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수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해 삶이 고달프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보고만 있어도 천국에 온 듯한 전설의 거장들의 불멸의 그림으로부터 들으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음악까지 그리고 봄 들판을 수 놓는 무수한 들풀 꽃의 아름다움, 그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 이런 수많은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고마워 할 때 우리는 행복해진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너무 도를 지나치면 숨이 막힐 듯이 감동하다가도 두려움이 느껴지고 숭고함마저 느낀다. 아일랜드의 모허절벽을 10년 만에 다시 보는 순간 처음에는 못 느꼈던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함과 아름다움에서 두려움과 함께 숭고함을 느꼈다.

230m의 높이의 절벽이 무려 8km나 이어져 있는 그 거대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해 보라! 230미터의 높이의 절벽이 8키로나 계속된다는 사실을! 가서 직접 보지 않고는 그 거대함에 압도되는 느낌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노르웨이의 뤼세 피요르드 프릭스톨렌Preikestolen 절벽(604미터)의 높이로, 미국의 그랜드 캐넌이 스케일로 모허 절벽을 압도하고도 남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이 모허절벽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함께 오는 숭고함을 주지는 않는다. 왕복 16km의 해변가 절벽을 한번 걸어 보라! 잠시도 쉬지 않고 절벽을 두드리는 대서양의 파도 소리는 우리가 걷는 길 위까지는 들리지도 않는다.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 보며 그래서 조용하게 사색하면서 걸을 수가 있다.
결코 힘들게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되고 숨 가쁘게 언덕 길을 오르고 내리지 않아도 된다. 평지길 같이 편안하게 걸으면 된다. 그냥 생각이 닿는 대로 발길이 나가는 대로 걸어 가면 된다. 바다를 보다가 지겨우면 반대쪽으로 머리를 돌리면 넓게 펼쳐진 목초지 위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는 양들이 보인다, 그 너머 육지 안으로 곱게 들어 와 앉은 조그만 만(灣) 포구 양쪽에 점점이 박혀 있는 듯한 마을의 집들을 봐도 된다. 멀리 보이는 조그만 포구 마을의 평화로운 작은 집들에서는 지금 또 어떤 희비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가도 된다. 한쪽에는 내려다 만 봐도 아찔한 높이의 절벽에 맹렬하게 부딪치는 파도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다른 한 쪽에는 노란 패랭이꽃과 하얀색의 바로 날아 가기 전의 하얀 민들레 씨 뭉치가 깔린 푸른 들판 뒤에 누운 포구 마을의 평화로움이 극명하게 되면서 양쪽에 펼쳐지고 있다. 흡사 한 쪽에서 바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면 다른 한 쪽에서는 바로 평화를 느낀다. 굳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만 삶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도 나는 삶의 교훈을 얻었다. 삶의 감사함을 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씨에 이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음 바로 이것이 축복이다 라는 감사함이 걷는 내내 들었다.
 절벽의 들판에 들꽃들이 무성하게 피어있어 운치를 더한다. |  오토바이를 타고 모허절벽 관광 온 멋쟁이 중년 라이더들. |
 자살유혹이 많은 절벽이라 곳곳에 24시간 상담전화인 사마리탄 푯말이 눈길을 끈다. |  위험천만한 상황이지만 밑을 내려다 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그 경치가 뛰어나다. |
모허 절벽Cliff of Moher은 아일랜드 서쪽 대서양 해변 골웨이 만에 있다. 1년에 10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절경이다.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 인사의 족적이 있는 곳도 아니다. 그냥 230m 높이의 바닷가 절벽이 8km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더블린에서 283km를 달려야 하니 3시간은 족히 걸린다. 왕복 6시간 길, 결국 서둘러도 더블린에서는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 다녀 올 수 있는 곳이다. 이 구석진 해변가 절벽을 왜 사람들이 찾는지는 자신이 한번 직접 와 봐야 한다. 한 번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모허절벽은 절대 그냥 들려서 절벽만 보고 사진 몇 장 찍고 가는 곳이 아니다. 반드시 16km의 왕복 길을 4시간 정도의 여유를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 봐야만 진가를 알게 된다. 필자도 10년 전에 처음 와서는 한 시간을 머무르면서 절벽을 내려다 보고 사진만 찍고 갔다. 그때는 다음 행선지 영화 ‘라이언의 딸’ 해변가 촬영 장소를 찾아 가고자 하는 욕심뿐이어서 그렇기도 했다. 두 번째 가기 위해 조사를 하다가 ‘아뿔사!’ 여기도 그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간을 넉넉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제대로 모허절벽을 즐겼다. 누구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살아 온 삶을 돌아 봐도 좋고 앞으로 살아 가야 할 앞날을 계획해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도 좋고 그들에게 못한 일을 뉘우쳐 더 늦기 전에 그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깊이 남을 사랑을 후회하지 않게 해줄 기회의 계기로 만들어도 좋다. 인생은 결코 긴 것이 아니고 흘러가면 결코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또 결코 실수의 세월은 돌릴 수가 없다. 정말 인생의 교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더 늦기 전에 마음을 나누고 사는 것이 삶이다. 여기서 그것만 느껴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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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연과 얘기들이 담겨 있는 모허절벽이라 수많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
사람들은 누구든 절벽에 서면 두 가지 감정이 든다고 한다. 첫 번째 드는 생각은 두려움이다. 정말 아래를 제대로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하다. 현기증이 나고 다리가 떨리고 오금이 저려 도저히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서 가슴이 서늘해지고 머리가 쭈뼛해지고 살에는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나면 다음에 드는 생각이 대개 자살의 충동이 든다고 한다. 한 두발만 더 내디디면 모든 것이 간단하게 끝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 바로 그것이 호기심을 동반한 자살 충동이다.
순간적인 결정만 하면 간단하게 고단한 삶을 끝낸다는 그런 식의 자살 유혹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자살유혹이라고 한다. 굳이 삶이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더 이상 지탱을 못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 그냥 막연한 유혹에서도 가끔 사람들은 절벽에서 자살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두려움도 많고 걸리는 것도 많고 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도 이런 절벽에 설 때마다 그런 이상한 유혹을 느낀다. 물론 결코 심각하게가 아닌 아주 가볍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하고 궁금하기도 하는데 가만히 보면 나만 느끼는 충동은 아닌 듯하다. 모허절벽에도 자살방지 단체 ‘사마리탄’의 전화 번호가 적혀 있다. 24시간 전화가 열려 있어 누군가가 전화를 하면 몇 시간이고 하소연을 들어 주고 상담도 해준다. 그래서 절벽에 뛰어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자기네들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하라는 호소다. 영국도 섬 국가라 바닷가 절벽이 많아 그런 팻말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공중전화 같은 박스에 직통전화가 설치된 곳도 있다고 한다. 여기 모허 절벽에도 2010년 한 해만 해안경비대 45번 출동했다는 통계를 보면 자주 그런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참 그러고 보면 삶이 쉽지 않고 고달프긴 한가 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짜 자살 경험 번지 점프를 권해 보고 싶다. 자살 얘기가 너무 길었다. 그만하자!
 영화 [더 위시리스트]의 주인공처럼 절벽에서 바다를 향해 소변을 보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고. |  갈매기들이 빽빽하게 절벽에 붙어 있어 장관을 이룬다. |
워낙 모허절벽이 드라마틱하다가 보니 여기가 각종 미디어 로케이션 장소로 선정된다. 영국 그룹 [웨스트 라이프]의 ‘마이 러브’, [리치 물린스]의 ‘더 칼라 그린’, [마룬 5]의 ‘런어웨이’ 뮤직 비디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국인들에게는 영국 가수 [더스티 스피링필드의] 재를 뿌린 장소로도 유명하고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아이리쉬’ 작가인 [에오인 콜퍼]의 ‘더 위시리스트’ 주인공처럼 이 절벽에서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싶어 하는 유혹의 장소이기도 하다. 각종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해리포터 시리즈인 ‘혼혈왕자’가 가장 유명하다. 올드무비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라이언의 딸(1970년)’에도 장면의 하나로 등장한다. 전설의 영화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 강의 다리’의 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의 ‘라이언의 딸’은 분위기 있는 영화였다. 파리하고 선병질적인 절름발이 영국군 소령 역의 크리스토퍼 존스의 치명적인 매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 매력에 이끌려 불나방 같이 달려들던 사라 마일즈의 육감적인 모습도 화면을 태울 듯이 관객들을 압도했다. 모허절벽과 함께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다. 더군다나 그 분위기 만점의 두 연인의 해변가 모래 사장 산책 장면도 같이 보고 싶기도 하다.

어디를 가나 소원을 비는 것은 똑 같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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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허절벽을 주변에는 고즈넉한 해안가와 평화로운 들판이 있어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은 오기 힘들기 때문에 좀 더 여유를 두고 관광을 해야 할 듯. |
2014년 4월 유럽에서 제일 큰 아일랜드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가 1000억 원을 주고 모허 절벽의 공식이름을 ‘라이언에어-모허절벽’으로 하기로 클레어 주와 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해서 난리가 났다. 세상에 아무리 돈이 좋아도 자연의 이름에 상표로 팔다니…… 워낙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 내 놓고 장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한다는 라이언에어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했다. 라이언에어는 비행기 안 화장실도 유료로 하고 심지어는 입석좌석 도입을 고려 한다는 얘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라이언에어는 더블린으로 들어 오는 항공편을 모허절벽 상공을 통과해서 들어 오게 해서 ‘라이언에어-모허절벽’을 소개 하겠다고 했다. 그 기사를 보는 필자 자신도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그 웅장한 절벽의 전경을 하늘에서 본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대도 되기도 했다. 이미 아일랜드 항공 관제 당국과 협의를 끝냈다고도 했다. 물론 자연보호가들의 반발도 신문에 실었다. 정말 그럴듯한 제안이었고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도 믿었다. 그런데 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날이 4월1일이었다는…… 만우절을 이용해 클레어 지방 신문이 사람들을 홀린 것이다. 만우절 기사치고는 아주 재미있었던 그럴듯한 기사였다.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될 정도로 유명한 모허절벽의 들판. |  하늘에서 보는 모허절벽이 얼마나 환상적이면 아일랜드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가 1000억 원을 주고 상표권을 샀을까? 하하 하지만 이건 4월 1일 만우절 농담이었다. |
아일랜드 사진사 한 명이 모허 절벽의 사진을 찍다가 절벽 한 가운데에 거대한 낙서를 발견해서 아일랜드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낙서예술가의 그래피티 작품이었다. 클레어 주 당국은 만일 범인이 잡히면 반드시 처벌을 받게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잡지 못하고 말았다. 사진사의 설명에 의하면 대단한 작업이었고 아주 위험한 작업이었을 거라고 했다. 높이가 워낙 높고 바다 바람이 센 지역이라 거의 목숨을 걸고 한 작업이었을 것이라고. 정말 대단한 그래피티 작품 열정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알아 주는 것도 아니고 칭찬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하는 일.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라 공공의 입장에서 보면 나쁜 일이지만 예술 사랑으로만 따진다면 바로 이것이 진정한 예술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물론 그래피티로 너무 유명해져 이제는 당당한 예술가가 된 영국인 뱅크시도 있긴 하지만…… 그는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얼굴이 안 알려진 예술가이다. 자신은 유명해져도 그냥 거리의 예술가로 남고 싶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