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 "/home/jnilbo/public_html/banner_include.php3"; ?>"사죄 없이 어떻게 광주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느냐."
지난달 30일 광주시청 앞 한 일본 자동차 전시판매장 앞에서 80대 할머니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그 할머니는 굳게 닫힌 유리문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그 곳은 일제강점기 우리 조상을 일본으로 끌고 가 강제노역을 시키고 아직까지 임금을 주지 않은 미쓰비시중공업 계열의 미쓰비시 모터스 매장이었다. 그리고 이 노파는 초등학생의 나이에 '일본에 가면 공부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그 임금마저 떼인 양금덕(81) 할머니였다.
'근로정신대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이날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광주의 한복판에 자동차 전시판매장을 오픈한 데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터였다.
양 할머니의 절규는 계속됐지만 매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것을 알고 직원들이 미리 자리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날 시민모임은 대답없는 매장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회원들은 5일부터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일본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와 한국의 서울사무소 앞에서도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며 매주 금요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제 광주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매일 1인 시위가 이어진다. 시민모임의 회원들은 '강제노역 사죄ㆍ배상, 매장 자진 철수'를 외쳤다. 첫날 시위에서는 미쓰비시측의 사죄도 배상도 받지 못하고 최근 하늘로 떠난 김혜옥 할머니의 영정도 함께 했다.
사실 미쓰비시는 비단 광주에서의 반발뿐 아니라 자국에서도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하토야마 정권이 집권하면서부터다. 아시아 외교의 성공을 위해서 과거사 정리는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할 숙제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는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주체 중 하나이기 때문.
더욱이 내년은 강제합방 10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국민의 사과 요구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에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그리고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억울한 삶을 마감한 피해자들이 묻힌 이 곳 광주에 매장을 열었다는 것은 미쓰비시가 스스로 도화선에 불을 당긴 격이다.
그러나 미쓰비시측은 대답이 없다. 묵묵부답이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마찬가지다. 미쓰비시는 이번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감정적 처사라고 애써 위안하며 무대응으로 일관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절규가 과연 감정에 치우친 비이성적 행동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