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눅 2장 4-14절
설교제목 : 빈방 있습니까
회상
주님의 탄생이 분열하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 가운데 평화와 기쁨이 소식이 되길 빕니다. 한 해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성탄절이자 한 해의 마지막 송년주일입니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며 제가 첫 설교를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시편 14편의 말씀을 가지고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인상깊었던 첫 예화를 “구만 번의 기적”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원지방법원에 작년 3월에 부임한 김동현 판사는 우리 나라에서 시각장애인으로 판사된 두번째 사람입니다. 대학 때까지 잘나가는 수재였습니다. 잠시 방황을 하면서 진로를 바꾸어, 로스쿨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김동현 판사의 어머니는 한 달 동안 절에서 삼천 배를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 달 동안 삼천 배가 아니라 하루에 삼천 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떠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참으며, 하루에 삼천 배를 하고 한 달이 지나서 9만 번을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은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어서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구만 번의 절을 했지만, 눈을 뜨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시력을 잃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기적의 시작입니다. 그 후로 집에서 활동하고 밖에 걷고, 지하철을 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훈련을 하였고, 로스쿨에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서화된 내용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음성으로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는 현재의 자신이 있게 만들어 준 로스쿨 친구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며 말합니다. “자기(친구들이)가 도와줄 수 있는 약간의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살아갈 힘을 주고, 그런 게 아니었나 싶어요.”
구만 번의 절을 통하여 자신을 모두 덜어내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처지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새로움이 움돋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은 물론 한 해 덜어낼 것을 덜어내면서 진일보하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를 낮추며, 무엇을 해야할지 분별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한쪽으로 치우지는 일방성으로 그릇된 길로 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를 찾으시고,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자에게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을 안내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지혜로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희망을 걸기로 마음을 다잡은 한 해의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빈방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아기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에 따라 피정복민들은 호적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해 요셉은 고향인 유대 베들레헴으로 갔고, 임신 중인 마리아는 머물러 해산할 여관방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관 옆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았고, 그 아이를 구유에 놓았습니다. 아기 예수의 비천한 출생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있는 곳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은 본능에 기초를 둔 신의 탄생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탄생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다는 부분입니다. 아기 그리스도가 탄생할 방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탄생을 위한 방은 부재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든 방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준비하고 초대하였지만 오지 않았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에게로 가서, 음식을 다 차리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라고 하여라.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마 22:4-6).”
그 혼인잔치의 가치를 모르는 눈먼 자들은 각기 제 살 길 궁리만 했습니다. 이는 자아의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의 부름과 초대에 자아의 생각과 관심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 초대에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융은 “개인적인 자아는 아기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마구간이다”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내 자신 안에 주님을 위한 방을 마련하라는 해마다의 초대일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의 탄생을 위한 빈 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기쁨의 소식
아기 예수의 탄생의 첫 소식을 들은 자들은 목동들입니다. 천사는 가장 비천한 직업으로 취급받았던 목동들에게 탄생의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11)”
겸손함으로 낮아진 자에게 탄생의 소식은 전해집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를 가리켜 “그리스도 주님이시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로,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특별한 소명을 위해 부름받은 자로서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이라는 뜻은 ‘퀴리오스’로 로마세계에서는 황제에게만 붙여졌던 칭호입니다. 그리스도가 새로운 통치자로서 탄생하신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 땅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황제주의를 영적인 왕권으로 변환됨을 알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이것이 참 복음입니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황제주의를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시고 진정한 구원자되심을 믿고 고백하고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다는 것이 바로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사건은 새로운 영적 왕국을 우리 안에서 실현하는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오늘 그리스도 주님이 탄생하신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전쟁으로 갈등하는 이 세계 위에 큰 기쁨의 소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