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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78
그리스도를 소망하라 (미가 5:1-9)
2024-11-3 (줄간 22)
낮은 곳에 태어나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소망합시다.
미가라는 책은 미가 선지자가 쓴 책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은 북 이스라엘, 남 유다로 분열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미가는 주로 남 유다를 대상으로 예언했습니다. 미가 5장은 북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을 때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는 때를 예언하지만, 곧바로 이어 희망을 예언합니다.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것을 예언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이 말씀 대로 메시아가 오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복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복을 배우고 실제로 이 복을 누리게 되기 바랍니다.
낮은 곳에 태어나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소망합시다.
1. 메시아/그리스도가 낮은 신분으로 탄생하여 통치합니다(1-6절)
2. 그리스도인은 연약하지만 세상의 복이 되고 담대합니다(7-9절)
3. 그리스도인의 약함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일하십니다(10-15절)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기를 소망합시다.
1. 메시아/그리스도가 낮은 신분으로 탄생하여 통치합니다(1-6절)
1절은 메시아가 오기 전의 상황을 말합니다. 그들 외국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포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대기로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빰을 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딸 군대”는 이스라엘에 대해 “군대”가 아니라 “무리”로 모여 있는 초라한 군대입니다. 외국의 침략에 대항할 수 없이 약합니다. 앗시리아 군대도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떠났습니다. 앞으로 바벨론 군대가 와서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이 보는 앞에서 왕자들을 죽일 것입니다. 왕의 눈을 빼고 왕과 귀족들과 다른 사람을 바빌론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은 70년 후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 왔지만 계속 남의 나라의 식민지로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교회를 사랑하여 돕기로 작정하셨지만 당분간 교회를 괴로움 가운데 던져둘 것입니다.
그러나 2절에서는 소망을 예언합니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구약 백성은 베들레헴에 태어날 다스리는 자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베들레헴에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마태복음 2장이 말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헤롯 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물었습니다.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에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납니까?” 그리스도는 메시아와 같은 말입니다. 그들이 대답합니다.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6에서 오늘 읽은 미가 5:2를 인용합니다.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예언대로 메시아는 베들레헴에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왜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나실까요? 유다 왕조의 첫 임금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 났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의 평범하고 작은 목동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여전히 초라한 시골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메시아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라한 시골 동네에서도, 가축들이 사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죄인들과 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높이시기 위해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믿읍시다.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3절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인이 해산할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인들에게 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죄에 따른 엄중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징계받을 때 그것은 한 순간입니다. 소망 가운데 고통합니다. 임신한 여자가 고통의 산통을 한 후에는 기쁨으로 아기를 만납니다. 마찬가지로 고통스런 상황에 있던 백성은 마침내 기쁨의 구원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의 형제 가운데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 오리니” 미가서 4장에서 많은 이방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온 세계에서 메시아께로 사람들이 몰려 올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에 주님의 교회는 확장되고 있습니다.
4절이 말합니다. 구약 성도가 기다린 메시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이런 분입니다. 우리를 목축합니다. 목자로서 우리를 목양합니다. 폭군이 아닙니다. 연약한 우리를 선한 목자로서 잘 돌보십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먹여 주십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목자시지만, 서서 목양합니다. 굳게세 서서 먹여 주십니다. 그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으로” 굳세게 서서 우리를 먹여 주십니다. 악한 이리가 교회를 공격할 때 선한 목자께서는 굳게 서서 막아 주십니다.
우리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이시지만, 이 세상에 몸을 가지고 사시는 동안에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내려 놓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우리를 먹이셨습니다. 이제 부활하여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다시 얻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겸손히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로서 일하십니다. 교회를 보존하는 일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의논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 능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선한 목자께서는 그분의 양들이 거주하게 할 것입니다. 방황하지 않고 평안하게 자기 곳에서 살게 할 것입니다. 그분은 크게 되셔서 땅끝까지 이를 것입니다. 전세계에 교회가 확장될 것입니다. 그분의 양들은 교회를 통해 말씀을 공급받으며 온 세상에 퍼져 있을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이 소망했던 것, 지금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5절이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 목자 그분은 “평강”입니다.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 요새로 만든 궁궐에 까지 들어 와 짓밟을 때, 메시아는 승리하고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여기서 앗수르는 미가가 예언할 때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하고 예루살렘 성도 포위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모든 세력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적들이 교회를 짓밟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그분께서 일하십니다. “우리” 즉 교회는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앗수르와 같은 교회의 적을 대항하게 할 것입니다. 군왕은 지도자를 말합니다. 교회는 지혜로운 지도자, 직분자를 세울 것입니다.
6절은 5절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앗수르가 우리 영토를 밟을 때, 그들 교회의 지도자들은 앗수르를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황폐하게 한다”는 “목양한다”와 같은 단어 입니다. 교회의 “목자들”은 교회를 괴롭히는 앗수르에 대해서 목자로서 대항할 것입니다. 교회의 목자로서 칼을 들고 싸울 것입니다. 진리의 칼을 들고 교회를 보호할 것입니다. 이 일을 선한 목자 메시아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앗수르에서 건져내리라.”고 합니다. 양들의 큰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환난가운데 지키십니다. 그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와 직분자들이 작은 목자들로서 교회를 괴롭히는 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의 멍에를 지울 때 온순하게 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을 참을성있게 견딜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이 우리의 구원이 될 것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메시아/그리스도가 낮은 곳에 탄생하여 통치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은 연약하지만 세상의 복이 되고 담대합니다(7-9절)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연약하지만세상의 복이 되고 담대합니다.
7절은 야곱의 남은 자,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말합니다. 신자들은 많은 백성들 가운데 흩어져 있습니다. 많은 백성들 가운데 둘러 싸여 있습니다.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키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같습니다. 단비와 같습니다. 사람을 바라고 사람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협력해서 살지만 오직 소망은 하나님께만 둡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말씀을 통해 일하십니다. 이슬이 내리듯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공급받아 세상에 공급합니다. 단비가 풀 위에 내리듯이, 우리는 믿지 않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공급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받기를 기대하지 말고, 좋은 것을 공급합시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우리의 빛나는 고결한 행동을 세상에 보여 줍시다. 사랑의 말, 희망의 말을 사람들에게 해 줍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받는다는 이 복음을 전합시다.
8절이 말합니다. 성도는 세상가운데서 수는 적어도 강하고 강합니다. 숲속의 많은 짐승들 가운데 사자와 같습니다. 양무리 가운데 있는 젊은 사자같습니다. 수는 작지만 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온유하고 보복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자가 다른 짐승을 밟고 지나가가 찣어 버리는 것과 같이 강합니다. 사자처럼 난폭한 것이 아니라, 사자 처럼 강인합니다.
성도가 가진 사자처럼 강인한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질의 힘입니까? 권력의 힘입니까? 아닙니다. 말씀의 힘입니다. 고린도후서 10:4-5(신약 296)가 말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교회가 가진 복음 말씀은 말씀을 대항하여 높아진 사람의 생각을 무너뜨립니다. 생각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입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으면, 우리 입에 말씀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짐승들 가운데 사자같이 우리를 강인하게 만드십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 그리스도는 죽임당한 어린양인데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양 그리스도는 사자 같이 강합니다. 죽임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 안에 큰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나갈 때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붙드십니다. 사자처럼 강하게 하십니다. 이제는 부활하여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는 더 큰 위엄과 능력으로 다스립니다. 그래서 숲 속 사자의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9절의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 바랍니다.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누가 성도의 손이 높아 지게 만듭니까? 누가 성도의 원수들이
끊어지게 만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신자들은 아무리 심한 박해를 당해도, 환난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돌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보십니다. 결코 완전히 멸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더 나갑니다. 결코 물러 서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핍박당하는 그 고난 가운데서 오히려 굳게 서고, 핍박하는 자에게 영향을 줍니다. b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은 연약하지만 세상의 복이 되고 담대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약함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일하십니다(10-15절)
이제 세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약함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일하십니다.
9절-14절까지 원어에는 같은 단어가 다섯번 나옵니다. 9절에 “진멸하기를”, 10절 “멸절하며”, 11절 “멸하며”, 12절 “끊으리리”, 13절 “멸절하니니” 모두 같은 단어 “카라트”입니다.
자 봅시다. 9절에 “네 모든 원수”, “교회를 원수처럼 대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0-13절에 하나님은 구약 백성이 가진 것을 끊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끊으시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구약 교회와 성도들이 인간적으로 의지하는 군사적 수단들을 끊어 버리십니다. 그리스도인을 약하게 만드십니다. ”너의 말” “너의 병거” “너의 땅의 성읍”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군사적 수단들을 잘 준비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군사적인 것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선물을 주신 분은 잊어 버리고 선물만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데 장애물로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군사적 수단들을 끊어 버리고 파괴해 버립니다. 약하게 만드십니다.
-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여러 선물들을 주십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을 주십니다. 물질도 주십니다. 친구들, 신자인 친구들 불신자인 친구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것들이 많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이 잘 되면 교회로 모여 예배하는 일에 게을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때문에 하나님을 잊고 예배를 게을리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진 좋은 것들을 뺏아 가십니다. 건강을 뺏기도 하고, 경제적 어려움도 주십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당하게도 하십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하면 그때야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도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실 때는 다시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께로 오라는 신호입니다. 어려움 주실 때 불평하기 보다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로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끊어 버리시는 두 번째는 우상입니다. 12절에 복술(점치는 것)을 “너의 손으로부터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끊어 버리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자기가 만든 것에 경배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군사시설과 우상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도시로부터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살아 있는 믿음이 없으니까, 군사 시설을 강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살아 있는 믿음이 없으니까,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우상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인 우리와 살아 있는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인간적 보호망과 우상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도 파괴하고 군사적 보호망도 파괴합니다.
-à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점을 치러 가는 분은 없는 줄 압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가서 절하는 분도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만든 것, 우리가 노력하여 얻은 것이 하나님이나 되는 것처럼 의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의 경배하듯이 높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과 겸하여 우리가 하나님처러 받들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요즘은 직장이나 직업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직장에는 늦지 않고 출근하지만, 예배는 빠지기도 하고 가볍게 여깁니다. 직장을 잃을까 염려 걱정합니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직장을 자랑스럽게 남에게 말합니다. 직장이 안정되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가볍게 합니다.
어서 돌아 오십시오. 직업을 우상처럼 받들지 말고 먼저 예배로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입시다.
좋은 직업이 여러분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커다란 위기가 몰려올 때 좋은 직장이 여러분을 위로하고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손으로 일하여 번 돈이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삼위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와 죄로 인한 양심의 고통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많은 돈과, 좋은 학벌, 친구가 우리 양심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살아 계신 삼위 하나님만이 우리의 위로가 되십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된 위로가 되시기 위해 우리로부터 뺏아 가십니다. 우리가 너무 의지하여서 하나님처럼 의지하는 그 대상을 뺏아 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의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예방적으로 미리 뺏아 가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7(신약 298)에서 바울이 자기에 대해 말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하나님의 많은 계시를 받았고, 이 땅에 살아 있으면서 천국에 갔다 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이 교만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어떤 큰 질병이나 장애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어려움을 없애 달라고 여러 번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의 기도에 대답해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9에서 예수님께서 말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 짐이라” “나 예수의 은혜가 바울 너에게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 예수의 능력이 바울 네가 약한 데서 온전해 지기 때문이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건강을 약하게 하고 부족하게 했습니다. 바울의 부족함 가운데서 주 예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바울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능력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모욕을 받고 가난한 것을 자랑합니다. 박해받고 괴로운 것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인간적으로 볼 때 약하지만 하나님은 약함을 쓰셔서 강함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간증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립보서 4:13). 약한 것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하나님은 구약 백성의 지도자들을 치시고 백성이 외국에 포로로 끌려 가는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서 목자로서 먹여 주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과연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 베들레헴에 태어났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백성을 불러 모으셔서 평화롭게 살게 하십니다.
지금도 이 땅의 교회는 여전히 베들레헴 처럼 작고 초라합니다. 성도들의 삶이 휘황찬란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남은 자들입니다. 남은 자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이슬을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이 시대의 이슬입니다. 성령의 이슬, 사랑의 이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젊은 사자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약하게 만드셔서 주 예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 약한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서 강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 보면서 약한 가운데 강하게 사명을 다하는 사람으로 자라갑시다. 이 소망가운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