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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제 : 2014년 3월23일 일요일
누구와 : 우리부부
어디로 : 소요산(587m)
지난해 11월 초 그러니까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 동안 결혼식이 8건이 있었다. 아마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축의금만해도 엄청났던 기억이…… 그 중에 동작전화국 근무 때 가깝게 지내던 후배가 늦깎이 결혼식을 한다기에 참석 오랜만에 동료들과 만났던 적이 있다. 이 소식 저 소식 들으며 그 당시에 뭉쳐서 다니던 후배들이 있었는데 아직도 태반이 혼자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요즘 시대가 그런가 싶기도 하다. 가끔 연락하자며 헤어진 후 2월 말 내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볼래야 기억이 없는 여성의 이름으로 우편물이 왔다. 아내가 누구냐고 연락이 왔고 모르겠다며 우편물을 열어보라고 하니 청첩장에는 최정호라는 이름이 있단다. 아~ 동작전화국에서 같이 근무했던 지난번 늦깎이 친구와 같은 연배인 후배이다. 며칠이 지나 이제야 하나 둘 가정을 꾸린다는 연락에 축하해주기 위함으로 식장에 가니 또 다른 늦깎이 친구들이 인사를 한다. 이쿠~~ 답이 없지만 그 답은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될 일, 오늘 장가가는 친구처럼…… 돌아 오는 길에 문득 작년의 이맘때를 상기해 본다. 매주마다 산을 찾아 같이 했던 악우들이 한 명 두 명 머리에 스쳐 지나가며 올 해는 블랙야크가 진행하는 100명산 도전에는 작년 40명산 도전 때와는 다르게 서로들 시간되는 사람들끼리 산행이 이루어지면서 필자는 아직도 10개 산도 도전에 임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토, 일요일 산에 가지 않은 것도 아닌데, 결론은 정해 놓은 지정 산에는 못 가고 계속 비 지정 산에만 다녔고 그 와중에 아내도 100산에 도전 북한산, 관악산 등 필자가 작년에 다녀 온 산 등을 다녔기에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고작 6개 산을 오른 것이다. 반면 아내는 10개 산을 오름으로써 필자보다 많은 산을 인증을 했다 하여 이번에는 부부가 같이 인증이 가능한 산인 소요산을 다음날 산행하기로 계획하고 노량진 역 에서 전철에 오른다.
소요산은 경기도 동두천시 동북방 소요동에 위치하고 동두천시청에서 3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약 5km 가량 지난 곳에 있는 수도권 최고의 단풍 명산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거닐던 산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소요산은 60년대부터 휴양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신라의 원효와 요석공주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가 내려오는 곳이기도 한 이 산은 동두천 방향에서 보면 부채 살 모양으로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산대, 공주봉 등 여섯 개의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있어 그 아름다움에 경기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봄의 진달래 피는 계곡이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은 그 화려함이 최고로 쳐준다. 산행 코스로는 일주문을 기준으로 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선녀탕-자재암-일주문–관광지원센터(5.71㎞ 약1시간30분 소요), 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칼바위-선녀탕-자재암-일주문-관광지원센터(6.53㎞ 약 2시간 소요), 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칼바위-나한대-의상대-샘터갈림길-구절터-일주문-관광지원센터(7.04㎞ 약3시간30분 소요), 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칼바위-나한대-의상대-공주봉-구절터-일주문-관광지원센터(8.19㎞ 약 4시간 소요) 등 네 개 코스로 이루어 져있으며 너덜과 바위능선이 존재해도 등산로가 잘되어 있어 누구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이다. 1981년 소요산 국민관광지로 지정 된 산행 입구는 신라시대 고승인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애틋한 설화가 스며있는 요석공주별궁지와 상징적 아치 연리지문,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별궁을 짓고 지냈다는 행궁지며, 원효대사가 고행 수도하였다는 자재암, 원효폭포, 원효대 등으로 이루어진 명소들이 있다. 그리고 주변 관광시설로는 안보교육의 산실인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관광객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건강오행로 등의 볼거리와 산채, 떡갈비, 초계탕 등을 소재로 한 먹거리가 산재해 있어 관광객들의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다만 2009년부터 개방되어 캠핑 족들이 많이 사용하던 야영장이 올해부터 폐쇄(동두천시에 문의 다른 용도로 사용 할 계획이라고 함)되어 아쉬움이 앞선다. 주차시설이 잘되어 있고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좋아 휴일이면 수많은 등산객들로 봄 빈다.
전철 환승시간을 잘 맞춰 집에서 출발해야 되는 것을 종로3가 환승장에서 열차 5대를 보내고 나서 소요산 행 전철에 승차를 하고 나니 일요일 등산객들이 많아 자리가 없다. 결국은 회기까지 가서야 간신히 따로따로 자리에 앉아 소요산 역에 도착, 느지막하게(11시20분) 형형색색의 봄 색 옷의 등산객들과 밀리며 역을 탈출(?) 한다. 몇 년 전(2008년10월) 가을에도 아내와 같이 환상적인 단풍을 보았으며 그때는 긴 코스인 역에서 도로 건너 바로 좌측으로 진입 산림육장 및 팔각정을 끼고 하백운대부터 공주봉까지 부챗살 모양으로 산행했었다. 실은 입장료 내기가 싫어서 그렇게 했고 이번에는 도로 따라 일주문을 끼고 자재암에서 상백운대 칼바위 능선 중간에서 의상대 정상을 지나 공주봉에서 원점 회귀 산행 할 계획이다. 역시 소요산은 단풍으로 소문난 곳으로 그때의 혼잡도 보다 좀 덜 밀린다. 입구 주변은 봄나물을 팔기 위해 즐비하게 제철 나물을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아내는 오후까지 있겠지 혼잣말로 욕심을 낸다. 지금 사서 산에 메고 갈 일도 아니고 발걸음이 느려지는 느낌을 재촉하여 건강 오행로 길을 지나며 이태조 행궁지와 요석공원의 조성에 대한 설을 읽어 본다. 신라의 대유학자 설총을 낳은 신라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와의 인연이 서려있는 이 산은 원효라는 이름이 많다. 원효대, 원효폭포, 원효정 등이 있으며 공주봉과 요석궁터 등 그 둘의 발자취라고 말할 수 있어 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보수 중인 매표소문을 지나며 1인 1,000원의 문화재관람료를 지불하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있을 긴 아스팔트 길을 지나 일주문 앞에 도착 지하수를 받아 갈증을 해소한다. 약간의 기포현상이 나타나며 안내되어 있는 글귀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하 100m에서 펌프로 끌어 올리는 물이라서 그런단다. 바로 앞 공터에서는 나이 지긋하게 드신 남자분이 관광해설을 맛깔스럽게 안내하는 모습을 뒤로 일주문 오기까지 시끄럽게 음악을 틀고 올라오시던 90대 어르신이 정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도 시끄럽게 하기에 다가가 얼굴을 보니 연세가 쾌 드셔 보인다.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하니 아흔하나란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줄까 하며 ㅋㅋㅋ. 시끄러워도 참아야지. 원효폭포는 하산하면서 관람하자며 속히 자리를 이동, 11시50분 속리교를 지나 삼거리에서 우리는 좌측 자재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길게 이어지는 목재계단을 오르니 108계단과 해탈문이라는 아치형 출입문이 원효폭포 상단에 위치해 있으며 조망 터도 조성되어 있고 사진 촬영하는 등산객들이 진을 치고 있어 정체현상으로 실낱처럼 흐르는 폭포의 가느다란 물줄기를 보는 둥 마는 둥 자재암 해우소의 특징 있는 건물을 지나 천년 사찰 자재암에 도착한다. 원효가 이곳에서 수행 중 관세음보살이 아녀자로 변신, 원효에게 시험하니 『心生則種種法生』이요 『心滅則種種法滅』이라는 법문-마음이 생 하면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여러 가지의 법이 생기는 것이고 마음이 멸하면 상대적 시비의 가지가지 법이 없어진다는 것-에 흡족하게 사라지니 후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자재암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며, 기록으로 보면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서 조선 세조 10년에 간행한 반야바라밀다 심경약소 연해본을 발굴, 발견 당시 완벽하게 보관되어있어 보물 1211호로 지정 이곳에 보관되어 있어 더욱 유명해진 사찰이다. 경내를 벗어나 우측 계곡에서 실낱 같은 폭포수(청량폭포)가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힘없는 흐름을 보며 석굴 좌측으로 급경사 길을 오른다. 맞은편에는 이른 아침에 오른 사람들이 저마다 만족한 얼굴로 내려오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오르는 이들은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는 얼굴로 헉헉거리며 저마다 오름에 의미를 두고 신나고 힘차게 긴 줄을 이어간다. 자재암에서 약 50m, 청량폭포 위쪽에 도착 좌측으로 하백운대와 선녀탕 분기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소요산은 수번이나 와보았지만 이 코스로는 처음인지라 생각보다 급경사가 많고 너덜이 심하니 괜히 이쪽으로 오자고 했나 아내 얼굴을 슬그머니 쳐다보지만 오늘은 무감각이다. 다른 때 같으면 힘들다고 할 시기인데.ㅋ
다른 등산객들은 대부분 하백운대 방향으로 가지만 우리부부는 계획 했던 칼 바위능선 중간으로 올라 의상대로 진행하기 위하여 우측 선녀탕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 너덜길인데도 바위사면에 쇠고리를 박아 굵은 동아줄로 안전로프를 설치한 부근을 지나 자재암에서 0.7Km 위치에 있는 선녀탕 입구에서 휴식, 아내가 시장기가 발동했나 보다. 시계를 보니 12시30분이 되어간다. 필자야 아침을 거르지 않고 먹고 나왔으니 견딜만하지만 아내는 아침을 안 먹는 스타일이라 지금쯤이면 엄청 허기가 느낄 게다. 빵과 음료수로 간단하게 해결 후 너덜 급경사 길을 오른다. 위쪽에서 외국인들이 무리 지어 하산하는 모습에 미끄러움과 너덜길이 걱정이 앞서지만 잘도 내려간다. 운동화에 정글화 등 여러 가지 신발을 착용했지만 등산화 착용한 모습은 눈에 보이질 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런 모습을 보면 참 갖출 것은 잘 갖추고 다닌다. 한 무리의 하산 객 뒤에 통역을 하는 분인지 그분만이 등산복에 등산화차림이다. 역시 한국인이다.ㅋ 너덜에 힘겹게 오르다 설상가상으로 바닥이 녹아 진흙투성이다. 12시50분 칼 바위 능선과 나한대 갈림길이 나타나며 우리는 당연이 우측으로 먼발치에 부부인 듯 내려오는 등산객의 모습에 그 방향으로 가지만 나한대까지 고생이다. 초반에는 등산로가 있다가 나한대 바로 위쪽으로는 바위로 또 다시 아내의 입에서 원망의 말소리가 드린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나마 힘든 길은 잠시 다정하게 남녀가 점심식사 해결하는 곳을 훼방이라도 놓을 량 길도 아닌 곳을 지나 갈림길에서 15분만에 나한대에 도착한다. 소요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서 불교와의 인연이 많은 곳이라 이런 이름이 주어졌지 않나 생각해본다. 점심은 하산하여 먹자며 행동 식만 가지고 왔기에 0.3Km를 가리키는 의상대 방향으로 길을 재촉한다. 바로 앞 급경사를 지나 바위사면에 설치해 놓은 철봉 안전휀스 따라 진행,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에는 아직도 이르지만 헐 벗은 나무들의 모습에도 기운을 느껴진다. 경기소방(?)에서 설치한 위치 표시 판을 지나 오후 1시15분에 소요산 주봉인 의상대에 도착 이성계가 이곳에 머물면서 원효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을 기려 정상의 이름을 그렇게 명하여 지금까지 내려온다고 안내되어 있다. 약간의 운무가 있지만 조망이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동두천 7산으로 유명한 왕방산, 국사봉, 해룡산, 마차산 등이 정상을 끼고 조망되니 과연 명산이 아닌가 생각하며 옆에 있던 등산객이 우리부부의 정상 사진을 찍어 주니 오고 가는 정으로 우리도 그네들 부부의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는 공주봉 방향으로 그네들은 나한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2008년도 가을에 왔을 때 공주봉까지 안전시설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는데 마무리가 되어 있다. 바로 앞 급경사는 데크계단이 우측으로 예전 통나무 계단을 대신하여 설치되어 있고 샘터 갈림길까지는 위험구간이 아니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등산객의 궁금증을 해소해 놓았다. 모처럼 편안한 길을 지나 샘터방향 하산 길을 안내해주는 이정표를 지나며 좌측으로 미군들이 살아가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엄청 큰 마을이 조망된다. 공주봉을 경유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면 일주문 앞에 도착한다. 하지만 등산로가 길나있지 않은 모습에 이용들을 안 하는 듯 바로 앞에 급경사 지역으로 눈, 비가 내릴 경우 하산 시 안전에 주의하라는 위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험한 것은 공주봉 방향도 만만치가 않을 건데 고개를 갸웃둥하며 바로 앞부터 너덜이 시작된다.ㅋ 바위구간에 스텐레스 봉으로 안전휀스를 설치 힘겨워하며 오르다 뒤를 돌아 본다. 우리가 지나온 의상대가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모습에 정상은 역시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의상대에서 1.2Km를 지나 공주봉 입구에 도착한다. 공주봉 정상은 넓은 데크 무대가 설치되어 있어 휴식하는 등산객들에 의하여 초만원이라 이정표 앞에서 점심을 왜 안 가지고 왔을까 후회하며 가지고 온 행동 식을 모두 비운다. 요석공주의 남편(원효)에 대한 애듯 한 사랑이 서려있는 이 봉우리 주변은 휴식할 수 있는 공터가 있어 많은 이들이 쉼터로서 활용하다 보니 훼손된 부분이 많아 복원 중이라 하여 진달래를 심어 놓고 통제를 하고 있다. 아직은 꽃봉오리 나오기 직전이라 허전하지만 4월이 되면 주변을 예쁘게 장식하리라고 생각하니 미리 알았으면 좀 늦춰서 4월에 방문할 것을 후회해 본다. 수많은 인파(?)를 지나 하산이 시작되며 이곳도 경사가 만만치가 않다. 공주봉 8부 능선까지 내려와 우측으로 전망대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그곳으로 가본다. 상백운대부터 정상주변까지 잘 조망되는 곳으로 소요산의 산세를 조망 후 아직도 보수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등산로 따라 하산 생강나무에 노란색의 꽃들이 피어있는 곳을 지난다. 이제 얼마 후에는 그 뒤를 이어 봄 꽃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겠지. 데크계단 공사가 한참 진행되는 곳을 지나 길게 통나무 계단도 지나 돌들이 무수히 쌓여 있는 기도 터를 지난다. 이곳에서 무엇들을 염원했을까 인간들은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 탈이다. 욕심 안내고 살면 안될까 만은 요즘 살아가는 시대는 많은 것이 있어야 대우받는 시대이니 욕심이 욕심이 아닌 듯 필자도 가족의 건강과 부자가 되어 달라고 조약돌 하나를 주워 돌무더기에 올려 놓고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ㅋㅋ 안정되게 세워 놓은 돌탑이 나타나며 공주봉 못 미쳐 위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던 샘터 하산 길 합수점을 지나 구 절터도 지나 오후 2시40분 오전에 올랐던 원효폭포에 도착 명주실 풀어 놓은 듯 가느다란 폭포수의 힘겨움을 느끼며 경기 소금강이라는 일주문을 지나 축산물브랜드타운에 들여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아내는 아침에 보아두었던 나물 파는 아주머니가 있는 곳으로 직행 갖가지 나물을 바리바리 사면서 얼굴색이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