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도 유혹당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들의 비법!
책으로 만나는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 - 우리 We》
국내 최초로 대중 유혹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다
8월 31일부터 방영예정인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 - 우리 We》 중 1, 2부에 해당하는 《대중 유혹의 기술》은 홍보, PR, 프로파간다 등의 메커니즘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기획 후 2014년 9월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한 《대중 유혹의 기술》은 미국, 프랑스, 태국, 오스트리아, 독일, 일본 등 총 6개국을 45일 동안 현지 취재하고,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미국, 책에는 실리지 않음) MIT대 명예교수, 스튜어트 유엔(Stuart Ewen, 미국) 뉴욕 시립대 교수, 로랑 제르브로(Laurent Gervereau, 프랑스) 문화평론가, 클라우디아 쉬멜더스(Claudia Schmolders, 독일) 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인터뷰도 담았다.
TV프로그램이 성공작으로 방송된 후 출판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책 《대중 유혹의 기술》은 방송 제작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따라서 단순히 방송 내용을 활자로 풀어놓는 것을 넘어 (방송의 1, 2부에 해당하는) 100분의 시간에 담지 못한 상세한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방송 최종 편집과 책 마감이 겹쳐 8월 한 달을 초인적인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는, 다큐의 PD이자 이 책의 저자인 오정호 PD는 방송을 표준렌즈에, 책은 접사렌즈에 비유하며,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물을 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소비자의 마음, 유권자의 마음, 네티즌의 마음을 얻고 싶은가?
대중을 유혹하는 마법, 아니 기술을 보라
1934년, 조지 워싱턴 힐 아메리칸 토바코 회장은 PR 전문가 에드워드 버네이즈를 찾아간다.
힐 회장: 생각만큼 여자들이 럭키 스트라이크를 안 사고 있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버네이즈: 담배 포장지 색을 무난한 색으로 바꾸시죠. 아무 옷에나 어울리는 그런 색으로.
힐 회장: 이미 이 담뱃갑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썼소. 그런데 지금 와서 바꾸라고? 말도 안 되는 조언이오.
버네이즈: 만일 담뱃갑 색을 바꾸지 않을 거라면 색을 유행시키죠. 녹색으로.
버네이즈는 곧바로 뉴욕 사교계 인물들을 초청해 녹색을 드레스 코드로 하는 ‘녹색 무도회’를 연다. 또한 ‘녹색 패션 가을 오찬’이라는 이름하에 같은 호텔로 패션지 편집자들을 초청했다. 그들의 식사 테이블에는 녹색 콩, 아스파라거스, 강낭콩 수프 등 온통 녹색 계열의 음식들이 올라갔다. 그 자리에 초청된 한 미대 학장은 ‘위대한 예술가들 작품에 나타난 녹색’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고, 한 심리학자는 녹색의 심리학적 의미를 전달했다.
결과는 대성공. 언론들은 녹색의 유행을 예견하는 기사를 실었고, 녹색은 아메리칸 토바코를 대표하는 색으로 자리를 잡았다. 바이럴 마케팅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이 얘기를 접한 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뉴스를 수상한 눈으로 보게 된다.
올 가을에는 체크무늬가 유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라색 물결이 여성 패션계를 사로잡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중을 유혹하기 원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유권자의 마음을, 국민의 마음을, 네티즌의 마음을, 시청자의 마음을…. 저자는 대중을 유혹하는 것이 요술도 마술도 아니라고 말한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와 7가지로 정리된 기술들은 인간의 한계와 속성을 이해한 끝에 나오는 기술인 것이다.
당신은 조작당한 것인가, 설득당한 것인가
광고 및 홍보 전문가, 마케터, 정치인, 컨설턴트, 블로거, 정부기관 등 대중을 유혹하고자 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광고산업이 발전하고 IT기술이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대중을 유혹하는 기술은 점차 교묘해지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펼치는 기술이 다르고, 나라와 성별에 따라 기술이 다르게 적용되기도 한다. 최신 SNS를 이용한 기술이 있는가 하면, 전통적인 입소문이 가장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이들은 ‘가만히 있는 것’을 전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는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데, 저자는 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영역으로 침투하여 개인을 집단으로 조직화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은밀하게 이끄는 설득자들(hidden persuaders)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문제는 대중이 설득자들의 기술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득자들의 전략을 파헤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그 기술을 대중의 마음을 얻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득자들의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의 목표가 단순히 상품의 구매나 특정 후보의 당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미디어에 실려 우리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키고 세계관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미디어가 내뿜는 이미지로 사회적 현실social reality을 직조하게 되는 것이다.
최고의 대중 유혹 기술과 현실 왜곡 사례
《대중 유혹의 기술》에 소개된 사례들은 ‘유혹의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저자는 1964년, 38명의 주민이 살인사건을 목격하고도 아무도 돕지도 신고하지도 않았다는, ‘방관자 효과’의 예로 유명해진 키티 제노비즈 살인 사건이《뉴욕타임스》 기자의 왜곡된 보도에 의한 것이었음을 미국까지 날아가 확인하면서, 사람들이 공포와 분노에 더 빨리 반응함을 보여준다. 태국 프라임 타임에 방영되는 TV드라마에 강간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현지 취재하여, 드라마가 현실 세계를 묘사하는 데 근본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의식의 퇴행을 가져오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현지 평론가의 지적을 소개하기도 한다. 히틀러의 얼굴을 완성시킨 하인리히 호프만을 통해 히틀러가 대중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졌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며, 포토샵을 통한 이미지 조작이 가져오는 폐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밖에도 여성 흡연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오고, 베이컨이 미국의 아침 식탁을 점령하게 만든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천재적인 대중홍보전략, 허니버터칩과 울트라뮤직페스티벌이 보여준, 마케팅을 자제하는 ‘무전략의 전략’ 그리고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 모으는 음료회사 레드불의 획기적인 이벤트 등 20세기 최고의 대중 유혹 기술을 다루며, 이들이 대중의 어떠한 속성을 이용하는지, 어느 부분을 채워주는지 이야기한다.
새로운 논픽션 저자의 탄생
1997년 EBS에 입사한 후 주로 다큐멘터리와, 영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관련 일을 해온 오정호PD는 첫 저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있게 한 권의 책을 써냈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소제목들과 주요 문장들은 독자의 흥미를 돋우고 눈길을 끄는 역할을 하고, 편집을 수없이 경험해본 PD라는 저자의 직업을 떠올리게 하는 군더더기 없이 꽉 차 있는 단락들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여주면서 내용 전달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미디어와 대중문화, 영상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저자는 이 분야에 대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가져가고자 한다.
《대중 유혹의 기술》을 통해 트렌디한 이슈를 포착하고 이를 탄탄한 한 권의 책, 예리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능력을 보여준 저자가 앞으로 말콤 글래드웰과 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자로 성장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책속으로
대중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디어와 자본에 조작당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황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허니버터칩의 열광에 부화뇌동하기도 하고 내 집 마련 광풍에 휩쓸리기도하지만, 재난이 쓸고 간 폐허의 현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의 유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_17~18쪽
필요에 따라 대중을 유혹하는 사람들은 있던 것도 없애고 없던 것도 있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요술도 마술도 아닌 하나의 기술이다. _ 42쪽
좋은 PR이란 단순한 볼거리나 스펙터클의 의미를 넘어, 기존에 존재하는 상식이나 담론에 제동을 거는 행동이다. 액셀러레이터라기보다는 브레이크에 해당한다. 이것은 흥미로운 관점이다. 흐름을 차단한 후에야 새로운 방향으로 대중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_ 73쪽
품위를 원하는 곳에는 품위를, 허세를 원하는 곳에는 허세를, 정보를 원하는 곳에는 정보를 주는 버네이즈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살짝 얹었을 뿐이다._ 89쪽
버네이즈는 어떤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나 습관을 특정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상품도 판매할 수 있다는 믿음, 아무리 새로운 것에도 사람들은 적응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대중관, 그것은 현대 소비주의 사회를 지탱해주는 강력한 이념이기도 하다. _ 98쪽
‘이것은 멋진 것이고, 멋진 당신이라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는 느낌만 전달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것으로 소비자들은 정보탐색을 하고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이럴이 확산된다._ 107쪽
우리의 드라마적 상상력은 현실 세계를 강하게 지배한다. 하지만 그 상상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는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매트릭스 속으로 한없이 밀려들어갈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상은 정작 조금씩 멀어져간다. _ 136~137쪽
공포와 분노는 당파적 성향이 강한 집단의 편향성을 자극하고 강화한다. 사회적인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전략이 결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식이 효과적일 수는 있으나 결코 옳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공포와 분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쇄살인범이 출몰하는 도시의 공포는 필연적이고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민들의 분노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_ 169쪽
흔히 기존의 정치인들은 입에 승부를 거는 라디오 스타였다. 대중 선동의 화술이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임기응변 능력이 관건이었다. 운동권이나 법조계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인이 될 확률은 확실히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_ 202쪽
문제는 이미지 조작이 용이해지는 시대는 문자 대신 이미지라는 언어만을 편식하는 청소년이나 젊은층의 정보 편향성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지에 대한 리터러시literacy 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미지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읽고 해석해야 하는 대상으로 재인식되어야 한다. _239~240쪽
현대 대중들에게 이미지는 두 가지 위험요소가 있다. 하나는 조작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선택하는 이미지가 남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골라준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훨씬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눈치챌 수 없을뿐더러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의 결과물과 함께 존재한다. _ 245쪽
대중을 유혹하는 최고의 기술은 대중의 무의식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의 무의식이 새어 나오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_ 274쪽
우리는 각자 하나의 도시다. 그 도시는 무의식과 의식이 결합된 모호한 공간이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전혀 다른 마음속 지형을 가진 까닭에 그 지도의 모양은 각자 다르다. _ 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