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산(823.2m)~필봉산(848m) - 경남 산청
☞ 산행일자 : 2019. 2. 9.(맑음)
☞ 산행경로 : 구형왕릉주차장~구형왕릉~망경대~왕산~필봉산~안부갈림~광구계곡~동의본가
☞ 산행거리 : 도상거리 8.55km 실거리 10.0km
☞ 산행시간 : 약 4시간 30분 (중식, 휴식 포함)
구형왕릉주차장(09:05)~구형왕릉(09:15)~유의태약수터(09:54)~망경대(10:21)~망바위(10:51)
~소왕산(10:58)~왕산(11:47)~여우재(12:12)~필봉산(12:27)~안부갈림길(13:04)~동의본가(13:34)
오늘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애환이 서려있는 왕산을 간다.
더불어 그 옆에 있는 필봉산과 묶어서...
왕산은 구형왕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증손자 김유신장군에 얽힌 이야기와
조선건국에 반대한 고려충신 '두문동 72인'의 한 사람인 농은 민안부의 충절이 서려있는 망경대,
허준의 스승인 류의태의 이야기 등 많은 역사와 전설을 품고있는 산이기도 하여
한 번쯤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원래 설연휴의 끝자락이라 가벼운 코스로 산행지를 정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천천히 여유로운 산행을 한다면 5시간 정도..
산행 후 동의보감촌까지 둘러보고 하면 6시간 정도는 소요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동의보감촌까지 여기저기 둘러봤음에도 불구하고
5시간을 조금 넘기고 모든 일정이 끝나버렸다..
구형왕릉주차장에서 출발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넓은 주차장엔 달랑 차량 두 대만...
버스에서 내리니 한겨울의 차가운 냉기가 온 몸을 파고든다...
잠시 오르면 도로옆에 김유신 사대비(射臺碑)가 보이고..
김유신이 어린 시절 자신의 증조부인 구형왕의 무덤 앞에서
수 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고...
류의태약수터 2km 이정표가 좌측을 가리키고 있어
약수터를 거쳐야 하니까 앞선 대원들이 그냥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직진길에 멀찍이 건물이 보였지만 별 생각없이 대원들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아뿔사 구형왕릉을 지나쳤다.
직진길에 보이던 건물이 구형왕릉이었다.
다시 되돌아가 구형왕릉으로 간다..
구형왕릉
구형왕(仇衡王 521년~532년)은 가락국 제10대 왕으로
가락국시조 김수로대왕의 10세손으로 가락국(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다.
가락국 제9대 겸지왕의 아들로 서기 521년에 가락국 제10대왕으로 등극하였다.
휘는 구형이며, 존호는 양으로 계화왕후와 세종, 무력, 무득, 세 아들과
증손으로 흥무대왕 김유신과 5대 외손으로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을 두셨다.
서기 532년에 전쟁의 피해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신라에 나라를 선양하고
가락 지품천 방장산 속 '태왕산'으로 들어오셨다.
나라를 내어준 까닭에 '돌무덤으로 장례를 치르라'하신 유언으로
산 아래 경좌의 언덕 석릉에 영면하시게 된다.
호릉각
산청 왕산 구형왕릉
국가사적 제214호인 구형왕릉은 가락국 제10대 임금인 양왕의 능이다.
국내유일의 피라밋 형 석릉으로 일반 봉토 무덤과는 달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산기슭 경사면에
크고 작은 암석을 쌓아, 총 일곱단의 층을 이루며 정상부는 타원형이다.
전면 중앙에서 부터 높이 1m 내외의 담이 둘러져 왕릉을 보로하고 있으며,
앞면 전체의 높이가 7.15m로 하단 길이 25m이며,
동쪽 4단 중앙에 가로, 세로 40cm 깊이 68cm의 석문이 마련 되어 있다.
구형왕릉에 대한 역사기록으로는, 동국여지승람,
산청현읍지, 대동지지, 조선환여승람 등에 있으며,
능의 심릉 사실로는 조선시대 문신 이행의 왕산조릉기,
승려 탄영의 왕산사 목함기, 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 등에 그 내용이 남아 있다.
무덤 앞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 적힌 비석과 문무인석상(文武人石像)과
석수(石獸) 등이 세워져 있고 돌담이 이 모두를 감싸고 있다.
1500년에 가까운 세월의 흔적이 돌담과 돌무덤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왕릉을 돌아보고 다시 되돌아 나와 산길로 들어선다...
잠시후 약수터와 망경대 갈림길이 나오지만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약수터 가기 전 중간에 임도에서 다시 만난다.
임도에 올라서니 다시 이정표는 산길로 망경대 1.07km를 가리킨다.
그래서 산길로 들어서고 보니 또 이 길이 아니다.
이 길은 류의태약수터를 거치지 않고 곧바고 망경대로 오르는 길..
그래서 다시 임도로 내려서고 이후 사리탑이 있는 수정궁터까지 계속 임도를 따른다..
4개의 사리탑이 있는 수정궁터
둘레길 버리고 유의태 약수터 방향으로..
구형왕이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긴 후
여생을 보냈다는 궁궐터인 수정궁터를 지나면 류의태약수에 닿는다
4개의 사리탑..
왕산사 부도탑 연기비
잠시 등로를 벗어나 왕산사지(王山寺址)로 올라가 본다...
왕산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그냥 텅빈 공터뿐..
아무런 흔적도 볼 수가 없다..
약수터 아래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평전샘을 경유하여 곧장 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류의태 약수터
이 약수터의 물은 조선 중기의 명의(名醫) 류의태가
왕산에서 채취한 산약초로 탕약을 만들 때 사용한 약수로 전해지고 있다.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약수터 앞에서 곧장 좌측의 다리를 건너면 망경대로 가는 북북서쪽 사면길..
두 어 군데의 너덜길도 지나고...
약수터에서 20분쯤 오르면 구형왕릉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우측 능선으로 제법 가파르게 오른다...
초반부터 계속되는 오름길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땀이 배이더니
능선에 올라서 찬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니 다시 한기가 스며든다..
망경대 오름길엔 잔설이 얼어붙어 제법 등로가 미끄럽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민안부 선생의 망국의 한이 서린 망경대..
북쪽으로 멀리 황석산이 보일텐데 어딘지 분간이 잘 안간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의보감촌과 봉화산이 눈 앞에 보이고...
멀리 황매산, 감암산, 부암산 라인도 보인다..
다시 한고비 올라서니 등로엔 눈이 수북하고...
동의보감촌 2.37km 갈림길을 지나고..
차가운 날씨에 등로의 잔설은 얼어 붙었다..
없는 것 보다 못한 통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망바위에 도착한다..
망바위
정면으로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을 닮았다는 필봉산이 그 날씬한 자태를 드러내고
그 너머로 지리산 능선의 동쪽 끝 봉우리인 웅석봉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아래로 동의보감촌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황매산,
우측으론 필봉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그 뒤로 웅석봉까지...
필봉산 너머로 동왕등재, 도토리봉, 웅석봉
동의보감촌과 멀리 황매산 라인...
산청군을 가로지르며 경호강이 흐르고...
동의보감촌을 당겨보고...
우측의 필봉산과 가운데 강구산
필봉산 뒤로 멀리 웅석봉도 보이고..
망바위에서 왕산 정상까지는 사방으로
탁 트인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천왕봉과 독바위 능선 뒤로 반야봉도 흐릿하게 보이고
함양독바위를 당겨보고
그 뒤에 반야봉이 걸렸다.
구불구불 흘러가는 임천 뒤로 법화산이 우뚝하고...
소왕산
소왕산에서 본 필봉산..
천왕봉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보면
함양 독바위 능선이 뚜렷하고 그 아래에 임천강이 흐른다.
함양의 남호리
법화산과 뒷쪽의 삼봉산 우측으로 함양의 오봉산도 보인다..
소왕산에서 본 지나온 망바위...
소왕산을 지나 넓은 헬기장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쉼터...
류의태약수터(1.6km)로 바로 내려가는 갈림길..
산청의 왕산
산청 방장산(지리산)중 왕산은 장대한 지리산맥의 동북쪽 끝으로
가락국시조대왕 김수로의 태왕궁지이다.
서기162년 김수로대왕은 첫째 왕자인 거등에게 나라를 양위하고,
가락지품천 방장산 자락에 별궁을 짓고 태후와 함께 이거하여
왕의 호를 보주황태왕, 왕후를 보주황태후로, 궁은 태왕궁으로 산은 태왕산으로 명명하셨다.
대왕께서는 태왕원군으로 38년간 계시다가 기묘년 3월23일에 서거하셨다.
330여년이 흐른 후, 서기 532년 가락국 마지막 10대 양왕(구형왕)께서 시조대왕의 태왕산으로 들어오셨다.
가락 지품천 태왕산은 구형왕께서 이거한 당시에도 수정같이 맑은 물이 샘솟고 있어
궁궐의 이름을 '수정궁'으로 편액하고 수년 간 은거하다가 붕어하시니 존호를 양(讓)이라 하였다.
훗날, 흥무대왕 김유신대장군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7년동안 시능을 하였으며,
활쏘기와 무예를 연마하며 삼국통일의 바탕을 이루는 호연지기의 기상을 닦았고,
왕의 5대 외손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은 제향의 받드는 비용으로 왕산 일대 토지를 하사하였다.
왕산심릉기에 의하면 산양현 서쪽 모퉁이 방장산 동쪽 기슭에 산이 있고 절이 있는데,
위에는 왕대가 있고 아래에는 왕릉이 있다.
무릇 능은 가락국 제10대 구형왕의 능침이고, 태자 대각간 서현과
증손 대장군 유신이 왕대에 시조대왕의 묘우를 추봉하고,
이 절에 구형왕사를 세워 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삼았다.
왕산이라 지명한 것은 이 사적에서 비롯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락국 태왕산에서 유래가 되어 '왕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산청의 왕산은
가락국 시조(김수로대왕)의 사적이 있고, 양왕(구형왕)과
흥무대왕(김유신장군)의 역사가 깃든 "가락국 삼왕의 고적지"이다.
정상석 등 뒤로 천왕봉이 기세 등등하게 다가서고 왼쪽으로는 필봉산이 우뚝 서 있다.
웅석봉에서 중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동부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 멀리 황매산이 보이고...
황매산 우측으로는 감암산, 부암산
아래는 산행 날머리가 될 동의보감촌이다...
돌아본 망바위...
황매산을 가까이...
황매산 감암산, 수리봉, 부암산
필봉산을 향해서..
필봉산 뒤로 정수산과 둔철산이 보이고...
웅석봉과 우측으로 달뜨기 능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우측으로 지리의 동부능선이 이어지고..
여우재에 내려서고..
이러다간 1시쯤이면 산행이 끝날것 같아
필봉산오름길로 오르는 일행들을 쉬어가자며 불러내린다...
필봉산 오름길
육산인 왕산과는 달리 군데군데 암릉이 보이고..
필봉산앞에서 우회길을 버리고 직등한다..
필봉산에서 돌아 본 왕산과 우측의 망바위
동의보감촌과 봉화산
금서면 일대를 경호강이 흐른다..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을 닮았다는 필봉산
정상부는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산청군들녘 뒤로 정수산과 둔철산
필봉산 정상에서...
천왕봉...
저~기는 황매산...
동의보감촌...
좌측 멀리 흐릿하게 남덕유와 장수덕유도 보이고
황매산 능선...
잠시 후 필봉산을 내려서면 오른쪽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멀리 풍력발전기가 있는 감악산 뒤로 가야산이 흐릿하게 보일 듯 말듯...
우측으로 오도산도 흐릿하고..
바위 옆으로 철선이 있는 암릉구간을 지나고
지나온 암릉구간을 돌아보고...
나무계단도 보인다...
7조각으로 나눠진 바위라고 하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계속되는 하산길에도 틈틈이 조망을 즐기고...
안부갈림길...
좌측 동의본가 방향으로 간다...
갈림길 이후 등로는 거의 평지수준..
임도를 만나 동의보감 방향으로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간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만나면 실제 산행은 끝이 난다..
계곡을 건너면서 스틱도 접고 본격적인 동의보감촌 관광모드로 돌입...
산행도..
동의본가...
동의본가를 지나면서 보니 해부동굴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해부동굴을 찾아 나섰는데 이후엔 이정표가 없어
지나가는 관람객에게 물어서 찾아가는데 한동안 오름길이 계속되고
다리를 건너니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고..
무턱대고 좌측길로 올라와 보니 넓은 공터에 '치유의 숲" 공사가 한창이다..
눈 앞에 보이는 건물로 가 봤더니 동의보감촌의 윤곽이 보이는 데
그 규모의 방대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한방기체험장을 들어가보니 흡사 절에 온 것 같다...
전방의 커다란 동의전은 대웅전과 같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전각의 배치도 절과 비슷하다...
기체험장의 정문인 기천문과 복석정
복석정(福石鼎)
복석정은 사람을 위해 풀어내는 정기석(精氣石)이다.
진주와 함안군 사이 물속에 잠겨있는 솥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솥처럼 생겼다고 하여 鼎巖이라고 한다. 솥바위는 다른 말로 石鼎이다.
이곳의 솥바위 이름은 복석정으로 솥이라는 의미는 같지만 품고 있는 의미는 다르다.
복석정의 福자는 시경 주아편에 나오는 복자와 같다.
"기취이주 기포이덕(旣醉以酒 旣飽以德)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
=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에게 큰 복을 주리라"
이것은 만민을 이롭게 하는 복이다.
이곳 터의 솥바위는 아궁이가 아니라, 솥뚜껑을 열어놓은 상태의 바위이다.
舊唐書에 나오는 "실지동우(失之東隅) 수지상유(收之桑楡) -
살아오는 동안 실패와 고통을 회복시킬 수 있다"와 같이 복석정은 회복의 힘을 가진 솥바위다.
솥바위는 3가지 능력이 있다. 화가 복이되는 기운을 품어
자신을 살아나게 하는 전화위복이 첫 번째 능력이 될 것이다.
한비자가 말한 "老馬之智"가 두 번째 능력이다.
"늙은 말의 지혜"라는 이 말은 하찮은 사람도 각자 나름대로 장기나 슬기가 하나쯤 있다는 의미로
이 바위가 가지는 두 번째 능력은 베풂이 될 것이다.
솥바위에는 눈이 있다.
재덕을 숨기거나 펼치는 권서(卷舒) 즉 말음과 펼침의 힘이 세 번째 능력이다.
따라서 이 솥바위는 재덕을 품어 쌓거나 활력을 베푸는 능력을 지난 것이다.
"손유여보부족(損有餘補不足) - 남는 것을 덜어 놓았다가 부족한 것에 보충하리라"
이것이 복석정의 정신이다. 하늘과 땅에서 충만한 기운을 담고 덜어 놓았다가
사람에게 보충해 준다는 뜻이다.
복석정은 이곳의 세 번째 혈처인 탄파혈(灘派穴)에 놓일 계획이었으나,
2013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시 동의전 광장활용을 위해 이곳에 놓았다.
전각전(篆刻殿)
전각전은 국새를 만드는 대왕가마를 보호하는 집이며,
국새 제작에 관계되는 일을 하는 작업공간이다.
이곳 국새전각전에서 2007년 7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대한민국 제4대 국새를 제작한 곳으로 정부에서 2008년 2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사용해 왔다.
이곳의 건물은 등황전 전체 혈처에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北은 水로서 火의 相剋이지만, 발화로서는 더없이 좋다.
화기를 끌어들여 화합의 온기를 지속적으로 상생시키는 터이다.
전각전 가마 굴뚝을 정수대라고 한다.
이 터는 석경과 가장 연관이 깊다. 터의 전체 비보건물 중에서 최종 위치이다.
석경이 우주를 의미하는데 비해 굴뚝은 별자리로 북극성을 뜻한다.
굴뚝 기단이 8각의 방향과 괘를 뜻하는 것도 세상의 어려움을 풀어낸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굴뚝은 도자벽돌로 쌓아 독특하고 아름답다.
이 벽돌은 우리나라 경기도 이천 도자명장들의 작품이다.
대왕 가마에 불을 지필 때 국새 거푸집이 그 속에 있으면 진불이다.
하지만 대왕 가마 자체가 잉태한 산모의 모습을 하고 있어
헛불은 결코 헛손질하는 불이 아니다. 대왕가마에서 연기는 운기로써 기운이라는 뜻이다.
크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소원이 성취된다는 믿음이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각자의 승진과 권력을 잡기 위해
몰래 전각장에게 헛불 때는 일을 부탁했다고 한다.
무수리 장옥정도 이 사실을 알고 특별히 부탁하여 헛불을 땔 수 있게 청탁했다고 한다.
훗날 장옥정은 임금의 눈에 들어 장희빈이 되었다.
연기는 인연으로 본다는 옛말이 있다.
연기는 하늘을 날아 공기를 타고 천지간에 퍼져간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증오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태어날 아기에게도 상대적 관계를 잇는다.
향으로, 뜨거운 열꽃으로, 수증기로, 구름으로, 무지개로, 빛과 어두움을 타고
각각의 이상이 교분 되는 곳으로 다리를 열어 놓는다.
뜻과 현실로 세우는 힘이라고 믿으며 전해왔다.
연기를 굴뚝 높이 올리는 것은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오르면서
각자의 희망이 맑게 변한다는 일종의 염원성이다.
이것은 십이인연인 (1)무명無明 (2)행行 (3)식識 (4)명색名色 (5)육입六入
(6)촉觸 (7)수受 (8)애愛 (9)취取 (10)유有 (11)생生 (12)노사老死에서
인연으로 못 다한 것을 극복하는 제소행사이다.
생사의 과보요 마음의 병인 혹장(惑障 - 수행에 장애가 되는 모든 번뇌)과
몸의 병인 업장(業障 - 악한 행위로 인해 생기는 모든 장애)마저도 훌훌 털어서 태우길 바란다.
혜민루와 동의약선관
기체험장의 정문인 기천문
필봉산과 왕산, 우측의 망바위가 둘러싸고 있다..
초객정
해부동굴
스승 유의태를 해부한 허준 설화 이야기
삼복더위에도 냉기가 흐르는 서늘한 얼음 동굴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스승의 유서가 펼쳐져 있습니다.
"내 생전의 소망을 너에게 의탁하여 병든 몸이나마 내 몸을 너에게 준다 명심하거라
내 몸이 썩기 전에 지금 곧 내 몸을 가르고 살을 찢거라"
반위(위암)에 걸린 유의태는 허준이 원하는 인체와 의술에 대해 보여주고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해부하라는 유서를 남깁니다.
세상 모든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달라고 당부하는 마지막 서찰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승에게 허준은 다음과 같이 약속합니다.
'의원이 되기를 두려워하거나 의약과 침으로 돈이나 탐하게 되거든 나를 벌하여 주옵소서'
제자를 위해 몸을 내어준 스승과 스승의 뜻을 알기에 눈물을 머금고 해부를 했던 제자.
침(針) 조형물...
침은 한의약의 기본요소로서 인체의 일정한 곳을 찔러 피를 빼내고
자극을 주어 병을 치료하는 의료 기구로
한의약을 상징화 한 것으로 지리산(1,915m)의 높이를 1/100로 축소한 19.15m에 달한다.
곰 형상물 입안에서..
산청한의학 박물관..
황금장수거북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염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조형물로
황금색은 부귀, 거북은 장수를 의미함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거북이의 눈매가 사납기 짝이없다...
불로문
안에서 보면 장생문이다.
그래서 불로장생문..