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껍데기에서 일어난 문제들
우리가 괴롭다고 느끼는 그 순간, 사실은 정말 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나라고 믿고 있었던 허망한 아상이 괴로운 것에 불과하다. 내 성격, 내 몸, 내 생각, 내 욕구 등 이 모든 것들에 우리는 쉽게 ‘나’ 혹은‘내 것’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나를 둘러싼 허망한 껍데기들일 뿐, 진짜 내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여길 때, 사실 그 문제는 내가 규정해 놓은 바로 그 껍데기들에게 생겨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성격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겨났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다만 성격에 문제가 생겨난 것일 뿐이다. 성격과 나는 동일인이 아니다. 그것을 내가 풀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니 괴로워하지 말고, 상관하지 말며, 개의치 말라. 그냥 내버려 두라. 내버려 두되 다만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관찰하라.
성격이 만들어 낸 문제들을 내가 풀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나는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성격이 만들어 낸 문제를 내가 다 풀 수는 없다. 하나의 문제를 풀었더라도 그것은 끊임없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고, 그렇게 하다가는 끊임없이 성격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뒤치다꺼리 하는 일로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을 소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나에게 주어진 이 한 생이 아깝지 않은가.
그렇다면 몸이 만들어 내는 문제를 보자. 몸이 만들어 내는 문제에 일일이 다 관여하면서 몸에게 휘둘릴 필요도 없다. 몸도 성격과 마찬가지로 내가 아니다. 다만 몸이 움직이며 어떤 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내가 할 일은 다만 관찰하고 주시하는 일일 뿐이다.
예를 들어 몸에 감기 몸살이 왔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은 다만 인연 따라 육체와 이 세상 사이의 어떤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그런데 몸이 나라고 집착하게 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병적인 현상이 되고 만다. 그러면서부터 몸에 문제가 생겼다고 안달하고 괴로워하며 내 마음까지 괴롭히곤 한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다만 멀리 아주 멀리 떨어져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다만 주목하고 주시하면 된다. 감기 몸살이 아주 멀리서 일어나는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이라 생각하고 다만 지켜보기만 하라.
다른 나와 동일시하고 있던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다. 욕구가 일어나고, 생각이 일어나고, 집착이나 관념이 생겨날지라도 그것과 나 사이에 먼 공간을 만들어 지켜보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어떤 현상을 다만 지켜보듯이,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장면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관객처럼 내 삶의 연극을 다만 지켜보라.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다만 문제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라고 가면을 쓴 가짜들이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가짜에, 껍데기에 속지 말라. 나의 몸, 성격, 느낌, 생각, 관념, 욕구, 소유, 직업, 돈……. 이 모든 것들에 ‘나’라는 수식을 빼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문제들에 휩쓸리지 말라. 그 모든 문제며 근심걱정들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만 가짜가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것들은 다만 내가 바라볼 것들이지, 나 자신의 실체가 아님을 기억하라.
흥미로운 영화를 보듯 내 삶의 연극을 지켜보라.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첫댓글 껍데기 나, 진짜 나가 있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없다.![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영화를 보듯 내 삶의 연극을 지켜보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늘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