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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바다의 복수
사실 콜레라는 1926년에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여섯 차례의 대유행병으로 세계를 유린한 ‘고전형 콜레라균O1형’이라는 특정한 균주는 멸종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기 전에 교활한 후손을 남겼다. 그것이 서식하는 바다의 변화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기회를 이용하기에 특히 적합한 균이었다. 이 신종 콜레라균은 강과 어귀, 호수와 연못에서 고전형 콜레라균 O1형보다 최소 세 배 이상 오래 생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특히 회복력이 강해 항생제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 콜레라의 후손은 1904년에 시나이 반도 서해안에 있는 엘토르 검역소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 중에 설사로 사망한 여섯 명의 시신에서 검출된 것인데, 공종보건 전문가들은 1970년대까지 그것을 대유행병을 초래할 수 있는 병원체로 인식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 새로운 비브리오균이 전 세계에 콜레라를 일으킨 고전형 콜레라균 O1형에 비해 보잘 것 없어 보였다. 조사관들은 그것이 콜레라균이 아니며,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비브리오균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그냥 그것을 처음 발견한 장소의 이름을 따서 엘토르 비브리오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의료계는 이 균을 까맣게 잊었다.
엘토르 비브리오는 1937년에 다시 수면 위로 나타나, 인도네시아의 남술라웨시 연안에 고리 모양으로 형성된 일련의 고립된 저지대 산호섬인 스페르몬데 군도에서 집단 발병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이 균은 국제적인 관심을 피해 갔다. 감염자의 65%가 사망했음에도 질병이 술라웨시의 외딴 지역을 벗어나서 확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는 그것이 콜레라에 의해 초래된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WHO는 엘토르 비브리오가 일으킨 질병은 현지 상황에 영향을 받은 특이현상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의사 콜레라라고 칭하고 방역을 위해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역, 감염자와 그들이 접촉한 물건의 엄격한 격리, 소독, 대중 면역 형성 같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타당하지 않다”고 WHO는 보고했다.
알고 보니 이것은 대유행병을 조기에 진압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스페르몬데의 환경 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엘토르 발병의 성격도 변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서 강수량 증가와 강력해진 폭풍우, 해수면 상승이 술라웨시를 계속 강타했다. 강수량이 매년 5~7센티미터씩 증가했고, 폭풍우 때문에 노련한 어부들마저 바다에서 배를 잃었다. 해수면 증가로 우물은 늘 짠물로 오염되었다.
1961년, 엘토르 의사콜레라는 그 범위를 극적으로 확대하여 이제 술라웨시를 넘어 다른 인도네시아 지역을 물론이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태국까지 강타했다. 그해 여름에는 중국 남부의 광동 지방에서 엘토르가 발생하여, 서구 논평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3천 명에서 4천 명이 사망했다.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마을 전체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그곳에서 엘토르는 홍콩으로 침투했고, 마침내 콜레라의 심장부인 남아시아로 들어갔다. 그것은 진짜 콜레라가 아닌 의사콜레라로 위장하고 다녔기 때문에, 콜레라에 관련된 검역과 통지에 관한 국제적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기후 변화가 감염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기상 이변이 결합하여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감염병 발생의 양상을 결정한다. 2006년 야생 흑고니가 기존의 이동 패턴을 바꾸어 결과적으로 유럽 20여 개국에 H5N1을 퍼뜨리게 된 것은 갑자기 닥쳐온 겨울 한파 때문이었다. 1999년 모기가 뉴욕 시 하수구에서 4계절 내내 알을 낳고 번식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겨울 날씨 때문이었고, 뒤이어 찾아온 여름 가뭄은 목마른 새들을 웅덩이에 모여들게 하여 결과적으로 뉴욕에 최초의 웨스트나일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만들었다.
환경적 조건이 이런 전염병 발생의 양상을 결정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누가 어떻게 그것을 예측할 수 있을까?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대열원충처럼 환경적으로 민감한 병원체를 생각해 보자.
강우량의 증가는 말라리아의 증가로 이어질 수도, 아니면 오히려 말라리아의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뭄도 말라리아의 증가 또는 말라리아의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날씨와 감염병 사이에 특정한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1948년과 1994년 사이에 미국에서 발생한 수인성 질병의 68%가 극심한 호우 이후에 찾아왔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발생 사례는 호우 뒤에 33% 증가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기온 상승이 박쥐와 모기, 진드기를 포함하여 우리에게 질병을 옮기는 생물종의 서식 범위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한 확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이 박쥐 종들의 정상보다 높은 고지대로 이동했고, 북미에서는 이 박쥐 종들의 월동 범위가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오랫동안 멕시코 만 남동부 국가들에 국한되었던 황열병과 댕기열을 옮기는 모기 종인 이집트숲모기는 북쪽으로 이탈리아의 고위도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진드기도 북쪽으로 북유럽과 미국동부의 고위도 지역으로 퍼졌다.
우리는 곰팡이로 포화된 세상에서 산다. 숨을 쉴 때마다 수십 개의 곰팡이 포자를 흡입하고 곰팡이투성이 땅을 밟고 다닌다.
곰팡이는 강력한 병원체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살아 있는 세포를 필요로 하는 바이러스와는 달리, 곰팡이는 죽어서 부패한 물질을 먹고 살기 때문에 모든 숙주들이 죽은 후에도 존속할 수 있다. 곰팡이는 또한 지속성 있는 포자의 형태로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병원성 세균과 바이러스가 인간을 주기적으로 괴롭히기는 하지만, 질염이나 무좀을 제외하면 우리를 괴롭히는 곰팡이 병원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쩌면 우리가 온혈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카사데발 박사는 말한다. 수시로 곰팡이 병원체의 먹이가 되는 파충류와 식물, 곤충과 달리, 포유류는 주변 기온에 관계없이 항상 혈액 온도를 지구의 평균 온도인 섭씨 16도보다 거의 20도 가량 높은 온도로 유지한다. 주변 온도에 적응하는 대부분의 곰팡이는 우리 혈액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오븐처럼 뜨거운 우리의 몸속에서 죽게 된다.
열은 감염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어서, 파충류는 곰팡이에 감염되면 체온을 올리기 위해 햇볕을 쪼임으로써 인공 발열을 한다. 과학자들은 개구리의 체온을 섭씨 36.6도까지 올리면 호상균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온혈 동물인 포유류의 곰팡이 병원체에 대한 방어 수단이 어쩌면 공룡이 멸종한 이후 포유류가 파충류를 지배하게 된 미스터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카사데발 박사는 추측한다. 냉혈 동물의 생활 양식은 우리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포유류는 온혈 동물이기 때문에 냉혈 상태일 경우에 비해 매일 열 배 이상의 칼로리를 소비해야 한다. 카사데발 박사는 그 주제에 관한 오전 강연에서 청중들을 쳐다보며 책망하듯 말했다. “여러분 같은 포유류들은 방금 아침 식사를 마쳐놓고 벌써 점심 먹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악어는 일주일 동안 음식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온혈성은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초기에 병원체에 대한 특히 결정적인 보호막을 제공했을 것이다. 당시 병원체의 대부분은 적어도 삶의 일부분은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주변 기온에 적응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몸을 따뜻하게 유지함으로써 그들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날 병원체의 대부분은 다른 포유류에서 온다. 이는 곧 병원체가 우리에게 도달할 때 이미 따뜻한 피에 적응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체 내부의 열로 병원체를 태워서 쫓아내기 위해 열을 낸다. 이는 우리를 구해 주었던 이전 시대에 대한 격세 유전의 제스처라고 카사데발 박사는 지적한다.
열을 견디는 곰팡이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다른 감염병의 위협을 제기하게 될 것이라고 카사데발 박사는 말한다. 피가 따뜻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곰팡이에 대한 어떤 방어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
지구의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곰팡이 병원체는 이미 감염병의 지형으로 슬그머니 들어오기 시작했다.
-판데믹의 논리
우리 생명 주기에서 기본적인 두 부분을 이루는 유성 생식과 죽음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자들에게 유성 생식과 죽음은 우리의 진화에서 설명이 필요한 수수께끼 같은 발전이다.
다소 반직관적으로 들리는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려면, 진화의 ‘이기적 유전자설’이라고 불리는 것을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이론의 기본 개념은 유전자 또는 주어진 개인의 유전자 총체인 유전체(게놈)가 진화를 견인하고 선동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유전체는 우리의 모든 세포에서 운반되는 DNA라는 긴 나선형 부자로 이루어지며, 우리의 모든 세포는 눈 색깔에서 코의 형태,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생물학적 특징에 대한 지시를 내린다. 이기적 유전자설에 따르면, 진화의 모든 것은 유전자의 교묘한 책략으로 귀결될 수 있다. 어떤 유전자들은 전파에 도움이 되는 특징들의 유전 암호를 지정함으로써 우세해지는 반면, 전파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불리한 특징들의 유전 암호를 지정하는 유전자들은 소멸된다.
이기적 유전자설에 비춰보면, 유성 생식과 죽음은 우리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다른 대안들을 고려할 때, 유성생식도 죽음도 유전자를 퍼뜨리는 딱히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성 생식을 생각해 보자. 한때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무성 생식을 했다. 유성 생식을 하는 유기체는 없었다. 그런데 진화의 역사에서 어느 시점에 유성 생식이 등장했다. 그런데 우리의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다른 생식 방법에 비교할 때 매우 열등한 전략이다.
자기 복제를 하는 유기체는 제 유전자의 100%를 후손에게 전달한다. 유성 생식을 하는 유기체는 다른 유기체와 짝짓기를 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식이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물려받기 때문에 부모 모두 제 유전자의 절반씩을 잃게 된다.
최초의 유성 생식 유기체는 생존을 위해 지구의 자원과 서식지를 점령한 클론 복제 유기체들과의 경쟁에서 성공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1970년대에 진화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은 그러한 경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모의 실험하기 위하여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의 실험에서 개별 유기체의 절반은 클론 복제를 하고 절반은 짝을 이루어 유성 생식을 하는 개체군으로 구성하였다.
누구나 똑같이 가령 포식자의 공격을 받거나 눈보라에 얼어 죽는 것처럼 야생에서 닥치는 무작위적 죽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다음 이 모델은 두 부족 각각이 생산한 자손 수룰 세어서 생식 성공률을 계산했다.
두 가지 다른 생식 전략의 누적 효과가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밀턴이 모델을 실행할 때마다 유성 생식을 하는 부족은 빠르게 멸종했다. 유성 생식 부족에서 발생하는 무작위적 사망은 짝짓기 상대의 불균형적인 손실로 이어졌다. 무작위적 사망에 관계없이 활발한 복제 비율을 유지하는 콜론 복제 부족은 그렇지 않았다. 유성 생식 부족의 자손이 유전적으로 다양하며, 따라서 장기적인 환경 변화에 좀 더 적응력이 크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작위적 사망의 부담은 너무도 즉각적이어서 그런 장점들이 발현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니 유성 생식은 실패한 실험으로 끝나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우리의 먼 선조들의 생식 전략은 우리를 포함한 동물계 전체에 퍼졌고, 그것은 우리에게 중차대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한 수수께끼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설명을 제공한 사람은 해밀턴이었다. 그는 성이 진화한 것은 병원체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성 생식은 심각한 유전적 희생을 요구하지만, 유성 생식을 하는 생명체의 자손은 부모와 유전적으로 구분된다는 보상을 얻게 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극한 기후나 포식자를 이기고 살아남는 데 있어서는 그것이 큰 이점이 아니었지만, 병원체를 이기고 살아남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이점이었다. 병원체는 날씨나 포식자와는 달리 우리에 대한 공격을 점차 정교하게 개선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아기일 때 처음 공격하는 병원체를 상상해 보자. 당신이 성장하는 동안 그 병원체는 수십 세대를 거친다. 당신이 성인이 되어 생식할 준비가 될 즈음에는, 그 병원체를 막아내는 당신의 능력보다 당신을 공격하는 병원체의 능력이 훨씬 더 커진다. 당신은 유전적 구성이 동일하게 유지된 반면, 병원체는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론 복제를 하는 개체들은 병원체가 이미 능수능란하게 공략할 수 있는 목표물과 똑같은 복제물을 병원체에게 제공한다. 이들의 자손이 병원체의 식욕을 이기고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경우 비록 유전자의 절반을 포기하더라도 유전적으로 자신과 다른 자손을 생산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늙은 개체의 몸에 있는 병원체를 젊은 개체에게 옮기는 실험을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병원체의 공격이 얼마나 정교해지는지 보여 주었다. 진화 동물학자 매튜 리들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늘 깍지벌레의 공격을 받는 늙은 미송 나무에 관한 연구를 인용했다. 야생에서는 고목이 어린 나무보다 훨씬 감염이 잘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목이 어린 나무보다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병원체가 적응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고목에 있는 깍지벌레를 어린 나무에게 옮겨 놓았더니, 어린 나무는 고목과 똑같은 수준의 질병을 겪었다. 이처럼 병원체가 있을 때는 유성 생식이 클론 복제보다 생존 확률을 높여 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해밀턴이 병원체와 성의 진화에 대한 이론을 처음으로 펼친 이래로,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근거들이 축적되었다. 생물학자들은 유성 생식과 무성 생식을 병행하는 종들은 병원체의 유무에 따라 둘 사이를 오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병원체가 아예 없거나 진화가 불가능하도록 개조된 병원체만 있는 실험실에서 키운 예쁜 꼬마 선충은 대부분 무성 생식을 했다. 그러나 병원체의 괴롭힘을 당할 경우에는 유성 생식을 했다. 다른 실험에서 과학자들은 선충이 우성생식을 할 수 없도록 개조했다. 병원체가 있는 상태로 선충을 키웠을 때, 20세대 이내에 멸종했다. 반면 유성 생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경우, 선충들은 병원체와 함께 영구적으로 생존했다. 병원체를 견뎌내려면 유성 생식이 제공하는 특별한 이점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성의 진화를 강제함으로써 병원체는 어쩌면 죽음의 진화까지 강제한 것일 수 있다. 죽음이 ‘진화’ 가능한 선택 사항이라는 관념은 반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다. 퇴화완 사망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관념이 우리 대부분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지배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신체가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는 일종의 기게라고 생각한다. 개별 부품에 고장이 생기고 손상이 축적되다가, 어떤 임계치가 지나면 마침내 기계 전체가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도 ‘죽음을 모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원래는 단순히 시간이 가는 것을 뜻하는 ‘나이가 든다’라는 말을 쇠약함과 동일시까지 한다.
그러나 노화와 사망은 삶의 불가피한 측면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불멸성의 예들이 존재한다. 미생물들은 영원히 산다. 나무도 시간과 함께 퇴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더 강해지고 생식력도 좋아진다. 미생물과 많은 식물들의 경우, 불멸성은 예외가 아니라 보통이다. 심지어 나이가 들지 않는 동물들도 있다. 예를 들어 쌍패류 조개와 바닷가재가 그렇다. 그들에게 죽음은 순전히 내부 요인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초래된다.
고대의 대유행병이 남긴 흔적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희미하지만, 그것이 남긴 여파만큼은 그렇지 않다. 우리 면역 체계의 특이성에서부터 우리 선조들의 역사적 궤적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이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그러한 여파들을 우리 모두 느낄 수 있다.
고대의 전염병은 면역 반응의 강화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면역 반응은 자연유산을 포함한 광범위한 질병에 걸리기 쉽게 만든다. 여성의 5%는 면역학적 이유로 반복적인 자연 유산을 경험한다. 산모의 면역 체계가 태아를 외부 침입자로 잘못 인식하여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다른 인간의 어떤 조직과 세포에도 이와 유사하게 반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식 수혜자의 면역 체계를 의료적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기증자의 장기를 공격할 확률이 거의 100%다.
강화된 면역 반응, 특히 바르키 박사가 발견한 우리가 고대의 대유행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전시킨 면역 반응은 우리가 붉은색 육류를 먹으면 암과 당뇨, 심장병에 걸리기 쉽게 만들 수 있다. 포유류의 살점인 붉은색 육류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시알산인 글리콜뉴라민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그것을 섭취하면 2백만 년 전 우리 조상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교미했을 때와 똑같은 면역 반응을 축발할 수 있다. 우리의 신체는 육류의 세포 조직을 외부 병원체로 인식하여 염증으로 퇴치하려 할 것이다. 그런 작은 염증 반응이 시간이 흐르면서 암과 심장병, 당뇨병에 걸릴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과거에 우리가 병원체를 이기고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었던 똑같은 유전적 변이체들이 지금은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임으로써 우리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적혈구를 변형시키는 겸상 적혈구 유전자다. 이 유전자는 말라리아의 사망률을 대폭 낮춰 주기 때문에 말라리아 전염병을 겪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2010년에 5백만 명 이상의 유아가 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이 유전자는 말라리아를 이기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 유전자를 두 배로 가지고 태어난 유아는 현대 의학의 도움이 없다면 치명적일 수 있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앓는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미에 대한 관념들, 그중에서도 특히 잠재적인 배우자의 매력에 대한 관념도 역시 면역 행동으로 진화한 것일 수 있다. 연애의 정확한 구조는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지만, 진화 생물학은 몇 가지 일반 법칙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훌륭한 공동 양육자이자 생존에 적합한 2세를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상대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다. 공동 양육에 적합하지 않은 상대에게 끌리는 사람들은 자식을 많이 낳지 않는 경향이 있거나 살아남는 자식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수적으로 열세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은 인간의 경우 배우자의 매력이 좋은 공동 양육자가 될 가능성과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여러 비료문화 연구들은 여성들이 넓은 턱과 깊게 들어간 눈, 얇은 입술처럼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남성의 얼굴 특징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많은 남성일수록 여성에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동시에 테스토스테론이 많은 남성일수록, 좋은 공동 양육자가 될 가능성이 적다. 테스토스테론이 높은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반사회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큰 반면, 결혼할 가능성은 적다. 결혼을 하더라도 이혼을 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면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여성에게 덜 매력적으로 보여야 마땅할 텐데, 사실은 정반대다.
달리 말하면 넓은 턱과 깊숙이 들어간 눈은 공작의 꼬리와 같다. 길고 무겁고 눈에 띄는 공작의 꼬리는 분명 수컷의 생존에 방해가 된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공작새 암컷도 길고 화려한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진화학자들에 따르면, 그 이유는 공작새의 길고 화려한 꼬리는 수컷이 암컷에게 자신이 강하고 능력 있는 짝짓기 상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광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광고하는 것은 병원체에 대한 강력한 방어력이다. 과학자들은 꼬리가 길고 화려한 공작새가 꼬리가 짧은 공작새에 비해 면역 체계가 강해서 병원체에 감염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꼬리가 짧고 칙칙한 수컷보다 이들을 선택하는 편이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꼬리가 긴 수컷과 교미하는 암컷은 꼬리가 짧은 수컷과 교미하는 암컷에 비해 더 큰 새끼를 낳기 때문에 새끼가 야생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휘황찬란하고 정교한 꼬리가 공작새의 생존에 방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암컷은 여전히 그것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새로운 전염병을 추적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에볼라가 촉발한 과도해 보이는 공포는 크게 지탄받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한 반응은 새로운 병원체에 대한 무심함일 것이다. 그 일례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적응력이 큰 병원체인 말라리아 원충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순간부터 쭉 말라리아를 겪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말라리아는 매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말라리아는 충분히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며 수백 년 동안 그래왔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말라리아에 걸리는 이유는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의료 인류학자들은 거듭 발견해 왔다. 그들은 잠을 잘 때 모기장을 치지 않고, 아파도 병원을 찾아 진단과 치료를 받지 않는다. 왜 그럴까? 말라리아를 살아가면서 겪는 일상적인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말라리아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발생지에서 말라리아는 고질적인 풍토병이다. 풍토병은 전염병보다 훨씬 더 나쁘다. 풍토병은 앞서 언급한 이유로 제거하기 더 힘들고 일회성 발병이 아니라 매년 주기적으로 발병하기 때문에 부담도 크다. 아이티에서 콜레라는 이미 전염병에서 풍토병 단계로 넘어갔다.
풍토병으로 발전한 콜레라는 당분간 아이티 사회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고갈시키고 그 지역에 영구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런 사례는 플로리다와 도미니크 공화국, 쿠바,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바하마에서도 이미 등장했다.
뎅기열은 플로리다에서 풍토병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텍사스에서도 나타났다. 또한 북쪽으로 확대되어 수백 만 명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라임병은 미국 전역에 꾸준히 확산되어 연간 수억 달러의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병원체들이 더 이상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되면, 그야말로 황금 티켓을 거머쥐게 된 셈이다. 대중들이 방어벽을 구축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방어벽을 타고 넘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새로 등장한 병원체에 대한 플로리다와 뉴욕 사람들의 안일한 반응은 떠돌이 전염병이 토박이 풍토병으로 바뀌게 되는 문화적, 생물학적 과정의 첫 단계다.
우리가 대유행병을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면, 차선책은 그것을 최대한 빨리 감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는 현재의 질병감시 시스템을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우선 현재의 질병 감기 시스템은 더디고 수동적이다. 병원체가 질병을 야기하여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낼 때야 비로소 시스템이 발동한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매독에서 황열병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수정되는 80여 종의 감염 질병 목록을 유지하고 있다. 가령 어떤 의사가 이 ‘신고대상’ 질병에 걸린 환자를 만나면, 주 차원의 공중보건 당국에 보고하고, 당국은 그 정보를 국가적 공중보건 당국에 전달하게 되어 있다. WHO의 2007년 국제보건규정에 따르면 만일 전염병이 국경을 넘을 가능성이 있으면 국가 당국은 이를 24시간 이내에 WHO에 보고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 해도, 충분히 빠르지가 못하다. 경보가 발령될 때 즈음이면, 병원체는 이미 인체에 적응하고 발병 사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병원체를 통제하려면 긴급하고 대규모적인노력이 필요하다.
규모는 상당하지만 부분적인 효과밖에 거둘 수 없었던 다른 병원체에 대한 통제 대책들도 마찬가지로 때늦은 대응의 결과였다. 1990년대 후반에 H5N1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제대로 뿌리 뽑지 못한 탓에, 그것은 주기적으로 전 세계의 가금류를 괴롭히고 있다. 홍콩에서 당국은 전염병 통제를 위해 밤마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닭들을 모조리 살처분하고 있다. 한편 사스 바이러스는 중국 남부의 대규모 야생동물 거래 시장으로 퍼져서 인간 환자가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기 때문에, 통제를 위해 강력한 검역과 여행 제약이 필요했고, 그로 인해 아시아의 관광업은 25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또한 뎅기열과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매개체를 통해 전염되는 그 밖의 질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감시 시스템이 더디고 수동적이라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또한 허점투성이다. 이 시스템은 신고 대상 질병에 감염된 사람이 병원을 찾아왔을 때만 작동된다. 그런데 이것이 믿을만한 수단이 되려면 의사가 새로운 질병을 적절히 식별하고 신고하도록 훈련되어 있어야 하고, 전 세계에서 의사들의 서비스를 즉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는 너무 번거로워서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리고 병원을 찾는다 해도, 의사들은 굳이 이상한 증상을 정밀하게 진단하거나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나라에서 가장 기초적인 감시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3년 현재, WHO에 가입한 193개국 가운데 WHO가 의무화하는 요구사항을 이행할 감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80개국에 불과하다. 또한 대부분의 조류 동감 감염 국가에서 가축들의 바이러스 증상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