에서 과자나 가공식품을 파는지 몰라. 그 땅에서 나는 감자나 고구마를 있는 그대로 먹도록 하거나 구워서 먹어야 해. 앞으로는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고 이런 곳을 찾아와 있는 그대로 먹는 시대가 곧 올 거야”하고 농부는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을 주고받다가 주위를 바라보니, 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있는 그 자체로 진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이분이 하느님이시구나. 하느님은 아주 가까운 곳에 평범한 사람으로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벌떡 깨었습니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꿈을 곰곰이 생각하며 묵상을 하였습니다. 꿈속에서 진리라는 사실을 느껴졌을 때, 너무 기쁘고 황홀했는데 일어나서 꿈속에서 보았던 것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자 여전히 희열 같은 기쁨으로 나의 마음은 벅찼습니다. “하느님께서 찾아오셨구나, 하느님께서 친히 어제 밤 나의 꿈속에서 나타나셨구나”하고 되뇌며 기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2018년 9월 1일 고창 성송에 있는 희성 농장의 대표 도덕현 농부를 만나 10년 전에 꿈속에서 뵈었던 농부를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토양, 공기, 토양균 방선균이 서로 작용하는 순환농법으로 포도나무를 기른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상생하는데, 도덕현 농부는 포도나무와 소통하며 마음을 주고 사랑을 나눈다고 하였습니다. 주는 사랑만큼 포도나무는 열매로 보답하듯이 14년 5개월 된 포도나무 한그루가 4,500송이를 맺고 있었습니다.
도덕현 농부의 포도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10년 전 나의 꿈속에서 농부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낌없는 마음과 사랑을 식물들에게 주면 저절로 자라는 거야. 너도 할 수 있어. 사심 없이 너의 마음을 꽃들에게 주어봐, 저절로 자라나...”
마지막으로 나는 자연의 일부고 자연이다.
“여기서는 소비할 것이 없다. 시골 살면 자연과 함께 살 수 밖에 자연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내가 자연이고 모든 남의 덕분에 내가 산다. 여기 이 종이는 물이고 곰팡이고 구름이고 나무지요. 이 종이 원료인 나무를 키우는 것이 구름에서 내리는 빗물이고 흙속의 수많은 미생물이고 지렁이고 나 역시 나를 이루는 수많은 자연이고 그 일부니까 내가 나무, 나무가 나일수도 있고 순환과 상생 속에서 자연과 하나라는 것을 느끼면서 삽니다.”
신부님은 오골계와 젖을 짜는 유산양과 개들을 키운다.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농원을 둘러보았다. 신부님이 전날 태어난 유산양 새끼들이 밤새 안녕한지 걱정을 하셨는데 하얀 유산양의 새끼 양들은 건강하게 엄마를 따라 돌아다니고 있었다. 까만양 새끼는 어미 곁에서 순하게 잠자고 있다. 하얀 새끼양이 엄마를 따라하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걸으면 걷고 멈추면 멈추고 뒤돌아보면 뒤돌아보고 저절로 엄마를 따라한다. 저절로 자연이다.
얼마 전 신부님은 가축기르는 아저씨에서 신부님이 되셨다고 한다. 매일 양과 개들의 먹이를 주시던 식당 아주머니께서 어떻게 성공회신부님인지 아셨는지 이상하다고 하시더란다.
“가축기르는 아저씨인줄 알았는데 쓰레기수거반 신부님이네. 이상해요.”
“괜찮아요. 쓰레기 수거하는 신부라고 부르세요.”
“그래도 이상해요.”
"우리 집에 사는 생명은 모두 쓰레기 수거원이예요. 먼저 개가 소화하고 그 다음에 선양이, 산양이 소화시키지 못하면 오골계가 쓰레기를 치우니 모든 것이 순환되어 쓰레기가 하나도 없게 돼요."
신부님이야기를 다 하자면 책 한권으로도 끝나지 않겠다. 소다석의 내력도 재미지지만 지면상 넣지 못했다. 늙은이 풀이 도덕경 책을 보니 무위당선생님 노자이야기도 함께 공부하시는 듯 했다. 언젠가 윤정현신부님의 늙은이이야기를 연재해도 좋겠다. 하루를 같이 보냈더니 아이들이 잘 웃어준다. 또 놀러 오라고 한다. 신부님집의 온 가족이 봄바람 같은 미소로 배웅을 해준다. 선운사 동백이 필 때 다시 보자는 인사로 신부님 댁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