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사랑이 율법을 완성한다
― 문자에서 사랑으로
사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위해 규칙을 만든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정한다.
종교도 수많은 계명과 규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된다.
계명을 지키는 목적은 무엇인가?
계명을 지키는 것 자체가 목적일까?
아니면 계명을 통해 사랑을 이루는 것이 목적일까?
나는 이 질문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마태복음 ―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러 오신 예수
예수님은 율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마태복음 5:17
여기서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완전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율법을 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따라가 보자.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율법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마태복음 22:37~40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이 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은 수많은 율법을 사랑이라는 중심으로 모으신다.
2. 마가복음 ― 사랑은 모든 계명의 중심이다
마가복음에서도 같은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 마가복음 12:33
그리고 예수님은 그 서기관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마가복음 12:34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제물보다 사랑이 중요하다.
종교적인 행위보다 사랑이 중요하다.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도 돌아보게 된다.
예배를 얼마나 많이 드렸는가?
기도를 얼마나 오래 했는가?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
물론 이런 행위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랑을 잃어버린 형식이 되어버린다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멀어질 수 있다.
3. 누가복음 ―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누가복음에서는 사랑을 더욱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준다.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묻는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누가복음 10:29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그를 지나갔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돌보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묻는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누가복음 10:36
율법을 아는 것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사랑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 누가복음 10:37
사랑을 아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4. 요한복음 ― 사랑은 예수님의 새 계명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분명해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34
예수님은 새로운 계명을 말씀하신다.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그 기준을 자신에게 두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방식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이다.
용서하는 사랑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랑이다.
자신을 낮추는 사랑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사랑이다.
5. 도마복음 ― 둘이 하나가 될 때
도마복음 22장은 매우 독특한 표현을 사용한다.
"둘을 하나로 만들 때..."
― 도마복음 22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안과 밖, 위와 아래, 남자와 여자 등의 구별을 넘어서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이 말씀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나는 이 말씀을 분리된 것을 하나로 바라보는 영적 통찰로 묵상하고 싶다.
사랑은 분리를 넘어선다.
나와 너를 완전히 단절된 존재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벗어나,
서로 연결된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다.
물론 이것이 모든 차이를 없애자는 뜻은 아니다.
사람마다 역할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그러나 다름이 곧 분리와 적대가 될 필요는 없다.
다르지만 하나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도마복음 22장을 묵상하면서 발견하는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다.
6. 율법은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준과 질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율법의 목적이 사랑보다 앞설 수는 없다.
율법 때문에 사람을 정죄하고,
규칙 때문에 사람을 배척하고,
종교적 기준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율법의 문자만 붙잡고 그 정신을 놓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여러 장면도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7. 사랑과 율법의 관계
나는 사랑과 율법의 관계를 이렇게 생각해 본다.
율법은 방향을 가르칠 수 있지만, 사랑은 그 길을 걷게 한다.
율법은
"하지 말라."
"해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율법이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사랑과 함께 갈 수 있다.
그러나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충돌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중심을 사랑으로 돌아오게 하신 것이 아닐까?
8. 『그리스도의 강론』을 참고하여
『그리스도의 강론』은 인간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생명의 근원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사랑을 바라보면,
사랑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만이 아니다.
내 안의 생명과 다른 존재의 생명이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는 말씀을 다시 생각한다.
왜 하필 **"네 자신과 같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이 말씀은 나와 이웃을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보지 말라는 뜻으로 묵상할 수도 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
내가 고통을 싫어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고통을 싫어한다.
내가 사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도 사랑받고 싶어 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랑은 명령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마음이 된다.
9. 사랑은 종교를 넘어선다
나는 종교가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종교를 믿는 사람만 사랑하고,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만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아직 제한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사랑의 범위를 가장 멀리까지 확장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일반적인 본능을 넘어서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0. 사랑과 하나 됨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차이를 경험한다.
성격이 다르다.
생각이 다르다.
종교가 다르다.
정치적인 생각도 다르다.
삶의 방식도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나라는 것은 모두 똑같아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 됨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책 전체에서 묵상하고 싶은 문장은 다시 이것이다.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여러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한 뒤 내가 정리한 하나의 문장이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다.
각자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11. 오늘의 묵상
-오늘 나는 누구를 판단했는가?
-오늘 나는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었는가?
-내가 지키고 있는 종교적 규칙 때문에 누군가를 정죄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사랑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지금 지키고 있는 것은 율법의 문자인가, 아니면 그 안에 있는 사랑인가?"
12. 한 줄 묵상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며, 사랑의 완성은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오늘 사랑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
내 삶으로 내가 대답해야 한다.
예수님 말씀으로 성경 이해하기 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