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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lls of Our Lady Basilica at Lichen Stary at Poland.
폴란드 리첸의 성모발현: 슬픔의 성모님
[요약]
전승에 따르면 1813년 성모 마리아께서 폴란드 리첸(Lichen)에서
부상병 토마스츠 클로소브스키에게 발현했으며,
그는 곧바로 치유되었고 성모님의 놀라운 초상화를 발견했다.
그런 다음 성모님께서는
1850년 가난한 목동 미콜라이 시카트카에게 발현했으며
그는 성모님께 대한 공경을 더욱 심화시키게 되었다.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콜레라가 창궐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많은 사람이 치유될 수 있도록 중재했다.
[사건일지]
마스츠 클로소브스키는 18세기 후반에 태어났으며
한 때 시골의 신사로서 대저택과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저택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조국 폴란드가 침략을 받아 독립을 잃게 되자
그는 폴란드와 국토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에 입대했다.
그의 재산은 이미 몰수 되었고
침략자들은 그를 투옥시켜 죽이려고 위협했다.
1813년 토마스츠는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자신의 지휘관
요제프 포니아토브스키 왕자의 죽음을 목격했다.
토마스츠는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부위에 관통상을 입었고
머리까지도 부상을 당해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전쟁터에서 거의 죽게 되었다.
그는 성모님께 자신을 도와주어
자신의 집과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전쟁터에서 혼자 죽지 않게 하시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죽음에 직면하여 그는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으며,
외국 땅에서 죽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께서는 왕관을 쓰고
자줏빛 드레스와 황금빛 망토를 입고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오른 손에 흰독수리를 들고 그에게 나타났다.
성모님께서는 부상당한 군인을 위로해 주시면서 건강이 회복될 것이고
조국 폴란드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해주었다.
더 나아가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닮은 그림을 찾아내어
폴란드 전역에 알리라고 지시했다.
"성모님께서는 제게 와서 제 건강을 약속했습니다.
또한 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당신의 모습을 닮은 이미지를 가지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라고 토마스츠는 말했다.
아울러 성모님께서는 공공장소에 당신의 이미지를 걸어놓으라고 지시하면서
"사람들은 바로 이 내 이미지 앞에서 기도하게 될 것이며
가장 힘든 시련이 있을 때마다
나의 손이 베푸는 많은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완치된 그 병사는 리첸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수년 동안 성모님의 기적의 이미지를 찾아 시골 전역을 헤매었다.
1836년 9월 8일에 개최되는
"복되신 성모 마리아 탄생일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쳉스토호바(Czestochowa)를 걸어서 순례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 13년 동안 수많은 교회에서 보았고 모든 곳에서 보았지만
그 어떤 그림도 성모님께서 일러주신 이미지와 똑같지 않았다고
기도하면서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다음 날인 9월 8일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는
멀리 떨어진 리고타(Ligota) 마을까지 왔다.
바로 그때 작은 성지에서
못으로 나무에 걸어놓은 작은 그림을 보게 되었으며,
바로 이 그림이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림이라고 깨닫게 되었고
성모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정말로 응답해주셨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 그림을 보고 그는 성모님께서 반쯤 감은 눈으로
흰독수리를 내려다보시면서 전쟁터에 있는 자신을 도와주었던
바로 그 이미지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성모님의 모습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성모님의 얼굴 빛은 고요함과 장엄함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충만되어 있었고
확신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모님이 입고 있는 황금빛 망토에는 수난, 가시관, 채찍, 못 및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던 창 등이 수놓아져 있었다.
성모님 이미지의 머리 위에는 황금 왕관이 있었으며
"폴란드이 여왕이시어!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고 새겨져 있었다.
처음에 그는 이 초상화를 자신의 집에 걸어두었으며
그 그림 앞에서 기도하면서 공경과 존경으로 충만했다.
성모님의 이미지는 날마다 울고 있었으며
그 때마다 토마스츠는 그 눈물을 닦아드렸다.
그런 다음 그는 이 이미지를 자신의 집 가까이에 있는
"푸스츠차 그라블린스카" 숲 속의 노송에 걸어두었다.
1844년 그는 병이 나서 도움이 필요했으며
사제와 의사를 부르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자신의 방에 혼자 있게 되었다.
그때 벽에 걸어 놓은 성모님의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토마스츠야, 나를 숲속으로 데려다 다오." 라는 말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너무 아팠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불만을 터트리자
"건강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소리를 듣게 되었다.
곧바로 완치된 그는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놀랬다.
결과적으로 그는 숲속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으며
그곳에 기적의 이미지를 걸어두었다.
그는 매주 일요일마다 그 예배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혼자서 벽에 걸어놓은 기적의 성모님 이미지와 함께
종종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1848년 8월7일 토마스츠 클로소브스키가 세상을 떠났다.
1850년 5월 13일 성모 마리아께서
목자 미콜라이 시카트카에게 발현했다.
성모발현 당시 53세였던 미콜라이는 1787년 그라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성모님 이미지가 있는 숲 가까이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
그는 정직하고 신앙심이 독실하고 신중하고 진실된 사람으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으며,
상당히 종교적인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토마스츠가 숲 속에 세워 놓은 작은 예배당을 마주치게 되자
그는 기도하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발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라" 고 말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아멘" 이라고 대답하고는 일어서서
놀라움과 침묵 속에서 성모님 이미지를 바라보았다.
성모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콜라이야, 그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
가까워졌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라.
전염병이 이 지역의 모든 주민들을 괴롭게 할 것이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갑자기 들판과 자신들의 집에서 죽게 될 것이다.
참회하고 기도하도록 그들을 독려해라.
회개한다면 징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수난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라고 일러주어라."
성모님께서는 미콜라이에게 15개의 신비[현재는 20개의 신비]가 담긴
긴 로사리오를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타락되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끔찍한 전쟁 - 크림전쟁(Cream War) - 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며,
전염병 - 콜레라- 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나의 이 신성한 이미지를 참배하러 오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에 와서 이 신성한 이미지로부터 흘러내리는
은총의 시냇물을 길어가라고 일러주어라."
이렇게 지시한 후에 성모님께서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그 상황을 미콜라이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자리에 서 계신 성모님께서는 매우 슬퍼보였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거의 울고 있었습니다.
슬픈 눈빛으로 나를 다시 바라보신 다음 멀리 가버렸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땅을 밟지는 않았지만
황금빛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고 미콜라이는 증언했다.
성모님께서 멀리 떠나시자, 그는 성모님을 돌려세우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던 분이
누구였는지를 알아차리고는 무릎을 꿇었다.
미콜라이는 성모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으며
참회하고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미사에 참석하고 고해성사를 보았지만
분명히 성모님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는 않은 까닭은
악의에 찬 사람들과 조롱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1850년 8월 15일 미콜라이에게 주신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개종할 것,
탐욕과 방종을 차단할 것 등을 사람들에게 권고했다.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로사리오기도를 바칠 것을 권했으며
일요일 미사전례에 반드시 참석할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울러 성모님께서는 사제들에게
일요일 미사전례를 정성껏 집전하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성모님께서는 또한 당신의 이미지를
좀 더 알맞은 장소로 옮기라고 요청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이미지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흑사병이 창궐하는 동안에도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성모님께서는 또 죄인들의 회개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벌로 흑사병이 창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성모님께서는
리첸에 성지와 수도원을 건립하라고 말했으며
그곳에서 당신의 영광이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가난한 목자 미콜라이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퍼트리기 시작했지만,
러시아 침략자들은 그를 박해했으며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1852년 성모님의 예언에 따라 콜레라가 창궐하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성모님의 경고를 떠올리게 되었고
마침내 성모님의 이미지 앞에 모여들어
아픈 이들과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지역 교구의 사제
플로리안 코신스키 신부를 요청하게 되었으며,
코신스키 신부는 자신의 교구에는 몇 년 동안 숲 속의 작은 예배당에
성모님의 그림이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지난 2년 동안 이 지역의 한 농부는 날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부인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부인은 이 농부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다.
바로 그 메시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참회해야만 한다는 것,
삶을 변화시켜야만 한다는 것, 미사에 참석해야만 한다는 것,
임박한 벌의 위협과 사악한 사람들에게 퍼져 있는
질병으로부터 돌아서기 위해서
하느님께 세 번의 미사를 봉헌해야만 한다는 것 등이었다.
당국에서는 몇 번이나 그 농부를 체포해서 심문했지만,
똑같은 이야기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그 부인은
여러 번에 걸쳐 요구했으며 실제로 주장했다고 그 농부는 증언했다.
1852년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성모발현을 조사했다.
1852년 9월 29일 교구의 사제 플로리안 코신스키 신부의 요청으로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성모님의 초상화를
리첸에 있는 교구의 교회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교회와 사제관은 압류되어 "나치청소년단"에서 사용했다.
숨겨 놓았던 성모님의 이미지는 보전될 수 있었다.
1949년 "마리아신부회"에서 리첸의 교구를 위탁받아 관리했다.
이들은 전쟁으로 손상된 성지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1965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리첸의 성모님"의 자비로운 이미지를
기적의 이미지로 인정한다고 언급하면서 "칙령"을 발표했으며
성모님께 교황의 왕관을 수여하라고 지시했다.
1967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그 당시 폴란드의 수석 대주교였던 스테판 비스진스키 추기경은
브로크라브스카 교구의 교구장 안토니 파블로브스키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리첸의 성모님"의 기적의 이미지에 왕관을 수여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주교들, 수 백명의 사제들과 종교계 인사들 및
대략 150,000명의 평신도들이 이 의식에 참석했다.
1999년 6월 7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면서
"리첸의 성모님"의 새로운 성당이 신축되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머릿돌을 축복하시고
폴란드의 가장 큰 교회를 봉헌했다.
2007년 9월 16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마리아 신부회"가 성지관리를 맡았다.
"마리아신부회"는 복자 스타니슬라우스 파프친스키 신부가 창립했으며,
그는 바로 이 성지에서 복자로 시복되었다.
[발현하신 성모님에 대한 설명]
자신의 설명에서 토마스츠는 성모발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도와달라는 내 외침을 듣고 바삐 서두르듯이 성모님께서는 내게로 왔으며,
나는 성모님께서 전쟁터를 가로질러 내게로 오시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검붉은 가운을 입고 있었고, 그 위에 걸친 황금빛 망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표장이 있었으며
머리에는 아름다운 황금왕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오른 손에는 흰독수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을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의 모든 고통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성모님의 얼굴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슬픈 눈을 반쯤 뜬 채 흰독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하느님의 모후께서는 그 독수리를 가슴에 안고 있었습니다."
[메시지]
1813년 성모 마리아께서 부상병 토마스츠 크로소브스키를 위로하면서
회복되어 폴란드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더구나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그림을 찾아내어
토마스츠의 조국 폴란드에 널리 알리라고 지시했다.
"나를 찬찬히 잘 보아라.
그래야만 네가 찾게 될 그 이미지에서
지금의 내 모습대로 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는 성모님으로부터 이 이미지를
공공장소에 걸어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야만 내 백성들이 이 이미지 앞에서 기도하게 될 것이고
가장 힘든 시련이 있을 때마다 나의 손이 베푸는
많은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1850년 5월 13일 성모 마리아께서 목자 미콜라이 시카트카에게 발현했다.
성모발현 당시 미콜라이는 성모님 이미지가 있는
숲 가까이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으며,
토마스츠 숲 속에 세워 놓은 작은 예배당을 마주치게 되자
그는 기도하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발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라"고 말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아멘" 이라고 대답하고는 일어서서
놀라움과 침묵 속에서 성모님 이미지를 바라보았다.
성모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콜라이야, 그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
가까워졌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어라.
전염병이 이 지역의 모든 주민들을 괴롭게 할 것이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갑자기 들판과 자신들의 집에서 죽게 될 것이다.
참회하고 기도하도고 그들을 독겨해라.
회개한다면 징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수난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라고 일러주어라."
성모님께서는 미콜라이에게 15개의 신비[현재는 20개의 신비]가 담긴
긴 로사리오를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타락되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며,
전염병(콜레라)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 나의 이 신성한 이미지를 참배하러 오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에 와서 이 신성한 이미지로부터 흘러내리는
은총의 시냇물을 길어가도록 일러주어라."
이렇게 지시한 후에 성모님께서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그 상황을 미콜라이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자리에 서 계신 성모님께서는 매우 슬퍼보였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거의 울고 있었습니다.
슬픈 눈빛으로 나를 다시 바라보신 다음 멀리 가버렸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땅을 밟지는 않았지만
황금빛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고 미콜라이는 증언했다.
성모님께서 멀리 떠나시자, 그는 성모님을 돌려세우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던 분이
누구였는지를 알아차리고는 무릎을 꿇었다.
미콜라이는 성모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으며
참회하고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고 미사에 참석하고 고해성사를 보았지만
분명히 성모님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는 않은 까닭은
악의에 찬 사람들과 조롱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1850년 8월 15일 미콜라이가 기도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두 번째로 발현했다.
미콜라이에게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참회와 기도를 하도록
사람들에게 전파하지 않았다고 그를 꾸짖었다.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아주 사악해졌다.
그들은 중대한 죄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내 아들도 너무 화가 나 있다.
내 아들은 아주 호되게 죄인들을 처벌할 것이다.
내 아들에게 잠시 동안만 참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의 정당한 징벌을 더 이상 미루게 할 수가 없단다."
아주 긴 메시지를 전한 다음 성모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했다.
"사람들에게 로사리오기도를 암송하도록 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도록 하여라.
미콜라이야! 속죄의 미사를 위해 헌금을 마련하도록 해라.
모든 이들에게 헌금을 내도록 해라.
자선을 위해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헌금을 내도록 해라.
미사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란다.
따라서 사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제의 말은 사라져 버리고 소멸될 것이다."
그런 다음 성모님께서는 사제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주었다.
"오! 나의 사제들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거라.
언제나 사람들을 축복하고 낙담하지 말거라.
나는 모든 사제들을 위한 어머니,
가장 사랑하고 가장 염려하는 어머니란다.
너희 사제들이 기도하고 참회한다면,
그들을 들어 올려 깨끗하게 해줄 것이다.
그들을 강화시켜 주고 보호해줄 것이다.
너희들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줄 것이다.
수많은 사제들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그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풀 것이며
여기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항구적인 영성과 원래의 열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기적과 표징]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토마스츠는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부위에 관통상을 입었고
머리까지도 부상을 당해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전쟁터에서 거의 죽게 되었다.
"리센의 성모님"께서 그에게 발현하시어 그를 치유해 주셨다.
1844년 그는 다시 병이 나서 도움이 필요했으며
사제와 의사를 부르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자신의 방에 혼자 있게 되었다.
그때 벽에 걸어 놓은 성모님의 그림에서 흘러나오는
"토마스츠야, 나를 숲속으로 데려다 다오." 라는 말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너무 아팠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불만을 터트리자
"건강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소리를 듣게 되었다.
곧바로 완치된 그는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놀랬다.
결과적으로 그는 숲 속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으며
그곳에 기적의 이미지를 걸어두었다.
가난한 목자 미콜라이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시작했지만,
러시아 침략자들이 그를 박해했으며 투옥시켰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예언에 따라 2년 뒤에 콜레라가 창궐하게 되자
사람들은 성모님의 경고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부터 사람들은 성모님의 이미지 앞에 모여
아픈 이들과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로사리오기도를 바쳤다.
수많은 치유가 계속되었다.
1939년까지 기도에 대한 응답이 3,000번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기적의 회복도 포함되어 있다.
[교황청의 공인]
1852년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성모발현을 조사했다.
1852년 9월 29일 교구의 사제 플로리안 코신스키 신부의 요청으로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성모님의 초상화를
리첸에 있는 교구의 교회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청소년단"이 교회와 수도원을 강제로 사용했다.
다행스럽게도 성모님의 이미지를 숨길 수 있었고 보존될 수 있었다.
1949년 "마리아신부회"에서 리첸의 교구를 위탁받아 관리했다.
이들은 전쟁으로 손상된 성지를 복원하기 시작하여 1967년 완성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면서
"리첸의 성모님"의 새로운 성당이 신축되었다
1965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리첸의 성모님"의 자비로운 이미지를
기적의 이미지로 인정한다고 언급하면서 "칙령"을 발표했으며
성모님께 교황의 왕관을 수여하라고 지시했다.
그 당시 폴란드의 수석 대주교였던 스테판 비스진스키 추기경은
브로크라브스카 교구의 교구장 안토니 파블로브스키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리첸의 성모님"의 기적의 이미지에 왕관을 수여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주교들, 수 백명의 사제들과 종교계 인사들 및
대략 150,000명의 평신도들이 이 의식에 참석했다.
1999년 6월 7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면서
"리첸의 성모님"의 새로운 성당이 신축되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머릿돌을 축복하시고
폴란드의 가장 큰 교회를 봉헌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바실리카를 모델로 하여 신축된
"리첸의 성모님 성전(Sanctuary of Our Lady of Lichen)은
폴란드에서 가장 큰 교회로서
유럽에서는 일곱 번째로 크고 세계에서는 열 번째로 큰 교회이다.
이 성전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건설되었으며,
가로 77m 이고 세로 120m 이다.
또한 이 성전은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건축되었으며,
"슬픔의 성모님, 폴란드의 여왕"(Our Lady of Sorrows, Queen of Poland)
으로 알려진 기적의 이미지의 안식처이다.
이 성전은 리첸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있는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에 자리 잡고 있으며,
"쳉스토호바의 하느님의 모후"가 있는
야스나 고라에서 멀지 않은 남서쪽에 있다.
이 성전은 폴란드의 중요한 순례지이자 성모발현 성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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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Tour of Basilica of Our Lady in Licheń, The Largest Church in Po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